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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5-28 02:39
[한국사] 한국 고대 군주의 다양한 명칭 (王Wang/侯Hu)
 글쓴이 : 야요이
조회 : 1,059  

0. 조선(기자)

* 왕(王) : 

조선후 준(準)이 처음으로 왕을 칭했는데, 혹은 그 아버지인 부(否) 이전부터 왕을 칭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 이전에 고조선의 군주는 대외적으로 조선왕이 아닌 조선후(侯)로 칭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 단군왕검(檀君王儉) : 

『삼국유사』에 전하는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이름. 기록상에는 인명(人名)으로 표현되지만, 실제로는 어떤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단군(檀君)은 하늘을 말하는 "텡그리", 그리고 여기서 따온 무당 및 제사장을 가르키는 "당골"에서 따온 것으로 보기도 하며, 이에 따름 당군은 종교적 지배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그에 반해서 왕검(王儉)은 무력을 지닌 정치적 지배자로 보기도 한다.


* 상(相) :

『사기』·『한서』 조선전에는 고조선의 관명 중 하나로 상(相)이 언급되고 있는데, 조선상 역계경·조선상 노인·상 한음·니계상 참 등이 보이고 있다. 이들 가운데 조선상 역계경은 우거왕이 자신의 간언을 듣지 않자 2천여 호의 민(民)을 이끌고 진국으로 건너갔다고 전하며, 또한 고조선이 한 무제의 침략을 받았을 당시에도 조선상 노인과 상 한음 등이 도망하여 한에 항복하기도 하기도 하였고, 니계상 참은 우거왕을 살해한 후에 항복하기까지 하였다. 이처럼 이들은 각기 독자적인 세력과 권력을 지니고 있었던, 고조선의 왕 아래에 있던 족장층으로 생각된다.


* 비왕(裨王) :

『사기』 조선전에는 고조선의 우거왕이 한 무제가 보내온 사신 섭하를 전송하려나왔던 비왕 장(長)이 섭하에게 살해당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비왕이라는 칭호가 지닌 성격은 기록이 부족하여 명확하지는 않으나, 섭하가 직후에 "조선의 장수를 죽였다"라고 보고한 것을 보면 고조선에서는 어느 정도의 위치를 지니고 있었던 족장층으로 볼 수 있다. 

『사기』 흉노전에서는 흉노의 왕인 선우가 거느린 속관 가운데에 비소왕이라는 명칭이 보이기도 하는데, 비왕 또한 이름 뒤에 왕(王)이 붙은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자신의 세력을 거느리고 있되, 상(相) 보다는 아래에 있는 족장층을 가르키는 말로 생각된다.


1. 부여

* 왕(王) : 

『삼국지』 동이전 부여조에서는 『위략』을 인용하여 부여의 시조인 동명은 북쪽에 있던 고리에서 도망하여 남쪽 시엄수를 건너가 부여를 세우고 왕이 되었다고 전한다.



* 예왕(濊王)

『삼국지』 동이전 부여조에서는 부여의 왕들이 사용하는 인장에 "예왕지인(濊王之印)"이 새겨져 있으며, 또한 그 나라에 예성(濊城)이라는 곳이 있었으며, 본래 그 일대가 예의 땅이었으나 그 중에 부여가 왕이 되었다고 하였다.




* 가(加)

『삼국지』 동이전을 비롯한 중국 측의 기록에 보이는 표현으로, 부여와 고구려 일대의 족장층들을 일컫는 말이다. 부여와 고구려가 초기에 여러 부(部)의 연맹체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을때에 이들 가는 각자가 주관하는 부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행사하였다. 부여의 왕도 초기에 권력이 미약하여 흉년이 들면 이를 책임지기 위해 쫓겨나거나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러나 점차 왕권이 강해지면서 부자세습제가 정착되었으며, 왕의 권력 기반도 이전에 비해 안정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2. 동예

* 불내후(不耐侯) :

『삼국지』 동이전 예조에 따르면 단단대산령의 서쪽이 낙랑군에 속하게 되었고, 그 동쪽의 7현에는 도위를 두어 다스렸다고 하였다. 뒤에 해당 지역의 관할이 어려워지자 도위를 폐하고 그 거수를 후로 삼았다고 하였는데, 후에 이를 불내성(不耐城)이라 하면서 불내후라 불리게 되었다. 한나라 말기에 고구려에 복속되었다.




