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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6-25 19:24
[한국사] 발해 ㅡ 구국(舊國)과 현주(顯州)를 중심하여 본 홀한성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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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舊國)과 현주(顯州)를 중심하여 본 발해 홀한성의 위치




발해는 신당서 발해전에 근거할 경우 총 세 번, 가탐도리기 제2도 '등주해행입고려발해도'를 교차할 경우 총 네 번 수도를 옮겼다. 사학계 통설에서는 후자를 따르고 있다.

■신당서 발해전 : 구국(舊國)⟶상경(上京)⟶동경(東京)⟶상경(上京)

■신당서 발해전 + 가탐도리기 : 구국(舊國)⟶현주(顯州, 중경)⟶상경(上京)⟶동경(東京)⟶상경(上京)

사학계 통설은 발해 건국지인 동모산을 현 길림성(吉林省) 돈화시(敦化市) 성자산(城子山)에 비정하고 있는데 이곳을 신당서 발해전에서 언급한 이른 바 발해 '구국(舊國)'으로 보고 이곳에서 역시 통설의 발해 현주(顯州, 중경현덕부)를 비정지인 현 길림성(吉林省) 화룡시(和龍市) 서고성자(西古城子)로 천도하였다가 다시 홀한성 비정지인 현 영안시(寧安市, 목단강시 소속 현급시) 서남쪽 35km 지점에 위치한 동경성진(東京城鎭)으로 옮겼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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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사학계가 발해를 서술하면서 신당서를 우선 기본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바 신당서 발해전의 "천보(天寶 ; 742~756) 말년에 대흠무가 상경(上京)으로 수도를 옮겼으니, 이곳은 바로 구국(舊國)에서 300 리 떨어진 홀한하(忽汗河)의 동쪽이다." 한 기록과 신당서 지리지 수록 가탐도리기 제 2도 '등주해행입고려발해도(登州海行入髙麗渤海道)'에서 "압록강(鴨渌江)의 어귀로부터 배를 타고 100여리를 가고, 이내 작은 배로 물길을 거슬러 동북쪽으로 30리를 가면 박작구(泊汋口)에 도달하는데 발해(渤海)의 경내이다. 또한 물길을 거슬러 500리를 가면 환도현(丸都縣)의 성(城)에 도달하는데 옛 고구려의 왕도(王都)이다. 또한 동북쪽으로 물길을 거슬러 200리를 가면 신주(神州)에 도달한다. 또한 육로를 이용하여 400리를 가면 현주(顯州)에 도달하는데 천보(天寳) 년에간 왕이 도읍한 곳이다. 또한 정북쪽에서 약간 동쪽으로 600리를 가면 발해(渤海)의 왕성(王城)에 도달한다." 한 기록을 교차 분석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천보 말년에 대흠무가 천도한 곳인 상경성은) 옛 도읍지(舊國)에서 삼백리 떨어진 홀한하(忽汗河)의 동쪽이다. <신당서 발해전>

□현주(顯州)에 도달하는데 천보(天寳) 년간에 왕이 도읍한 곳이다. <신당서 가탐도리기>

이 두 기록만을 교차하여 보면 발해 도읍지가 이 현주에 있다가 천보 말년에 상경성으로 옮겨갔다 하는 설명이 가능하다. 

이 때에 발해 구국(舊國)과 현주(顯州)를 동일장소로 보는 것이 본인(감방친구×무쿠리)의 견해이다. 

그런데 사학계 통설에서는 구국과 현주를 별도의 다른 장소로 보고 있다. 구국을 동모산 지역으로 비정한 돈화시, 현주를 현주(중경)로 비정한 화룡시로 설명하는 것이다.

고구려, 발해 압록강을 현 압록강에 고정하여 보는 학계의 통설에 따라 가탐도리기 제 2도 '등주에서 바닷길로 고구려와 발해로 가는 길(登州海行入髙麗渤海道)'의 압록강 경로를 그대로 현 압록강과 그 주변 유적지 등에 대입하여 보면 고구려 옛 중심지 유적인 환인 지역, 학계가 중경현덕부로 비정한 현 화룡시와 그 유적, 그곳에서 북북동 방향에 위치한, 역시 학계에서 발해 상경성(홀한성)으로 비정한 현 영안시(목단강시 영안현)에 그대로 부합하여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거리, 방위에 따른 위치가 모두 부합한다. 

