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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4-05 00:36
[한국사] “중국 요동(遼東)의 인구 30%가 조선인이었다”
 글쓴이 : 막걸리한잔
조회 : 2,689  

조선초 만주 상황...
심양에서 압록강까진 조선인들이 살았다...
http://m.dongpo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4023

<표해록(漂海錄)>은 조선 성종때 추쇄경사관(도망한 노비를 잡아들이는 관직)으로 제주에 간 최부(崔溥, 1454~1504) 선생이 부친 상을 당해 배를 타고 육지로 나오다 표류한 기록을 담은 글이다.

최부선생은 보름 남짓 바다위를 떠돌다가 지금의 절강성 태주(台州) 인근에 닿아 소흥과 항주, 소주, 북경, 산해관을 거쳐 압록강을 넘어 조선으로 귀환했다.

전 행정을 일기체로 적은 이글은 중국 고전에 능한 조선 지식인이 중국 관리들과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당시의 문물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중국에서도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특히 바다를 방어하는 제도와 표류자 신문 절차와 방식, 왜구에 대한 인식, 당시 중국의 역마제도와 운하제도, 이방인의 눈에 비친 중국 남북방의 생활상과 문화의 차이, 남방에 있는 중국 관리들의 조선에 대한 지식과 관심 등이 적혀 있어 당시의 사회상을 들여다보는 좋은 창문의 역할을 한다.

이 책은 한번 잡으면 놓기 어려울 정도로 흥미진진한데, 후기에 해당하는 견문잡록에는 이런 내용도 나온다.

“해주(海州)ㆍ요동(遼東) 등지에는 중국 사람, 우리나라 사람, 여진 사람이 고루 섞여 있다. 석문령(石門嶺)에서 남쪽으로 압록강까지는 모두 우리나라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므로, 관과 의복, 말씨와 여자의 수식이 거의 우리와 같다”

해주는 지금의 랴오닝(遼寧)성 해성(海城)시로 영구(營口)와 안산(鞍山) 사이에 있고, 요동은 현재의 요양(遼陽)을 얘기한다. 석문령은 심양(沈陽) 인근의 무순(撫順)에 있다.

즉 압록강에서 심양 인근까지는 조선 사람들이 이주해 살고 있고, 심양을 지나 서쪽으로도 중국, 조선, 여진 사람이 섞여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1487년의 기록이다. 지금부터 500년 전 조선 지식인이 눈으로 보고 적은 글이다.

이 책에는 최부선생이 요양에서 계면(戒勉)이란 현지 승려를 만나 그와 나눈 얘기도 기록하고 있으며, 그는 우리말이 능했다고 적고 있다.

“소승은 본디 조선사람인데, 소승의 조부가 도망해 이곳에 온 지 벌써 3대째가 되었습니다. 이 지방은 위치가 본국(本國 조선)의 경계에 가까운 까닭으로 본국 사람이 와서 거주하는 자가 매우 많습니다. 중국 사람은 겁이 많고 용맹이 없으므로, 도적을 만나도 모두 창을 던지고 도망해 숨어 버립니다. 또 활을 잘 쏘는 사람도 없으므로, 반드시 본국 사람 가운데 귀화한 사람을 뽑아서 정예병으로 선봉을 삼으니, 우리 본국의 한 사람이 중국 사람 10명, 100명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현지의 조선인들은 중국에 귀화해서 일당백의 병사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당시 요동지역에 ‘이민’ 온 조선인들의 모습을 승려는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 고구려의 끼친 풍속이 아직도 없어지지 않아서, 고려사당(高麗祠)을 세워 근본으로 삼고, 공경하여 제사 지내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니, 근본을 잊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는 날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여우는 죽을 때 살던 굴로 머리를 돌린다(鳥飛返故鄕 狐死必首丘)’는 옛말처럼 우리도 본국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본국에서 도리어 우리들을 중국 사람으로 인정해 중국으로 돌려보낸다면, 우리들은 외국으로 도망한 죄를 받아서 몸뚱이와 머리가 따로 있게 될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가고 싶지만, 발은 머뭇거릴 뿐입니다”

이렇게 보면 명나라때 이미 요동지역으로 수많은 이민이 이뤄졌으며, 이들은 조선으로 건너가고 싶어도 본국에서 다시 요동으로 환송될 것을 두려워해 가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비슷한 기록이 보인다. 세조 14년(1468년)에는 “건주위(여진) 땅에 포로 또는 도망한 한족과 조선인들이 조선과 명나라의 국경 사이에 집을 짓고 땅을 개간하고 있다”며, “동녕위(東寧衛, 현재의 요양시 태자하)의 고려인은 명나라 홍무제(1368~1398) 때는 3만명, 영락제(1403~1424년) 때는 4만여 명이었다. 요동인구 중 고려인이 30%를 차지하며 서쪽은 요양, 동쪽은 개주, 남은 해주에 집중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세조실록의 “요동인구 30%가 고려인이었다”는 기록은 최부선생의 관찰과 아귀가 맞는다. 

