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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6-12 21:32
[한국사] 근세사 에도와 조선의 쌀생산량 말입니다.
 글쓴이 : 아스카라스
조회 : 1,515  

동아게에서 정말 꾸준하게 토론돼온 주제인데요,

열도가 한반도를 국력으로 넘어섰다는 게
통일신라니 고려때부터니 그딴 개소리는 당연히 거르고요

일뽕들이 꾸준히 언급하는 게
에도시대 때 이미 조선을 앞섰다는 겁니다.

통신사 이야긴 이미 에도막부가 미친듯이 좋은 것만 보일라고 재정을 탈탈 털어서 여행길을 갈고 닦았으니 그런거고
실제론 통신사한테 신분을 막론하고 일본인들이 글자 한번만 써달라며 탑스타 팬들마냥 붙어다녔으니 양국의 국격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이지요.
아무튼 대표적으로 쌀생산량을 예로 드는데요,

이에 대해 동아게에서 수십번이고 반박문과 자료가 올라온 것을 기억합니다.
기억하기로 14세기 열도 쌀생산지가 140만헥타르,
당시 한반도는 이미 400만헥타르를 넘었고
도쿄 개간과 18세기 홋카이도 개간을 통해
마침내 열도가 400만헥타르를 찍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조선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꾸준히 개간해 온 농지와
중국으로부터 들여 온 최신농업기술을 꾸준히 써가면서
일본과 똑같은 산지비율을 가졌음에도
삼남지방을 중점으로 그만큼 많은 평야와 농지를 확보했고,

열도는 낙후된 농업기술와 숱한 전란으로
에도시대 이전까진 한반도보다 한참 미달이었고
이후부터 겨우 따라잡았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주장을 찬성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건
이러한 주장이 동아게에서만 나오고,
주장의 근본이 되는 자료는 학계에서 인정받았거나 객관적인 게 아닌,
동아게 자체적으로 한 일본열도의 지리학적 분석이라는 겁니다.

저도 그 분석자료를 찾고 싶지만 워낙 어렵고 또 찾을래도 찾을 수가 없네요.

그래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습니다.

1.조선초기 400만헥타르, 동시대 일본은 140만헥타르였고 이후 메이지유신 이전에야 겨우 조선과 맞먹게 되었다
는 게 정말 타당한 지

2.그렇다면 일본이 정말로 낙후된 농사기술 때문에 생산량이 적었던건지, 아니면 해양성 기후나 화산토라는 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건지

3.반대로 에도시대 때 쌀생산량이 이미 조선을 넘어섰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자료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그렇게 자료가 나온 토대의 타당성은 어떤지.

4.다시말해 조선시대의 쌀생산량과 농지총합이 정말로 동아게의 주장과 같은 지

를 묻고 싶습니다.


어찌됐건 분명한 건 조선의 쌀생산량은 만만치 않았고,
일본은 쌀을 그렇게 많이 지었다는 것에 의심이 듭니다.

이렇지 않고서야
조선평민이 매 끼니마다 보리밥을 현대 밥솥만치 먹는데
일본평민은 종지그릇만한 밥그릇으로 먹었을 리가 없죠.

당장에 조선군 한달치 식량을
일본군은 서너달어치로 먹었으니까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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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o1 19-06-12 22:14
   
정말 이해가 안되서 그러는데...
일뽕들은 그렇게 일본이 좋으면
일본으로 귀화하면 되는것 아닌가?
왜 그렇게 싫은 대한민국에서 숨쉬고 살지?
정말 이해가 안돼서 남긴다.
     
아스카라스 19-06-12 22:51
   
저 일뽕 아닌데요.
          
yj12 19-06-12 23:19
   
임진왜란때 일본은 석고가 1850만석이고 조선은 일본 다이묘들이 조사한 결과 1200만석입니다
일본이 애초에 조선보다 농사 짓기가 쉬운 기후고 농지 비옥도도 더 비옥합니다
아마 조선이 일본보다 쌀 생산량이 많았다는 착각이 일어나는건 일본이 조선보다 한석당 쌀 무게를 더 많이 잡기 때문일 겁니다
조선의 한석보다 일본의 한석이 더 많은데 둘은 똑같이 보는 착각으로 인해서죠
그리고 그때당시  일본인들이 조선보다 훨씬 더 가난했는건 세금때문입니다
조선은 세금 다 합쳐도 수확물의 20%가 안되는데 일본은 기본적으로 5공5민이니
조선의 3배정도 되는 수준이니깐요
그리고 일본이 대신 조선보다 인구도 더 많았고
               
윈도우폰 19-06-13 13:51
   
님은 반대로 알고 있습니다. 왜의 한 석은 조선의 한 석의 4분의 1이고, 우리 나라는 쌀에만 석 개념을 적용했지만, 왜는 쌀 뿐만 아니라 모든 경작물에 '석'을 적용하여 쌀을 대표로 표현한 것입니다. 어떤 다이묘가 5만석이라고 하면 이는 우리 식으로 따지면 1만여석에 불과하고, 그것도 쌀이 아니라 메밀이든 뭐든 다른 경작물을 모두 포함합니다.

