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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21 21:03
[한국사] 요택과 거란 동경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398  

본인의 고려 전기 서북계와 거란 동경도 연구는 지난 2017년 가을부터 시작되었다. 이어 그 해 겨울 독사방여기요와 요사, 고려사를 중심하여 연구의 폭을 넓히고 내용을 심화하였고, 이듬 해인 2018년 봄에 무경총요를 분석하여 앞의 내용과 교차하였다. 이 과정에서 현 요녕성 요양시에 있었다 통설로서 설명되는 거란 동경이 실상은 현 북진시 근방에 있다가 거란 성종이 고려를 1~2차에 걸쳐 침략하는 과정에서 고려의 서부 영역을 현 태자하와 천산산맥까지 밀어내면서 현 요양시로 옮겨진 것(동경 뿐만 아니라 기존 동경 주변의 주와 현도 같이 움직임)을 파악하였고 이를 특히 무경총요와 요사 지리지 동경도의 교차분석을 통하여 수차례 설명한 바 있다.


본 글의 내용은 이 과정에서 처음부터 수차례 언급한 바 있는, 거란 성종이 고려를 정벌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과 그 사이 요택에 물이 차서 정벌을 취소하는 정황을 요사 성종 본기의 해당 기록을 모두 해석하여 동반 탐문자들과 학계통설추종자들에게 보임으로써 '거란 동경의 교치 정황'에 대해서 더욱 확실히 각인시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순수하게 다음의 기록을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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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遼史 卷十本紀第十 聖宗一》


統和三年(985년)


秋七月甲辰朔,詔諸道繕甲兵,以備東征高麗。甲寅,東幸。甲子,遣郎君班哀賜秦王韓匡嗣葬物。丙寅,駐蹕土河。以暴漲,命造船橋,明日乘步輦出聽政。老人星見。丁卯,遣使閱東京諸軍兵器及東征道路。以平章事蕭道寧為昭德軍節度使,武定軍節度使、守司空兼政事令郭襲為天平軍節度使,大同軍節度使、守太子太師兼政事令劉延構為義成軍節度使,贈尚父秦王韓匡嗣尚書令。


가을 7월 갑진 초하루(즉 음력 7월 1일), 모든 도에 조서를 내려 무기와 갑옷 등 병장기를 정비하여 동쪽으로 고려를 정벌하는 것을 준비하도록 하였다. 갑인일(11일)에 (황제, 즉 성종이) 동쪽으로 행차하였다. 갑자일(21일)에 낭군 반애를 보내서 진왕 한광의 자손에게 장례 치를 물건을 하사했다. 병인일(23일)에 토하(현 로합하)에 가 머물렀다. 내일(24일) 가마를 타고 나아가 정사를 살피고자 하는데 토하의 물이 심하게 넘치므로 배다리(船橋)를 만들라 명하였다. 노인성(카노푸스)이 보였다. 정묘일(25일)에 사람을 보내 동경(東京)의 모든 병장기 구비 실태와 동정(東征) 도로의 상태를 검열하도록 했다.


八月癸酉朔,以遼澤沮洳,罷征高麗。命樞密使耶律斜軫為都統,駙馬都尉蕭懇德為監軍,以兵討女直。丁丑,次稿城。


8월 계유일 초하루(음력 8월 1일), 요택에 물이 가득 차서 고려 정벌을 그만두었다. 추밀사 야율사진을 도통사로 삼고, 부마위 소간덕을 감군으로 삼아서 병력을 가지고 여진을 토벌하라 명하였다. 정축일에 교성에 행차했다.


庚辰,至顯州,謁凝神殿。辛巳,幸乾州,觀新宮。癸未,謁乾陵。甲申,命南、北面臣僚分巡山陵林木,及令乾、顯二州上所部里社之數。丙戌,北皮室詳穩進勇敢士七人。戊子,故南院大王諧領已里婉妻蕭氏奏夫死不能葬,詔有司助之。庚寅,東征都統所奏路尚陷濘,未可進討,詔俟澤涸深入。癸巳,皇太后謁顯陵。庚大,謁乾陵。辛丑,西幸。


경진일(음 8월 8일)에 현주에 도착하여 응신전에 참배하였다. 신사일(음 9일)에 건주에 가서 새 궁궐을 구경하였다. ㅡ 중략 ㅡ 경인일(음 18일)에 (여진 토벌을 맡은) 동정도통사가 (황제께) 아뢰는 바, 도로의 진창이 더욱 심하여 아직 토벌에 나아가지 못 하였다 하니 조서를 내려 늪(진창)이 굳게 마를 때까지 대기하라 하였다.