* 불내예왕(不耐濊王) :

『삼국지』 동이전 예조에 따르면, 정시 6년에 낙랑태수 유무와 대방태수 궁준이 고구려에 복속되었던 동예지역을 회복하기 위해 이를 공격하자 불내후가 항복해왔고, 정시 8년에는 조공을 바쳐왔다. 이에 불내후를 불내예왕으로 삼았는데, 4계절마다 낙랑군과 대방군에게 조공하였으며, 2군이 전시에 처했을 때에도 물자를 공급하거나 부역을 제공하였다.




* 예군(薉君) :

동예 지역의 토착 세력가를 지칭하는 말로 여겨진다. 오늘날 낙랑군 조선현 일대로 추정되는 북한 평양시 정백동 1호분에서 부조예군(夫租薉君) 인장이 발견되었는데, 부조현은 낙랑군 25현 중 한 곳이다. 아마도 인장의 주인인 부조예군은 부조현 지역에 있던 예족들을 지배하던 토착 세력가였으나, 낙랑군이 해당 지역을 군현화하기 위하여 부조예군을 낙랑군의 중심지인 조선현으로 끌고와 그 곳에서 죽게하여 인장과 함께 매장한 것으로 생각된다.



3. 옥저

*삼로(三老) :

『삼국지』 동이전 동옥저조에 따르면, 옥저의 거수들은 옛 현국의 제도에 따라 삼로(三老)를 칭한다 하였는데, 과거에 고조선이 멸망한 후에 한이 이 지역을 일시적으로 점령했던 흔적이 남은 듯 하다. 삼로는 본래 중국 한나라 때에 마을의 교화를 담당하던 직책을 이른다.



4. 삼한

* 진왕(辰王) : 

『삼국지』 동이전 한조에서 등장. 마한의 목지국(目支國, 혹은 月支國)을 다스림. 그 정체는 여전히 확연하지 않으나, 대체로 마한 일대에서 낙랑군과 대방군과의 교류에 대표격으로 나섰던 세력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진왕에 대한 기록은 마한을 다룬 부분과 진변한을 다룬 부분에서 각기 등장하는데,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이들을 서로 별개의 존재로 보기도 하지만, 아직 정설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 신지(臣智)·읍차(邑借) :

『삼국지』 동이전 한조에서 등장. 마한(馬韓)에서 각 국(國)을 다스리는 장수·거수를 가르키는 말로, 규모가 크면 신지라 하며, 작으면 읍차라고 한다.


* 신지(臣智)·험측(險側)·번예(樊濊)·살해(殺奚)·읍차(邑借) :

『삼국지』 동이전 한조에서 등장. 진한(辰韓)·변한(弁韓)에서 각 국(國)을 다스리는 장수·거수를 가르키는 말. 신지가 가장 큰 수장층을 이르는 말이며, 그 다음의 서열이 험측, 번예, 살해, 읍차이다.


* 신운견지보(臣雲遣支報) · 안야축지(安邪踧支) · 분신리아불예(濆臣離兒不例) · 구야진지렴(拘邪秦支廉) :

『삼국지』 동이전 한조에서 등장. 각 국의 신지를 우대하는 호칭으로 전해진다.

