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9-04-09 21:36
[한국사] 요양과 건주, 그리고 패주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2,293  

10세기 거란의 요양(遼陽) 위치 추적
ㅡ 거란국지 4권(과 신오대사 진가인 열전)을 중심으로 ㅡ
#0
이 고찰은 지난 2월 냉형산 추적 당시의 연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처음에는 발해 건주를 간과하여서 '요양동남쪽 1,200 리' 기록을 버리려 했었다.


0. 석진 출황제 석중귀와 그 황후인 이태후는 요 태종 야율덕광이 석진을 멸망시킨 후 석중귀를 부의후에 제수하여 황룡부에 가서 살게 함에 따라 동단국이 발해 각지의 반란에 따라 발해의 옛 터전을 잃고 요주 동평군으로 이치됨에 따라 현 장춘시 서남쪽 사평시 인근에 내려와 있던 것으로 판단되는 용주(요 태종이 설치, 연파의 반란 이후 폐지 됐다가 성종이 1020 년 장춘시 북쪽에 다시 설치함)로 옮겨 감

會同十一年。晉開運四年。是歲晉亡。
晉侯自幽州十餘里,過平州,沿途無供給,飢不得食,遣宮女、從官採木實、野蔬而食。又行七八日,至錦州,衛兵迫拜太祖畫像,不勝屈辱而呼曰:「薛超悞我,不令我死。」馮後求毒藥,欲與晉侯俱自死,不果。又行五六日,過海北州,至東丹王墓,遣延煦拜之。又行十餘日,渡遼水,至渤海國鐵州。又行七八日,過南海府,遂至黃龍府。<거란국지>

1. 야율아보기의 황후이자 요 태종의 어머니이자 요 세종의 할머니인 술율태후가 진후(석중귀)와 태후(이태후)를 모두 황룡부(용주) 서북쪽 1,500 리에 있는 회밀주(회주, 현 파림좌기 서남쪽 인근)로 옮겨 살게 함에 따라 그곳으로 가기 위해 요양을 지나서 200 리 쯤 가다가 술율태후가 요 세종에게 (조주, 현 파림좌기 서남쪽 인근) 위폐되자(갇히자) 다시 요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요 세종이 이들을 요양에서) 먹고 살게 함

先是,述律太后徙晉侯並後於懷密州,去黃龍府西北一千五百里。行過遼陽二百里,而述律太后為帝所囚,晉侯與後複得還於遼陽,稍有供給。<거란국지>

2. 영강왕(요 세종)이 석중귀와 이태후의 아들인 연후를 데리고 형(현 장가가시 동쪽, 난하, 조하, 백하의 발원지 일대)으로 납량피서를 갔다가 돌아오자 이 태후가 패주까지 마중을 나감. 태후가 영강왕에게 농사 짓고 목축할 땅을 주십사 간청하자 영강왕이 건주 한(아)성 옆의 땅을 떼어줌(건주에 살게 허락함). 태후와 영강왕, 연후가 (패주로부터) 10여 일 걸려 요양에 도착함

陘,北地,尤高涼,北人常以五月上陘避暑,八月下陘。至八月,帝下陘。太后自馳至霸州謁帝,求於漢兒城側賜地種牧以為生,許之。帝以太后自從,行十餘日,遣與延煦俱還遼陽。<거란국지>

3. 요양에서 동남쪽으로 1,200 리에 건주가 있는데 건주절도사 조연휘가 (건주에) 쉴 곳을 마련해주고 건주 수십 리 바깥에 이들이 먹고 살 수 있게 50여 경(1경=약 60만 평, 50여 경=약 3백만 평)의 땅을 얻어 이들에게 줌

己酉天祿二年。北漢乾佑二年。春二月,徙晉侯、太后於建州。中途安太妃卒,遺令晉侯:「焚骨為灰,南向揚之,庶幾遺魂得反中國也。」自遼陽東南行千二百里至建州[七],節度使趙延暉避正寢以館之。去建州數十里外,得地五十餘頃,侯遣從者耕以給食。頃之,太宗之子述律王遣騎取晉侯寵姬趙氏、聶氏而去。<거란국지>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감방친구 19-04-09 22:01
   
#1
동경 직속현 요양현은 요사 지리지 동경도에서 기술하길 본래 패수현이라 하였다. (遼陽縣。本渤海國金德縣也。漢壩水縣,高麗改為勾麗縣,渤海為常樂縣。戶一千五百。)

#2
양(陽)은 강 북쪽 연안의 바른 자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양은 한수(한강)의 북쪽 연안 바른 자리, 낙양은 낙수(낙하)의 북쪽 연안 바른 자리에서 비롯하여 이름한 것이다.