'석'의 기본 개념은 한 사람이 1녁간 먹을 수 있는 곡식량인데, 우리는 쌀을 기준으로, 왜인은 모든 곡물을 기준으로 했다는 차이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왜인보다 밥그릇도 그렇지만 실제 끼당 곡물기준 식사량이 4배는 더 많았고, 그게 님의 유전자 형질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우리 나라사람이 왜인보다 체구가 큰 이유이지요.

어쨌든 왜의 다이묘가 우리 석고 조사를 1,200만석이라고 했다면 그것은 쌀만 기준으로 했을 것이고, 특히 점령을 못한 전라도는 빠져있었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쌀을 기준으로 하면 전라도와 전라도 이외 지역의 생산량이 거의 같을거에요. 설마하니 왜인들이 점령하지 못한 전라도 쌀 생산량까지 계산해서 1,200만석이라고 하지는 않았겠지요?
                    
yj12 19-06-13 16:12
   
옛날에 센츄얼리님의 블로그에서 퍼옵니다
https://m.blog.naver.com/lovepirate/220833972023
https://blog.naver.com/okyes0612/220066608828
조선의 한석이 일본의 절반도 안됩니다.
세종대왕때는 일본보다 비슷했지만 그 이후로는 떨어졌던 거죠.(누락된 토지가 상당했다고 해도 비슷한 수준이지 일본보다 뛰어난건 아님)
임진왜란때 비슷했다면 기 이후 에도시대때는 당연히 일본이 조선보다 높았다는 거죠(그 이후 에도시대때 일본은 간토 평양가 개발되어서 식량이 크게 늘어나고 에도 말에는 훗카이도까지 경작이 되었으니)
https://blog.naver.com/halmi/50107287040
임진왜란때 조선에 있던 각 다이묘들이 조사한 조선 각 도의 쌀 생산량입니다( 물론 전라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 전라도를 지배를 안 했는데도 전라도를 조사했던건 스파이 등을 통해서겠죠.
그리고 일본이 석고를 쌀뿐만이 아니라 보리, 조 같은 각종 곡물등을 다 합쳐서 조사했다고 해도 그건 조선도 마찬가지 였을 겁니다.(애초에 일본의 석고를 내는 기준이 단순히 쌀뿐만 아니라 모든 곡식을 다 포함해서 하는건데 조선만 다르게 측정할 이유는 없으니)
                         
바람따라0 19-06-13 16:47
   
년도 일본(백만헥타아르)
930 85.5 
1,450 93.8 
1,592 159.0 
1,600 162.1 
1,720 284.6 
1,874 302.5 

고려전기부터 조선왕조 세종때까지
일본의 경지면적은 큰 변화없이 100만 헥타아르 미만이었습니다.

조선의 경우, 1432년(세종 14년) 경지면적 400만 헥타아르에,
생산환산 면적 170만결을 기록합니다.

세종시대를 기준으로 일본은 조선의 1/4도 안되는 경지면적을 가진 겁니다.

그후 임진왜란 때가지 일본의 경지면적이 159만 헥타아르로 확대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조선 경지면적의 1/2도 안된 수준입니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경지면적을 확충한것은,
임진왜란 이후, 150만 헥타아르에 달하는 간토평야를 개발하여, 300만 헥타아르 수준으로
경지 면적을 늘린 때입니다.

그전 까지 간토평야는 늪과 뻘로 이뤄진 불모지였습니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 이후 홋카이도를 개발하면서,
경지면적 400만 헥타아르로 조선에 근접하게 됩니다.

경지면적이 중요한 것은,
기복이 심한 생산량 보다, 안정적으로 농업생산력을 표현한다는 점입니다.

농업 생산량으로 보면, 일본이 조선을 따라잡은 것이.
메이지 유신 이후, 홋카이도 개발과 화학비료 대량도입이후입니다.

