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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6-26 21:25
[한국사] 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이 인도에서 왔다는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
 글쓴이 : 풍림화산투
조회 : 2,879  

허황옥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도 제가 처음으로 올리는 것 같습니다.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의 시원에 관한 이야기라 좀 조심스럽기도 하고요

아직까지 100% 확신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 글을 자제해 왔지만..

 

최근에 김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예를 들어서 예수의 제자 토마가 김수로와 허황옥을 중매해서 가야가 생겼다. .. 가야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탄생했다. 운운 하는 이야기들이 김해에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이야기를 안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뭐 몇몇 사람들이 그러는 것을 신경을 쓰느냐 하실 분들이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나름 진지합니다. 박물관도 세우고..

 

그 동안 많은 분들이 우리 상고사를 복원하기 위해서 애 쓰셨습니다만

현실은 좀 막장드라마 같습니다.

 

사실 허황옥 이야기가 일연이나 조선시대 허씨들의 창작이 아니라는 것은 열도의 가야 개척 관련한 유물을 조금만 들여다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댓글의 다큐멘터리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ZRdA7C6jCc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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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림화산투 19-06-26 21:25
   
hojai 19-06-26 23:18
   
이건 김병모 교수가 오래 연구해서 여러 글을 써온 것으로 아는데,
머 특별하게 학계의 공식 인증은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너무 오래된 얘기고, 또, 물증같은게 있을리 없고.
이 영상 한번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38yshfQt-hY
     
스포메니아 19-06-27 11:58
   
허황옥과 아유타/가야를 20년 넘게 연구해서 발표한 김병모 교수와 그 결과를 ...
연구 조차 제대로 안해본 놈들이 평가를 하고 인증을 한다???

좀 많이 웃기지 않습니까? ㅎㅎㅎㅎㅎㅎ
          
풍림화산투 19-06-28 15:12
   
제가 누구 편을 드는건 아니구요. 김병모 교수는 연구량이 좀 방대하고 학교 가지고 이야기 하는건 좀 치사하지만 어쨋든 설대 옥스포드..이런 분이 연구한건데..

믿지 못하겠다는 쪽은.. 어케 인도에서 사람이 옴 그게 말이 됨 ? 이 정도 수준이져

하지만 전 김병모 교수도 좀 부족한게 있지 않나 싶어염..
인펠 19-06-27 02:48
   
허본좌
푸른마나 19-06-27 03:43
   
인도 공주가 와서 김수로와 결혼했다는 얘기가 삼국유사에 나오죠..
뭐꼬이떡밥 19-06-27 08:57
   
근데 생각해 보세요

지금도 그렇지만 권력자는 권력자와  혼인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합니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인도여자와 결혼을 한다?

우리가 잘아는 왕겜에서 스타크가문의 장자가 듣도보도 못한 여자와 혼인으로 연합이 흔들리고 골로갔죠.

전 그냥 어디출신인지도 모르는 천한 여자를 왕이 거두고 싶은데 그렇게 못하니까 그냥 인도 출신이다 라고 간판을 만들어 그 여자를 취한것이라고 봅니다.

당연히 다들 알고 그 여자의 영향력도 별로 없으니까  첩 정도로 봐주고 넘어간것 아닐까
     
감방친구 19-06-27 09:39
   
허왕옥 출자 문제가 제가 중고등학생이던 30여 년 전, 그러니까 90년대 초에 큰 인기가 있었습니다 역사교양 분야에서

그 당시 백제 담로와 큰 인기였죠

그래서 책이며 다큐며 그 후로 유심히 봤는데

여러 설 가운데에 인도의 한 가문이 동남아 경로를 타고 양자강 유역에 정착을 했는데 아마도 허왕옥은 그 세력일 것이다 하는 게 제일 그럴싸 하더군요

그 후로 90년대와 2천년대에 역사스페셜, 지역방송 등의 다큐에서 다수 다뤘는데 그것도 다 봤으나 기억이 가물하군요

몇 년 전에 KBS스페셜인가에서 신라 인면구슬을 추적하는 다큐를 몇 회 분량으로 제작, 방송한 적이 있습니다

그 구슬에는 백인남자와 흰새가 새겨져 있는데 대체 이게 어디서 온 것이냐ㅡ하는 황금보검과 함께 미스테리 취급 받아온 유물 가운데 하나죠

기억이 가물해서 백인남자가 누구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흰새는 인도신화의 최고신 가운데 한 신을 상징하더군요

