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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22 17:24
[한국사] 거란 동경의 이치(移置) 관련 사서 원문과 해석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127  

1. 요사(遼史) 기록



《遼史 卷二本紀第二 太祖下》


(神冊四年 919년) 二月丙寅,修遼陽故城,以漢民、渤海戶實之,改為東平郡,置防禦使。


신책 4년, 919년 2월(음력, 이하 ‘음력’ 생략) 병인일, 요양의 옛성을 수리하여 동평군으로 삼고 쭝궈린과 발해인으로 민호를 채우고 방어사를 설치했다.


《遼史 卷二本紀第二 太祖下》


(天贊三年 924년)夏五月丙午,以惕隱迭里為南院夷離堇。是月,徙薊州民實遼州地。渤海殺其刺史張秀實而掠其民。


천찬 3년, 924년 여름 5월ㅡ생략ㅡ, 이 달에 계주 백성들을 이주시켜 요주의 민호를 채웠다. 발해가 그(요주) 자사 장수실을 죽이고 그 백성들을 빼앗았다.


《遼史 卷三本紀第三 太宗上》


天顯元年七月,太祖崩,皇后攝軍國事。


천현 원년, 926년 7월, 태조(야율아보기)가 죽고 황후가 군사와 국가의 일을 섭정하였다.


(天顯三年) 十二月癸卯,祭天地。庚戌,聞唐主復遣使平聘,上問左右,皆曰:「唐數遣使來,實畏威也。未可輕舉,觀釁而動可也。」上然之。甲寅,次杏堝,唐使至,遂班師。時人皇王在皇都,詔遣耶律羽之遷東丹民以實東平。其民或亡入新羅、女直,因詔困乏不能遷者,許上國富民給贍而隸屬之。升東平郡為南京。


(天顯三年 928년) 12월ㅡ생략ㅡ인황왕(야율아보기의 장자, 동단국왕)이 황도(상경)에 있을 때에 야율우를 보내어 동단국 백성들을 옮겨 동평(요주 동평군)의 민호로 채우는 것을 보고하였다. 그 백성(동단국)들이 혹은 신라(고려)로, 혹은 여진으로 유입됨(도망감)에 그것을 옮기는 데에 역부족이 되었으므로 상국(요나라)의 허락을 받아서 종속됨으로써 백성을 보존하였다(의역). 동평군을 승격시켜 남경으로 삼았다.


《遼史 卷四十八志第十七下 百官志四 南面京官》


聖宗統和十二年命室功為中京留守,治大定府。南京留守司。太宗天顯三年升東平郡為南京,治遼陽。十三年以幽州為南京,治析津。聖宗開泰元年改幽都府為析津府。


태종 천현 3년(928년), 동평군을 승격시켜 남경으로 삼고 요양에서 다스렸다. 천현 13년(938년)에 유주를 남경으로 삼고 석진에서 다스렸다. 성종 개태 원년에 유주도독부를 고쳐 석진부로 삼았다.


《遼史 卷三十六志第六 兵衛志下五京鄉下》


遼建五京:臨演,契丹故壤;遼陽,漢之遼東,為渤海故國;中京,漢遼西地,自唐以來契丹有之。三京丁籍可紀者二十二萬六千一百,蕃漢轉戶為多。析津、大同,故漢地,籍丁八十萬六千七百。契丹本戶多隸宮帳、部族,其餘蕃漢戶丁分隸者,皆丁與焉。


요나라는 5경을 세웠다. 임연(임황), 거란의 옛땅(본 거주지, 출자한 곳)이다. 요양, 전한의 요동(에 속했던 곳)으로 발해의 옛땅이다. 중경, 전한의 요서에 속했던 곳으로 당나라 때부터 거란이 소유해왔다.


東京,本渤海,以其地建南京遼陽府。統縣六,轄軍、府、州、城二十六,有丁四萬一千四百。天顯十三年,太宗改為東京。


동경은 본래 발해(에 속했던 땅)인데 (거란이) 그 땅에 남경요양부를 세웠다. ㅡ 생략 ㅡ 천현 13년(938년)에 태종이 (그 이름을) 동경으로 고쳤다.


《遼史 卷四十六志第十六 百官志二 北面部族官》


北女直兵馬司。在東京遼州置。

북여진병마사. 동경도 요주에 설치했다.