일부에서는 일본이 2모작을 해서 수확량이 높다고 하는데,
소가 없어 심경을 못하고. 비료를 제대로 주지 못하는 이모작은
토지의 사막화만 가속화 할 뿐입니다...
                         
yj12 19-06-13 16:50
   
바람따라님
당신이 말한 숫자에 대한 출저나 올리시는게
그리고 밑에 사진보면 일본역시 소농을 했습니다
                         
바람따라0 19-06-13 17:02
   
yj12/
일본 농지자료 그림파일로 새글에 올려 놨습니다.
                    
yj12 19-06-13 16:56
   
그리고 바람따라님
당신이 말한 무슨 임진왜란때 일본과 조선의 경지면적이 무슨 3배나 차이 난다는게 진짜 상식적으로도 말도 안되는게 일본이나 조선이나 둘다 거의 대부분이 산지이고 훗카이도와 간토평양 지역 제외해도 일본은 조선보다 영토가 조금 더 넓은데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난다는게 말이나 됨?
                         
바람따라0 19-06-13 16:58
   
yj12/ 구글 지도만 봐도 이런 소리 못하죠. 밀본은 국토 대부분이 산지인데 비해, 한반도 서쪽은 놀사짓기 좋은 구릉지대입니다.

주장을 해도 기초 사실을 알고 하기 바랍니다.
                         
바람따라0 19-06-13 17:00
   
그리고 일본 농지자료 그림파일로 새글에 올려 놨습니다.
                    
yj12 19-06-13 17:17
   
님아 새글에 올린 저 일본자료가 정확히 어느 책에서 나온 자료인가요?
그리고 조선 역시도 400헥타르라는 자료를 올리셔야죠?
조선이 400헥타르나 되었다는 자료는?
그리고 일본이 산지 비율이 조선보다 조금 높지만 어차피 도찐개찐이고 대신 일본은 임진왜란 전에도 조선보다 면적이 저 넓었고 땅도 더 비옥했기 때문에 임진왜란 때까지는 조선하고 비슷하다가 일본도 에도 이후부터는 간토라는 넓은 평야가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조선을 능가한 거겠죠
그리고 님을 위해서 하는 말인데 새벽4시에도 댓글달고 제가 하는말에 바로 반박하시는것 보면 하루종일 가생이만 하시는것 같은데 그럴 시간에 좀더 건설적인 일을 하시는게 님한테도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바람따라0 19-06-13 04:19
   
지난글 보기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충분한 자료와 해설을 했으니까요.

그리고 스스로 판단해보세요.

임진왜란전 일본 경작지 넓이는 139만 헥타르입니다.

160만 헥타르 넓이의 간토평야는 임진왜란 이후 개발돼 1800년대 완성됐습니다.

80만 헥타르의 홋카이도 평야는 메이지 유신 이후 개간 된겁니다.

반면 조선은 김종서의 육진 개척이후 면적이 확정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모든 주장은 펙트입니다.

하지만 썩어빠진 강단사학이 이런 명백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죠.

그래서 그들이 비판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또한 일본 이모작 운운은 농업에 대해서 무지한 자들의 헛소리죠.

지력을 뒤바침해줄 비료가 부복한 경우, 다모작은 소출이 떨어지고 토지를 사막화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가 없어 쟁기질도 제대로못하는 일본이 한반도보다 농업생산량잉 많다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작성한 농업 생산량도, 교차 검증이 없는 일본인의 낙서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제가 예를 든 지리는, 거짓으로 변동 시킬수 없는 확고한 증거입니다.
     
비좀와라 19-06-13 07:09
   
20여년 전에 태평농법이라고 불린 농법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어떻게 된 것인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화제된 농법이었죠.

이 농법이 기존의 농법의 차이점이 땅을 깊이 갈아서 지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죠.

지력이 높아지면 병충해에 저항력도 높아지고 산출이 높아지는데 결정적인 것은 병충해의 저항력의 증대로 농약사용을 줄일수 있고 화학비료의 사용역시 줄일 수 있다는 것 이었거든요.