우리와 인도는 둘 다 새토템이 있으나 우리는 새가 하늘에서 오나 그쪽은 물에서 오죠

아무튼 그 다큐에서 밝혀낸 것은
현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에 서쪽은 로마, 동쪽은 신라를 잇는 구슬 생산지가 있어서 교역을 했다는 겁니다

심지어 한반도의 3~4세기 구슬 유물도 그 지역과 관련이 있다고 나오더군요

이러한 점을 볼 때에
과거 에도시대의 쪽발이들이 류구열도를 타고 동남아까지 가서 설쳤던 것처럼
남중국과 동남아 연안을 따라 연결된 국제 교역루트가 아주 일찍부터 형성돼 있었고 그 이른 바 해상실크로드의 동쪽 끝이 한반도였던 것이죠

이러한 정황을 볼 때에
해상교역을 하는 가야에서는 일찍이 이 지역과 인연이 깊지 않았나 추정이 가능한 것이죠

첩이다, 미천하다 하는 그런 얘기는 김해 가서 하시면 귀싸대기 맞을 소리입니다

주몽의 소서노와 마찬가지로 또 왕건에게는 나주세력이 있었던 것처럼

김수로에게는 허왕옥으로 대표되는 세력이 있었던 것이라 추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입니다

허왕옥 인도출자 설은 신라왕족이 석가모니와 같은 종족이다 내세운 것처럼 후대에 윤색된 일종의 프로파간다로 볼 수 있지만

분명히 소서노나 나주세력 같은 역할을 김수로집단에게 한 세력이 있었다 봐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피닉 19-06-27 10:39
   
그 이야기 들어 본적이 있는데, 대략적인 내용이, 한나라 무제의 흉노 정벌.. 흉노가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아유타국을 박살냄, 아유타국의 유력자들은 동쪽으로 이동, 중국의 사천성 양자강 상류지역에 터잡고 삶, 그리고 허씨라는 성을 받음, 허씨는 하늘의 소리를 듣는 집단(무당같은) 에게 하사하던 성씨 인도에서 그러한 직업은 브라만계급, 그들이 반란을 일어키고, 집압되면서 양자강 하류로 이동시킴,  양자강 하류에서 무역업을 하면서 가야의 김수로 왕과 혼인 하면서 제철기술을 보급하고 철강무역의 안정화를 하려 했다는 이야기로 앎
그 중간 중간 근거를 밝히기는 했는데 ... 오래되어서 기억은 안남
               
감방친구 19-06-27 11:22
   
저보다 맥락은 더 잘 기억하시는 거 같습니다 ㅎㅎ
               
비좀와라 19-06-27 13:04
   
그런 말 하다가 김씨 종친회에서 소송 들어갔죠 ㅋㅋㅋ (결과는 모름)

일단 가야 고분에서 인골들이 다 아리안 유전자 검출 됩니다. 무엇 보다도 허황후가 가지고 온 불탑이 있는데 이 불탑의 원산지가 인도에서 가져온 돌이라는 것은 판명 되었고요.

물길이라고 해서 다들 남쪽만 생각 하는데 당시에 카스피해에서 황해까지 뱃길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얼마전 고비사막을 국제 연구단이 탐사 연구 한 적이 있는데 이들이 탐사 연구 한 것이 고비 사막에 엄청난 양의 이산화 탄소가 젤 형태로 있어서 이들이 반출되면 지구에 엄청난 재앙이 있을 것이란 걸 발표 했죠.

다시 말해서 유라시아 대륙 중앙에 분명히 바다와 연결된 수로의 흔적이 있는데 사라졌거든요. 이 물이 고비사막에 이산화탄소 젤 형태로 뭍혀 있는 것을 확인한 거죠.

