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9-03-22 17:14
[한국사] 거란 동경의 이치(移置) 고찰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204  

본인은 2017년, 강동 6주, 타하, 고려 서경의 진위 등을 고찰하고 나아가 그 해 12월에 고려 전기 서북계와 거란 동경도의 실상을 고찰하는 과정에서 거란 동경이 현 요양시에 있었다 하는 학계의 통설에 꾸준히 의심을 품었다. 그 후 2018년 봄에 무경총요를 활용하여 이전의 해당 고찰을 재검증하는 과정에서 거란 동경이 993년 고려 1차 침략과 강화협정을 근거로 하여 현 북진시 방면에서 현 요양시 방면으로 이치가 되었으며 이에 따라 고려의 서북계 국경선도 태자하와 천산산맥으로 후퇴하였다는 사실을 파악하게 되었고 이러한 내용을 여러 차례 주장하여 왔다.


거란은 동경에서 동쪽으로 고려 정벌을 나아갈 진군로가 호우로 진창이 되어 고려 정벌을 포기한다. 거란 시대에 소위 요택으로 거론된 지역은 ①현 시라무렌강 중상류 지역, ②현 릉원시 동남쪽과 건창현 지역을 아우르는 거란 택주 지역, ③현 북표현 동쪽과 부신시 사이, 그리고 의현 북쪽에 해당하는 거란 북천주 지역, 그리고 ④현 북진시 남쪽 인근에 위치한 거란 건주 지역이다. 특히 건주 지역은 현대의 학자들이 고대로부터 택지가 형성돼 있었다고 보고하는 ‘신민시ㅡ요중ㅡ태안ㅡ북진ㅡ흑산’의 구역에 연접하여 있다. 이 지역은 주변지세보다 낮아 움푹 파인 형태를 띨 뿐만 아니라 동쪽의 요하를 비롯하여 서쪽에서 무수한 하천이 발원하여 흘러드는 곳으로 우기에 이르면 늪지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사실과 견주어 거란의 동경이 현 요양시가 아니라 현 북진시 방면에 위치했음을 나타내는 사서의 기록을 종합하여 그 근사성을 타진하도록 하겠다.


이 고찰은 본인의 지난 고찰인 하기 고찰에 잇대어 보다 심화한 고찰이다. 따라서 아래에 링크한 본인의 처음 고찰들을 참고하여 보기 바란다.


■ 거란 동경은 현 요양이 아니었다
감방친구 작성일 : 18-04-24 12:54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70489&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8B%9C%ED%8F%89%EA%B5%B0&sop=or


사료 원문과 해석문은 분량이 많아 글이 잘리고 가독성에 방해가 되는 관계로 이 글의 다음 글로서 게시하겠다.




1. 동경의 연혁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919년


거란 태조 야율아보기가 발해 동평부를 격파하여 차지하고 신책 4년, 919년 2월, 요양의 옛성을 수리하여 요주 동평군을 설치했다. 태조는 한민과 발해인으로 민호를 채우고 방어사를 설치(방어주로 삼음)했다. 요양에서 다스림. 태종이 뒤에 동평군을 시평군으로 고쳐 설치했다.


924년


천찬 3년, 924년 5월, 계주의 백성들을 이주시켜 요주의 민호를 채웠다. 발해가 (요주에 침입하여) 자사 장수실을 살해하고 백성들을 빼앗아 갔다.


926년


발해 멸망

거란 태조 야율아보기 사망

황후가 섭정을 하다가 야율아보기의 차남 야율덕광이 황위 계승


928년


동단국에서 각지의 반란이 거듭 발생하고 백성들이 고려와 여진 지역으로의 이탈 심화

동단국과 동단국 백성이 요주 동평군으로 옮겨오고 거란, 즉 요나라에 종속됨

거란 태종 야율덕광이 요주 동평군을 승격시켜 남경요양부로 삼음


938년


유주에 남경을 설치하고, 동시에 기존 남경(동단국 교치지)을 동경으로 고침


요약


발해 동평부(918년 이전) → 거란 요주 동평군(918년 이후) → 거란 남경(928년) → 거란 동경(938년)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2. 요주 동평군(시평군)의 규모 변화



1) 발해에 동평부로서 속했을 당시(거란이 차지하기 전)


이주(伊州), 몽주(蒙州), 타주(陀州), 흑주(黑州), 북주(北州, 비주比) 등 5주와 18현 관할


2) 거란이 모두 폐지한 후의 규모


1주 2현 :


요빈현(遼濱縣), 안정현(安定縣) 등 2현과 기주(祺州) 1주 관할, 기주의 속현으로서 경운현(慶雲縣) <요사 지리지 동경도 요주 시평군>




3. 요주의 위치



1)

