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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7-05 17:54
[한국사] 발해 ㅡ 혼동강(混同江)과 속말수(粟末水), 그리고 홀한하(忽汗河)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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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동강(混同江)과 속말수(粟末水), 그리고 홀한하(忽汗河)




만주의 대표적 강은 눈강, 송화강, 흑룡강으로 나머지 강인 조아하(전근대 태력하, 타루하, 달로하 등), 목단강(청나라 시대 호이합하) 등은 단지 이들 강으로 흘러드는 지류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송화강은 하얼빈을 중심하여 만주를 횡단하여 동쪽으로 흑룡강에 들어가는 강을 가리키는데 이 강은 만주 최남부의 용강산맥(현 중국명 장백산맥)에서 발원하며 구체적으로 제일 긴 상류의 지류는 현 백두산을 발원처로 하고 있다. 그런데 고중세의 사람들은 이 강이 길림합달령(과거 명칭 장백산, 태백산, 도태산 등) 서쪽에서 발원한다(신당서 흑수말갈전)고 여겼고 이 인식은 나아가 전근대 여러 사서에서 "장백산(=태백산=도태산)에서 발원한다"로 비약돼 기술되었다.

송화강은 오늘날 이른 바 제2송화강이라 칭하는 과거의 혼동강이자 압자하이자 속말수이자 속말강 수계를 당연히 포함한다. 송화강은 좌우가 바뀐 'ㄱ'자 형태의 물줄기 모양을 띠고 있다. 다만 지리정보의 시각적 접근이 중국 쪽에서 말갈/물길 등이 있는 현 하얼빈-길림-장춘 방면으로, 또 말갈/물길 쪽에서는 그 반대로 가해졌으므로 이 사이에 있는 현 제2송화강만 속말수, 속말강, 압자하, 혼동강 등으로 역대 사서에서 널리 불려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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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발해가 터 잡은 만주 중심의 우리 강역사에 있어서 크게 언급된 속말수, 속말강, 홀한하, 오루하, 엄리대수, 엄호수, 시엄수 등을 역대 사서 기술의 사실 관계에 따라 분석, 정리하고 나아가 음운분석적 시도를 통하여 그 이름의 뜻을 밝히고자 한다.

이 연구는 발해 상경용천부 위치 추적의 한 방안으로 선택된 것이다.



1. 사실 관계로 본 속말수, 홀한하, 오루하 등


1) 홀한하와 욱루하


① 천보(天寶 ; 742~756) 말년에 대흠무가 상경(上京)으로 수도를 옮겼으니, 이곳은 바로 옛 도읍지에서 삼백리 떨어진 홀한하(忽汗河)의 동쪽이다.  《신당서 발해전》

② 요하(遼河)를 건너서 태백산(太白山)의 동북을 차지하고 오루하(奧婁河)에 의지하여 성벽을 쌓고 방어를 튼튼히 하였다. 《신당서 발해전》


홀한하(忽汗河) = 오루하(奧婁河) = 욱루하(奧婁河)

2) 속말수와 속말강


① 속말강(涑沫江)과 가까운데서 연유하는데, 아마도 속말강은 이른바 속말수(粟末水)를 가리킨다. (속말수=속말강) 《신당서 발해전》

② 물길국=현 하얼빈, 락환수=현 시라무룬허, 태로수=현 조아하, 속말수=강폭이 약1.5km=현 송화강(勿吉國,在高句麗北,舊肅慎國也。邑落各自有長,不相總一。其人勁悍,於東夷最強。言語獨異。常輕豆莫婁等國,諸國亦患之。去洛五千里。自和龍北二百餘里有善玉山,山北行十三日至祁黎山,又北行七日至如洛環水,水廣里餘,又北行十五日至太魯水,又東北行十八日到其國。國有大水,闊三里餘,名速末水。) 《위서 물길전》

③ 말갈은 고구려 북쪽에 있다, 속말말갈은 고구려와 그 땅이 접경한다(靺鞨,在高麗之北,邑落俱有酋長,不相總一。凡有七種:其一號粟末部,與高麗相接) 《수서 말길전》

④ 고구려와 남쪽을 접했는데 도태산=태백산=현 길림합달령이 고구려와 말갈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속말말갈은 속말수=현 제2송화강에 의지하여 산 데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속말수는 도태산=태백산=현 길림합달령 서쪽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타루하=현 조아하에 물을 댄다(黑水靺鞨居肅慎地,亦曰挹婁,元魏時曰勿吉。直京師東北六千里,東瀕海,西屬突厥,南高麗,北室韋。離為數十部,酋各自治。其著者曰粟末部,居最南,抵太白山,亦曰徒太山,與高麗接,依粟末水以居,水源於山西,北注它漏河) # 신당서는 위서 물길전과 수서 말갈전, 그리고 당시(송, 11세기)까지의 정보를 토대로 위서를 언급하여 흑수말갈의 터전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흑수말갈은 고구려가 망한 후 고구려주민이 소개되자 현 하얼빈, 장춘, 길림 등지로 내려왔다가 발해 건국세력에게 쫓겨 다시 본거지인 흑룡강 중하류로 이동하였다. 즉 이 기술 부분은 흑수말갈이 아니라 속말말갈의 지리정보이다. 《신당서 흑수말갈전》