따라서 보주태후라는 명은 아마도 발해지역을 말하는 것 같고 사마상여가 제남지역의 풍경을 설명하고 무제가 이를 보고 우리나라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냐 라고 화답을 한것을 보면 한 무제는 제나라 사람으로 동이계라는 것을 알수 있고 지금도 남아있는 구형왕(금관가야 마지막 왕)의 무덤양식이 고구려의 장군총과 같이 피라미드 형식 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확실하게 김수로는 흉노계 아리안 또는 스키타이 이고 아마도 허황후는 한 무제 시절에 뱃길로 산동지역으로 유입된 인도계 민족 또는 신라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허황후의 허씨는 동양 별자리 28숙에서 제일 별자리가 허로 이 것을 의미 하는 것 이고요. 그냥 낮은 계급의 사람이 아니고 아마도 허창이거나 허나라에 거주했던 어떤 부족일 가능성도 있지만 확실 한것은 인도에서 직접 유입 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피닉 19-06-28 12:38
   
그런말하다가 종친회 소송?  혹시 어떤 소송인지 알수 없을까요? 주소가르쳐 주면 볼게요
가야고분 인골이 다 아리안계라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어디에 그런 자료가 있나요?
                         
감방친구 19-06-28 12:51
   
비좀와라님 댓글은 님한테 한 말이 아니라 위에 뭐꼬이떡밥님한테 농으로 한 말이에요

가야고분에서 아리안계 인골이 나왔다는 거는 부산 지역의 청동기 시대(청동기 시대인지 초기 삼국시대인지 기억이 불확실) 인골에서 백인계통 인골이 나온 것을 잘못 말씀하신 거 같네요

이는 다큐프로에서도 몇 번 다룬 적이 있는데 현 독일인의 일부에게서 나타나는 형질과 같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만 사람들이 이를 끝까지 안 본 것인지 기억을 못 하는 것인지 해당 유전형질은 현 한국인에게는 전혀 계승되지 않았다고 하거든요
                    
풍림화산투 19-06-28 15:15
   
보주 허씨는 사천성쪽에 실제로 존재해요. 이 사람들이 수로왕 연대인 서기 48년에 한나라에서 반란 일으키다 양자강으로 강제 이주당한 기록까지 김병모 박사가 잧았죠
     
풍림화산투 19-06-28 15:13
   
원래 알타이 사카 족 여성 통치자는 몽골로이드와 결혼하고 그랬어염. 그게 원형이겠져
관심병자 19-06-27 17:33
   
이전에 이문제를 추적했던 분의 글을 본적이 있는데,
산해경에 조선천독이라는 나라에 대해 나옵니다.
또 이에 대한 해설로 조선천독이 천축국이라고 나오고,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보면 천축국이라는 나라가 하나의 나라만을 지칭하는것이 아니고 여러개가 있었다는걸 알수있습니다.
인도=천축 이라는 명제가 틀렸다는 얘기가 될수가 있죠.
혜초의 천축국을 탐방한 이동경로를 현재의 지도로 표시한걸로 봤을때 지금의 인도까지 내려가진 않습니다.
허황후의 이동경로를 추적한 분은 허황옥의 선조가 아유타국 출신이고 어떤 이유로 중원 남부로 이동했다라고 봤죠.
흥미있는 부분은 일본인 학자가 혜초가 왕오천축국전을 연구해서 신라인이라고 밝혔는데 무슨근거로 신라인이라고 했나하는것입니다.
이 책이 발견된곳이 간쑤성이고 혜초의 여행의 출발지가 장안이고 마지막 도착지가 중국 광주였는데 말이죠.
     
풍림화산투 19-06-28 15:15
   
오 그래요 이건 제가 생각못했네요
     
백운 19-06-28 23:03
   
네, 동진 때 곽박이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조선천독(朝鮮天毒)을 풀이함에 있어 천독천축야(天毒天竺也)라 하여 천독(天毒)이 곧 천축(天竺)이라고 풀이하였지요.

만약 당시에 인도가 천축으로 불리고 있었다면 곽박이 이런 풀이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산해경은 천독(天毒)이 동해(서해) 안쪽 북해(발해)의 모퉁이에 있다고 하였으니 지금의 만주지역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독 즉, 천축이 만주에 있었다는 것을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로마 카톨릭이 증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천독이나 천축에 대한 현재 한족들의 발음은 텐뚜(Tenddu)이나 상고 한음은 텐둑(Tenduk)으로 발음이 됩니다.