그 정체는 명확하지 않으나, 각기 마한의 신운신국·진한의 안야국·마한의 신분고국·진한의 구야국 등의 신지를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초기에는 이들이 삼한의 정세를 주도하였던 주요 세력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에서 마한의 신분고국 등은 훗날에 낙랑군과 대방군에 맞설 정도로 강대해졌고, 안야국과 구야국은 각기 가야의 안라국과 금관국으로, 낙랑과 대방 및 왜와의 교역을 주도하면서 가야 일대의 가장 강한 세력으로 떠오르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한강 유역에 위치한 마한의 백제국(佰濟國)과 경주 일대에서 일어난 진한의 사로국(斯盧國) 등이 각기 그 일대의 강자로 떠오르게 되면서 삼한의 정세는 급변하게 된다.


* 천군(天君) :

『삼국지』 동이전 한조에서 등장. 삼한의 각 소국을 다스리는 거수가 살고있는 국읍(國邑)마다 한 사람을 두어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도록 했는데, 이를 천군이라 불렀다. 제정분리 사회에 출현하기 시작한 제사장으로 생각되며, 권력 구조가 성장하고 고대국가의 기틀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정치적 지배자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존재로 격하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삼국사기』에는 종종 무(巫) 등의 다양한 호칭으로 등장하며 왕의 조언자로 활약하기도 한다.


* 한왕(韓王) :

『삼국지』 동이전 한조에서 등장. 위만에게 쫓겨난 고조선의 준왕이 좌우의 궁인을 거느리고 한의 땅에 거처하며 칭한 이름. 이후 멸절하였으나 한인(韓人)가운데 그의 제사를 받드는 사람이 있었다고 전하며, 그 후손이 남아 한씨(韓氏)라 칭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고조선 유민의 남하는 삼한의 청동기 문화의 발달에는 어느 정도 이바지하였으나, 정세에는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토착세력에 밀려난 것으로 생각된다.



5. 고구려

* 왕(王)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호칭. 특히 국왕의 시호에 사용. 초기에는 왕의 이름 뒤에 왕을 붙여 시호로 삼았으나, 점차 시호제도가 정착됨에 따라 왕의 장지명 혹은 업적에서 따온 문구를 붙여 시호로 삼는 경우가 늘어남.


* 대왕(大王)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호칭. 주로 대화체에서 왕을 높여 부를 때에 사용.


* 개차(皆次) :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고구려의 지명이었던 왕기현(王妓縣)을 혹은 개차정(皆次丁)으로 부르기도 했다는 점에 착안하여, 개차(皆次)를 왕(王)에 대응시켜 당시에 고구려어로 왕을 "개차"라 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다만 『고려사』 지리지에서는 왕기현을 옥기현(玉妓縣)으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에 다소 논란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그 외에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고구려의 개백현(皆伯縣)을 신라에서 왕봉현(王逢縣)으로 바꾸었던 점에 착안하여 '개'는 곧 고구려어로 왕을 나타는 말로 볼 수 있다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이전에 발간된 광주판 『천자문』과 대동급기념문고본 『천자문』에서 각기 "王"의 훈(訓)을 "긔자" 혹은 "기차" 등으로 표기했던 예도 있으며, 때문에 백제에서 왕을 나타내는 명칭 중 하나였던 건길지와 통한다고 보기도 한다.


* 가(加) :

『삼국지』 동이전을 비롯한 중국 측의 기록에 보이는 표현으로, 부여와 고구려 일대의 족장층들을 일컫는 말이다. 부여와 고구려가 초기에 여러 부(部)의 연맹체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을때에 이들 가는 각자가 주관하는 부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행사하였으나, 점차 왕권이 강화됨에따라 그에 귀속되었으며 자치권도 잃어갔다. 왕족 중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에게 고추대가(古鄒大加)라는 칭호를 내리기도 하였는데, 장수왕의 아들인 조다가 대표적이다.


