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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15 23:37
[한국사] 여진족에게 이용만 당하고 종족이 없어진 발해인
 글쓴이 : 강원도인
조회 : 3,726  

1. 거란에 이용만 당한 발해인
→ 발해인의 용감무쌍함
    송막기문 中
    男子多智謀,驍勇出他國右,至有「三人渤海當一虎」之語。
    (발해의) 남자(男子)는 지모(智謀)가 많으며, 
    효용(驍勇/날쌔고 용맹함)이 타국(他國)보다 강하고 특출(特出)하니,
    이르기를 「발해(渤海) 3인이면 한 마리 호랑이를 당(當)해낸다.」는 말이 있다.

→ 거란이 발해를 멸한 후, 전쟁이 있다 하면 발해인을 선봉에 세움
    송막기문 中
    有戰則用為前驅。
    (거란이 발해인을) 전쟁이 있으면 곧 전구(前驅/선봉)로 사용한다.

→ 요와 고려의 전쟁에 징발당한 발해군
   해동역사 中
    또 살펴보건대, 야율아보기가 이미 발해의 호구를 (1천 호를) 내지(內地)로 옮긴 뒤에는 
    발해군상온(渤海軍詳穩)과 발해군도지휘사사(渤海軍都指揮使司)를 두어 
    요양로(遼陽路)에 속하게 하여 이로써 고려를 제압하게 하면서 유사시에는 군사를 징발하였다.
 
→ 거란은 발해인을 적당히 대우해 주었지만, 발해인은 속으로는 원한을 품음
   송막기문 中 
    給以田疇,捐其賦入,往來貿易,關市皆不征
    전주(田疇/밭두둑)를 주고, 그 부입(賦入/부세)을 덜어주었으며, 
    왕래(往來)하여 무역(貿易)하면, 관시(關市/저자의 세관稅關, 시장의 세금)를 
    모두 부징(不征/세금을 매기지 않음)하였고,

   송사 송기(宋琪) 열전 中
   渤海兵馬土地,盛於奚帳,雖勉事契丹,俱懷殺主破國之怨。
   발해(渤海)의 병마(兵馬)와 토지(土地)는, 해장(奚帳/해족과 장족)에 (비해) 성(盛)한데
   비록 글단(契丹/거란)에 면사(勉事/힘써 일함)하지만, 
   모두 임금을 죽이고 나라를 깨트린 원한(怨恨)을 품고 있습니다.


2. 거란족에 의해 여진족과 싸우게 된 발해인
→ 요금 전쟁이 터지자마자 동경 남부의 해주의 자사인 고선수에게 관내 모든 발해인을 이끌고 
    여진군을 치라고 명한 천조제
    요사에 기록된 해주의 총 장정은 모두 3천 명인데, 이들을 모조리 이끌고 여진족을 치라고 명함
    고선수의 3천 발해군은 찰지수 전투에서 선봉을 맡아, 
    처음에는 여진군 좌익 700을 맹렬히 몰아붙이고 중군까지도 침투하는 등 초반에는 선전하였음

   거란국지 1114년 8월 기사 中
    時天祚射鹿慶州秋山,聞之,不以介意,遣海州刺史高仙壽,統渤海子弟軍三千人,應寧江援。
    이때 천조(天祚)는 경주(慶州)의 추산(秋山)에서 사록(射鹿/사슴 사냥)하고 있었는데, 
    (여진의 배반을) 듣고도, 개의(介意/마음에 두고 생각함)치 않고, 해주자사(海州刺史) 
    고선수(高仙壽)를 보내, 발해(渤海)의 자제군(子弟軍) 3천인을 통솔(統率)하여, 
    영강(寧江)을 응원(應援/호응하여 도와 줌)하게 하였다.


동경의 발해인이 무슨 죄라고 멀리 여진족과 싸우라 하는지. 그것도 선봉으로...
캡처_2017_11_07_10_29_01_246.jpg

3. 본시 발해와 여진은 원수지간
→ 찰지수 전투 이후 출하점 전투에서 다시 발해인 2천 명이 동원됨
→ 이때는 발해인의 용감한 무사들이 포상을 노리고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고 함
→ 거란국지에는 본시 요동에서 발해와 여진이 서로 원수지간이라 
    요나라가 이들을 이용하여 여진을 공격하게 하였다고 함

   거란국지 1116년 기사中
    蓋遼東夙與女真、渤海有讎,轉戶則使從良,庶幾效命敢戰。
    대개 요동(遼東)은 예로부터 여진(女真)과 발해(渤海)가 함께 유원(有讎/원수怨讐가 있음)하였는데,
    (발해의) 전호(轉戶/옮겨온 민호↔정호正戶는 원래 있던 민호)를 곧 양종(從良/면천)하게 하니,
    서기(庶幾/간절히 바람)로 효명(效命/목숨을 다해 일함)하여 감전(敢戰/결사적으로 싸움)하였다.