이 텐둑을 13세기 로마 카톨릭의 초대 북경 주교인 지오반니 수사가 북경의 북쪽에 있으며 그곳의 칸(Khan)이 다스리는 몽골리아의 일부라고 교황청에 보고를 합니다.

당시에 로마 교황청은 징기스칸의 손자인 바투가 헝가리까지 쳐들어 갔기에 몽골족에 대해 엄청난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동방에 살고 있다는 기독교의 전설적 성인인 존 프리스터(John Prester)의 도움을 받아 이를 물리치기 위하여 동방으로 사제들을 보내게 됩니다.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폴로 역시 존 프리스터를 찾아 만주까지 오게 되는 데, 당시 그는 만주에 있는 텐둑(Tenduk)을 다스리는 지도자를 웅칸(Ung Khan)이라 부르고 그가 게오르기(George)라는 기독교식 이름을 갖고 있다고 했지요.

게오르기는 쿠르킥어로 키르키즈라고 했으니 지금의 키르키즈스탄이 원나라 때에는 천축으로 불린 만주에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는 대목이지요.

이 키르키즈스탄을 징기스칸이 정복하고 두려움에 떨며 텐둑의 성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고 하니 당시 천축은 매우 성스러운 곳이었음을 알수 있는 것이지요.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https://m.blog.naver.com/knightblack/10012503527 )

그럼 신라의 혜초가 다녀갔다는 동천축국은 지금의 만주지역이고, 서천축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중천축국은 부처님의 탄생지라 하였으니 불상의 발원지인 인도의 간다라 지방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으며 다만, 남천축국은 인도 남쪽 끝이라는 설과 태국이라는 설 등이 분분해서 쉽게 추측을 못하겠습니다.

수로왕의 부인인 허왕후가 인도 아요디아 출신이라고 하는 것도 단지 추측에 불과할 뿐이지요.

이는 인도가 천축이라는 것과 가야에 있는 쌍어문이 아요디아에도 있다는 것을 근거로 만들어 낸 허상의 산물인 것이지요.

위에서 보셨다시피 천축은 고려 때 만주에도 있었으니 천축이 반드시 인도를 가리킨다고 확신 할수도 없으며 쌍어문은 아요디아 외에도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허상을 근거로 허 왕후가 인도 아요디아에서 배를 타고 양자강 하류나 김해로 왔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이건 역사가 아니라 그냥 소설을 써서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요.

통상 배의 초기 형태는 대나무를 이어 땟목을 만들었는 데, 이를 벌(筏)이라 불렀습니다.

이어서 통나무의 속을 파내서 만든 배를 주(舟)라 불렀으니 고대 중국의 배는 전부 이렇게 생겼지요.

이후 통나무배 두 대 위에 땟목을 올린 것을 부(艀)라 부르게 됩니다.

여기서 조금 진화한 게 통나무배의 반을 쪼개서 가운데 나무판을 덧대어 붙인 것인 데,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배도 이렇게 생겼지요.

여기에 부(艀)의 원리를 응용하여 배의 중심을 잡고자 배위에 가로로 길게 나무막대를 설치하게 됩니다.

그러니 수로왕 당시에는 이 보다 더 나은 배는 없었다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이후 나무판을 여러장 덧대어 배를 만들고 돛대를 세워 풍력을 이용하게 되니 이를 선(船)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돛이 하나밖에 없었기에 배의 고물에 노를 설치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물론 이 당시에도 중국인들은 나무막대를 이용하여 배를 젓는 도를 쓰고 있었을 뿐이지요.

통일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가 활동하던 시기에도 배의 방향을 잡아주는 키가 없어 노를 물속에 깊이 넣어 배의 진로를 결정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여러 개의 돛을 이용하여 순전히 풍력으로만 움직이는 배인 박(舶)은 13세기 이후에 등장하여 유럽으로 전해지게 됩니다.

물론 배의 방향타인 키 역시 이 시기에 만들어집니다.
그러니 박(舶)과 키가 나온 이후에 비로소 원양항해가 가능하게 된 것이지요.