* 태왕(太王) :

고구려의 여러 금석문에서 보이는 호칭으로, 왕을 높여 부를 때에 사용된다. 대개 왕(王)과 혼용되고 있다. 『광개토왕비』의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모두루묘지명』의 국강상성태왕·『중원고구려비』의 고려태왕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국왕의 시호에도 사용하지만, 고구려의 왕을 지칭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그 외에도 왕을 높여부르는 이름으로는 『모두루묘지명』에서 보이는 추모성왕, 혹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 문자명왕의 별호로 언급되는 명치호왕 등의 명칭에서 보이는 성왕(聖王)·호왕(好王) 등의 예가 있다.


* 성상(聖上) :

안악 3호분 고분벽화의 대형렬도에서 "성상번(聖上幡)"이라는 글자가 적힌 깃발을 그려넣은 것이 발견됨. 그러나 그 외에는 확인할 흔적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 천손(天孫) : 

신포시 절골터에서 발굴된 고구려의 금동판 명문에 등장하는 호칭. 명문에서는 이미 사망한 (그래서 승천한 것으로 여겨지는) 선대의 고구려 국왕들을 가르키는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훗날의 발해에서도 이와 같은 명칭이 사용되었다. 고구려 왕실이 지녔던 일종의 천손의식을 집적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예 중 하나이다.



6. 백제

* 왕(王) :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호칭. 특히 국왕의 시호에 사용. 『무령왕릉지석』·『창왕명석조사리감』 등의 백제 금석문에서 사마왕·창왕 등 백제 왕의 이름에 그대로 왕을 붙여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됨. 처음으로 중국식 시호를 붙인 경우는 동성왕 이후로 확인됨.


* 대왕(大王) 폐하(陛下) :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호칭. 주로 대화체에서 왕을 높여 부를 때에 사용. 『미륵사지 금제사리봉안기』에서는 백제 무왕을 가르켜 "대왕(大王) 폐하(陛下)"라 칭하고 있다. 

또한 『일본서기』에 대한 일본의 고훈(古訓)에서 백제의 '왕'을 "코니키시"라 하였는데, 여기서 "코니"는 크다(大)는 뜻이고, "키시"는 왕(王)이란 뜻이니, 곧 대왕(大王)을 말한다. 또한 여기서 보이는 키시는 또한 백제왕을 가르키는 이름 중 하나인 건길지(鞬吉支)와 통한다.


* 우현왕(右賢王)·좌현왕(左賢王) :

『송서』 백제전에서 개로왕이 송에 사신을 보내 여기와 여곤 등에게 관작을 내려줄 것을 칭하면서 두 사람을 각기 우현왕·좌현왕으로 칭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보다 이전에 흉노에서 사용했던 칭호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며, 흉노에서는 흉노의 왕인 선우에 버금가는 가장 높은 작위로 여겨졌던만큼, 여기와 여곤 두 사람이 당시 개로왕에게 있어 가까운 친족이나 최측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왕(王)·후(侯)·장군(將軍) :

『송사』 백제전과 『남제서』 백제전 등에는 각기 개로왕과 동성왕이 휘하의 왕족 혹은 귀족들을 왕·장군·후 등으로 봉할 것을 요청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를 보아서 백제의 왕들은 스스로를 왕과 제후들의 이에 군림하는 대왕으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 어라하(於羅瑕) :

『주서』 이역열전 백제조에 등장하는 호칭. 백제에서 왕을 부르는 이름이다. 그 외에 백제의 왕비를 일컫는 말로 어륙(於陸)이 언급된다. 대체로 민(民)들이 왕을 부르는 말인 건길지와는 구분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 건길지(鞬吉支) :

『주서』 이역열전 백제조에 등장하는 호칭. 백제에서 왕을 부르는 이름으로 어라하와 함께 언급되며, 어라하와는 달리 주로 민(民)들이 사용하는 말로 묘사된다. 