閏九月癸酉,命邢抱樸勾檢顯陵。丙子,行次海上。庚辰,重九,駱駝山登高,賜群臣菊花酒。辛巳,詔諭東征將師,乘水涸進討。丙申,女直宰相術不裏來貢。戊戌,駐蹕東古山。


윤 9월 계유일, (해석 역부족) 현릉. 병자일(음 9월 4일)에 바다로 행차하였다. 경진일, 중구(중양절, 음력 9월 9일) 낙타산에 올라 여러 신하들게 국화주를 하사하였다. 신사일(음 9월 10일)에 동정(여진 정벌)하는 장수와 병사들에게 조서를 내려서 (늪의) 물이 마르면 진격하여 (여진을) 토벌하라 타일렀다. 병/신일(음 25일)에 여진의 재상 수부리가 조공하러 왔다. 무술일(음 27일)에 동고산에 가 머물렀다.


冬十一月甲戌,詔吳王領秦王韓匡嗣葬祭事。丁丑,詔以東北路兵馬監軍妻婆底裡存撫邊民。戊寅,賜公主胡骨典葬夫金帛、工匠。辛卯,以韓德讓兼政事令。癸巳,禁行在市易布帛不中尺度者。丙申,東征女直,都統蕭闥覽、菩薩奴以行軍所經地里、物產來上。


겨울 11월 갑술일(음 6일) ㅡ 생략ㅡ, 신묘일(음 23일), 병/신일(음 28일)에 동쪽으로 여진을 정벌하는 도통사 소달람, 약선노가 행군하며 경유하는 곳의 지리와 산물에 대해 보고해 왔다.


四年春正月甲戌,觀漁土河。林牙耶律謀魯姑、彰德軍節度使蕭闥覽上東征俘獲,賜詔獎諭。丙子,樞使耶律斜軫、林雅勤德等上討女直所獲生口十餘萬、馬二十餘萬及諸物。


四年(통화 4년, 986년) 1월 6일(음력), (거란 성종이) 토하(土河, 현 로합하)에 가서 물고기 잡는 것(얼음낚시)을 구경하였다. 림아 야율모로고와 창덕군절도사 소달람이 동정(즉 여진정벌)의 성과를 아뢰어오니 조서를 내려 격려하였다. 8일, 림아 근덕 등이 여진을 토벌하여 생구(포로) 10여 만 명과 말 20여 만 마리와 여러 재물을 획득하였음을 아뢰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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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에 고려 정벌을 명하였는데 그후 곧 여름 장마가 시작된 것으로 짐작되는 바, 황제(거란 성종)가 23일에 토하, 즉 현 로합하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강이 범람하기 시작하여 배다리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8월 1일에는 요택에 물이 차서 고려 정벌을 중지시키고 대신 그 병력의 일부로 여진(정안국 세력)을 정벌하도록 지시한다.


8월 8일에 현 북진시에 해당하는 현주에 도착하여 현릉을 참배하는 것을 시작으로 거란 성종은 두 달여를 의무려산 근처를 오간다. 음력 9월 9일, 즉 중양절에 등정해 신하들에게 국화주를 하사한 낙타산(駱駝山)은 본인이 정밀하게 분석, 고찰한 바 있는 가탐도리기 제 2도, 등주에서 바닷길로 고구려와 발해로 가는 길(登州海行入髙麗渤海道)의 경로상에서 오골강 바로 직전에 등장하는 낙타만과 관련 있는 곳으로 생각되는데 독사방여기요에서는 현 의현( 义县/義縣)의 동북 근방에 있는 것으로 기술(青山義州衛東三十里,上有塔。又衛東北五十里有隘口山,又十里有駱駝山,與廢川州接界。)하고 있다.


동정고려군에서 동정여진군으로 성격을 바꾼 거란군은 여진정벌로 목적과 목표를 바꾼 8월에서 무려 3달이 지나 양력으로 12월에 해당하는 겨울이 되어서야 여진을 정벌하기 위해 출정하였다.


이렇게 출정이 지체된 이유는 여름 장마로 인하여 요택에 물이 차면서 정벌을 위해 조성한 도로가 진창이 되었던 데에 있다.


이들 군병력은 동경에 있었다.7월 23일에 현 로합하인 토하가 범람하기 시작하였고, 그 일주일 후인 8월 1일에 요택에 물이 들어차는 이유로 정벌이 취소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인 7월 25일에 동경의 동정고려군과 도로 정비 상태에 대한 군사검열을 시작하였다.


현 로합하가 범람한다는 것은 비슷한 위치에 상류 수계를 가진 현 대릉하 역시 장마의 영향으로 범람하기 시작, 그 하류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뜻한다. 또 이 지역의 집중호우는 역시 시라무렌강과 서요하, 그리고 그 수계를 따라 현 요하와 그 하류 지역의 침수사태를 불러온다.


그런데ㅡ


학계통설에 따르면 거란 동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 요양시에 있었다. 이 요양시에서 학계 통설에 따른 당시 고려와 여진(정안국)은 각각 남쪽과 동남쪽에 있었다. 이 사이에 무슨 요택이 있는가?