→ 여진인을 비웃는 발해 군사들

   금사 호사보(胡沙補) 열전中
   遇渤海軍,渤海軍向胡沙補且笑且言曰:「聞女直欲為亂,汝輩是邪。」
   (호사보가) 발해군(渤海軍)을 만났는데, 
   발해군(渤海軍)이 호사보(胡沙補)를 향해 또 비웃고 또 말하길
   「여진(女直)이 난(亂)을 일으키고자 한다고 들었는데, 너희 무리가 이렇게 간사(奸邪)하구나.」

* 요금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아골타가 호사보에게 영강주의 전쟁 상태를 정탐하라 명하였는데
   이에 호사보가 영강주에 가서 아소를 송환해 달라며 청하는 척하면서 정탐함
   돌아오는 길에 고선수의 발해군 8백과 만났는데, 
   발해군들이 난을 일으켜 싸우자고 하더니 이젠 사신을 보내나? 하며 비웃는 장면 임
   혹은 난을 일으키니 사악한 종족이라는 해석도 가능함    
* 애시당초 발해인이 한때 속민 취급했던 여진인을 좋게 볼리 만무함.
* 과거 나라를 이루고 문화를 번영시켰던 발해인이 12세기 들어서까지 야인으로 부족 생활을 하는 여진인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았을지는 분명해 보임
  

4. 여진과 발해는 한집안?
→ 영강주 전투에서 요군을 격파한 아골타는 발해인에게 한집안 운운함
   금사 1114년 10월 기사 中
    召渤海梁福、斡答剌使之偽亡去,招諭其鄉人曰:
    「女直、渤海本同一家,我興師伐罪,不濫及無辜也。」
    발해인(渤海人) 양복(梁福)과 알달랄(斡答剌)을 불러 거짓으로 도망가게 하여, 
    그 마을 사람을 초유(招諭)하여 말하길
    「여진과 발해는 본시 동일(同一)한 집안이니, 
       내가 군사와 함께 죄를 벌(伐)하면, 외람되지 말고 더불어 허물이 없어야 할 것이다.」


5. 동경에서 발해의 나라가 다시 세워 짐, 
    그리고 여진에 동맹 제안
→ 거란족이 여진족에 밀리자 곧장 고영창은 휘하 병력 3천을 근거로
    동경에서 반란을 일으켜 발해의 나라를 세우려 함

    금사 1116년 1월 기사中
    閏月,高永昌據東京,使撻不野來求援。
   윤월(閏月)에, 고영창(高永昌)이 동경(東京)에 근거하였는데, 
   사신 달부야(撻不野)가 와 구원(求援/도움을 청함)하였다.

→ 고영창의 병력 8천으로 늘어남
→ 고영창 아골타에 사신을 보내 동맹하여 함께 요를 치자고 제안
→ 아골타 고영창에게 동경의 여진인을 보내라 함
→ 고영창 여진인 호돌고를 보내줌
→ 고영창 아골타에게 요군으로 참전하여 사로잡힌 발해인을 돌려보내라 함
→ 아골타 불손하고 오만하다고 화 냄


6. 고영창의 뒤통수를 치는 아골타
→ 당시 요에서는 소을설과 장림에게 6만을 편성하게 하여 동경의 발해군을 토벌하려 함
→ 요의 장림과 고영창은 30여 차례의 일진일퇴를 거듭하다, 
   수적으로 열세인 고영창이 동경으로 후퇴하였는데 이에 장림이 동경성 5리 밖에 진을 침
   당시 장림의 요군은 5일 치 식량밖에 없었는데, 3일째 되는날 강을 건너 총공세를 펼치다
   발해의 철기군 500에 가로막혀 다시 진영으로 돌아옴.
   7일째 되던 날, 굶주림에 지친 요군은 심주성으로 퇴각을 개시함
   퇴각하는 요군을 고영창이 공격하여 뒤쳐진 요군을 몰살시켰고,
   요군은 간신히 심주성에 입성함.
   이때 알로가 이끄는 여진군이 심주성으로 진격함
   여진군과 결전을 벌이려 나온 장림의 요군은 사기가 떨어져 다시 성으로 회군하였는데,
   이틈에 여진군이 심주성을 포위함. 공성전에서 기력이 떨어진 요군은 대다수가 전사함.
   장림 등 일부 요군이 포위를 뚫고 도주함
→ 심주성을 함락한 알로의 여진군은 곧장 동경성으로 향함.
→ 고영창에 호사보를 보내 항복을 권유하자, 고영창이 항복한다고 함
    동경의 발해인 고정이 동경성에서 나와 알로에게 고영창의 항복이 거짓임을 알림
→ 알로의 여진군이 동경으로 진군하자, 격분한 고영창은 호사보의 사지를 찢어 죽이고
    병력을 이끌고 요격함
→ 요수에서 대치하다가 여진 오리보의 분전으로 요수를 건너 발해군을 격파하자
    고영창은 5천 기병을 이끌고 장송도로 도주함
→ 여진군 동경성 함락
→ 장송도로 도주했던 고영창의 발해군에서 내분이 일어나 
    달불야 등이 고영창을 사로잡아 아골타에게 바침