학계 통설 현주(중경) 비정지 화룡시에서 영안시 동경성진까지 거리는 현대 도로 기준 대략 272km로서 '동쪽으로 살짝 치우친 북쪽'이라는 방위'뿐만 아니라 '현주에서 600 리 발해왕성'이라 한 거리뿐만 아니라 남북 45km, 동서 6km에 달하는, 바다와 다름 없이 큰 경박호가 학계 홀한성 비정지인 동경성진 지근 거리에 있어서 '발해왕성이 홀한해를 내려다보고 있다'한 가탐도리기 1도와 2도의 기술 내용을 모두 충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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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지도 상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사학계의 해당 통설은 발해 5경의 위치 관련한 통설에 있어서 가장 뼈대가 되어서 반박을 불허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유적지가 있고, 사서 기록과 일치하는데 대체 어떻게 이 통설을 반박할 수 있겠는가?

본인은 신당서 발해전의 구국과 가탐도리기의 현주를 동일 위치로, 또는 현주가 구국에 속한 지역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학계 통설의 홀한해, 홀한하, 홀한성, 현주(중경) 비정지는 '홀한하의 동쪽에 상경성이 있다'한 신당서 발해전의 기록이든 '현주에서 살짝 동쪽으로 치우친 북쪽 방향 600 리에 발해왕성이 있다'한 가탐도리기 제2도 '등주해행입고려발해도'의 기록이든 모두 충족하고 해당지역에서 유적과 유물까지 출토되었으므로 전혀 반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학계의 현주(중경) 화룡시 비정과 네 차례의 서울(수도) 이전설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이 설이 비록 〈가탐도리기〉 제2도(등주해행입고려발해도)의 "自鴨淥江口舟行百餘里,乃小舫溯流東北三十里至泊汋口,得渤海之境。又溯流五百里,至丸都縣城,故高麗王都。又東北溯流二百里,至神州。又陸行四百里,至顯州,天寶中王所都。又正北如東六百里,至渤海王城。"와 제1도(영주입안동도)의 "城臨忽汗海"를 모두 충족하고 있지만 《신당서 발해전》의 "天寶末,欽茂徙上京,直舊國三百里忽汗河之東。"을 전혀 충족하고 있지 못 하다. 

이때문에 사학계 통설에서는 구국(舊國)을 저들(사학계 통설 옹위자)이 동모산이 있다 한 돈화시에 비정하고 이 돈화시에서 저들이 현주(중경)이 있다 한 화룡시로 천도를 하고 여기에서 다시 저들이 홀한성이 있다 한 영안시 동경성으로 천도하였다 하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신당서 발해전에서는 분명 "구국(옛 도읍, 옛 중심지)에서 300 리 떨어진 홀한하의 동쪽"에 상경성이 있다고 하였다. 사학계 통설에서는 여기에 가탐도리기 2도를 적용하여 상경성으로 천도한 게 아니라 중경(현주)으로 천도하였고 그 후에 상경으로 천도했다 하는 가설을 통설화한 것이다.

사학계 통설의 주장이 맞다면 적어도, 최소한 저들이 발해 구국으로 비정한 현 길림성 돈화시에서 역시 저들이 홀한하로 비정한 목단강이 300 리 떨어져 있어야 옳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다. 목단강은 바로 돈화시 서남부에서 발원하여 북쪽을 돌아 동북쪽으로 빠져나가는 까닭이다. 돈화시가 목단강의 발원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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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길림성 돈화시 현유진 대석하 남안 성산자산(吉林省 敦化市 賢儒鎭 大石河 南岸 城山子山) 일대가 사학계 통설 발해 동모산 및 구국(舊國) 비정지이다. 사학계 통설은 현 목단강에 홀한하를 비정하고 있는데 《신당서 발해전》에 따르면 홀한하는 구국에서 300 리 떨어져 있다. 그런데 어떠한가? 게다가 현 화룡시는 목단강 동쪽이 아니라 남쪽에 있으며 그 거리는 가장 가까운 곳을 기준으로 300 리의 배수가 넘는 근 600 리이다. 

본인은 이미 가탐도리기 2도(登州海行入髙麗渤海道)의 분석·고찰을 통하여 이 기술 상에 등장하는 압록강이 현 요하임을 논증한 바 있다. 이에 가탐 2도에서 압록강을 거슬러 신주(神州)까지 이르는 경로를 본인은 현 잉커우(營口) 근해에서 현 요하(와 태자하+혼하 합수 물줄기)를 따라 혼하로 빠져서 혼하를 거슬러 상류로 오르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구체적 경로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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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鴨渌江)의 어귀로부터 배를 타고 100여리를 가고, 이내 작은 배로 물길을 거슬러 동북쪽으로 30리를 가면 박작구(泊汋口)에 도달하는데 발해(渤海)의 경내이다. 또한 물길을 거슬러 500리를 가면 환도현(丸都縣)의 성(城)에 도달하는데 옛 고구려의 왕도(王都)이다. 또한 동북쪽으로 물길을 거슬러 200리를 가면 신주(神州)에 도달한다. 또한 육로를 이용하여 400리를 가면 현주(顯州)에 도달하는데 천보(天寳) 년에간 왕이 도읍한 곳이다. 또한 정북쪽에서 약간 동쪽으로 600리를 가면 발해(渤海)의 왕성(王城)에 도달한다. 《신당서 가탐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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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압록강 어귀 ~ 박작구 : 130 리