횡주(横州), 국구(國舅)인 소극충(蕭克忠)이 건설하였다. 부(部) 아래에 방목하는 사람들이 한국(漢)의 옛 요양현의 땅에 살았으므로 주와 성을 설치하였다. 요주(遼州) 서북 90리에 있고 서북쪽으로 상경까지 720리이다. 횡산(横山)이 있다. 가구수는 200이다. <요사>


2)

여주(閭州), 라고왕(羅古王)이 방목하던 땅이고 의무려산과 가깝다. 요주(遼州) 서쪽 130리에 있고 서북쪽으로 상경까지 950리이다. 가구수는 1000이다. <요사>


3)

순주(順州), 본래 요대현(遼隊縣)의 땅이다. 횡장(横帳) 남왕부(南王府)가 연(燕)과 계(薊), 순주(順州)의 백성들을 사로잡아 성을 건설하고 살게하였다. 현주(顯州) 동북쪽 120리에 있고 서북쪽으로 상경까지 900리이다. 가구수는 1000이다. <요사>


4)

자몽현(紫蒙縣, 동경 직속현) 본래 한나라 누방현(鏤芳縣)인데, 나중에 불녈국(拂涅國)이 동평부(東平府)를 설치하고 자몽현(紫蒙縣)을 관할하였다. 나중에 요성(遼城)으로 옮겨 황령현(黃嶺縣)에 편입하였다. 발해 때는 다시 자몽현이었다. 호구 수는 1,000호이다. <요사>


5)

요하, 양장하(羊腸河), 추자하(錐子河), 사산(蛇山), 낭산(狼山), 흑산(黑山), 건자산(巾子山) 등이 있다. <요사>


6)

북백천주, 요주(遼州) 요대현(요수현)의 옛땅으로 송 천희 년간(1017~1021년)에 주를 만들고 시평군이라 하였다. 동쪽으로 건주까지 120 리, 서북쪽으로 의주까지 40 리, 남쪽으로 바다까지 200 리, 북쪽으로 중경까지 550 리, 북쪽으로 의무려산까지 80 리이다. <무경>


7)

심주, 야율덕광(거란 태종, 902~947)이 소덕군을 두었는데 거란의 옛땅이다. 동쪽으로 대요수가 있는데 대요수 동쪽은 여진계이며, (심주에서) 서남쪽으로 동경까지 130 리, 북쪽으로 쌍주까지 80 리이다. <무경>


8)

쌍주, 거란이 보안군이라 하였는데 통오군영의 보루가 있다. 동쪽으로 2 리에 역류하가 있는데 생여진계로 들어가며(흐르며), 서쪽으로 요주(遼州)까지 70 리, 남쪽으로 심주까지 70 리, 북쪽으로 유주까지 120 리이다. <무경>


9)

현주, 본래 발해국(의 땅)이다. (가탐의) 황화사달기에 따르면 당 천보(742~756) 이전까지 발해국의 도읍이 현주에 있었는데 훗날 거란에 병합되었다. 또 집주와 강주 두 주가 있었는데 폐지되어 본래의 주(?)에 병합(강주는 요사 지리지에 따르면 현주에 소속되었고, 집주는 본계와 무순 사이에 나타난다)되었다. 동쪽으로 요주(遼州)가 90 리, 또 390 리에 동경이 있으며, 서쪽으로 의주가 120 리, 남쪽으로 건주가 7 리, 북쪽으로 의무려산이 있다. <무경>


11)

건주, 의무려산 남쪽에 있는데, 옛 요택의 땅으로 노주(오랑캐왕, 즉 거란의 왕) 경종의 능묘가 있다고 하며 지금은 광덕군 절도사 겸 산릉도부서가 설치되어 있다. 동쪽으로 현주까지 8 리, 서남쪽으로 은치(은광)새가 25 리, 서쪽으로 요주(遼州)가 60 리, 북쪽으로 토아교가 40 리이다. <무경>


12)

암주, 본래 고구려가 있던 곳으로 당 태종이 요동성을 함락하고 군대를 몰아 다음에 백암성에 다달았는데 이로 인하여 암주를 세웠다. 지금은 거란이 병영을 설치하였으며 주명은 고치지 않았다(즉 당나라 이래로 암주라 한다는 뜻). 동쪽으로 여진계까지 190 리, 동남쪽으로 동경까지 50 리, 남쪽으로 집주가 있고, 북쪽으로 운산현이 있다. <무경>


13)