⑤ 혼동강=속말하=속말말갈 본거지=회령서남쪽=동말강=현 제2송화강. 호삼성이 말하길 "금나라 사람들은 압록강을 일컬어 혼동강이라 했다" 하였다. (混同江在會寧西南。舊《志》:在開元北千五百里,源出長白山。一名粟末河,粟末靺鞨所居也。江面闊三里餘,經會寧之西,東北流達五國頭城北,又北合松花江,東入海。《宋史》:金烏古乃時,自東沫江之北、寧江之東,地方千餘里。東沫,即粟末之訛也。胡三省云:金人謂鴨淥江為混同江) # 독사방여기요 산동9에서 말하는 회령은 금나라 회령부로, 이 사서에서 기술하는 회령부 위치는 현 장춘, 길림 등지를 포함한 그 북쪽. 《독사방여기요 산동9》


속말강=속말수=속말하=동말강=혼동강=현 제2송화강≒금나라 압록강


(# 호삼성의 발언 관련은 아래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3) 압자하와 혼동강


① 호삼성이 말하길 "금나라 사람들은 압록강을 일컬어 혼동강이라 했다" 하였다. (混同江在會寧西南。舊《志》:在開元北千五百里,源出長白山。一名粟末河,粟末靺鞨所居也。江面闊三里餘,經會寧之西,東北流達五國頭城北,又北合松花江,東入海。《宋史》:金烏古乃時,自東沫江之北、寧江之東,地方千餘里。東沫,即粟末之訛也。胡三省云:金人謂鴨淥江為混同江) # 독사방여기요 산동9에서 말하는 회령은 금나라 회령부로, 이 사서에서 기술하는 회령부 위치는 현 장춘, 길림 등지를 포함한 그 북쪽. 《독사방여기요 산동9》

② 서기 1024년, 거란 성종의 명령에 따라 압자하는 혼동강으로, 달로하는 장춘하로 그 이름을 바꿨다.(太平四年春正月庚寅朔,宋遣張傳、張士禹、程琳、丁保衡來賀。如鴨子河。二月己未朔,獵撻魯河。詔改鴨子河曰混同江,撻魯河曰長春河。)《요사 성종 본기7》

③ 요하(遼河)를 건너서 태백산(太白山)의 동북을 차지하고 오루하(욱루하, 奧婁河)에 의지하여 성벽을 쌓고 방어를 튼튼히 하였다. 《신당서 발해전》

④ 주몽은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 등 세 사람과 벗이 되어 엄호수(淹淲水)에 이르렀다. # 삼국사기 사서기자는 엄호수에 주석을 달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개사수(盖斯水)라고도 한다. 지금 압록강 동북쪽에 있다." 고려시대 압록강은 본인의 이미 수차례 고찰해 보인 바 대로 현 요하~동요하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성왕편 》

⑤ 엄리대수(奄利大水) 《광개토태왕비문》

⑥ 엄체수(淹滯水)  《양서(梁書)》

⑦ 승천황태후가 허락하신 이래(993년)로 서쪽은 화표주(華表柱)가 있는 고려 쪽 강안부터 동쪽은 동명성왕(日子)의 별교지수(엄리대수, 개사수, 시엄수)까지 고려에게 할양되었습니다. # 별교지수는 고려의 강동6주 지역으로 현 제2송화강을 가리킴을 본인이 고찰하여 수차례 언급한 바 있다. 《고려사, 선종 5년, 1088년 요(거란)에 보낸 표문》

호삼성이 "금나라 사람들은 압록강을 혼동강이라 한다"한 것은 첫째, 고대의 압록강이었던 '현 요하~동요하'와 현 제2송화강인 당시 혼동강이 그 수계가 가깝기 때문에 인 혼동. 둘째, 점차 북송을 거쳐 남송 대에 이르면 본래의 압록강인 요하를 고대의 요수로 인식하고, 현 압록강을 고대의 압록강으로 인식하는 의식이 굳어지게 되면서, 동시에 압록강(동요하)의 발원처와 혼동강(제2송화강)의 발원처가 현 매하구시에서 백산 지역에 이르는 곳으로 비슷하여서 현 길림합달령인 장백산과 현 백산 일대인 용강산맥의 서북부 지역을 혼동하게 되었던 데에서 온 지리적 인식의 오류로 인한 것. 고대인의 현 제2송화강의 발원처에 대한 인식은 장백산(현 길림합달령)의 서쪽에서 발원한다는 인식이 장백산에서 발원한다는 인식과 뒤섰여 있었다. 실제 제2송화강의 상류로서 가장 긴 지류는 현 백두산에서 뻗어내려가는 물줄기이나 제2송화강의 상류 지류가 무수히 많고, 현 용강산맥에 해당하는 산지에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혀서 그 발원처를 장백산(길림합달령)의 서쪽 ㅡ 水源於山西 (신당서) ㅡ 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혼동강이 본래 명칭이 '압자하'였던 것이 혼동을 야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압록강과 압자하의 명칭이 비슷한 것에서 외국인이 남송의 호삼성은 충분히 오해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으로 압록강과 압자하의 우리말 소리값뿐만 아니라 당시 금나라 여진인들의 언어로 불린 소리값 역시 매우 유사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는 제2송화강을 가리킨 다른 명칭인 욱루하/오루하(신당서 발해전)의 음가인 '욱/오'와 압자하/압록강의 음가인 '압'의 상관성과 그 유사성을 시사한다.