이후에도 조선에서 요동으로의 ‘이주’는 끊이지 않았다. 나중에 청나라가 된 후금과 명나라가 싸울 때 명의 요청으로 출병한 강홍립이 이끄는 1만3천명의 조선군은 청에 항복한 후 귀환되지 못했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면서 청은 두차례에 걸쳐 조선을 공격해 척화파 대신과 그 가속들 및 수만 명의 포로를 데리고 요동으로 돌아갔으며, 조선에서 1만 2천500여 명을 청군으로 징병하기도 했다.

‘심양장계(沈陽狀啓)’라는 중국 문헌에는 “만주 8기 중 고려백성 42개 성씨가 있었는데 선조는 모두 조선의 역주, 평양 등지의 사람으로 청나라초기에 포로가 된 이들”이라고 했다.

요동에 있던 이들 ‘본국인’(조선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날이 새고 해가 지면서 본국의 옷을 벗고 본국의 말을 잊으면서 요녕성의 중국인으로 바뀐 것은 아닐까.

우리 말과 우리 옷의 중요성이 새삼 느껴지는 대목이다.

김영완 dongponews@hanmail.net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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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한잔 19-04-05 00:38
 
임진왜란때 요동총병과 부총병은 조선인출신이었다..
실록의 기록....

총병이 말하기를,

“앞서 많은 후사(厚賜)를 받았는데 나는 조선과는 한 집안 사람입니다.【요동(遼東)은 옛 고구려(高句麗)의 땅으로 동령위(東令衛)의 사람들은 우리 나라를 가리켜 본향(本鄕)이라고 했다.】 중국 조정의 문무 관원들이 이곳에 많이 나와 있어 용도가 매우 많으니 두루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받으려면 선뜻 받지 어찌 근교(勤敎)를 기다리겠습니까.”

- 선조실록 103권 31년 8월 9일
막걸리한잔 19-04-05 00:52
 
고려말 심양왕을 고려 왕족이 통치했다는건 요동이 고려인들로 채워졌다는걸 알수 있고..
그들이 점차 언어를 잃어버리는 과정입니다..

연산군 8년 4월 30(신미)일 
영의정 한치영 등이 변방 문제에 관하여 의논드리다

영의정 한치형(韓致亨), 좌의정 성준(成俊), 우의정 이극균(李克均), 병조 판서 이극돈(李克墩), 좌참찬 신준(申浚), 우참찬 윤효손(尹孝孫), 이조 판서 강귀손(姜龜孫) 등이 의논드리기를, 
“중국 관리와 호송군(護送軍)을 의순관(義順館)에서 접대할 때에 비록 의주(義州) 관리들이 사단(事端)을 낸 것이 부당했으나 중지할 수 없으니, 우선 해조(該曹)에서 대접할 준비를 조치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요동(遼東) 등지는 원래 고구려(高句麗)의 땅이었으므로 압록강에서 요하(瞭河)까지 거주하는 사람이 모두 우리 나라 사람입니다.
감방친구 19-04-05 00:54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은 수차례 접했을 기사요 내용이지만 오직 국까매국노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

왜? 저들은 진실에 관심이 없으니까

서쪽은 요동(요양), 동쪽은 개주, 남쪽은 해주
ㅡ 현 태자하와 잉커우로 빠지는 대요하를 기준으로 방위를 삼고 있군요
ㅡ 이 물줄기 기준으로 그 바깥은 서쪽, 그 안쪽은 동쪽 하는 식

석문령(무순)으로부터 (현) 압록강까지는 조선인들
ㅡ 이 라인이 옛부터 주요한 침략로
ㅡ 거란도 이 길을 따라 서경과 개경까지 들어왔다
ㅡ 무순은 거란의 귀덕주인데 이 귀덕주는 본래의 귀덕주 위치인 범하ㅡ청하ㅡ동요하 최상류 지역과 그 동쪽 바깥인 소위 강동 6주 지역에서 이치된 것
ㅡ 본인이 이미 고찰해 보인 바 있지만 강동6주의 주명과 동경도 소속의 주명은 그대로 일치
감방친구 19-04-05 01:01
 
요는 두 가지

1) 늦어도 고려시대부터 계속하여 그 지역에 우리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조선초에도 계속 이주하였으며 비록 중국에 적을 두고 사는 신세가 되었지만 본향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살아 있었고 저들 스스로 고구려 계승의지까지 신앙화해 품고 있었다 그러나 병자호란 이후 조선후기에 타의에 의해 이주해 간 조선인들은 오늘날의 조선족처럼 대국의 적을 유세의 근거로 삼아 뻐득였다

2) 대명일통지의 "봉집현을 기준으로 동서 500 리는 고려와의 접계이다" 하는 기술은 이들 기록과도 교차가 돼 실상을 알려준다 하겠다
비좀와라 19-04-05 04:40
 
고려 때 행정구역이 5도 양계 입니다.