학계 통설 추종자들, 학계통설 똥구녕핥기들에게 묻고 싶다. 어디에 요택이 있는가?


동경에 있는 군병력이 요택에 물이 차는 이유로 출진하지 못 하고 있다. 동경의 군병력이 요택의 영향을 받으려면 대체 동경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혹은 달리 질문하면, 동경의 군병력이 동경의 서쪽이 아닌 동쪽(이름부터가 東征)으로 출정하려 하는데 호우로 물이 찬 요택에 발이 묶여 무려 3달 동안 출정하지 못한 사실에 비추어 그 동경이 현 요양시에 있었다는 학계통설은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가?



현 요하 하류 해안선 변화 관련 정보

※ 사진을 클릭하여 보시오

qiyo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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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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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S 19-03-22 16:21
   
잘못 생각하시는 거 같아서 알려드립니다. 받아들이기 싫으시면 말고요.

985년 당시 요나라의 가장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는 송과 접한 남경이었고, 남경을 언제든 지원할 중경이었습니다. 즉 동경은 여진과 고려를 경계하는 위치일 뿐 자력으로 공격 가능한 정도는 아니였습니다. 특히나 고려는 요가 전력을 기울여야 할 정도로 강한 국가였죠. 이는 이후 송과의 전쟁에서 사실상 승리하고 전연의 맹약을 맺은 이후 요 성종이 직접 고려를 침공한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거란의 2차침입)

그래서 7월부터 요의 각 지역에서(유목제 국가이니) 동경지역으로 군사를 이동시키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동경으로 이동하기 위한 지점에 요택이 있는데, 언급됬듯이 비 때문에 진창이 되어서 이동이 힘드니 고려원정을 포기하는 것이죠.

여진정벌도 8월1일에는 도통사로 야율사진을 임명했는데, 야율사진은 일개 거란장수가 아니라, 사실상 당시 요에서 한족 한덕양과 함께 어린 성종을 보필하는 최고위급 요의 명장입니다. 즉 야율사진은 요의 동쪽 변경인 요양에 주둔하고 있던 상황이 아니죠. 결국 진창문제로 야율사진은 동경으로 가지 않습니다.

이는 이후, 11월달에 여진 정벌군 도통으로 새로 소달람이 임명되서 실제 이행하는 걸로 나옵니다. 소달람은 차후 북송과의 전쟁에서 야율사진의 부장급으로 활약하는 장수로 급이 낮습니다. 즉 진창 문제로 인해 시기가 늦어지자, 8월에 계획했던 여진정벌도 급을 낮춰서 겨우 11월에 재개한 것으로 보는게 맞습니다.

동경이 요하 서쪽에 있는게 아니라, 요양 서쪽의 요택지역이 진창이 되어서 요의 군대가 동경으로의 이동 자체가 늦어진 겁니다. 그러다 보니 고려원정 포기부터 여진족 정벌도 장수의 급이 낮아진 겁니다.
     
감방친구 19-03-22 16:49
   
이런 식의 댓글은 환영합니다
고맙게 잘 봤고요 참고하겠습니다

님은 이 정도 스탠스만 유지해도 싫어할 사람 없습니다
님과 비슷한 쪽인 촐라롱콘님의 태도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감방친구 19-03-22 22:32
   
한자와 한글을 못 읽으시는 거 같아서 알려드립니다
기분 나쁘시면 할 수 없고요
무식 자체는 죄가 아니나 무식함에도 주접 떠는 것은 죄입니다

본문을 잘 보세요

7월 25일에 동경으로 검열관을 보내죠?
무기와 군사들 상태, 동정로의 도로 사정 등을 검열하러
동경으로 가는 도로가 아니라 동정(東征) 도로를

8월 1일에 물이 차 진창이 돼서 출정을 중지시키고 대신 그 병력으로 여진을 토벌하라 명하죠?
요사 본기를 보면 목종, 경종, 그리고 이전의 성종 때까지 여진이 침입과 약탈이 잦아서 몇 차례 토벌을 합니다
고려사와 송사를 보면 여진 사신이 송나라에 하소연 하길 고려가 거란의 토벌군이 여진을 치러오는 길을 빌려준다고 합니다

8월 8일에 성종이 현 북진시인 현주에 도착하고 8월 18일에 정동여진도통사가 직접 도로가 진창이라 아직 여진 토벌에 나아가지 못 했다고 보고 하니 땅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라고 지시합니다(庚寅,東征都統所奏路尚陷濘,未可進討,詔俟澤涸深入。)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까?

동경에서 고려로 가는
그리고
동경에서 여진으로 가는
동정(東征) 도로가 진창이라는 말입니다

9월 10일에도 동정군에게 도로가 마를 때까지 기다리라고 지시합니다

동정군은 야율사진이 도착하지 않아서 진격하지 못 한 게 아니라 진창이 된 도로 문제를 해결하느라 계속 애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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