현 제2송화강 = 속말강 = 속말수 = 압자하 = 혼동강 = 욱루하/오루하 = 엄체수 = 엄호수 = 엄리대수 = 개사수 = 별교지수 = 홀한하


4) 구당서(舊唐書) 실위(室韋)전의 망건하(望建河)와 홀한하(忽汗河)


발해와 관련하여 홀한하(忽汗河)가 사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본인이 파악한 바로는 《신당서 발해전》이 처음이다. 본인이 찾아본 사서는 위서, 북주서, 수서, 북사, 구당서, 신당서, 통전, 자치통감, 자치통감주, 책부원귀, 태평환우기, 구오대사, 신오대사, 요사, 금사, 송막기문, 원일통지, 명일통지, 독사방여기요, 만주원류고 등이다. 

발해와 무관하게 홀한하(忽汗河)가 처음 등장한 것은 《구당서 실위전》이 처음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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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호(烏羅護)에서 동북쪽으로 이백여 리[를 가서] 나하(那河)의 북쪽에는 옛 오환(烏丸)의 유민들이 살고 있는데 지금도 스스로를 오환국(烏丸國)이라 칭한다. 무덕(武德)·정관(貞觀) 연간에 또한 사자를 보내 와 조공하였다. 

(오환국의) 그 북쪽 대산(大山)의 북쪽에는 대실위(大室韋) 부락이 있는데 그 부락은 망건하(望建河) 옆쪽에 살았다. 그 강의 원류는 돌궐(突厥)과 동북 경계인 구륜박(俱輪泊)에서부터 시작되어 굽이쳐 동쪽으로 흘러 서실위(西室韋)의 경계를 지나고 또 동쪽으로 대실위(大室韋)의 경계를 지나 또 동쪽으로 몽올실위(蒙兀室韋)의 북쪽을 지나 낙저실위(落俎室韋)의 남쪽을 거쳐 다시 동쪽으로 흘러 나하(那河), 홀한하(忽汗河)와 합쳐지고 다시 동쪽으로 남흑수말갈(南黑水靺鞨)의 북쪽을 거치고 북흑수말갈(北黑水靺鞨)의 남쪽을 거쳐 동쪽으로 바다에 흘러 들어간다. 

《舊唐書 卷二百一十二 室韋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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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건하와 구륜박, 나하 등은 지금도 그 이름으로 남아있으므로 이견이 없으나 홀한하가 쟁점이다. 본인은 구당서 실위전의 홀한하를 현 송화강으로 보는데 반하여 만주원류고와 현 사학계 통설에서는 목단강으로 보고 있다. 이를 수리도 상에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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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지금까지 여러 경로의 접근을 통하여 "현 제2송화강 = 속말강 = 속말수 = 압자하 = 혼동강 = 욱루하/오루하 = 엄체수 = 엄호수 = 엄리대수 = 개사수 = 별교지수 = 홀한하"이 성립함을 논증하였다. 그런데 구당서 실위전에 등장하는 홀한하가 현 목단강이 아니라 현 제2송화강(~제1송화강)임을 이 안에서 새롭게 입증해야 하는 형국이다. 구당서 실위전 안에서 입증을 해야 홀한하가 송화강임이 더욱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구당서 실위전의 해당 기술을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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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건하(望建河) 옆쪽에 살았다. 그 강의 원류는 돌궐(突厥)과 동북 경계인 구륜박(俱輪泊)에서부터 시작되어 굽이쳐 동쪽으로 흘러 서실위(西室韋)의 경계를 지나고 또 동쪽으로 대실위(大室韋)의 경계를 지나 또 동쪽으로 몽올실위(蒙兀室韋)의 북쪽을 지나 낙저실위(落俎室韋)의 남쪽을 거쳐 다시 동쪽으로 흘러 나하(那河), 홀한하(忽汗河)와 합쳐지고 다시 동쪽으로 남흑수말갈(南黑水靺鞨)의 북쪽을 거치고 북흑수말갈(北黑水靺鞨)의 남쪽을 거쳐 동쪽으로 바다에 흘러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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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건하는 현 흑룡강의 상류에 해당하는 강이다. 그런데 구당서 실위전에서는 망건하를 흑수, 즉 현 흑룡강 자체로 기술하고 있다. 수리(水理) 상에서 보면 현 눈강인 나하가 남쪽으로 흘러 현 송화강으로 들어가고 이렇게 합쳐진 물줄기가 망건하(흑룡강)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사학계 통설에서는 나하(현 눈강)를 제1송화강(북송화강)까지 포함한 것으로 인식하고서 홀한하는 목단강에 비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이면에는 사실 고대 압록강을 현 압록강에, 고대 평양을 현 북한 평양에, 낙랑군을 현 서북한에 비정한 사학계의 통설이 주춧돌처럼 자리하고 있다. 이 주춧돌 위에서 홀한하가 현 목단강에, 홀한성이 현 영안시 동경성진에 비정된 것이고 이러한 맥락에서 구당서 실위전의 홀한하가 목단강에 비정된 것이다. 

