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탑상」을 보면, 선덕왕이 주변의 이민족에게 신령의 힘으로 항복을 받는다는 취지로 황룡사에 구층탑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때 제1층은 일본, 제2층은 중국, 제3층은 오월(
吳越), 제4층은 탁라(
托羅 ; 탐라), 제5층은 응유(
鷹遊)
, 제6층은 말갈, 제7층은 단국(
丹國 ; 거란), 제8층은 여적(
女狄 ; 여진), 제9층은 예맥(
穢貊)이라 하였다. 탑의 각 층이 주변 이민족을 상징하도록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탑의 층수 - 우주 원리에 응하는 길상의 수 (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2000. 5. 01.)
이탑의 각층의 의미를 하늘과 가까운 위부터 나열하면
--가장위가 예맥이다.
즉, 신라는 그들이 예맥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늘과 가장가까운 다른 세력의 가장위에 자리잡게 하는것은 당연히 신라인일것.
--그리고 그 다음이 여적(여진)이다.
이들을 신라인 다음으로 한것은 이들이 신라인의 기원이된 고조선 진한, 만주쪽 동향사람 이기 때문일것이다.
일단 그시대에 여진이라는 부족은 없었다.
여기서 여진이란 진한 잔존세력이지만 고구려 같은 세력에 속하지 않은 작은 무리를 말하는것이 아닐까.
--다음이 거란이다.
거란은 고조선계 이긴 하지만,(8조범금 등등)
지리적이나 문화적으로 가까웠을 고구려나 백제보다 위에 놓은건 당시 신라의 상황을 반영한것이다.
고구려, 백제는 가까이서 영토를 뺏고뺏기는 적이고, 거란은 멀리있어서 위협이 되지않는 세력이다.
--다음이 말갈이다.
말갈은 고구려를 말한다.
지리적으로 떨어져있던 거란이나 여진은 신라에게 위협이 되지않지만 대국이고 국경을 맡대고있던 고구려 말갈은 신라에게 위협이 된것이 당연.
--다음이 응유 백제다.
마한왕이 있을때부터 신라는 마한과 삐딱선을 타고있었고,
백제가 마한을 차지하고 나서는 백제와 신라는 무력충돌을 했었다.
지금의 남북한 상황 같은것.
신라에게는 같은 고조선계중 가장 적대적이었던 세력.
--다음이 탐라(제주)다.
탐라는 신라의 속국이었다가 백제의 속국이었다가 했던 작은 세력이다.
지금의 제주도이고 그리 위협적이지 않고 당시의 불편한 해상교통으로는 누가차지하든 그리 힘을쓸수있는 세력은 아니었을것이다.
--다음이 오월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수수께끼같은 세력이다.
<당(唐)의 광화(光化) 3년이자 신라(新羅) 효공왕(孝恭王) 4년(서기 900년)이다. 사신(使臣)을 보내 오월(吳越)에 조회(朝會)하였다. 오월왕(吳越王)이 보빙(報聘)하고 이내 검교태보(檢校太保)를 더하고 나머지는 옛과 같이 하였다.
唐光化三年 新羅孝恭王四年也 遣使朝吳越 吳越王報聘 仍加檢校太保 餘如故>
<정명(貞明) 4년(서기 918년) 무인(戊寅 )....... 가을 8월 ...... 사신(使臣)을 보내 오월(吳越)에 들여보내 말을 진상(進上)하니 오월왕(吳越王)이 보빙(報聘)하고 더해 중대부(中大夫)를 제수하고 나머지는 옛과 같이 하였다.
貞明四年戊寅 ....... 秋八月 ...... 遣使入吳越進馬 吳越王報聘 加授中大夫 餘如故>
이 두 기사 외에 천성(天成) 2년과 차3년 즉 927년과 928년에 견훤과 왕건간의 서신에도 오월왕의 양국분쟁에 대한 중재의 기사가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