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철령
통설에 한반도내의 함경도에 있었다고 하고,
교과서에 그렇게 싣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역사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파고들지 않는 보통사람은 철령은 한반도내의 지명으로 알게된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313024002
명 태조 주원장은 홍무(洪武) 20년(1387) 12월 우왕에게 국서를 보내 이렇게 통보했다.
“철령 북쪽과 동서의 땅은 예부터 (원나라) 개원로(開元路)에 속해 있었으니 (명나라) 요동에서 다스리게 하고, 철령 남쪽은 예부터 고려에 속해 있었으니 본국(고려)에서 다스리라. 서로 국경을 확정해서 침범하지 말라.”(‘명사’ ‘조선열전’)
우왕은 요동정벌군을 북상시키는 한편 재위 14년(1388) 4월 표문을 보내 “철령 땅은 실로 우리 조상 대대로 지켜왔으니 예전처럼 고려 땅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
주원장은 “고려는 예전에 압록강(鴨綠江)을 경계로 삼았는데 지금은 철령이라고 꾸미니 거짓임이 분명하다”면서 불화의 단서를 만들지 말라고 받아쳤다.
주원장은 철령을 개원로(開元路) 소속이라고 말했는데, 개원로는 원나라가 요동지역을 다스리기 위해 설치했던 관청이다. 그 치소(治所·다스리는 관청)를 중국에서는 지금의 길림(吉林)성 장춘(長春)시 북쪽 농안(農安)현으로 보고 있다.
고려는 국경분쟁 지역이 함경도인데 왜 요동으로 군사를 보내려했나.
철령을 지키기위해 명나라와 전면전이라도 일으키려고 한것인가?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주원장의 발언에서 고려는 압록강을 경계로 삼았는데 지금은 철령이라고 하니 거짓이다 라고 했다.
주원장의 이말을 해석하면 압록강까지만 고려땅이고 철령은 고려땅이 아니다 라는것이다.
철령이 지금의 통설처럼 함경도에 있었으면 모순이되는 말이다.
철령이 고려땅이라고 인정하면서 철령은 고려땅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지금의 고려시대때의 영토분쟁이 있었던 철령이 함경도 철령이라고 통설이된게 일제시대때 일본인 학자의 주장이다.
일본인의 주장이라서 안되는게 아니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통치 하던 시대배경에서 나왔기때문에 검증을 해야한다.
2.패수
평양 주변 대동강을 패수라고 위치비정 했다.
패수란 강은 고대사에서 평양이라는 지역을 비정하는 주요 지표다.
위만이 기자조선의 평양을 갈때 패수를 건너서 동쪽으로 갔다고 사서에 나온다.
간단히 말해 기록상 패수는 평양의 서쪽에 있어야한다.
지금의 대동강은 기자조선의 패수가 될수없고,
지금의 평양이 기자, 위만 조선의 평양이 될수가 없다는 말이다.
3.진국
몇년전부터 한반도 남부에 진국이라고 지도를 만들어서 교과서에 실어놨다.
진국이 나오는 사서 기록에는 어떻게 나올까?
사서에는 진국이 기자조선의 동쪽에 있다고 나온다.
대략의 구절이(기자,위만조선에서) 무리를 이끌고 동쪽의 진국으로 갔다라고 적어놨다.
중원의 사서에 진국을 어떻게 적어놨는가.
삼한이 진국이다 / 진한이 진국이다
여기서 삼한이 진국이라는 구절만을 갖고와서 한반도 남부에 고조선과 다른세력 진국을 만들어낸것이다.
고려시대 조선시대 학자는 사서를 읽지못하고 한자를 읽을줄 몰라서 진국을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 주장하지 않은것인가?
한반도 남부의 삼한만을 가지고 위치를 비정하기엔 기록상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다.
고조선 삼한은 어딘가?
한단고기 같은 얘기가 아니라 고구려, 백제 왕족 묘비에 자신을 진한, 진조선 출생이라고 자랑스럽게 적어놨다.
고조선 해체후 남삼한이 생기기 전의 진한은 고구려, 백제의 선조가 살던 부여라고 볼수밖에 없다.
고구려, 백제 지배층이 한반도 남동부 신라와 무슨 인연이 있다고 진한인을 자처했겠는가.
부여가 진한이다라는건 기자조선 동쪽의 진국이라는 사서기록과도 맞아떨어진다.
한반도 남부에 진국을 만들어내서 교육하는건,
일제시대 일본인 학자들도 하지못한 획기적인 식민사학의 발전 성과다.
고조선과 한반도인을 분리할수 있게 된것이다.
지금이 식민지 시대도 아닌데,
식민사학이 계승만 되는것이 아니라 발전하며 민족성을 파괴하고 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