위서 물길전에서 을력지가 북위를 방문하게 된 경로를 기술한 내용을 보면 난하(=나하, 현 눈강)를 현 제1송화강처럼 보이게 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기는 하다. 

을력지는, “처음 나라에서 출발하여 배를 타고 난하(難河)를 거슬러 서쪽으로 오르다가 태려하(太沴河)에 이르러 배를 물속에 감추어 두고, 남으로 육로를 걸어서 낙고수(洛孤水)를 건너 거란의 서쪽 국경을 따라 화룡에 이르렀다.”고 말하였다. 《위서 물길전》

그런데 눈강은 제2송화강(남송화강)이 제1송화강으로 들어가는 목까지 흐르는 물줄기를 가리킨다. 태려하(=타루하), 즉 현 조아하는 눈강에 흘러드는 한 지류인 것이다. (위의 지도를 보라.) 즉 현 하얼빈에서 배를 타고 출발한 을력지 일행은 난하(=나하=현 눈강)을 거슬러 서쪽으로 올라야 태려하(=타루하=현 조아하)에 다달을 수 있다. 

한편 이밖에도 현 제1송화강을 나하(=난하=현 눈강)로 볼 수 없는 기록이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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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말수는 도태산=태백산=현 길림합달령 서쪽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타루하=현 조아하로 흐르단에(물을 댄다)(黑水靺鞨居肅慎地,亦曰挹婁,元魏時曰勿吉。直京師東北六千里,東瀕海,西屬突厥,南高麗,北室韋。離為數十部,酋各自治。其著者曰粟末部,居最南,抵太白山,亦曰徒太山,與高麗接,依粟末水以居,水源於山西,北注它漏河) 《신당서 흑수말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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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서 흑수말갈전의 기술은 "속말수(현 제2송화강)의 물줄기가 북쪽으로 흘러 타루하(=태려하=현 조아하)의 물줄기와 만난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는 눈강의 남단을 타루하로 인식하고 있는 태도를 띠고 있다. 이 기술 역시 현 제1송화강을 눈강(=나하=난하)로 볼 수 없게 하는 근거이다.

한편 금사(金史)에서는 현 제1송화강까지 흑수(흑룡강)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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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발해가 성강해져서 흑수는 발해에 속하게 되어 (당나라에) 조공 보내는 것을 단절하게 되었다. 오대 시대에 거란이 발해 땅을 차지하니 흑수말갈은 거란에 속하게 되었다. 거란의 호적에 있으면서 남쪽에 거주하는 자들을 숙여진이라 불렀고, 북쪽에 거주하면서 거란의 호적에 있지 않는 자들을 생여진이라 불렀다. 생여진의 땅에는 혼동강, 장백산이 있는데 혼동강 역시 흑룡강이라 불렀던 바 이를 일컬어 백산흑수라 칭하였다.

《金史 本紀第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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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金史)에서는 여진족의 주류의 기원을 흑수말갈에 두고 있는데 이 기록에서 금사(金史)의 사서기자는 혼동강을 현 제2송화강뿐만 아니라 제1송화강까지 아울러 가리키고 있으며 이 혼동강이 흑룡강이라 불렸다고 증언하고 있다. 생여진은 현 하얼빈을 중심으로 하여 거주하였고, 거란의 요나라와는 남으로는 현재의 제2송화강, 북으로는 현재의 눈강을 경계로 하였다.

위에 제시한 지도(수리도)를 참고하여 구당서 실위전의 해당 기술을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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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건하(望建河) 옆쪽에 살았다. 그 강의 원류는 돌궐(突厥)과 동북 경계인 구륜박(俱輪泊)에서부터 시작되어 굽이쳐 동쪽으로 흘러 서실위(西室韋)의 경계를 지나고 또 동쪽으로 대실위(大室韋)의 경계를 지나 또 동쪽으로 몽올실위(蒙兀室韋)의 북쪽을 지나 낙저실위(落俎室韋)의 남쪽을 거쳐 다시 동쪽으로 흘러 나하(那河), 홀한하(忽汗河)와 합쳐지고 다시 동쪽으로 남흑수말갈(南黑水靺鞨)의 북쪽을 거치고 북흑수말갈(北黑水靺鞨)의 남쪽을 거쳐 동쪽으로 바다에 흘러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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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술의 맥락을 이해하여야 한다. 일단 망건하는 현 흑룡강을 가리킨다. 이 망건하가 발원처로부터 여러 지역을 거쳐 현 송화강 물줄기와 합쳐지기 전까지 묘사하고 여기에 바로 "동쪽으로 흘러 나하·홀한하와 합쳐진다(東流與那河、忽汗河合)"라고 기술하고 있다. 즉 이 기술 부분의 맥락은 나하와 홀한하를 두 개의 각기 다른 강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두 개의 강이 한데 뭉뚱그려진 하나의 강 개념으로 묘사하는 인식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역대 중국 사서가 만주지역, 그리고 만주지역의 숙신, 말갈, 물길, 고구려 등의 지리정보를 기술하면서 거론된 강은 속말수(=속말강), 나하(=난하), 그리고 타루하(=태려하=달로하 등)의 3 개이다. 홀한하는 구당서 실위전에서 최초로 한번, 그리고 그 이후로는 오직 발해 관련하여 거명됐을 뿐이다. 만주의 강줄기를 보라. 제일 큰 강이 눈강, 송화강이다. 현 목단강은 눈강에 흘러드는 조아하와 마찬가지로 송화강으로 흘러드는 지류의 성격을 띠고 있을 뿐이다. 