현재 농기구는 땅을 깊게 갈 수 없다고 합니다. 반면에 전통 농법은 땅을 깊게 갈게 되어있구요. 이것 때문에 농진청 하고 농기구 회사와 농법을 만든 사람과 갈등이 있어는데 지금은 누가 옳다라고 결정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쟁기질이 중요한것은 확실 하죠. 메이지 유신 전 까지 가축을 이용한 쟁기질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쟁기질로 농사를 짓는 일본의 농산물 산출량이 많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yj12 19-06-13 16:29
   
https://m.blog.naver.com/lovepirate/220833972023
일본의 쌀 생산량이 이미 임진왜란때 조선과 비슷한 수준이고 그 이후로는 일본이 능가합니다( 일본은 그 이후 간토 평양 경작, 훗카이도 경작같이 추가적인 농사지을 땅이 크게 늘었으니
그리고 비좀와라 님은 그전부터 조선은 400헥토르가  일본은 임진왜란때 140만 헥토르 정도라고 주장했는데 그 근거는 무엇이죠(정확한 그것에 대한 자료를 제시해 주시죠)
그리고 님은 일본은 소농을 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일본도 소농을 했습니다.
http://www.tamagawa.ac.jp/sisetu/kyouken/rice/kamakura.html( 이 그림 보시면 잘만 소로 농사 합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조사한 농업 생산량은 임진왜란 조선역에서 나온 자료인데 물론 일본이 그때당시 조선 전체를 지배한게 아니기 때문에 100프로 정확하지 않을수는 있겠죠.
https://blog.naver.com/halmi/50107287040
          
바람따라0 19-06-13 16:40
   
년도 일본(백만헥타아르)
930 85.5 
1,450 93.8 
1,592 159.0 
1,600 162.1 
1,720 284.6 
1,874 302.5 

고려전기부터 조선왕조 세종때까지
일본의 경지면적은 큰 변화없이 100만 헥타아르 미만이었습니다.

조선의 경우, 1432년(세종 14년) 경지면적 400만 헥타아르에,
생산환산 면적 170만결을 기록합니다.

세종시대를 기준으로 일본은 조선의 1/4도 안되는 경지면적을 가진 겁니다.

그후 임진왜란 때가지 일본의 경지면적이 159만 헥타아르로 확대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조선 경지면적의 1/2도 안된 수준입니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경지면적을 확충한것은,
임진왜란 이후, 150만 헥타아르에 달하는 간토평야를 개발하여, 300만 헥타아르 수준으로
경지 면적을 늘린 때입니다.

그전 까지 간토평야는 늪과 뻘로 이뤄진 불모지였습니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 이후 홋카이도를 개발하면서,
경지면적 400만 헥타아르로 조선에 근접하게 됩니다.

경지면적이 중요한 것은,
기복이 심한 생산량 보다, 안정적으로 농업생산력을 표현한다는 점입니다.

농업 생산량으로 보면, 일본이 조선을 따라잡은 것이.
메이지 유신 이후, 홋카이도 개발과 화학비료 대량도입이후입니다.

일부에서는 일본이 2모작을 해서 수확량이 높다고 하는데,
소가 없어 심경을 못하고. 비료를 제대로 주지 못하는 이모작은
토지의 사막화만 가속화 할 뿐입니다.
               
yj12 19-06-13 16:48
   
그러니깐 님이 말한 그 헥토르가 어디서 나온 자료나고요?
출저 올리시죠
그런 식이면 누구든지 지어낼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위에 올린 사진보면 일본도 소농을 잘만 했습니다
                    
바람따라0 19-06-13 16:58
   
일본 농지자료 그림파일로 새글에 올려 놨습니다.
바람따라0 19-06-13 04:23
   
바람따라0 19-06-13 04:23
   
바람따라0 19-06-13 04:24
   
아마르칸 19-06-13 11:06
   
윈도우폰 19-06-13 13:34
   
왜의 경우 토쿄지역과 오사카지역에 평야가 있고 다른 지역은 평야지대가 거의 없습니다. 메이지 이후 개간한 홋카이도나 에도시대 이후 개간된 관동지역을 포함하면 경작지가 우리보다 넓지만, 이를 제외하면 실제 우리나라보다 적지요.

참고로...토쿄지역은 토요토미가 이에야스를 견제하려고 이에야스의 영지(하바마쓰)를 당시 늪지에 불과했던 관동(간토)지역으로 바꾸자고 하여 이들을 보내면서 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어쨌든 임란 이전 왜의 경작지는 크지 않았습니다. 사실 왜인들이 적은 이유는 소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우리처럼 쌀 보리가 아니고 메밀로 소바를 만들어 먹을 정도로 수확량이 적었습니다. 부족한 영양분은 물고기로 보충하였지만...어쨌든 절대적인 영양부족으로 현재와 같이 왜소해 질 수밖에 없었죠.