5도가 직할령으로 고려왕이 통치하는 것이고 양계는 일종의 군벌이 통치하는 것으로 5도만을 말할땐 고려왕이고 양계를 포함해서 말할 땐 고려황제 이렇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양계를 지금의 평안북도와 함경도라 배웠는데 과연 기록은 어떠하냐는 것 입니다.

이 양계의 구역을 정의하지 않고 아무리 요동과 요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다람쥐 헛 바퀴 도는 것과 같거든요.

당연히 요동과 요서는 이 양계지역 이어서 고려영토 맞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려왕이 통치하는 곳이 아니라 고려황제가 통치하는 곳이란 말이죠.

이 양계지역은 일종의 둔전병과 같은 지방군을 두고 다스리는데 이 지역 책임자가 세습무관으로 만호라 칭해지는 장군들이 통치하였거든요.

이 세습무관들에 주어지는 부역이 심해지고 직할령의 문벌귀족들은 이들을 지방민이라 무시하면서 일어난 반란이 무신의 난 이고요.

고려는 문벌귀족들 때문에 망했고 근세조선은 문벌귀족 행세하는 사이비 집단 때문에 역시 망했으며 지금 한국도 이 문벌귀족의 망령이 되 살아나서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고려때 무신들이 혁명을 일으켜서 문신들을 죽였듯이 지금도 안 그럴꺼라고 장담을 할 수 있나요? 역사는 그 일에 대한 정확한 반성과 자기검증이 없으면 다시 되풀이 되지 않나요?

일단 5도는 주 군 현의 체제 이지만 양계는 읍 면 동의 체제로 운영 되는데 만주지역과 몽골지역의 행정명이 읍 면 동 입니다. 우리의 행정체계에서 지방은 읍 면 동이죠? 만주와 몽골의 행정체계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 입니다.

특히 이성계의 본향이라는 곳이 선비족의 발원지와 같거나 근교지역으로 함경도가 될 수가 없어요. 이성계집안은 만호 집안으로 일종의 자치집단의 수장인데 누구의 지배를 받느냐가 중요 하단 말입니다.

똑 같이 일본의 수장이 쇼군(장군)인데 이 쇼군은 과연 누구로 자치권을 부여받은 것이란 말입니다. 일본왕? 막부시대에 일본왕이 존재하기는 했나요? 돗자리 장사로 연명하던 존재가 일본왕족이란 사람들인데 ㅋㅋㅋ

결국 일본의 쇼군도 조선왕의 지배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에도 막부가 조선의 통신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저는 보고든요.

이걸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일본왕을 정면으로 내세우고 막부를 없애버리는데 이는 조선의 통치를 거부하고 일본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일본왕이 없으면 조선과 대등한 관계를 수립 할 수 없거든요.
브로리 19-04-05 14:54
 
좋은 내용입니다.
혹시 사료 원문 기록이 있으시면 함께 공유해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심심하기도 하고 저의 중국인 친구들에게 보여주고싶어서요.
Korisent 19-04-05 16:54
 
원본 자료 부탁드립니다.
     
막걸리한잔 19-04-05 21:45
 
기사를 인용한거라 원본자료는 제가 없네요...ㅜㅜ
굳이 원본 자료를 원하시면 번역본을 구입하시는게 좋을듯 싶습니다...
     
브로리 19-04-07 10:26
 
海州、遼東等處,人半是中國,半是我國,半是女眞。石門嶺以南至鴨綠江,都是我國人移住者,其冠裳、語音及女首飾,類與我國同。(漂海录)

晴。有僧戒勉者能通我國語音。謂臣曰。僧系本朝鮮人。僧祖父逃來于此。今已三世矣。此方地近本國界。故本國人來住者甚夥。中國人最怯懦無勇。若遇賊。皆投戈奔竄。且無善射者。必抄本國人向化者。以謂精兵。以爲先鋒。我本國一人。可以當中國人什百矣。此方卽古我高句麗之都。奪屬中國千有餘載。我高句麗流風遺俗。猶有未殄。立高麗祠以爲根本。敬祀不怠。不忘本也。(漂海录)

http://db.itkc.or.kr/itkcdb/mainIndexIframe.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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