② 박작구 ~ 환도현성 : 500 리

③ 환도현성 ~ 신주 : 200 리

뱃길을 이용한 경로는 압록강 어귀로부터 신주까지 총 830 리에 해당한다. 이 거리는 4km 10 리 적용 시 332km, 5km 10 리 적용 시 415 km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혼하의 전장(全長)은 415km이다. 물론 여기에서 뱃길을 이용할 수 없는 상류의 길이는 빼야 할 것이다. 구글지도와 구글어스를 이용하여 수리를 살펴보면 대체로 칭위안만주족자치현(清原满族自治县) 인근까지는 배를 타고 이동이 가능한 수준이다. 바이두백과에서는 혼하의 발원처로 칭위안만주족자치현 동남쪽의 만전자진(湾甸子镇)를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이곳뿐만 아니라 칭위안만주족자치현 동북쪽으로도 수십 킬로미터 이상(대략 30km 이상) 혼하의 상류가 이어져 있다. 또한 구글어스로 혼하를 상류지역부터 살펴보면 강폭이 과거에는 지금보다 훨씬 넓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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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요하의 물길을 따라 잉커우에서 심양까지 193km, 심양에서 칭위안만족자치현까지 141km로 총 330km이다. 이 길이는 비록 오차가 있겠으나 가탐도리기 기술 압록강 어귀에서 신주까지 거리 830리의 4km 10 적용 시 거리 332km와 근사하다. 그런데 다른 거리 기록은 5km를 적용하면서 이 기록만 4km를 적용하는 것은 분명히 불합리하다. 80km의 오차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탐도리기에서 다음의 기술을 다시 보자. 

- - - - - - - 

鴨渌江口 舟行 百餘里, 乃, 小舫泝流 東北 三十里 至 泊汋口

- - - - - - - 

압록강구(鴨渌江口)와 박작구(泊汋口). 위에 제시한 다시 쓰는 유기 해석본에서는 압록강구는 압록강 어귀, 박작구는 박작구라고 번역하였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실상 둘 다 구(口)이다. 구(口) 입구, 즉 어귀를 뜻한다. 이 때에 '어귀'라는 것은 목적지로 진입하는 입구를 비롯한 그 주변을 뜻한다. 보통 '마을 어귀'라고 할 때에 이는 실제 마을이 있는 곳이 아니라 가시(可視) 거리에 마을이 보이는 장소, 또는 길의 초입을 뜻한다. 실제 마을은 그곳에서 더 걸어들어간 곳에 있다. 물론 항구를 뜻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항구라는 뜻조차도 접안시설이 있는 뭍으로서의 장소가 아니라 배가 드나드는 근방의 해수 지역을 포함한 개념이다. 

가탐도리기에서는 압록강구(어귀)에서 배를 타고 100여 리를 가다가 그 지점에서 작은 배로 갈아탄 후에 물길을 거슬러 오르며 동북쪽으로 30 리 가면 박작구(어귀)라고 하였다.

압록강구(어귀)에서 100 리를 배를 타고 가는 대목에서는 '물길을 거스른다(泝流)'는 표현이 쓰이지 않았다. 즉 가탐도리기에서 말하는 '압록강구(어귀)와 그곳에서 100 리'는 강물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강물의 시작점에 해당하는, 즉 물길을 거슬러올라야 하는 지점은 신주(神州)까지 전체 830 리 경로에서 730 리인 것이다. 이 거리는 4km 10 리 적용 시 292km, 5km 10 리 적용 시 375 km이다.  물길을 따라 잉커우에서 칭위안만족자치현까지 육로 상 거리 330km, 가탐도리기 실제 압록강~신주 뱃길 거리 730리(약 290~ 380km). 

그런데 고대 해안선은 현 잉커우 앞이 아니라 안산시 해성현 인근까지였다. 잉커우와 해성현의 현대 도로 기준 거리가 55k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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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의상 영구시부터 잡았으나 가탐도리기 제2도의 기술내용을 고려한다면 압록강어귀는 현 영구시보다 더 바다쪽으로 나아간 곳을 포함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염두하자.)

이를 가탐도리기 '압록강구~100 리'로 추산하면 역시 잉커우~칭위안만족자치현의 혼하 물길 근처의 현대 도로로 잰 거리인 330km에서 55km를 빼야 한다. 330-55 = 275 km. '작은 배를 갈아타고 물을 거슬러 오른 지점(小舫泝流)'부터 신주까지 거리 730 리. 이 거리를 4km 10 리 적용 시 292km, 5km 10 리 적용 시 375 km.