《遼史 卷四十八志第十七下 百官志四 南面京官》


遼州始平軍節度使司。

요주, 시평군 절도사사를 두었다.


《遼史 卷三十七志第七 地理志一 上京道》


橫州。國舅蕭克忠建。部下牧人居漢故遼陽縣地,因置州城。在遼州西北九十里,西北至上京七百二十里。有橫山。戶二百。


횡주(横州), 국구(國舅)인 소극충(蕭克忠)이 건설하였다. 부(部) 아래에 방목하는 사람들이 한국(漢)의 옛 요양현의 땅에 살았으므로 주와 성을 설치하였다. 요주(遼州) 서북 90리에 있고 서북쪽으로 상경까지 720리이다. 횡산(横山)이 있다. 가구수는 200이다.


閭州。羅吉王牧地,近醫巫閭山。在遼州西一百三十里,西北至上京九百五十里。戶一千。


여주(閭州), 라고왕(羅古王)이 방목하던 땅이고 의무려산과 가깝다. 요주(遼州) 서쪽 130리에 있고 서북쪽으로 상경까지 950리이다. 가구수는 1000이다.


順州。本遼隊縣地。橫帳南王府俘掠燕、薊、順州之民,建城居之。在顯州東北一百二十里,西北至上京九百里。戶一千。


순주(順州), 본래 요대현(遼隊縣)의 땅이다. 횡장(横帳) 남왕부(南王府)가 연(燕)과 계(薊), 순주(順州)의 백성들을 사로잡아 성을 건설하고 살게하였다. 현주(顯州) 동북쪽 120리에 있고 서북쪽으로 상경까지 900리이다. 가구수는 1000이다.


《遼史 卷三十八志第八 地理志二 東京道 : 동경요양부의 연혁과 직속 주현을 설명하는 대목》


神冊四年(919년),葺遼陽故城,以渤海、漢戶建東平郡,為防禦州。天顯三年(928년),遷東丹國民居之,升為南京。


신책(神冊) 4년(919) 요양(遼陽)의 옛 성을 수리하고, 발해와 지나인으로 동평군(東平郡)을 만들어 방어주(防禦州)로 삼았다. 천현(天顯) 3년(928) 동단국 사람을 옮겨 거처하게 하고 남경(南京)으로 승격시켰다.


天顯十三年(938년),改南京為東京,府曰遼陽。


천현 13년(938)에 남경을 동경(東京)으로 고쳤는데, 부(府)는 요양이라고 하였다.


又有明王山、白石山亦曰橫山。


(동경요양부 관할지에) 또 명왕산(明王山), 백석산(白石山)이 있다. 백석산은 횡산(橫山)이라고도 한다.


遼陽縣。本渤海國金德縣也。漢壩水縣,高麗改為勾麗縣,渤海為常樂縣。戶一千五百。


요양현(遼陽縣, 동경 직속현) 본래 발해의 금덕현(金德縣)이다. 한나라 때 패수현(浿水縣)이었는데, 고구려가 구려현(句麗縣)으로 고쳤다. 발해 때는 상락현(常樂縣)이었다. 호구 수는 1,500호이다.


紫蒙縣。本漢鏤芳縣地。後拂涅國置東平府,領蒙州紫蒙縣。後徙遼城,並入黃嶺縣。渤海後為紫蒙縣。戶一千。


자몽현(紫蒙縣, 동경 직속현) 본래 한나라 누방현(鏤芳縣)인데, 나중에 불녈국(拂涅國)이 동평부(東平府)를 설치하고 자몽현(紫蒙縣)을 관할하였다. 나중에 요성(遼城)으로 옮겨 황령현(黃嶺縣)에 편입하였다. 발해 때는 다시 자몽현이었다. 호구 수는 1,000호이다.


《遼史 卷三十八志第八 地理志二 東京道》


遼州,始平軍,下,節度。本拂涅國城,渤海為東平府。

唐太宗親征高麗,李世勑拔遼城;高宗詔程振、蘇定方討高麗,至新城,大破之;皆此地也。太祖伐渤海,先破東平府,遷民實之。故東平府都督伊、蒙、陀、黑、北五州,共領縣十八,皆廢。太祖改為州,軍日東平,太宗更為始平軍。有遼河、羊腸河、錐子河、蛇山、狼山、黑山、巾子山。隸長寧宮,兵事屬北女直兵司馬。統州一、縣二


요주(遼州) 시평군(始平軍)이 설치되었고 하급으로 절도를 두었다. 본래 불녈국(拂涅國)의 성으로 발해 때는 동평부(東平府)이었다.