또한 송화강과 흑룡강이 만나는 형태를 보면 흑룡강, 눈강, 목단강(학계 홀한하 비정)의 3 강이 만나는 형국이 아니다. 그저 흑룡강과 송화강이 만나는 형국일 뿐이다. 즉 이 송화강은 눈강과 제2송화강이 만나 형성된 물줄기이므로 구당서 실위전에서는 '나하(눈강)·홀한하(현 제2송화강, 본인 비정)'라고 현 송화강의 물줄기를 표현한 것이다. (다시 한번 위에 본인이 위키피디아에서 얻어 편집하여 제시한 흑룡강 수리도를 보라) 사학계가 현 우수리강을 홀한하라고 하지 않은 게 차라리 다행일 정도이다.

한편 만주원류고에서 본인과 마찬가지로 구당서 실위전을 발췌하여 분석하면서 홀한하를 호이합하(呼爾哈河, 虎爾哈河), 즉 현 목단강에 비정하고 있다. 만주원류고는 발해 상경용천부, 금나라 상경회령부의 위치를 기술하면서 자꾸 현 하얼빈시와 목단강시를 왔다갔다 하는 자기모순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만주원류고가 호이합하, 즉 현 목단강을 홀한하라 한 것은 건주여진의 근원지이자 중심지인 영고탑(寧古塔)을 기준으로 역대 만주 관련 사서 기술을 꿰어맞추려 한 데에서 비롯한다. 많은 이들이 만주원류고를 거론하면서 '고구려'를 언급 안 했니 어쨌니 하며 청나라판 동북공정이라고 비판하고 비하하는데 사실 이런 비판과 무시를 하는 사람치고 만주원류고를 제대로 읽어본(읽어보기는 커녕 구경도 안 해봤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사람이 없다.

만주원류고의 문제는 바로 건주여진 발상지인 영고탑(寧古塔)을 만주역사의 근원지로 조작하는 데에 있다. 건주여진이라는 그 이름조차도 발해의 건주지역인 현 목단강시 일대에서 거주, 활동하였던 데에서 비롯된 것이고, 발해 건주는 상경용천부의 남쪽에 위치했다고 여러 사서가 기술(심지어 만주원류고조차도)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만주원류고가 청나라판 동북공정인 근본 이유이자 내용이다.



2. 음운분석적 접근으로 본 속말수, 홀한하, 오루하 등


음운유사성을 토대로 홀한하와 속말수, 즉 현 송화강이 같은 강임을 따져보고자 한다. 이 글은 해당 분야 전문가적 수준의 지식과 방법을 갖춘 상태에서 접근한 글이 아님을 미리 밝힌다. 이 글은 본인과 같은 음운과 어원재구에 대한 학부(국어국문학) 전공자 수준의 비전문가가 가용할 수 있는 편의적 방법을 모두 활용하여 상식적 수준에서 대상 사이의 관련성을 유의미하게 언급하는 정도를 목적한다.

우선 관련 기록을 종합하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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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엄리대수(奄利大水) 《광개토태왕비문》

② 엄체수(淹滯水) 《양서(梁書)》, 시엄수(施掩水) 《위략(魏略)》

③ 물길국=현 하얼빈, 락환수=현 시라무룬허, 태로수=현 조아하, 속말수=강폭이 약1.5km=현 송화강(勿吉國,在高句麗北,舊肅慎國也。邑落各自有長,不相總一。其人勁悍,於東夷最強。言語獨異。常輕豆莫婁等國,諸國亦患之。去洛五千里。自和龍北二百餘里有善玉山,山北行十三日至祁黎山,又北行七日至如洛環水,水廣里餘,又北行十五日至太魯水,又東北行十八日到其國。國有大水,闊三里餘,名速末水。) 《위서 물길전》

④ 말갈은 고구려 북쪽에 있다, 속말말갈은 고구려와 그 땅이 접경한다(靺鞨,在高麗之北,邑落俱有酋長,不相總一。凡有七種:其一號粟末部,與高麗相接) 《수서 말길전》

⑤ 고구려와 남쪽을 접했는데 태백산(=도태산=현 길림합달령)이 고구려와 말갈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속말말갈은 속말수(=현 송화강)에 의지하여 산 데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속말수는 태백산(=도태산=현 길림합달령) 서쪽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타루하(=현 조아하)에 물을 댄다(黑水靺鞨居肅慎地,亦曰挹婁,元魏時曰勿吉。直京師東北六千里,東瀕海,西屬突厥,南高麗,北室韋。離為數十部,酋各自治。其著者曰粟末部,居最南,抵太白山,亦曰徒太山,與高麗接,依粟末水以居,水源於山西,北注它漏河) # 신당서는 위서 물길전과 수서 말갈전, 그리고 당시(송, 11세기)까지의 정보를 토대로 위서를 언급하여 흑수말갈의 터전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흑수말갈은 고구려가 망한 후 고구려주민이 소개되자 현 하얼빈, 장춘, 길림 등지로 내려왔다가 발해 건국세력에게 쫓겨 다시 본거지인 흑룡강 중하류로 이동하였다. 즉 이 파란색 기술 부분은 흑수말갈이 아니라 속말말갈의 지리정보이다. 《신당서 흑수말갈전》