과거에는 어라하와 건길지를 각기 지배층이 사용하는 고구려·부여계 언어와 피지배층이 사용하는 한(韓)계 언어의 차이점을 드러내는 단서로 보기도 하였으나, 최근에는 큰 지지를 받고 있지는 못하다. 임진왜란 이전에 발간된 광주판 『천자문』과 대동급기념문고본 『천자문』에서 각기 "王"의 훈(訓)을 "긔자" 혹은 "기차" 등으로 표기했던 예를 보더라도 옛 마한 지역 일대에서도 왕을 "개차" 등으로 부른 흔적이 있으며, 이와 같은 음이 고구려에서 왕을 일컫는 말 중 하나였던 것으로 생각되는 "개차"와 통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즉 당시의 부여계 언어라고는 해도 실상은 한 계통의 언어와 그리 큰 차이는 없었다는 것이다.


* 소왕(小王) :

『신당서』 동이열전 백제조에서는 의자왕의 아들인 효(孝)가 소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던 것으로 전한다.



7. 신라

* 거서간(居西干) :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등장하는 호칭.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만이 사용한 칭호이다. 이에 따르면, 거서간은 진한 사람들의 언어로 임금, 혹은 존귀한 이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삼국유사』에 따르면 거슬한(居瑟邯)이라고도 한다.

그 자세한 뜻은 오늘날 학계에서도 여러 견해가 있으나, 신라 및 가야 일대에서 군주를 일컫던 말인 간(干)이 뒤에 붙은 것을 보면 고대에 군장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 차차웅(次次雄) :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등장하는 호칭. 신라의 2대 남해차차웅만이 사용한 칭호이다. 자충(慈充)이라고도 하는데, 김대문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차차웅은 방언(方言, 토속어)으로 무당[巫]을 가르키는데, 세상 사람들이 무당이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받드므로 두려워하고 존경하여 존장자(尊長者)를 자충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서도 이와 같은 기록을 전한다.

고대에 종교적·주술적 권능이 있었던 지배자들을 일컫는 말로 생각되며, 당시의 제정일치 사회의 한 일면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삼국사기』 제사지에 남해왕(남해 차차웅)이 시조묘를 설치한 후에 자신의 누이인 아로(阿老)에게 제사를 주관케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는 제사권이 국왕의 권력 밑으로 귀속되면서 제정이 분리되고 있는 사회상을 묘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 이사금(尼師今) :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등장하는 호칭. '잇금'을 의미하는 칭호로, 3대 유리이사금 이후로 18대 실성이사금 때까지 사용되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질금(尼叱今)이라고도 한다. 

유리 이사금이 매부인 대보 석탈해와 왕위를 잇기 위해 경쟁했을 때에 "성스럽고 지혜로운 이는 치아가 많다."고 하여 떡을 물어서 그 갯수를 헤아려 왕이 될 사람을 정했던 일에서 유례하였다. 대체로 연장자로써 지혜롭고 덕망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생각되는데, 특히 그 과정에서 치아로 표현되는 '연령'이 왕위 승계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아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신라의 정치적 발전도가 미숙하고 왕권도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았음을 의미하고 있다.


* 마립간(麻立干) :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등장하는 호칭. 『삼국사기』에서는 19대 눌지마립간이 처음으로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삼국유사』 왕력에서는 18대 실성마립간 때에 처음 사용된 것으로 전하고 있다. 김대문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마립(麻立)이란 방언으로 말뚝을 이르고, 말뚝은 함조(諴操)를 말하니, 지위에 따라 설치했는데, 곧 왕의 말뚝은 주(主)가 되고 신하의 말뚝은 그 아래에 배열되었으니 이로 말미암아 왕의 명칭으로 삼았다고 한다.