당나라 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할 때 이세적(李世勣)이 요동성을 함락시켰고, 고종(高宗)이 조서를 내려 정진(程振)과 소정방(蘇定方)이 고구려를 정벌할 때 신성(新城)에 이르러 대파한 곳이 모두 이곳이다.


태조가 발해를 정벌할 때 먼저 동평부를 격파하고 백성을 옮겨 채웠다. 발해에 속했을 때의 동평부는 이주(伊州)•몽주(蒙州)•타주(陀州)•흑주(黑州)•북주(北州, 비주比)의 5주를 관할하고, 모두 18현을 관할하였는데 (거란이 차지한 후) 모두 폐지되었다.


태조가 주로 고치고 군을 동평(東平)으로 하였는데, 태종이 다시 시평군(始平軍)으로 고쳤다.


요하, 양장하(羊腸河), 추자하(錐子河), 사산(蛇山), 낭산(狼山), 흑산(黑山), 건자산(巾子山) 등이 있다. 장녕궁(長寧宮)에 예속시켰으며, 군사와 관련된 일은 북여진병마사(北女直兵馬司, 요주에 설치되어 있음)에 소속시켰다. 1주 2현을 관할하였다.


속현과 속주 : 요빈현(遼濱縣), 안정현(安定縣), 기주(祺州) 경운현(慶雲縣)




2. 무경총요(武經總要) 기록



北白川州,遼州遼隧縣故地,宋天禧中契丹建為州,仍曰始平軍。東至乾州百二十里,西北至宜州四十里,南至海二百里,北至中京五百五十里,北至醫巫閭山八十里。


북백천주, 요주 요대현(요수현)의 옛땅으로 송 천희 년간(1017~1021년)에 주를 만들고 시평군이라 하였다. 동쪽으로 건주까지 120 리, 서북쪽으로 의주까지 40 리, 남쪽으로 바다까지 200 리, 북쪽으로 중경까지 550 리, 북쪽으로 의무려산까지 80 리이다.


東京,遼東安市城也。城之東即大遼河,城之西即小遼河。秦屬遼東郡,漢屬幽州,唐太宗平高麗,因名所幸山為駐蹕山,山在東北。後為渤海國,契丹建為遼州,得其地為東京。巖州在其東,即李所平白巖州也。


동경, 요동 안시성이다. 성의 동쪽은 곧 대요하이며, 성의 서쪽은 곧 소요하이다. 진나라 때에는 요동군에 속했고 한나라에서는 유주에 속했으며 당 태종이 고구려를 평정하며 다녀간 산에 머물렀으므로 이로 인해 주필산이라 이름한 산이 (동경의) 동북쪽에 있다. 훗날 발해국(의 땅)이 되었고, 거란이 요주로 삼았다가 그 땅(요주)을 얻어서 동경으로 삼았다. 암주가 그 동쪽에 있는데, 즉 이세적이 (백암성을) 평정한 백암주이다.


東京四面諸州沈州,德光所建,仍曰昭德軍,契丹舊地也。東至大遼水,水東即女真界,西南至東京百三十里,北至雙州八十里。


심주, 야율덕광(거란 태종, 902~947)이 소덕군을 두었는데 거란의 옛땅이다. 동쪽으로 대요수가 있는데 대요수 동쪽은 여진계이며, (심주에서) 서남쪽으로 동경까지 130 리, 북쪽으로 쌍주까지 80 리이다.


雙州,契丹號保安軍,有通吳軍營壘。東至逆流河二里,入生女真界,西至遼州七十里,南至沈州七十里,北至渝州百二十里。


쌍주, 거란이 보안군이라 하였는데 통오군영의 보루가 있다. 동쪽으로 2 리에 역류하가 있는데 생여진계로 들어가며(흐르며), 서쪽으로 요주까지 70 리, 남쪽으로 심주까지 70 리, 북쪽으로 유주까지 120 리이다.