동경, 요동 안시성이다. 성의 동쪽은 곧 대요하이며, 성의 서쪽은 곧 소요하이다. 진나라 때에는 요동군에 속했고 한나라에서는 유주에 속했으며 당 태종이 고구려를 평정하며 다녀간 산에 머물렀으므로 이로 인해 주필산이라 이름한 산이 (동경의) 동북쪽에 있다. 훗날 발해국(의 땅)이 되었고, 거란이 요주로 삼았다가 그 땅(요주)을 얻어서 동경으로 삼았다. 암주가 그 동쪽에 있는데, 즉 이세적이 (백암성을) 평정한 백암주이다. <무경>


14)

암주(巖州) 백암군(白巖軍)이 설치되었고 하급으로 자사를 두었다. 본래 발해의 백암성(白巖城)이다. 태종이 심주에 속하게 하였다. <요사>


15)

천주(川州) 장령군(長寧軍), 절도(節度)를 두었다. 본래 당나라 청산주(青山州) 땅이다. 태조의 동생 명왕(明王) 안도(安圖)가 설치하였다. 회동(會同) 3년(940년)에 조서를 내려 백천주(白川州)로 하게 하였다. 안도(安圖)의 아들 찰극(察克)이 대역죄를 지어 목을 베어 죽임을 당하였고 (주를) 몰수한 뒤 간략하게 천주(川州)라고 하였다. <요사>

16)

현주(顯州) 봉선군(奉先軍)이 설치되었으며 상등으로 절도를 두었다. 본래 발해의 현덕부(顯德府)가 있던 곳이다. 세종(世宗)이 설치하여 현릉(顯陵)를 섬기게 하였다. 현릉은 동단국(東丹國)의 인황왕(人皇王)의 무덤이다. 산남쪽에서 바다까지 130리 떨어져있다. 현주는 산의 동남쪽에 있는데 동경의 300호를 옮겨 이곳에 채웠다. <요사>


17)

건주(乾州) 광덕군(廣德軍)이 설치되었고 상급으로 절도를 두었다. 본래 한나라 무려현(無慮縣)이다. 성종 통화 3년(985)에 설치하였는데 경종(景宗)의 건릉(乾陵)을 섬기게 하였다. 응신전(凝神殿)이 있다. <요사>


18)

요빈성(요빈현은 요나라 요주遼州의 속현이었다)이 심양중위 서북쪽 180 리(현 신민시에 해당한다)에 있는데 고구려의 요동성이다. 당 태종이 요동성을 함락하고 요주(遼州)로 이름 고쳤다. 이 때에 이(요동성에 설치한 요주)를 또한 신성이라 불렀는데 이는 본래 있던 요동고성과 구분하기 위한 까닭이다. 안동도호부가 거느리는 주에 신성주, 요동주가 있다. 이에 근거하면 요동성은 신성이 아니다. 모두 당나라 초기에 요동성으로 요주를 설치하여 (요주) 또는 요성주라 불렀고, 신성에는 즉 신성주가 설치되었는데 요나라 때에 이르러 요주를 신성(이 있던 곳)에 이치시켰을 뿐이다. <독사 산8>


19)

(요빈성은) 거란의 요주(遼州) 요빈현 자리로, 거란이 발해의 동평부를 차지하고 속주를 모두 없앤 후에 요주(遼州) 동평군을 설치하고, 뒤에 시평군으로 개칭했다. <독사 산8>




4. 현 요양의 연혁



요양현(遼陽縣, 동경 직속현) 본래 발해의 금덕현(金德縣)이다. 한나라 때 패수현(浿水縣)이었는데, 고구려가 구려현(句麗縣)으로 고쳤다. 발해 때는 상락현(常樂縣)이었다. 호구 수는 1,500호이다. < 요사 지리지 동경도>


패수현(전한) → 구려현(고구려) → 금덕현/상락현(발해)


즉 본래의 요양현, 또는 요양고성(遼陽故城)의 자리가 아님.




5. 거란 요주(遼州)의 관할지 변화와 중심지 이동



1) 거란이 발해 동평부를 차지한 후 설치한 요주의 관할지


의무려산 서쪽 현 의현의 남북의 연장선 지대에서 동쪽으로 현 신민시에 이르는 지역


2) 요주의 축소 이후


현 신민시 서쪽, 혹은 서남쪽 지역을 중심한 영역


3) 요주의 교치 이후


현 신민시 일대




6. 결론 : 거란 동경의 이치(移置) 전 위치



그 가능영역을 확대할 경우 현 북진시와 신민시, 태안현(台安县)의 삼각지대로 상정할 수 있는데 이 삼각지대의 가운데는 우기(雨期)에 택지(澤地)가 형성되므로 불가하다.