마립간의 칭호가 등장한 이후로 신라의 왕위는 김씨가 독점하게 되며, 또한 김대문이 전하는 그 명칭의 유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왕과 귀족 간의 서열과 위계가 확연해졌음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마립은 곧 서열을 표시하는 말뚝을 말하고, 간(干)은 가야와 신라 일대에서 통용되던 군주의 칭호였음을 생각해본다면, 마립간이란 여러 간 위에 군림하는 가장 강한 간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왕(王) :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등장하는 호칭. 『삼국사기』에 따르면 22대 지증왕 재위 4년에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방언으로 불리던 칭호 대신에 신라국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 대왕(大王)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호칭. 주로 대화체에서 왕을 높여 부를 때에 사용된다. 중국의 시호제도가 정착되면서 죽은 왕족을 대왕(大王)으로 추증하는 경우도 보인다. 선대의 왕을 높여부르는 경우에도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 갈문왕(葛文王) :

『삼국사기』 신라본기와 『삼국유사』 등에 등장하는 호칭. 주로 왕족에게 내리던 칭호의 일종으로, 살아있는 왕족을 책봉하거나 혹은 죽은 왕족을 추증하는데 사용되는 칭호이다. 왕의 생부·아우 등을 비롯한 왕의 친족과 장인·외할아버지 등을 비롯한 왕의 처가 및 외가, 그리고 여왕의 배필 등의 범위를 포괄하고 있으며, 그 성격과 정체에는 여전히 많은 논란이 있다.


* 태왕(太王) : 

신라에서 왕을 높여 부르며 일컫던 칭호. 『울주천전리각석』·『진흥왕순수비』 등에서 각기 법흥태왕·진흥태왕 등의 명칭이 언급된 것이 대표적인 예이며, 고구려의 영향을 다분히 받은 명칭으로 생각된다.


* 매금(寐錦) : 

『광개토왕비』·『중원고구려비』 등의 고구려 금석문, 『울진봉평신라비』 등의 신라 금석문, 『일본서기』 등의 기록에 등장하는 신라 왕의 호칭. 그 뜻은 "비단 위에서 잠자는 고귀한 이"를 가르키는 존칭어에 가까우며, 일반적으로 왕을 가르키는 신라의 토속어로 생각된다. 견해에 따라서는 마립간과 같은 말로 보기도 하지만, 왕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지증왕 이후의 금석문에서도 매금이라는 표현이 종종 보이기 때문에 그대로 수용하기는 다소 어렵다.


* 간지(干支) : 

신라와 가야의 각종 금석문에 보이는 칭호. 간(干),찬(飡),한(旱 혹은 汗)이라고도 하며, 『일본서기』에서는 간지 외에도 한기(旱岐) 등의 표기가 자주 보인다. 신라와 가야 일대에서 소국의 지배자 내지는 지역의 수장을 지칭하는 호칭으로, 왕을 뜻하는 간(干)과 존칭어인 지(支)가 결합된 말로 생각되는데, 신라 중대의 금석문에는 왕이 이들 간지와 더불어 이런 저런 국정을 의논하거나 지방을 순행했다는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

간은 북방의 유목민족 사이에서 왕을 뜻하는 칸(Khan) 등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며, 부여와 고구려 등에서 족장층을 가르켜 사용된 가(加)와도 통하는 바가 있다. 신라에서는 왕을 "간 중의 으뜸"이라는 뜻의 마립간이라 불렀음에도 알 수 있듯이, 신라를 중심이 되는 왕경의 6부(部)에서 핵심세력으로 활약하였으나 점차 왕권이 강화되고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면서 관등의 이름으로 격하되었다.


* 지(智) : 

신라에서 왕족이나 진골급에 해당하는 귀족들의 이름 뒤에 붙이던 존칭 혹은 접미사. 『단양적성비』에서 보이는 "이사부지(伊史夫智)" 등의 용례가 있는데, 이사부라는 인명 뒤에 지(智)를 덧붙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서기』에서도 "이질부례지간기(伊叱夫禮智干岐)"라는 용례가 보이는데, 이질부례는 이사부의 이름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고, 지(智)는 존칭, 간지(干岐)라는 칭호를 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8. 가야

* 왕(王) :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금관국의 수로왕 외에도 "가야국왕(加耶國王)" 등이 언급되고, 『삼국유사』 가락국기에서도 금관국의 역대 왕들의 치적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 한기(旱岐) :

『일본서기』에서 자주 언급되는 명칭으로, 신라와 가야 일대의 수장과 군주들을 가르키며, 간지(干支)라고도 한다. 가야의 여러 나라들 중에서도 일부는 왕을 칭하기도 하였으나, 또 일부는 여전히 수장층을 일컫는 한기를 칭하기도 하였다. 창녕 계성 3호분에서는 "대간(大干)"이 새겨진 뚜껑, 즉 대간명유개고배가 발굴되기도 하였다.