275 : 292 : 375

구글지도를 이용하여 현대 도로를 기준으로 잰 거리는 혼하의 물줄기를 따라 칭위안만족자치현까지 실측한 강 길이가 아니라는 점에서 오차를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할 시에 720 리를 4km 10 리로 적용하여 산술한 292km와 근사함을 볼 수 있다. 수리의 경우 10 리당 4km를 적용할 수 있다 추정이 되는데 이렇게 본다면 신주의 위치는 현 칭위안만주족자치현(清原满族自治县) 일대를 중심으로 대략 최소 50리에서 최대 200 리 오차 범위 안에 비정이 가능하다. 

신주(神州)에서 현주(顯州)까지 거리는 가탐도리기에서 400 리라고 하였다. 이는 대략 160Km에서 200km 거리에 해당한다. 칭위안만족자치현에 신주를 비정하여 놓고 지도 상에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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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위안만주족자치현(清原满族自治县)을 신주(神州)로 비정하였을 시에 이 지점에서 400 리, 즉 대략 160~200km 거리에 해당하는 지점(현주)은 현 요원시, 또는 그보다 북쪽의 이퉁만주족자치현(伊通满族自治县)이 해당한다. 가탐도리기는 이 지점에서, 정북에서 동쪽으로 다소 치우친 방향으로 600 리를 가면 발해왕성(渤海王城)이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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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왕성, 즉 상경성(홀한성)을 금나라 상경성 발굴 지점인 현 하얼빈시 아청구에 비정하고 이퉁만족자치현과 요원시 등과의 거리를 각각 현대 도로 거리를 기준으로 측정하여 본 바 4km 10 리 적용 180km, 5km 10 리 적용 300km에 해당하는 현주~발해왕성 간 거리 600 리와 거의 일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대 육로의 리수는 10 리 당 5km 적용 시 비교적 일치한다)

다음으로, 신당서 발해전에서 "구국(舊國)에서 삼백리 떨어진 홀한하(忽汗河)의 동쪽"에 상경성이 있다고 하였다. 이 기록의 포인트는 ①홀한하는 구국(옛 중심지/도읍지)에서 300 리 떨어져 있다 ②상경성은 홀한하 동쪽에 있다 등 2 가지이다. 300 리는 5km 10 리 적용 시 약 150km에 해당한다. 본인이 현주가 있던 곳으로 과정 상 비정한 이통, 또는 요원시에서 150 km 떨어진 지점에 어떤 강이 있는지 지도에서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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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도로는 각 도시 간 교통망에 따라 뻗어있으므로 위 지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심하게 꺾인 모양을 띠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오차를 고려하여 보면, 이퉁과 용원시에서 각각 150km 지점과 그 안팎에는 길림시를 중심으로 제 2송화강, 그리고 송화강 지류에 해당하는 음마하(飲馬河)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본인은 홀한하를 속말수, 즉 현 제2송화강(남송화강), 또는 제2송화강과 송화강(북송화강)으로 추정하여 왔다. 

한편 발해 상경성이 홀한하 동쪽에 있다고 했는데 이 경우 방위는 물줄기를 기준으로 하므로 현 하얼빈 일대는 현 제2송화강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기록에 부합한다.

이를 정리하여 지도에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사학계 통설 비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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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고증에 따른 비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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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학계 통설 비정지는 가탐도리기 제2도와 신당서 발해전을 바탕으로 하였으되 신당서 발해전의 기록을 전혀 충족하지 못 하고 있다. 반면에 본(감방친구×무쿠리)의 고증은 가탐도리기 제2도와 신당서 발해전의 기록 모두를 충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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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혼하를 작은 강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전장이 1천 리가 넘는 강으로 그 크기는 한강에 버금가며 남한강과 흡사한 수준이다. 근현대에 들어 수량이 줄고 곳곳에 거수지가 조성돼 강폭이 작아졌지만 배의 운행이 충분히 가능한 강이다. 아래 사진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심양 일대 혼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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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글 출처 : The resonance of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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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ender 19-06-25 19:33
   
실제로 만주지역의 강들의 크기는 이미 나가버리셨던 히X토X아2 님께서 올려주신 사진으로 확인을 했습죠 ㅎㅎㅎㅎㅎㅎ

틀림업이 대릉하는 작은 하천같았지만, 난하,요하,혼하,태자하 지역은 정말로 강이 크고 넓었던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감방친구 19-06-25 23:52
   
그분은 블로그 활동 활발하게 하고 계시더군요
출처나 참고자료도 되도록이면 밝히려 하시는 거 같고요

사실 그분처럼 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말로는 학원 원장님이어서 시간이 많아서 한다 하시지만
보통 사람은 하기 어려워요,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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