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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4-09 21:36
[한국사] 요양과 건주, 그리고 패주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329  

10세기 거란의 요양(遼陽) 위치 추적
ㅡ 거란국지 4권(과 신오대사 진가인 열전)을 중심으로 ㅡ
#0
이 고찰은 지난 2월 냉형산 추적 당시의 연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처음에는 발해 건주를 간과하여서 '요양동남쪽 1,200 리' 기록을 버리려 했었다.


0. 석진 출황제 석중귀와 그 황후인 이태후는 요 태종 야율덕광이 석진을 멸망시킨 후 석중귀를 부의후에 제수하여 황룡부에 가서 살게 함에 따라 동단국이 발해 각지의 반란에 따라 발해의 옛 터전을 잃고 요주 동평군으로 이치됨에 따라 현 장춘시 서남쪽 사평시 인근에 내려와 있던 것으로 판단되는 용주(요 태종이 설치, 연파의 반란 이후 폐지 됐다가 성종이 1020 년 장춘시 북쪽에 다시 설치함)로 옮겨 감

會同十一年。晉開運四年。是歲晉亡。
晉侯自幽州十餘里,過平州,沿途無供給,飢不得食,遣宮女、從官採木實、野蔬而食。又行七八日,至錦州,衛兵迫拜太祖畫像,不勝屈辱而呼曰:「薛超悞我,不令我死。」馮後求毒藥,欲與晉侯俱自死,不果。又行五六日,過海北州,至東丹王墓,遣延煦拜之。又行十餘日,渡遼水,至渤海國鐵州。又行七八日,過南海府,遂至黃龍府。<거란국지>

1. 야율아보기의 황후이자 요 태종의 어머니이자 요 세종의 할머니인 술율태후가 진후(석중귀)와 태후(이태후)를 모두 황룡부(용주) 서북쪽 1,500 리에 있는 회밀주(회주, 현 파림좌기 서남쪽 인근)로 옮겨 살게 함에 따라 그곳으로 가기 위해 요양을 지나서 200 리 쯤 가다가 술율태후가 요 세종에게 (조주, 현 파림좌기 서남쪽 인근) 위폐되자(갇히자) 다시 요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요 세종이 이들을 요양에서) 먹고 살게 함

先是,述律太后徙晉侯並後於懷密州,去黃龍府西北一千五百里。行過遼陽二百里,而述律太后為帝所囚,晉侯與後複得還於遼陽,稍有供給。<거란국지>

2. 영강왕(요 세종)이 석중귀와 이태후의 아들인 연후를 데리고 형(현 장가가시 동쪽, 난하, 조하, 백하의 발원지 일대)으로 납량피서를 갔다가 돌아오자 이 태후가 패주까지 마중을 나감. 태후가 영강왕에게 농사 짓고 목축할 땅을 주십사 간청하자 영강왕이 건주 한(아)성 옆의 땅을 떼어줌(건주에 살게 허락함). 태후와 영강왕, 연후가 (패주로부터) 10여 일 걸려 요양에 도착함

陘,北地,尤高涼,北人常以五月上陘避暑,八月下陘。至八月,帝下陘。太后自馳至霸州謁帝,求於漢兒城側賜地種牧以為生,許之。帝以太后自從,行十餘日,遣與延煦俱還遼陽。<거란국지>

3. 요양에서 동남쪽으로 1,200 리에 건주가 있는데 건주절도사 조연휘가 (건주에) 쉴 곳을 마련해주고 건주 수십 리 바깥에 이들이 먹고 살 수 있게 50여 경(1경=약 60만 평, 50여 경=약 3백만 평)의 땅을 얻어 이들에게 줌

己酉天祿二年。北漢乾佑二年。春二月,徙晉侯、太后於建州。中途安太妃卒,遺令晉侯:「焚骨為灰,南向揚之,庶幾遺魂得反中國也。」自遼陽東南行千二百里至建州[七],節度使趙延暉避正寢以館之。去建州數十里外,得地五十餘頃,侯遣從者耕以給食。頃之,太宗之子述律王遣騎取晉侯寵姬趙氏、聶氏而去。<거란국지>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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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9-04-09 22:01
 
#1
동경 직속현 요양현은 요사 지리지 동경도에서 기술하길 본래 패수현이라 하였다. (遼陽縣。本渤海國金德縣也。漢壩水縣,高麗改為勾麗縣,渤海為常樂縣。戶一千五百。)

#2
양(陽)은 강 북쪽 연안의 바른 자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양은 한수(한강)의 북쪽 연안 바른 자리, 낙양은 낙수(낙하)의 북쪽 연안 바른 자리에서 비롯하여 이름한 것이다.

#3
요사에서 요수는 현 서요하~요하이고, 무경총요에서의 요수는 현 요하와 현 대릉하(하류) 2곳을 가리킨다. 그런데 현 요양은 요수의 북쪽 자리가 아니라 태자하의 북쪽 연안 자리이다.