따라서 현 북진시와 흑산현(黑山县) 사이, 혹은 이곳을 중심한 지역으로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yichii_01.jpg

yichii_02.jpg

yichii_03.jpg

yichii_04.jpg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감방친구 19-03-22 18:20
   
중국역사지도집에 나타난 거란 요주
ㅡ 현 신민시 북쪽 인근에 비정돼 있다
ㅡ 거란 동경은 요주 동평군(시평군)에 최초 남경으로서(928년) 설치되었다

http://blog.naver.com/storyphoto/viewer.jsp?src=https%3A%2F%2Fblogfiles.pstatic.net%2F20111102_14%2Fjhy8365_1320215526322DHGqx_JPEG%2F17.jpg
감방친구 19-03-23 00:59
   
무경총요의 북백천주(상기 무경총요 항목 6) 기술 정보는 중경도에 속한 백천주 정보와 동경도 건주 속주인 해북주 정보가 뒤섞여 있다

ㅡㅡㅡㅡㅡㅡㅡ
 해북주(海北州) 광화군(廣化軍)이 설치되었고 중급으로 자사를 두었다. 세종이 노략한 한인(漢人)의 민호로 설치하였다. 지역은 여산(閭山)의 서쪽과 남해(南海)의 북쪽에 있다. 처음 선주(宣州)에 예속시켰다가 나중에 건주(乾州)에 속하게 하였다. 관할 현은 개의현(開義縣) 하나이다. <요사 지리지 동경도 건주>
ㅡㅡㅡㅡㅡㅡㅡ

무경총요에는 백천주, 북백천주, 해북주가 모두 기술돼 있다

北白川州,遼州遼隧縣故地,宋天禧中契丹建為州,仍曰始平軍。東至乾州百二十里,西北至宜州四十里,南至海二百里,北至中京五百五十里,北至醫巫閭山八十里。

海北州,古城也,在遼河之西,滄海之北,阿保機建為州。東至錦州八十里,南至海百二十里,西北至中京五百三十里。

白川州,築城在遼澤之中,東距醫巫閭山,西至營州地。宜桑柘,民知織之利,歲奉中國幣帛,多書白川州稅戶所輸雲。東至黔州七十里,西至中京四百三十里,東南至宜州百里,西南至霸州七十里。
감방친구 19-03-23 19:35
   
북백천주, 요주(遼州) 요대현(요수현)의 옛땅으로 송 천희 년간(1017~1021년)에 주를 만들고 시평군이라 하였다. 동쪽으로 건주까지 120 리, 서북쪽으로 의주까지 40 리, 남쪽으로 바다까지 200 리, 북쪽으로 중경까지 550 리, 북쪽으로 의무려산까지 80 리이다. <무경>

앞의 댓글에서 언급했 듯이 이 북백천주 지리정보는 해북주, 백천주의 지리정보가 뒤섞여 있으며 더하여 요주 시평군과 요서주 지리정보 역시 뒤섞여 있다

1) 요주(遼州) 요대현(요수현)의 옛땅으로

ㅡ 요서주와 요주를 혼동하고 있다
ㅡ 그런데 이는 거란의 요주가 발해 동평부를 개편한 것으로 처음에는 그 관할지가 넓었던 데에서 온 혼동으로 볼 수 있다

2) 송 천희 년간(1017~1021년)에 주를 만들고 시평군이라 하였다.

ㅡ 요주와 요서주를 혼동하고 있다
ㅡ 시평군은 거란 태종 때에 요주 동평군 명칭을 바꾼 것이다

3) 동쪽으로 건주까지 120 리, 서북쪽으로 의주까지 40 리,

ㅡ 이 위치는 현주 속주로서 후에 건주 땅이 되는 요서주 위치에 해당한다
ㅡ 요사에서는 요서주라 적고 있으나 무경총요에서는 요주라 적고 있어서 혼동을 주었다
ㅡ 무경총요 동경 기술조에서 "(건주에서) 북쪽으로 살짝 치우친 방향(서서북)으로 60 리에 양가새관, 다시 50 리에 요주"라 했으니 합이 110 리로 120 리와 근사하다
ㅡ 건주는 985년에 건릉을 조성하면서 현주 땅을 떼어 만든 주로 현 북진시와 의현 사이와 그 남부 지역에 해당한다

4) 남쪽으로 바다까지 200 리, 북쪽으로 중경까지 550 리, 북쪽으로 의무려산까지 80 리이다.