려원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하러 대한해협을 건너 갈 때도 고려의 선박은 높은 파도에도 모두 무사하였으나 중국의 배들은 전부 깨져서 침몰했다고 하니 배를 만드는 기술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수로왕 당시에 허왕후가 인도에서 통나무 배를 타고 동남아를 돌아 인도양과 태평양을 헤치고 왔다고 주장을 하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또 어떤 분은 서해를 가로질러 김해로 들어왔다고 주장을 합니다.

지금도 인천에서 청도를 왕래하는 페리호가 서해상에서 제트스트림을 만나면 자세를 바로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속도를 올리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수 있습니다.

이렇게 강력한 엔진을 가진 동력선도 맥을 못 추는 데 일엽편주로 쉽게 건너왔다고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배를 타고 인도에서 양자강이든, 김해든 무조건 건너왔다는 얘기는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볼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주장은 인도 아요디아에서 걸어서 티벳을 거쳐 차마고도를 넘어 독충이 우글거리는 사천성의 밀림을 뚫고 지금의 안악현인 보주로 왔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허왕후가 달리 보주태후로 불렸고 안악현에 허씨들이 많이 살고 있기에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추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게 있습니다만 그 진위에 대한 판단은 수로왕의 후손들의 몫으로 남겨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주장은 수로왕이 신나라를 세운 김왕망의 족당으로서 신나라가 망하자 그 일족을 이끌고 김해로 내려왔다는 설입니다.

또한 허왕후 역시 왕망의 족당으로 수로왕과의 결혼은 혈족혼에 해당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이는 수로왕과 허왕후가 둘 다 김씨이며 이미 결혼을 한 상태로 김해로 내려왔다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이 세 번째 주장에 무게감이 실립니다.

이는 천축이 반드시 인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가 성립한다면 가능한 얘기인 것이지요.

또한 쌍어문이 아요디아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흉노의 땅에도 있었다면 이 주장은 설득력을 더할 것입니다.

앞에서 설명을 드렸습니다만 천축은 고려 때까지도 만주에 있었습니다.

이를 조금 더 확장하면 수로왕 당시에는 흉노의 땅도 천축의 범주에 포함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또 단군의 후손인 스키타이 역시 말안장에 쌍어문을 달고 다녔다고 하니 흉노 또한 그리하였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왜냐하면 스키타이는 흉노의 후손이기 때문이지요.
러시아 사하공화국의 사하족은 스스로 스키타이의 후손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이 사하족과 같이 섞여 있으면 얼굴을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서로가 판박이처럼 닮아 있습니다.

그러니 수로왕의 고향인 흉노와 스키타이는 한 집안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단군은 곰의 후손이라 하는 데, 이는 본말이 뒤집힌 것이니 본디 단군을 따르는 무리가 곰인 것이지요.

통상의 곰은 웅(熊)이라 하고 덩치가 큰 곰은 비(羆)라 하는 데, 비(羆)는 달리 슭곰이라 하니 슭이 곧 큰 곰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슭은 이를 소리나는 대로 옮겨 삭(朔)이라 하였으니 동방삭(東方朔)은 동방에 사는 슭의 무리라는 뜻이지요.

또한 이는 달리 삭이(朔夷)로 옮겨도 같은 뜻이 되는 것이니 삭이가 곧 단군의 후손인 것이지요.

스키타이는 이란에서 사카(Saka)로 불리고, 서가모니 역시 샤카(Shakya)족이라 하며, 사하(Shakha)족은 스스로를 사카(Saka)의 후손이라 하고, 카자흐스탄은 그 어원을 삭이(Saki)라 하고 있으니, 이는 모두가 삭이(朔夷) 즉, 슭의 후손인 것이지요.

슭은 창조주 마(麻)와 합하여 마슭이 되는 데, 이집트 원주민들은 그들의 나라를 마슬(Masr)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마슬(Masr)을 아랍에서는 미슬(Misr)이라 부르는 데, 여기에서 히브리어로 이집트를 뜻하는 미스라임(Misraim)이 생겨나고 이는 또 아브라함의 아들 이름으로도 쓰이게 됩니다.

마슭은 우리에게 마슬(마실)을 거쳐 지금은 마을로 남아 있습니다.