#3
요사에서 요수는 현 서요하~요하이고, 무경총요에서의 요수는 현 요하와 현 대릉하(하류) 2곳을 가리킨다. 그런데 현 요양은 요수의 북쪽 자리가 아니라 태자하의 북쪽 연안 자리이다.

#4
이 시기의 건주는 현 조양시 남부에 해당한다. 요사 지리지 중경도에서는 이태후에게 떼어주어 살게 한 땅이 건주 남쪽 40 리라 적고 있다(建州, 保靜軍, 上, 節度. 唐武徳中, 置昌黎縣. 太祖完葺故壘, 置州. 漢乾祐元年, 故石晉太后詣世宗, 求於漢城側耕墾自贍. 許於建州南四十里給地五十頃, 營構房室, 創立宗廟. 州在靈河之南, 屢遭水害, 聖宗遷於河北唐崇州故城. 初屬武寧軍, 隸永興宫, 後屬敦睦宫. )

#5
즉 거란국지의 요양 동남쪽 1,200 리에 있다고 기술(自遼陽東南行千二百里至建州)한 건주는 거란의 건주가 아니라 발해의 건주로 발해의 건주는 발해 상경용천부 남쪽에 있었으며 지금의 요원시와 통화시 사이의 땅에 해당한다. 누루하치의 건주여진의 연원이 바로 발해 건주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 지역은 발해 멸망 후에도 계속 건주로 불렸다.

#6
거란국지에서 '요양 동남쪽으로 건주까지 1,200 리' 기술에 주석을 달았는데 본래는 천(1,000)이 아니라 정(걸리다)이라 적혀 있었는데 신오대사와 비교하여 신오대사에 천이라 적혀 있어서 천으로 고쳤다고 적고 있다([七]自遼陽東南行千二百里至建州 「千」原作「程」,據新五代史卷十七晉家人傳高祖皇后李氏傳改。)

#7
석중귀와 이태후 무리가 땅을 얻어 옮겨 가서 산 곳은 현 조양시 남부에 해당하는 거란 건주이므로 '요양 동남쪽 건주' 기술은 명백히 오기이다. 또한 '1,200 리' 역시 성립할 수 없다.

#8
따라서 「千」原作「程」에서 程이 옳으며, 만약 건주가 요양 동남쪽에 있어야 하면 명백히 거란 건주는 현 조양시 남부이므로 요양이 조양시 서북쪽에 있었어야 한다. 그런데 이는 말이 안 된다.

#9
따라서
10 세기 석중귀와 이태후 기사에 등장하는 요양과 건주의 거리는 200 리, 요양은 건주 동남쪽에 있거나, 또는 건주가 요양 서남쪽에 있었다고 보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10
거란 패주(霸州)는 현 조양시에 있었는데 후에 흥중부로 개편되었다. 건주와 요양의 거리가 200 리가 맞다면 건주 인근인 패주에서 요양까지 10여 일 걸려 도착한 기술과 불치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11
그러나 석중귀가 애초 황룡부로 가던 여정과 비교하면 현 금주에서 현 북진시에 이르는 경로를 5~6일에 걸쳐 이동한 사례도 있고 이들 요 세종과 연후, 이태후 등이 패주에서 요양까지 군사행동을 하듯이 쾌속 이동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감방친구 19-04-11 01:13
   
#12
그런데 건주의 위치에 대하여 사서 기록을 토대로 엄밀히 따져 보자면 무경총요와 요사 지리지 중경도 기록을 교차해 파악할 수 있다

#13
우선 요사를 보면 본래 령하(현 대릉하) 남쪽에 있었는데 수해가 잦자 거란 성종 때에 주를 강 북쪽으로 이치시켰다고 적고 있다(州在靈河之南, 屢遭水害, 聖宗遷於河北唐崇州故城. )

#14
무경총요에서는 건주의 위치에 대해서 현 조양시 조양현에 있었던 패주(흥중부)를 기준으로
ㅡ 건주에서 동북쪽 90 리에 패주(東北至霸州九十里)
ㅡ 패주에서 서남쪽 60 리에 건주(西南至建州六十里)
라 적고 있다

#15
거란 건주에 대해서 중문 위키는 이렇게 적고 있다
"辽太祖设立建州保静军节度使,治所在永霸县(今辽宁省朝阳縣木头城子鎮)。后来迁移到今朝阳市大平房镇。"

木头城子鎮
Mutouchengzizhen
중국 랴오닝 성 차오양 시 차오양 현 邮政编码: 122625
https://maps.app.goo.gl/iDpGw