ㅡ 현 북진시에 있던 현주 방면 의무려산에서 바다까지 130 리라고 요사는 적고 있다 이 당시 바다는 현 판진시까지였으므로 거리기록이 합치한다
ㅡ 남쪽으로 바다까지 200 리면서 북쪽으로 의무려산까지 80 리면 의무려산과 바다가 280 리가 되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ㅡ 이는 백천주의 지리정보에서 온 것으로 현 북표현 동쪽 인근에 있었던 백천주에서 현 의현인 의주까지 100 리라고 무경은 적고 있고 동사서에서 의주와 바다의 거리는 적고 있지 않으나 의주와 금주(대릉하 하구의 진저우시)까지 120 리라 했으므로 도합 200 리에 상당하여 합치한다
ㅡ 동사서(무경)에서 백천주와 중경의 거리가 430 리, 백천주와 의주 거리가 100 리라 했는데 합이 530 리이다
ㅡ 여기에 의주와 북백천주 거리가 40리로 합이 570에 해당, 위치를 고려할 때에 550에 근사하다
감방친구 19-03-23 20:04
   
※ 본문의 동경 이치 고찰과 본래의 동경 위치는 '요주의 위치(현 북진시인 현주 동쪽 90리)'를 중점에 두고 파악한 것이다

무경총요의 지리정보는 1040년대까지 수집된 거란 지리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동경 이치 전과 이치 후의 정보가 혼합돼 있다. 따라서 동경 이치 사실을 판단하는 데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함과 동시에 분석에 있어서 엄밀성이 요구된다.

동경 이치 고찰은 요주를 중심한 것 외에 여러가지를 시도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할 것이다
 
 
Total 17,467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6954 [한국사] 400년 전 같은 시대 쓰인 ‘한문 홍길동전’ 발견“허… (2) 초록바다 04-24 1239
16953 [한국사] 근데 위만 조선이라는게 원래 있던 내용 (2) 굿보이007 04-24 1105
16952 [한국사] 역사학을 전공해야 할까? (1) 감방친구 04-24 705
16951 [기타] 고구려와 선비 (2) 관심병자 04-24 1217
16950 [기타] 단석괴, 단 선비와 고구려, 부여와의 관계 (1) 관심병자 04-24 872
16949 [한국사] 사서,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까요....? (6) Attender 04-23 819
16948 [일본] 고마가쿠(高麗樂, 고려악) (1) BTSv 04-23 976
16947 [한국사] 거란 동경과 요수 ㅡ 무경총요를 중심으로 2 감방친구 04-23 728
16946 [한국사] 거란 동경과 요수 ㅡ 무경총요를 중심으로 1 감방친구 04-23 805
16945 [한국사] 발해 멸망과 동단국 사민의 전말(顚末) (7) 감방친구 04-18 2797
16944 [세계사] 터키 중부의 선사시대 거주지인 '아쉬클리 회위… Attender 04-18 2302
16943 [한국사] 그래서 요양(遼陽)은 어디인가 (1) 감방친구 04-17 1525
16942 [세계사] 이스라엘 저만 나빠보이나요? (77) someak 04-15 4519
16941 [한국사] '구지가' 사실이었나…1,500년 전 '타임캡… (4) BTSv 04-14 3536
16940 [한국사] 고구려 복식 재현 (1) BTSv 04-14 3350
16939 [중국] 중국 옛날 복식 재현 BTSv 04-14 2094
16938 [한국사] 김용운 선생의 채널을 소개합니다 (1) 감방친구 04-13 1294
16937 [한국사] 행주산성 모인 어민, 日 추격에 배 몰고 나가 ‘선상 … (1) 스쿨즈건0 04-13 3049
16936 [한국사] 고종에게 "대체 무슨 생각으로 백성을 이 지경에…" … (6) 초록바다 04-12 3182
16935 [한국사] 천연기념물인 울진 성류굴에 낙서한 이들의 정체...12… (1) 초록바다 04-11 2165
16934 [한국사] 요양과 건주, 그리고 패주 (2) 감방친구 04-09 1556
16933 [기타] 밀고 당긴 간도분쟁 300년 관심병자 04-09 2111
16932 [기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그 뜻과 진실 관심병자 04-08 1713
16931 [한국사] 진정한 환빠, 천하의 명문 환단고기속의 단군세기 (6) 스리랑 04-08 2668
16930 [한국사] 일제 경찰서장 끌고 나와 “3000명 독립시위, 증명… (1) 스쿨즈건0 04-07 2682
16929 [기타] 백두산정계비와 ‘잃어버린 땅’ 간도 (2) 관심병자 04-06 2253
16928 [한국사] 베트남 정부로부터 환대받은 화산 이씨 (6) 강원도인 04-06 4321
 <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