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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블랙먼데이. IMF의 한국 개입
미셸 초서도브스키 (Michel Chossudovsky)
2000 년 6 월 10 일
1997년 11월 말에 문제 해결사인 휴버트 나이스(Hubert Neiss)가 이끄는 IMF 경제학자 팀이 신속히 서울로 몰려들었다. 그들의 임무는 한국의 경제적 기초와 안정성을 신속하게 회복한다는 명목으로 멕시코 스타일의 구제 금융을 협상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중요한 판례가 될 것이었다. 가난한 제3 세계와 동유럽에나 일상적으로 사용되던 IMF의 쓰라린 경제적 처방이 선진적인 산업 경제에 처음으로 적용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워싱턴은 사전에 주한 미국 대사관과의 연락을 취해 조심스럽게 협상 테이블을 마련했다. IMF 임무가 시작되기 거의 겨우 일주일 전에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은 IMF와의 협상을 방해한다며 자신의 재정경제부 장관(강경식)을 해임했다. 후임자는 워싱턴의 지시에 따라 임명되었다.
매우 편리하게도 새로운 협상가이자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임명된 임창열(Lim Chang-yuel)은 IMF와 세계은행의 전직 관리였다. IMF의 옵션 남용에 대해 반발한 김인호 대통령 경제수석보좌관도 즉시 해고됐다. 한국은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국제 신용을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임 임 재정경제부 장관은 워싱턴에 익숙했다. 그는 임명되자마자 전직 동료였던 IMF 부국장, 스탠리 피셔 (Stanley Fischer)와 협상을 위해 워싱턴으로 건너갔다.
서울 블랙먼데이
한국 정부와 IMF의 사전 거래는 극비의 국가기밀(또한 불법) 이었다. 11월 21일 금요일, 정부는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11월 24일 서울 블랙먼데이, 월요일의 주식시장은 IMF 긴축 조치에 대한 우려와 기업 및 은행 붕괴를 우려하며 주가가 1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임창열 재정경제부 장관은 워싱턴의 명령을 충실히 따라 원화에 대한 추가적인 투기 공격이 가능하도록 외환시장 규제를 모두 철폐했다.
이틀 후인 11월 26일 Hubert Neiss가 이끄는 IMF 사절단이 서울의 김포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11월 30일, 겨우 4일 만에 양측은 이미 예비 협정에 합의했다. 본 초안은 협상팀이 한국에 도착하기 전에 워싱턴에 있는 IMF 본부에서 작성되었다. 최종안은 이미 월스트리트와 미국 재무부와의 협의하에 결정되었으므로 한국 측의 추가적인 분석이나 협상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되었다.
대통령 경선에 따른 팔 비틀기
그러나 거래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이 나라는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기 직전이었고, 야당의 좌파 후보였던 김대중은 IMF 구제 금융협정에 확고하게 반대했다. 그는 언론을 통해 여론에 경고하면서 “퇴임하는 정부가 한국 경제를 대규모로 해외자본에 팔아먹는다."라고 비난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26개의 은행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