顯州,本渤海國,按《皇華四達記》:唐天寶以前,渤海國所都顯州,後為契丹所並。又有集康二州,並撥屬本州。東至遼州九十里,又三百九十里至東京,西至宜州百二十里,南至乾州七里,北至醫巫閭山。


현주, 본래 발해국(의 땅)이다. (가탐의) 황화사달기에 따르면 당 천보(742~756) 이전까지 발해국의 도읍이 현주에 있었는데 훗날 거란에 병합되었다. 또 집주와 강주 두 주가 있었는데 폐지되어 본래의 주(?)에 병합(강주는 요사 지리지에 따르면 현주에 소속되었고, 집주는 본계와 무순 사이에 나타난다)되었다. 동쪽으로 요주가 90 리, 또 390 리에 동경이 있으며, 서쪽으로 의주가 120 리, 남쪽으로 건주가 7 리, 북쪽으로 의무려산이 있다.

乾州,在醫巫閭山之南,古遼澤之地,虜主景宗陵寢在焉,今置廣德軍節度兼山陵都部署。東至顯州八里,西南至銀治寨二十五里,西至遼州六十里,北至兔兒橋四十里。


건주, 의무려산 남쪽에 있는데, 옛 요택의 땅으로 노주(오랑캐왕, 즉 거란의 왕) 경종의 능묘가 있다고 하며 지금은 광덕군 절도사 겸 산릉도부서가 설치되어 있다. 동쪽으로 현주까지 8 리, 서남쪽으로 은치(은광)새가 25 리, 서쪽으로 요주가 60 리, 북쪽으로 토아교가 40 리이다.


巖州,本高麗所據之地,唐太宗伐遼,師次白巖城下,因建為巖州。今契丹置兵屯守,州名不改。東至女真界百九十里,東南至東京五十里,南至集州,北至雲山縣。


암주, 본래 고구려가 있던 곳으로 당 태종이 요동성을 함락하고 군대를 몰아 다음에 백암성에 다달았는데 이로 인하여 암주를 세웠다. 지금은 거란이 병영을 설치하였으며 주명은 고치지 않았다(즉 당나라 이래로 암주라 한다는 뜻). 동쪽으로 여진계까지 190 리, 동남쪽으로 동경까지 50 리, 남쪽으로 집주가 있고, 북쪽으로 운산현이 있다.




3.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기록 : 《讀史方輿紀要 卷三十七 山東八》


廣寧衛司西四百二十里。


광령위(거란 현주, 즉 현 북진시)는 요동도사성(즉 현 요양시) 서쪽 420 리에 있다.


無慮城今衛治。本漢之無慮縣,屬遼東郡。後漢屬遼東國。元初二年,遼東鮮卑圍無慮。又陽嘉初,鮮卑寇遼東屬國,耿曄移屯無慮城以拒之。晉省。唐置巫閭守捉城。勃海為顯德府地。遼置奉先縣為顯州治,領山東縣。金改山東曰廣寧縣,為州治。元省縣入府。明初因舊城修築,周十里有奇。


무로성이 광녕위의 치소이다. 본래 전한의 무로현으로 요동군에 속했다. 후한 때에는 요동국에 속하였다. 원초 2년(후한 안제, 서기 115년)에 요동의 선비족이 무로현을 에워싸고 있었다. 또 양가(132~135년) 초에 선비족이 요동속국을 침입하자 경엽(오환교위)이 둔영을 옮겨서 무로성을 지켰다. 서진이 무로성(을 비롯한 요동속국)을 없앴다. 당나라가 무려수착성을 설치했다. 발해가 현덕부로 삼았다. 요나라가 봉선현을 설치하여 현주를 다스렸고 산동현을 속현으로 두었다. 금나라가 산동현을 고쳐서 광령현이라 하였고, 주의 치소로 삼았는데 원나라가 현을 없애고 부에 예속시켰다. 명나라 초에 옛 성을 수리하여 다시 쌓았는데 둘레가 10 리였다.


鐘秀城衛西南五里,遼奉先縣。


종수성이 광령위 서남쪽 5 리에 있는데 요나라 봉선현(요나라 현주 치소)이다.


川州城衛西北百二十里。《遼志》:本唐青山州地,屬營州都督府。遼初置白川州,尋曰川州長寧軍,領弘理、咸康、宜民三縣。金初因之。大定六年,廢川州為宜民縣,屬懿州路。承安二年,復置川州。泰和四年,仍罷州,以宜民縣屬興中府。元復曰川州,屬大寧路。明初廢。《志》云:川州有東西二城:東川州,遼所置也,西南去義州衛百五十里。西川州,金所置,南至義州衛九十里。又有徽川城,在川州西。《金志》:承安二年,以徽川寨為徽川縣,屬川州。泰和四年,州廢,縣亦罷。


ㅡ 해석 생략 ㅡ

현 북표현 동쪽에서 의현에 이르는 지역이다.