大平房镇
Dapingfangzhen
중국 랴오닝 성 차오양 시 룽청 구
https://maps.app.goo.gl/9HPvE

목두성자진 위치에서 대평방진 위치로 주 치소를 옮겼다는 말이다

대평방진과 조양현의 거리는 구글지도 상에서 29km, 41km 등으로 무경총요의 60리, 90 리와 거의 일치한다

#16
따라서
신오대사와 거란국지의 건주와 요양의 거리 1,200 리, 또는 200 리 기록은 다음의 이유로 사용할 수 없다

1) 요양 동남쪽에 있는 것은 발해 건주이다
2) 거란 건주는 현 조양시 조양현과 건평현 사이에 있었다
3) 석중귀와 이태후가 할양 받아 말년에 머물다 죽은 건주는 거란 중경도 건주이다
3) 현 요양시가 동경  요양이라는 전제 하에 무경총요에서 기술하길 동경에서 중경까지 1,130 리, 패주(조양현)까지 750 리이다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79581&sca=&sfl=mb_id%2C1&stx=cellmate

4) 즉 신오대사와 거란국지의 요양~건주 거리 방위를 서남으로 수정하여 보더라도 합치하지 않는다

5) 따라서 신오대사와 거란국지의 요양~건주 방위 및 거리 기록은 거란 건주와 발해 건주를 혼동한 사서기자의 오기로서 이 기록은 요양 위치 추적의 근거 자료에서 제외한다
 
 
Total 19,981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공지] 게시물 제목에 성적,욕설등 기재하지 마세요. (11) 가생이 08-20 85787
19468 [기타] [라오스 현지] 몽족 한국인과 동일 조상이라고 이야… (7) 조지아나 02-15 2917
19467 [기타] 동아시아 국가가 추구한 평화 (13) 멍때린법사 02-11 2262
19466 [한국사] 엔닌관련 영상에서 본 신라땅으로 추측하는 9가지 근… (4) Marauder 02-08 1882
19465 [한국사] 엔닌의 구당입법 순례기 영상을 보면서 신라가 대륙… (2) Marauder 02-08 1395
19464 [기타] 동아시아사와 서양사 사이의 이질감 (12) 하이시윤 02-08 1571
19463 [한국사] 일부펌).고구려 평양 위치 변천사 (8) 하이시윤 02-08 1671
19462 [한국사] 고구려 평양의 비정 가능 위치는 현 대릉하 이동 (13) 위구르 02-08 1415
19461 [한국사] 밑에 유튜버 대륙삼국설 가관이군요 ㅋ (74) Marauder 02-07 2043
19460 [기타] 매림역사 문화tv 소개한 홍산 옥기1점_ 수메르 부조상… 조지아나 02-06 1179
19459 [한국사] 中 '한복공정' 국민분노에도···"항의 필요없… (3) 수구리 02-06 1992
19458 [한국사] 묘족 거주 지역_ 옛 대륙신라의 위치,고구려 유민 공… (23) 조지아나 02-06 1913
19457 [한국사] 황하 흐름의 시대별 변화(요동 요서를 나누는 기준은… 수구리 02-03 1289
19456 [기타] [영상 인용]천년전 아랍지도로 밝혀진 대륙신라 (ft.… (12) 조지아나 01-30 2525
19455 [한국사] 중국은 고조선의 제후국이었다는 명백한 기록들 스리랑 01-29 2111
19454 [한국사] 바다 해(海)자는 한편으로는 하(河, 강)의 의미로 사… (4) 수구리 01-27 1462
19453 [한국사] 뉴스)무령왕릉 인근 백제고분서 '중국 건업인 제… (22) 하이시윤 01-27 2519
19452 [한국사] 산해경(山海經)에 나타난 조선 위치 비정 (6) 수구리 01-27 1766
19451 [기타] 수구리님의 누선 주장에 대하여 (13) 하이시윤 01-26 1026
19450 [한국사] 수구리님의 발해가 강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 (14) 하이시윤 01-25 1181
19449 [한국사] 김씨는 흉노가 맞다. (10) 하이시윤 01-25 1718
19448 [한국사] 한국 상고사의 올바른 이해 (1) 스리랑 01-25 967
19447 [한국사] 위만에게 망했다는 기자조선의 실체...[삼국지 위서… (2) 수구리 01-24 1528
19446 [한국사] 러시아 코카서스 지방의 고인돌 무덤 군락 (ft. 바스… (3) 조지아나 01-24 1699
19445 [한국사] 100리가 얼마나 작은지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게 당연… (35) Marauder 01-23 1678
19444 [한국사] 동이족은 우리 역사다 (2) 스리랑 01-20 1601
19443 [기타] 우주 탄생-인류-바이칼..고조선과 부여.. (2) 도다리 01-19 1565
19442 [한국사] 위만조선은 영토가 1백리 정도인 짝퉁 고조선이다 (18) 수구리 01-19 1761
 <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