마슭은 창조주 마라(麻羅)에게 생명을 받은 슭의 후예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니 이는 모두 곰을 뜻하는 슭에서 나온 것임을 알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슭의 후예인 사카(Saka)가 말안장에 쌍어를 달고 다녔으니 흉노의 족당인 수로왕 역시 같은 풍습을 가졌다는 것을 알수 있으며 이는 허왕후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인 데 허왕후가 굳이 인도 아요디아에서 쌍어문을 가지고 올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결국 수로왕과 허왕후가 둘 다 고대 천축국으로 불린 흉노의 후손으로 이미 결혼을 한 상태에서 신나라의 유민들과 함께 김해지역으로 이주를 하였다고 보아도 크게 벗어난 주장은 아니라고 사료됩니다.
          
풍림화산투 19-06-30 21:09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 내용은 삼국유사의 아유타국이 인도가 아닐 수도 있다. 인 것이지 인도가 아니다라는 근거로서는 좀 약해 보이네요. 일단 허황옥이 가지고 온 파사석이 인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좀 알려져 있는 것 같구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인 왜 인도 드라비다어와 한국어가 1300개 공통 어휘가 있을 정도로 닮아있냐는거죠ㅗ
               
백운 19-07-01 06:46
   
네, 삼국유사 권3 탑상4 금관성파사석탑조에 허왕후가 배를 타고 출발할 때 수신(水神)을 달래기 위해 부왕(父王)이 파사석을 주었다고는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권2 기이2 가락국기에는 허왕후가 배에 싣고 온 목록에 파사석은 빠져 있으며 이에 관한 내용도 일체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삼국유사는 원본이 전해오지 않으며 그 내용 또한 후대에 가필이나 변조 등으로 신뢰성에 손상을 입고 있기도 하지요.

그러한 예중에 대표적인 것이 이마니시 류가 석유한국(昔有桓囯)을 석유한인(昔有桓因)으로 변조하였다는 것이지요.

또 석유한국(昔有桓囯)의 뒤에 위제석야(謂帝釋也)라는 주석이 붙어있는 데, 조선 후기의 문신인 남구만은 그의 약천집(藥泉集)에서 이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본 삼국유사에 위제석야(謂帝釋也)라는 주석이 없었다면서 석유한국제석서자한웅(昔有桓國帝釋庶子桓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삼국유사에 나오는 파사석을 일연 스님이 직접 기록하였다기 보다는 후대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가필이 되었을 것이라는 의심을 살 여지가 상존하고 있는 것이지요.

또 허왕후가 배를 탁고 이동한 루트가 허구라는 이론이나 책 등도 널려 있으며, 심지어 인도에서 왔다는 것조차도 의심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제가 당시의 통나무 배로는 그렇게 먼 항로를 운항하기가 어렵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 또한 그렇게 생각을 하였기에 육로를 거쳐 가며 도보로 이동하여 사천성 보주(안악현)에 도달하였다고 주장을 하는 것이겠지요.

그럼 해로가 아닌 육로를 이용하였다면 파사석의 기록은 파기가 되어야 겠지요.

왜냐하면 파사석의 용도는 수신을 달래기 위해서 라고 하고 있으니까요.

이는 또한 파사석이 인도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으니 허왕후가 인도 출신이라는 주장도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허왕후가 수로왕과 함께 신나라 유민들을 데리고 김해로 내려왔다는 이론이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 이론이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되어 여기에 제 생각을 보태 본 것입니다.

뭐 진실찾기 게임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드라비다족과 우리말의 친연성에 대해서는 따로 의견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한 두 줄로 다 전해 드릴수 있는 얘기는 아닌 것 같아서..
풍림화산투 19-06-28 15:30
   
근데 댓글에 있는 동영상좀 보시고 답글 달아주세요. 정작 핵심적인 이슈는 다들 비켜 가시는 듯
하늘나비야 19-06-28 23:07
   
탑도 가지고 와서 있는 걸로 알아요 세월이 세월이다 보니 귀퉁이들이 다 뭉개지긴 했지만
     
풍림화산투 19-06-30 21:07
   
네 그 내용이 첫 댓글 동영상에 지금도 인도에는 파사석으로 화장품을 만드는 풍속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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