#4
이 시기의 건주는 현 조양시 남부에 해당한다. 요사 지리지 중경도에서는 이태후에게 떼어주어 살게 한 땅이 건주 남쪽 40 리라 적고 있다(建州, 保靜軍, 上, 節度. 唐武徳中, 置昌黎縣. 太祖完葺故壘, 置州. 漢乾祐元年, 故石晉太后詣世宗, 求於漢城側耕墾自贍. 許於建州南四十里給地五十頃, 營構房室, 創立宗廟. 州在靈河之南, 屢遭水害, 聖宗遷於河北唐崇州故城. 初屬武寧軍, 隸永興宫, 後屬敦睦宫. )

#5
즉 거란국지의 요양 동남쪽 1,200 리에 있다고 기술(自遼陽東南行千二百里至建州)한 건주는 거란의 건주가 아니라 발해의 건주로 발해의 건주는 발해 상경용천부 남쪽에 있었으며 지금의 요원시와 통화시 사이의 땅에 해당한다. 누루하치의 건주여진의 연원이 바로 발해 건주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 지역은 발해 멸망 후에도 계속 건주로 불렸다.

#6
거란국지에서 '요양 동남쪽으로 건주까지 1,200 리' 기술에 주석을 달았는데 본래는 천(1,000)이 아니라 정(걸리다)이라 적혀 있었는데 신오대사와 비교하여 신오대사에 천이라 적혀 있어서 천으로 고쳤다고 적고 있다([七]自遼陽東南行千二百里至建州 「千」原作「程」,據新五代史卷十七晉家人傳高祖皇后李氏傳改。)

#7
석중귀와 이태후 무리가 땅을 얻어 옮겨 가서 산 곳은 현 조양시 남부에 해당하는 거란 건주이므로 '요양 동남쪽 건주' 기술은 명백히 오기이다. 또한 '1,200 리' 역시 성립할 수 없다.

#8
따라서 「千」原作「程」에서 程이 옳으며, 만약 건주가 요양 동남쪽에 있어야 하면 명백히 거란 건주는 현 조양시 남부이므로 요양이 조양시 서북쪽에 있었어야 한다. 그런데 이는 말이 안 된다.

#9
따라서
10 세기 석중귀와 이태후 기사에 등장하는 요양과 건주의 거리는 200 리, 요양은 건주 동남쪽에 있거나, 또는 건주가 요양 서남쪽에 있었다고 보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10
거란 패주(霸州)는 현 조양시에 있었는데 후에 흥중부로 개편되었다. 건주와 요양의 거리가 200 리가 맞다면 건주 인근인 패주에서 요양까지 10여 일 걸려 도착한 기술과 불치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11
그러나 석중귀가 애초 황룡부로 가던 여정과 비교하면 현 금주에서 현 북진시에 이르는 경로를 5~6일에 걸쳐 이동한 사례도 있고 이들 요 세종과 연후, 이태후 등이 패주에서 요양까지 군사행동을 하듯이 쾌속 이동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감방친구 19-04-11 01:13
 
#12
그런데 건주의 위치에 대하여 사서 기록을 토대로 엄밀히 따져 보자면 무경총요와 요사 지리지 중경도 기록을 교차해 파악할 수 있다

#13
우선 요사를 보면 본래 령하(현 대릉하) 남쪽에 있었는데 수해가 잦자 거란 성종 때에 주를 강 북쪽으로 이치시켰다고 적고 있다(州在靈河之南, 屢遭水害, 聖宗遷於河北唐崇州故城. )

#14
무경총요에서는 건주의 위치에 대해서 현 조양시 조양현에 있었던 패주(흥중부)를 기준으로
ㅡ 건주에서 동북쪽 90 리에 패주(東北至霸州九十里)
ㅡ 패주에서 서남쪽 60 리에 건주(西南至建州六十里)
라 적고 있다

#15
거란 건주에 대해서 중문 위키는 이렇게 적고 있다
"辽太祖设立建州保静军节度使,治所在永霸县(今辽宁省朝阳縣木头城子鎮)。后来迁移到今朝阳市大平房镇。"

木头城子鎮
Mutouchengzizhen
중국 랴오닝 성 차오양 시 차오양 현 邮政编码: 122625
https://maps.app.goo.gl/iDpGw

大平房镇
Dapingfangzhen
중국 랴오닝 성 차오양 시 룽청 구
https://maps.app.goo.gl/9HPvE

목두성자진 위치에서 대평방진 위치로 주 치소를 옮겼다는 말이다

대평방진과 조양현의 거리는 구글지도 상에서 29km, 41km 등으로 무경총요의 60리, 90 리와 거의 일치한다

#16
따라서
신오대사와 거란국지의 건주와 요양의 거리 1,200 리, 또는 200 리 기록은 다음의 이유로 사용할 수 없다

1) 요양 동남쪽에 있는 것은 발해 건주이다
2) 거란 건주는 현 조양시 조양현과 건평현 사이에 있었다
3) 석중귀와 이태후가 할양 받아 말년에 머물다 죽은 건주는 거란 중경도 건주이다
3) 현 요양시가 동경  요양이라는 전제 하에 무경총요에서 기술하길 동경에서 중경까지 1,130 리, 패주(조양현)까지 750 리이다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79581&sca=&sfl=mb_id%2C1&stx=cellmate

4) 즉 신오대사와 거란국지의 요양~건주 거리 방위를 서남으로 수정하여 보더라도 합치하지 않는다

5) 따라서 신오대사와 거란국지의 요양~건주 방위 및 거리 기록은 거란 건주와 발해 건주를 혼동한 사서기자의 오기로서 이 기록은 요양 위치 추적의 근거 자료에서 제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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