⑥ 천보(天寶 ; 742~756) 말년에 대흠무가 상경(上京)으로 수도를 옮겼으니, 이곳은 바로 옛 도읍지에서 삼백리 떨어진 홀한하(忽汗河)의 동쪽이다. 《신당서 발해전》

⑦ 요하(遼河)를 건너서 태백산(太白山)의 동북을 차지하고 오루하/욱루하(奧婁河)에 의지하여 성벽을 쌓고 방어를 튼튼히 하였다. 《신당서 발해전》

⑧ 속말강(涑沫江)과 가까운데서 연유하는데, 아마도 속말강은 이른바 속말수(粟末水)를 가리킨다. 《신당서 발해전》

⑨ 서기 1024년, 거란 성종의 명령에 따라 압자하는 혼동강으로, 달로하는 장춘하로 그 이름을 바꿨다.(太平四年春正月庚寅朔,宋遣張傳、張士禹、程琳、丁保衡來賀。如鴨子河。二月己未朔,獵撻魯河。詔改鴨子河曰混同江,撻魯河曰長春河。)《요사 성종 본기7》

⑩ 주몽은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 등 세 사람과 벗이 되어 엄호수(淹淲水)에 이르렀다. # 삼국사기 사서기자는 엄호수에 주석을 달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개사수(盖斯水)라고도 한다. 지금 압록강 동북쪽에 있다." 고려시대 압록강은 본인의 이미 수차례 고찰해 보인 바 대로 현 요하~동요하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성왕편 》

⑪ 승천황태후가 허락하신 이래(993년)로 서쪽은 화표주(華表柱)가 있는 고려 쪽 강안부터 동쪽은 동명성왕(日子)의 별교지수(엄리대수, 개사수, 시엄수)까지 고려에게 할양되었습니다. # 별교지수는 고려의 강동6주 지역으로 현 제2송화강을 가리킴을 본인이 고찰하여 수차례 언급한 바 있다. 《고려사, 선종 5년, 1088년 요(거란)에 보낸 표문》

⑫ 혼동강=속말하=속말말갈 본거지=회령서남쪽=동말강=현 제2송화강. 송사에서는 "금나라 오고내 시절에 동말강 북쪽으로부터 영강 동쪽을 지방 1천여 리였다"했는데 '동말'은 즉 '속말'을 잘못 적은 것이다. '속말호삼성이 말하길 "금나라 사람들은 압록강을 일컬어 혼동강이라 했다" 하였다. (混同江在會寧西南。舊《志》:在開元北千五百里,源出長白山。一名粟末河,粟末靺鞨所居也。江面闊三里餘,經會寧之西,東北流達五國頭城北,又北合松花江,東入海。《宋史》:金烏古乃時,自東沫江之北、寧江之東,地方千餘里。東沫,即粟末之訛也。胡三省云:金人謂鴨淥江為混同江) # 독사방여기요 산동9에서 말하는 회령은 금나라 회령부로, 이 사서에서 기술하는 회령부 위치는 현 장춘, 길림 등지를 포함한 그 북쪽. 《독사방여기요 산동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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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홀한하'의 '홀'은 광개토대왕비의 '홀본', 위서(魏書)의 흘승골성과 관련 있어 보인다.


① 졸본(卒本) ㅡ 삼국사기를 비롯한 대부분 사서
② 홀본(忽本) ㅡ 광개토대왕비
③ 흘승골성(紇升骨城) ㅡ 위서(魏書)
④ 솔본(率本) ㅡ 재야사학계의 일부는 졸본의 졸(卒)은 솔(率)을 잘못 적은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이들은 이를 토대로 몽골, 헝가리, 불가리아, 터키 등 외국의 지명, 또는 이들 외국어에서의 비슷한 음가를 지닌 어휘와 견주어 고구려 첫 도읍지를 설명하려 하는 시도를 하여 왔다.

이를 음가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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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한하와 속말수가 같은 말(소리)을 다른 한자로 음차한 것이라는 가정 하에 관련어를 상고음으로 재구해 그 첫소리의 음가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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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사수(盖斯水)와 별교지수(鼈橋之水)는, 개사수의 개(盖)는 '뚜껑/덮개'라는 뜻 외에 '하늘(天)'의 뜻을 지니고 있고, 별교지수는 주몽이 엄리대수를 건넌 것을 신격화한 데에서 온 수사적 표현이므로 '음가(소리값)'를 통하여 여러 말의 상관성을 따져보는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한다.