우리 나라에서 '석'은 왜의 '석'개념 대비 4.3배 정도 됩니다. 같이 '석'이란 단위를 썼지만 용량이 같지 않지요. 우리 나라에서 '석' 개념은 한 사람이 일년간 먹을 양을 의미했습니다. 즉, 한 석은 한 끼를 1홉으로 쳤을 때 약 1천홉 정도 나오고 왜정시대 때 도입된 '가마니' 단위의 2배 정도되지요.

문제는 우리 나라가 엄청난 쌀/보리 대식국이라는 것인데...실제 70년대 이전 우리 밥그룻만 봐도 현 공기그릇의 2~3배는 되었는데...왜정시대 사기 밥그룻에 담기는 양은 현 공기 밥그룻 4배는 넘습니다.

왜인들은 공기그룻을 꽉 채우지 않지요. 밥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의 1/4을 먹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 나라의 '석'이 왜의 '석'의 4배는 많기 때문에 왜의 생산량은 최소 4로 나누어야 우리와 같이 비교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왜에서 말하는 '석'은 쌀 생산량만이 아니라 모든 곡물생산을 의미합니다. 그냥 대외적으로 뻥칠려고 쌀을 기준으로 표현하는 것인데 실제 왜의 영주가 20만석이라고 하면 우리 식으로는 4만여석에 불과하고, 이는 쌀 뿐만 아니라 보리든 메밀 등 모든 경작물을 포함합니다.  즉, 쌀은 만석 밖에 안 되고 다른 것이 19만석이라고 하더라도 20만석의 다이묘라고 한 것입니다.

에도후기는 관동지역 개간이 이루어져 생산량이 많이 늘어날 수 있었겠지만...에도 중기 이전까지는 경작지가 우리보다 넓지 않은데 생산량이 더 많을 수가 없지요. 물론 왜인들이 우리 보다 이양법을 조금 먼저 도입(중국남부 쪽과 무역을 하게 되면서...)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조선시대에는 이양법으로 쌀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왜가 우리보다는 경작법이 앞섰던 시기가 길지는 않지요.

참고로 이양법은 우리가 먹는 숏그레인(자포니카)의 경작법인 아닌 안남미라고 하는 롱그레인(인디카) 경작법이었습니다. 이 경작법을 왜가 우리보다 조금 먼저 도입한 것은 맞지요.
     
촐라롱콘 19-06-13 14:35
   
[[그냥 대외적으로 뻥칠려고 쌀을 기준으로 표현하는 것인데]].............???
.
.
.
한 명의 다이묘 입장에서 그가 주관하는 해당 번 또는 영지의 석고 규모를 뻥튀기해봤자
막부에 부담해야 할 세금과 부역규모만 늘어날 뿐인데요.....????

일반적으로 석고 규모를 근거로 해당 번에 할당된 세금과 부역규모도 달라지므로.....

따라서 에도시기를 거쳐 대부분의 번들이 초기와 후기를 비교하면 인구, 생산력이
실질적으로는 2배 이상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에도시기 초기에 파악되었던
석고규모를 근거로 할당된 세금-부역 의무만 질 뿐이고
이후 늘어났던 번의 인구과 생산력 증가분은 은폐하여 결국 에도시기 후기에 가면
막부재정이 악화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막부에서도 실질 인구와 생산력에 맞게 여러 번들에 세공을 부담시키는 노력을 여러 차례
시도하지만 결국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습니다.....!!!
     
yj12 19-06-13 16:33
   
일본이 경작지가 더 많았습니다.
일본 영토가 38만이고 조선이 22만인데 8만정도 되는 훗카이도하고 2만 정도 되는 관동평야를 제외한다고 해도 일본 면적이 조선보다 더 넓습니다.
(그리고 산지 면적은 일본이나 조선이나 거의 대부분이 산이나 펼로 차이 안나고)
위에서 올렸듯이 일본이 임진왜란 때까지는 조선하고 비슷했지만 에도 시대부터는 확실히 일본이 조선보다 높습니다.
그리고 석역시 일본이 조선보다 도량형 기준이 높고요.
          
바람따라0 19-06-13 16:40
   
년도 일본(백만헥타아르)
930 85.5 
1,450 93.8 
1,592 159.0 
1,600 162.1 
1,720 284.6 
1,874 302.5 

고려전기부터 조선왕조 세종때까지
일본의 경지면적은 큰 변화없이 100만 헥타아르 미만이었습니다.

조선의 경우, 1432년(세종 14년) 경지면적 400만 헥타아르에,
생산환산 면적 170만결을 기록합니다.