閭州城在衛東北。遼置。《志》云:以近巫閭山而名。在遼州西百三十里,西北至上京臨潢府九百五十里,金廢。


여주성이 광령위 동북쪽에 있다. 명일통지(추정)에서 이르기를 “의무려산 근처에 있는 까닭에 이름을 삼았다. 요주(遼州) 서쪽 130 리에 있으며, 서북쪽으로 상경임황부까지 950 리이다.”했다.


又順州城,在衛東北百二十里。《遼志》:漢遼東郡遼隊縣地也。遼置順州,西北至上京九百里,金廢。


또 순주성이 광령위 동북쪽 120 리에 있다. 요사 지리지에서 이르기를, 전한의 요동군 요대현 땅이다 했다. 요나라가 순주를 설치했는데 서북쪽으로 상경까지 900 리이다.


豪州城,在衛東北二百二十里。《遼志》:漢遼東西安平地也,遼置州,西北至臨潢七百二十里,金廢。


호주성은 광령위 동북쪽 220 리에 있다. 요사 지리지에서 말하기를, 전한 요동군 서안평 땅으로 요나라가 주를 설치했으며 서북쪽으로 상경임황부까지 720 리인데 금나라가 폐지하였다.


沈陽中衛司北百二十里。北至鐵嶺衛百二十里,東南至鴨淥江六百里。


심양중위(현 심양시 일원)는 요동도사성(현 요양시) 북쪽 120 리에 있다. 북쪽으로 철령위(현 철령시)까지 120 리, 동남쪽으로 압록강(현 압록강)까지 600 리이다.


《禹貢》青州地。戰國時屬燕。秦、漢為遼東郡地。晉因之,尋為挹婁國地。唐得其地,屬安東都護府,後沒於勃海,置沈州。遼置興遼軍,後更名沈州,亦曰昭德軍。金因之,後更為顯德軍。


우공에 따르면 청주에 속한 땅이다. 전국시대에 연나라에 속했다. 진나라와 전한 때에는 요동군 땅이 되었다. 서진이 그것을 이었는데 읍루국 땅으로 존치시켰다. 당나라가 그 땅을 취득하고 안동도호부에 속했는데 훗날 발해에 함몰되어(발해 땅이 되어) 발해가 심주를 설치했다. 요나라가 흥료군을 서치했다가 훗날 심주로 이름을 변경하고 소덕군이라 했다. 금나라가 그것을 이었는데 훗날 현덕군으로 변경했다.


遼濱城衛西北百八十里,高麗之遼東城也。唐太宗克之,改曰遼州。時亦謂之新城,以別於遼東故城也。《唐史》:貞觀十九年,伐高麗,江夏王道宗將兵數千至新城。二十年,復伐高麗,命李世將營州兵自新城道入。永徽三年,高麗侵契丹,松漠都督李窟哥將兵御之,大敗高麗於新城。儀鳳二年,徙安東都護于新城,以統高麗、百濟之地。此唐所名之新城也。後為拂涅國城。勃海置東平府,督伊、蒙、陀、黑、北五州。契丹阿保機攻勃海,先克東平,五州皆下,復置遼州於此,並置遼濱縣為州治,亦曰東平軍,德光更為始平軍。金皇統三年,州廢,縣屬沈州。元並廢縣。近《志》謂之遼陽城,又謂之顯州城,皆誤也。按:《舊·高麗傳》:貞觀十九年,季圍遼東城,高麗發新城步騎來援。又《志》安東都護府領新城州、遼東州。據此則遼東城非新城也。蓋唐初以遼東城置遼州,亦曰遼城州,新城則置新城州,至遼時乃移遼州於新城耳。又《舊·高麗傳》曰:乾封二年,季度遼至新城,謂諸將曰:新城是高麗西境鎮城,最為要害。若不先圖,餘城未易可下。遂引兵於新城西南,據此築柵,且攻且守。城中窘迫,乃降。


요빈성(요빈현은 요나라 요주遼州의 속현이었다)이 심양중위 서북쪽 180 리(현 신민시에 해당한다)에 있는데 고구려의 요동성이다. 당 태종이 요동성을 함락하고 요주(遼州)로 이름 고쳤다. 이 때에 이(요동성에 설치한 요주)를 또한 신성이라 불렀는데 이는 본래 있던 요동고성과 구분하기 위한 까닭이다.