광개토태왕 비문에 전하는 '엄리대수(奄利大水)'는 이 낱말 자체가 첩어로 구성돼 있다. '엄리(奄利) = 대수(大水)'인 것이다. 우리말을 비롯한 고대 만주-한반도어에서 어/아/으, 알/울/엄/암 등은  크다(大)를 뜻한다. 물(水)은 'ㅁㄹ' 형태로 재구되는데 우리 옛말 '밀', 거란어 '몰리'가 대표적이다.

크다(大)의 사례에 대하여 부가하면 아리수(백제, 한강)의 '아리', 욱리하(백제, 한강)의 '욱리', 압록강의 '[암녹]', 엄리대수의 '어', 또는 '엄리', 우렁차다의 '우렁', 으리으리하다의 '으리', 어마어마하다의 '어마', 어라하(백제)의 '어라', 어륙(백제)의 '어륙', 알지(신라)의 '알', 알영(신라)의 '알' 등이 있다.

따라서 엄리대수(奄利大水), 엄체수(淹滯水), 엄호수(淹淲水) 등은 모두 만주지역에 위치하는 大水를 가리키는 말인데 만주에서 대수라 칭할만한 강은 단 하나, 송화강밖에는 없다.

흑룡강은 만주의 외곽을 돌아 먼 연해주 동북부를 지나 동해로 빠지고 눈강은 초기 우리 조상들의 삶의 터전과 그 고고물질문화상을 고려했을 때에 지역적 성격이 가깝지 않다. 우리 선조는 현 하얼빈-길림-장춘 등지에서 살며 청동기 시대부터 고고물질문화의 흔적을 남겼고 부여와 고구려는 만주의 주인을 되물림하였다. 이 지역의 大水는 바로 송화강이다.

신당서 발해전에서 기술한 오루하/욱루하(奧婁河)는 그 음가에서 마찬가지로  大水를 뜻하는 앞의 여러 말과 같은 계열임을 알 수 있으며 역시 만주에서 大水는 결국 송화강밖에 없다. 

속말수(=속말강)가 혼동강이고 혼동강이 현 제2송화강임은 역사적으로 이견이 없다. 제2송화강과 송화강은 다른 강이 아니다. 단지 물의 흐르는 방향과 위치에 따라 편의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이렇게 이름을 붙여 이를 뿐이다. 그런데 이 제2송화강이 혼동강으로 불리기 전의 이름이 압자하(鴨子河)였다. 압자하 역시 엄리대수와 같은 계열의 음가를 지닌 강 이름인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속말수 = 압자하 = 혼동강 = 현 제2송화강

욱루하/오루하 = 엄리대수 = 엄체수 = 엄호수 = 만주의 大水 = 현 송화강

홀한하 = 욱루하/오루하

만주지역 하천의 명칭은 금나라와 원나라를 거치며 다소 혼탁해진다. 현 송원시 방면의 눈강 하류를 압자하라고 부르고, 송와강(송화강 명칭의 기원)이 등장하며 기타 발해 부여부이자 거란 황룡부이자 금나라의 융주(隆州), 훗날 제주(濟州)로 이름을 바꾸는, 현 길림 서쪽, 송원 남쪽, 사평 북쪽 지역에는 혼동강 외에 랍림하(拉林河, 래류하(淶流河) 등이 나타나는데 이들 하천은 혼동강, 즉 현 제2송화강의 지류로 생각된다. 

동말강(東沫江)은 고조우의 독사방여기요 산동 9에서 혼돈강(현 제2송화강)을 설명하며 송사(宋史)에서 인용한 기술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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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에 따르면, 금나라는 오고내(김함보의 5대손, 1021~1074) 시절에 그 영역이 동말갈 북쪽으로부터 영강의 동쪽의, 지방 1천여 리였다. 동말은 속말을 잘못 적은 것이다. 《宋史》:金烏古乃時,自東沫江之北、寧江之東,地方千餘里。東沫,即粟末之訛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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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말은 속말을 잘못 적은 것이다(訛는 잘못되다라는 뜻 외에 변하다는 뜻이 있다. 즉 이 경우는 속말의 소리가 동말로 변한 것이다ㅡ라고 해석해도 옳다)'하는 기술은 송사의 것이 아니라 고조우의 설명인 듯 하다. 그런데 본인은 해당 기술을 송사에서 갖은 방법으로 찾아봤으나 찾지 못했다. 낙담하던 차에 만주원류고에서 동일 기술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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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 함주병마사(가 관리한)자들은 휘발이라고 일컫는다. 휘발은 (본래) 숙여진도 아니고 생여진도 아니었다. 속말강 북쪽으로부터 영강의 동쪽에, 지방 1천여 리 정도의 땅에서 대군장도 소군장도 나라 이름도 없이 인구 10여 만 호(50만 명~70만 명)가 (흩어져) 살았다. 작은 무리는 1천 호(5천 명~7천 명), 큰 무리는 수천 호에 이르렀는데 이윽고 (이를) 일컬어 생여진이라 했다.