* 대왕(大王) : 

가야의 여러 나라들 중에서도 왕을 칭했던 나라는 가라국과 안라국 등 일부였을 것으로 보인다. 1976년에 대구 고물상에서 발견된 고령 계통의 토기인 대왕명유개장경호(이른바 대왕명토기)에는 "대왕(大王)"이라는 글자가 새겨져있음이 확인되었다.



9. 탐라국

* 왕(王)

『일본서기』에서는 탐라왕(耽羅王)에 관한 기록이 몇 차례 보인다.


* 을나(乙那)

『고려사』 지리지 탐라현조에 인용된 『고기』에 따르면, 태초에 사람이 없다가 양을나(良乙那)·고을나(高乙那)·부을나(夫乙那) 등의 3명의 신인(神人)이 땅에서 솟아났는데, 이들은 각기 일본국 왕의 세 딸과 결혼하고는, 각자 터를 잡아 가축과 오곡을 키우며 번성하였다고 한다. 이들 삼을나는 삼신인이라고도 하는데, 이를 단순히 인명으로 볼지, 혹은 탐라 일대에서 수장을 가르키는 말로 볼지는 확연하지 않다.


* 좌평(佐平)·국주(國主) :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탐라국주(躭羅國主)인 좌평(佐平) 도동음률(徒冬音律)이 문무왕 2년에 신라에 항복해온 일을 언급하면서, 탐라가 백제에 속하였으므로 좌평으로써 관직의 호칭을 삼았다고 하였다.



10. 발해

* 왕(王) :

남아있는 기록에 따르면, 발해는 역대 왕의 시호에 왕(王)을 붙였다. 걸걸중상은 당나라 측천무후에 의하여 진국공(震國公)에 봉해졌는데, 걸걸중상이 죽은 후에 그 아들인 발해 고왕 대조영이 천문령에서 이해고를 격파하고는 말갈과 고구려 유민을 모았으며, 성력 연간(698)에 나라의 이름을 진(震)이라 하였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왕을 칭한 것으로 생각된다.


* 가독부(可毒夫) :

『신당서』·『구오대사』에서는 발해에서 그 풍속으로 왕을 가독부라 부른다고 하였다. 왕을 가르키는 발해의 토속어로 보인다.


* 성왕(聖王) :

『신당서』·『구오대사』에서는 발해에서 왕을 대면할 적에 성(聖)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유득공은 『발해고』에서 이를 "성왕"이라 표기하였다.


* 기하(基下) : 

『신당서』·『구오대사』에서는 발해에서 왕에게 글을 올릴 때에는 기하(基下)라 부른다고 하였다. 

그 외에 왕의 아버지를 노왕(老王), 어머니를 태비(太妃), 처를 귀비(貴妃), 맏아들을 부왕(副王), 나머지 아들은 왕자(王子)라고 불렀는데, 이와 같은 내용은 『책부원구』·『오대회요』·『문헌통고』에서도 볼 수 있다.

또한 『정효공주 묘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왕의 딸은 공주라 하였으며, 세자를 동궁(東宮)이라 하였다.


* 황상(皇上) :

『정효공주 묘지명』에서는 공주가 죽자 "황상이 슬퍼하여…"라고 하면서 그의 아버지인 문왕을 황상이라 표현하였다. 여러 나라들이 그러하듯이 발해도 외왕내제의 체계를 갖추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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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v 19-05-28 20:15
   
조선:님금
     
야요이 19-05-29 18:41
   
왕.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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