ㅡ 해석 생략 : 강단 학계에서도 고구려 요동성 근방의 신성과 거란 굴가와 고구려가 전투를 벌인 신성의 위치가 다르다고 보고 있다. 본인 역시 그러하다. ㅡ


의봉 2년, 고구려와 백제 땅을 통솔하고자 안동도호부를 신성에 교치시켰다. 이곳이 당나라가 신성이라 이름한 곳이다. 훗날에 불렬국의 성(동평부)이 되었다. 발해가 동평부를 설치하여 이, 몽, 타, 흑, 북 등 5주를 다스렸다. 거란의 야율아보기가 발해를 공격하여 먼저 동평부를 차지하였는데 기존의  5주를 모두 없애고 다시 요주를 이곳에 설치하여 요빈현을 요주의 치소로 삼아 다스리며 또한 동평군이라 했는데 야율덕광이 시평군이 변경했다. 금나라가 요주를 폐지하고 요빈현을 심주에 속하게 했다. 원나라는 요빈현을 없앴다. 가깝게는 명일통지(추정)에서 (이곳 요빈성을) 요양성이라 칭하고, 또는 현주성이라 칭하는데 모두 잘못된 것이다. (또는 “요빈성이 있던 곳이 요양성이다, 현주성이다 하는데 잘못이다”)


구 고려전(구당서 고려전으로 추정)에 따르면 정관 19년, 이세적이 요동성을 포위하고 있을 때에 고구려가 신성에서 병력을 보내 구원하였다. 또, 명일통지(추정)에 따르면 안동도호부가 거느리는 주에 신성주, 요동주가 있다. 이에 근거하면 요동성은 신성이 아니다. 모두 당나라 초기에 요동성으로 요주를 설치하여 또는 요성주라 불렀고, 신성은 즉 신성주가 설치되었는데 요나라 때에 이르러 요주를 신성(이 있던 곳)에 이치시켰을 뿐이다.


ㅡ 하략.


白巖城,在衛西,高麗所置城也。唐貞觀十九年,克遼東城,進軍白巖城,克之,改置巖州。勃海曰巖州白巖軍,治白巖縣。契丹因之,改屬沈州。金廢。


백암성이 심양중위 서쪽에 있는데 고구려가 설치한 성이다. 당 정관 19년, 요동성을 함락하고 군대를 몰아 백암성에 가서 이를 함락시키고 암주를 설치하였다. 발해에서는 암주 백암군이라 하고 백암현에서 다스렸다. 거란이 그것을 이은 뒤에 고쳐 심주에 속하게 했다. 금나라가 없앴다.


紫蒙城在司東。《遼志》:漢樂浪郡鏤方縣地。後佛涅國置東平府,領蒙州紫蒙縣。尋徙遼城並入黃嶺縣,渤海復置紫蒙縣。遼因之,屬遼陽府。金廢。


자몽성이 요동도사성(현 요양) 동쪽에 있다. 요사 지리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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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9-03-22 17:27
   
말하기를, 전한의 낙랑군 누방현 땅으로 훗날 불렬국이 동평부를 설치했으며 몽주와 자몽현을 다스렸다. 요성으로 옮긴 후 황령현에 편입시켜 존치시켰는데 발해가 다시 자몽현을 설치했다. 요나라가 그것을 이어서 요양부에 속하게 하였다. 금나라가 폐지시켰다.
감방친구 19-03-22 17:31
   
※ 요사 지리지의 일부 해당 내용을 '다시 쓰는 유기'에서 가져온 것을 제하고는 모두 본인이 해석한 것이다. 따라서 해석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다. 요사 지리지의 천주, 현주, 건주, 심주 등 관련 행정지 정보의 원문, 또는 해석문은 글이 잘리는 관계로 본문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궁금하거나 확인이 필요한 사람은 '다시 쓰는 유기', 또는 위키피디아에서 '동경도'와 '상경도'를 검색하라. 다만, 위키피디아의 경우 원문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종종 현 학계통설에 유리하게 의역, 혹은 변조한 경우가 있으므로 유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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