《欽定滿洲源流考卷六》

- - - - - - - 

그런데 만주원류고의 이 기술에서는 맥락과 정보는 일치하는데 동말(東沫)강이 아니라 속말(粟末)강이라 돼 있다. 어찌됐든 이 두 사서 독사방여기요와 만주원류고가 동일한 기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동일 내용의 출전이 되는 (독사방여기요의 경우 송사) 동일 사서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므로 송사에서 독사방여기요의 "東沫,即粟末之訛也。" 기술을 본인이 찾지 못 하였다 하여서 무조건 낙담할 필요는 없다. 송사에서 본인이 찾지 못 하였으나 독사방여기요에는 이 기록이 있으니 역사적 가치는 획득한 기술이다.

東沫,即粟末之訛也。

이 기술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東沫과 粟末이 같은 것이라는 점이다. 독사방여기요의 고조우는 동말은 속말을 잘못 적은 것이라고 지적하였으나 송사가 속말을 동말로 적은 데에는 그 뜻이 같은 데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약 이를 채택하여 분석한다면

(한편 뒤늦게 문헌통고에서 '東水未江'을 찾았다. 역시 휘발을 설명하는 동일 기술 안에 속말수를 대신하여 들어가 있었다. 이는 차후 정안국과 강동6주 문제를 재정리하며 다룰 것이다.)

우선 東의 상고음은 tuŋ이므로 소리값이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東과 粟의 뜻이 통한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東은 뜻을 훈차한 것이고, 粟은 음(소리)을 음차하여 적은 것일 가능성이 있다.

고대 만주-한반도어에서 東은 ㅅ 였다. 이것이 설, 살, 쇠, 새 등으로 오늘날 우리말에 남아있다. 이 말은 동쪽이라는 뜻 외에 햇님(日), 서울(京),때에 따라서는 나랏님(​上) 등의 뜻을 지니고 쓰였다.

속말수(粟末水)와 속말강(涑沫江)의 속이 서로 다른 한자어 粟과 涑으로 '속(한국 한자음, 즉 唐音)'을 표기한 점에서 이미 음차자인 것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들이 동말강(東沫江)과 같은 강이라는 데에서 동말강의 '東'은 '속(粟, 涑)'의 음가와 같은 어떤 말을 훈차한 것이 분명하므로 동말강의 '東'의 훈(訓), 즉 뜻은 결국 ㅅ(東, 日, 京)이라는 것이 도출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말(末, 沫)이 문제인데 앞의 속(粟, 涑)이 '東' 즉  ㅅ(東, 日, 京, 上)의 뜻을 지녔으므로 '말'은 수식을 받는 말로서의 뜻을 지녔을 것이다. 이에 가장 합리적인 추정은 '땅'을 뜻하는 말이라 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마을'은 땅을 뜻하는 말이기는 하나 속말수의 '말'을 마을로 보기에는 이 강이 호르는 땅의 크기가 지나치게 크고 넓다는 것이 걸린다. 우리 말에서 마을을 가르키는 말의 단위는 '벌 > 고을 > 마을 > 골'의 순차를 띤다. 

말(末, 沫, 둘 다 상고음 muɑt)이 '마을'이 아니라 한다면  물(水, 江, 河, 川)을 뜻하는 말일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다. 거란어의 몰리(沒里), 고구려의 매(買, 상고음 mai/mɛ)가 있고 옛 우리말 '미르(龍)', 훈민정음 혜례본(1446)의 '믈', 현대 한국어에도 남아 있는 미나리의 '미' 등을 통하여 '물'의 고대어가 'ㅁ', 'ㅁㄹ'인 것으로 재구가 된다. 

이렇게 본다면 속말수(속말강, 혼동강, 즉 현 송화강)는 동쪽으로 흐르는 강, 또는  ㅅ(東, 日, 京, 上)의 뜻으로 수식하여 신성시(神聖視)할 필요가 있는 강으로 분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속말수와 홀한하(忽汗河)의 관계는 음운적 측면에서 어떻게 될까? 홀(忽)의 첫소리의 상고음 음가가 'ㅅ'임은 이미 살펴보았다.  

홀한하(忽汗河)의 한(汗)은 '땀'이라는 뜻 외에 '물이 끝없이 질펀한 모양'의 뜻을 지닌다. 

현 송화강은 북쪽으로 눈강을 받으며 수많은 지류를 거느리고 만주 평원 전체를 적시며 동쪽으로 흘러가는 바다와 같이 거대한 강이다. 따라서 송화강의 이런 형편은 충분히 '한(汗)'이라는 한자어로 표현할 수 있다. 즉, 속말수, 속말강의 말(末, 沫, 둘 다 상고음 muɑt)과 마찬가지로 홀한하의  '한(汗)' 역시 물(水, 江, 河, 川)을 뜻하는 말인 것이다.

속말수(粟末水) = 홀한하(忽汗河)

한편 주몽이 건넌 강을 이르는 위략의 시엄수(施掩水)는 그 소리값(음가)이 그대로 속말수와 호응한다. 즉 소리값 만으로도 '속말수 = 엄리대수 = 현 제2송화강(을 비롯한 송화강) = 大水'가 성립하는 것이다.

이상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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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글 출처 : The resonance of history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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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ston 19-07-05 18:38
   
일단 죄송.

혹시 님은 현지답사도 하시나요?
궁금했어요..
     
감방친구 19-07-05 18:42
   
현지답사는 형편이 나아지면 하려 합니다.
지금은 구글과 구글어스를 애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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