세종시대를 기준으로 일본은 조선의 1/4도 안되는 경지면적을 가진 겁니다.

그후 임진왜란 때가지 일본의 경지면적이 159만 헥타아르로 확대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조선 경지면적의 1/2도 안된 수준입니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경지면적을 확충한것은,
임진왜란 이후, 150만 헥타아르에 달하는 간토평야를 개발하여, 300만 헥타아르 수준으로
경지 면적을 늘린 때입니다.

그전 까지 간토평야는 늪과 뻘로 이뤄진 불모지였습니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 이후 홋카이도를 개발하면서,
경지면적 400만 헥타아르로 조선에 근접하게 됩니다.

경지면적이 중요한 것은,
기복이 심한 생산량 보다, 안정적으로 농업생산력을 표현한다는 점입니다.

농업 생산량으로 보면, 일본이 조선을 따라잡은 것이.
메이지 유신 이후, 홋카이도 개발과 화학비료 대량도입이후입니다.

일부에서는 일본이 2모작을 해서 수확량이 높다고 하는데,
소가 없어 심경을 못하고. 비료를 제대로 주지 못하는 이모작은
토지의 사막화만 가속화 할 뿐입니다.
페닐 19-06-13 13:41
   
무슨 기후가 어쩌니 과거 기록이 어쩌니...말들이 많은데....
자꾸 명확하지 않은 과거 자료만 뒤지지 말고 현대 자료를 봐도 유추가 가능함

1. 남북한 경지 면적 합계와 북해도를 포함한 일본의 경지 면적 합계가 비슷함
2. 단위 면적당 생산량은 일본과 한국이 큰 차이가 없음
3. 일본의 곡창지대인 도쿄 일대는 임진왜란시기에 개간이 시작됐고 또하나의 곡창지대인 북해도는 명치유신 이후에 개척이 시작됐음

대충 봐도 그동네 농업생산량이 한국을 능가한건 명치 유신 이후임
     
yj12 19-06-13 16:37
   
경지 면적은 일본이 훗카이도와 간토평야를 제외해도 한반도 보다 약간 높습니다.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40391
그리고 일본이 조선보다 농지 비옥도가 더 높습니다.
즉 임진왜란 때까지는 조선과 일본이 비슷하다가 에도시대 이후부터 일본이 간토지역을 경작하고 훗카이도까지 점령해서 경작하면서 일본이 조선보다 본격적으로 높아진 거죠.
          
바람따라0 19-06-13 16:40
   
년도 일본(백만헥타아르)
930 85.5 
1,450 93.8 
1,592 159.0 
1,600 162.1 
1,720 284.6 
1,874 302.5 

고려전기부터 조선왕조 세종때까지
일본의 경지면적은 큰 변화없이 100만 헥타아르 미만이었습니다.

조선의 경우, 1432년(세종 14년) 경지면적 400만 헥타아르에,
생산환산 면적 170만결을 기록합니다.

세종시대를 기준으로 일본은 조선의 1/4도 안되는 경지면적을 가진 겁니다.

그후 임진왜란 때가지 일본의 경지면적이 159만 헥타아르로 확대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조선 경지면적의 1/2도 안된 수준입니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경지면적을 확충한것은,
임진왜란 이후, 150만 헥타아르에 달하는 간토평야를 개발하여, 300만 헥타아르 수준으로
경지 면적을 늘린 때입니다.

그전 까지 간토평야는 늪과 뻘로 이뤄진 불모지였습니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 이후 홋카이도를 개발하면서,
경지면적 400만 헥타아르로 조선에 근접하게 됩니다.

경지면적이 중요한 것은,
기복이 심한 생산량 보다, 안정적으로 농업생산력을 표현한다는 점입니다.

농업 생산량으로 보면, 일본이 조선을 따라잡은 것이.
메이지 유신 이후, 홋카이도 개발과 화학비료 대량도입이후입니다.

일부에서는 일본이 2모작을 해서 수확량이 높다고 하는데,
소가 없어 심경을 못하고. 비료를 제대로 주지 못하는 이모작은
토지의 사막화만 가속화 할 뿐입니다..
               
yj12 19-06-13 16:49
   
출저나 올리시죠
그리고 제가 올린 위에 사진보면 일본도 소농을 잘만했고
                    
바람따라0 19-06-13 16:59
   
일본 농지자료 그림파일로 새글에 올려 놨습니다..
머라카이 19-06-13 13:59
   
RISS나 DB피아 가셔서 논문 검색하시면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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