7. 아골타 발해인을 맹안모극에 편입
    금사 알로(斡魯) 열전 中
    未幾,撻不野執永昌及鐸刺以獻,皆殺之。
    於是,遼之南路系籍女直及東京州縣盡降。
    以斡魯為南路都統、迭勃極烈,留烏蠢知東京事。
    詔除遼法,省賦稅,置猛安謀克一如本朝之制
    오래지 않아, 발부야(撻不野)가 영창(永昌)과 더불어 탁자(鐸刺)를 잡아 바치니, 모두 죽였다.
    이에, 요(遼) 남로(南路)의 계적여진(系籍女直/요 국적의 여진)과 더불어 
     동경(東京)의 주현(州縣)이 모두 항복하였다.
    알로(斡魯)를 남로도통(南路都統)과 질발극렬(迭勃極烈)에 임명하고, 
    오준(烏蠢)을 머무르게 하여 동경(東京)의 일을 주관하게 하였다.
    조(詔)하여 요법(遼法)을 없애고, 부세(賦稅)를 살폈으며, 
    맹안모극(猛安謀克)을 설치하여 본조(本朝)의 제도(制度)와 같게 하였다.



8. 대요, 대송 전쟁의 선봉으로 발해인을 사용
→ 대송 전쟁 중 종한이 이끄는 1차 개봉 포위전의 금군 6만 중 2~3만은 발해인으로 추정됨
→ 본시 요사에 기록된 동경 예하의 총 장정은 41400 명.
    이중 송막기문에 의하면 발해군은 최소 3만 명임
→ 금초(아골타~오걸매) 대송 전쟁의 접경이던 연지역으로 강제로 이주당한 발해인
  
  송막기문 中
    契丹阿保機滅其王大諲譔,徙其各帳千餘戶於燕,(중략)
    글단(契丹)의 아보기(阿保機/태조)가 그 왕(王) 대인선(大諲譔)을 멸(滅)하고,
    그 각 장(帳/군막, 군) 천여 호(戶)를 연(燕)에 옮겨, (중략)

    契丹所遷民益蕃,至五千餘戶,勝兵可三萬。
    (금이 동경성을 함락한 후) 글단(契丹/거란)의 지역에서 (발해) 백성을 옮겨 
    번(蕃/연경)에 더하였는데, 5000 여호(戶)에 이르렀고, 승병(勝兵/강병)은 가히 3만(萬)이었다.


9. 북송 전쟁이 끝난 후, 토사구팽!
    → 산동으로 강제 이주! 맹안모극 탈퇴!

-연경으로 옮겼던 발해인 산동으로 강제 이주

송막기문 中
金人慮其難制,頻年轉戍山東,每徙不過數百家,至辛酉歲盡驅以行。
(연에 옮겨진 강한 발해군이 3만에 이르자) 금인(金人)이 그 난제(難制/통제에 어려움)를 걱정하여,
해마다 산동(山東)으로 수자리를 옮기니, 매번 수백가(家)에 불과하였는데,
신유년(辛酉年/희종1년, 1141년)에 모두 내몰아 (산동으로 이주를) 행(行)하였다.


거란국지에서는 같은 기사를 아래와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거란국지 中
至辛酉歲,盡驅以從,其人大怨
신유년(辛酉年/희종1년, 1141년)에 이르러, 모두 (산동으로) 내몰아 따르게 하니, 
그 사람들이 대원(大怨/크게 원망함)하였다.


-동경에 남아 있는 발해인은 모두 옛 거란 내지로 옮길 것!
해동역사中
희종 9년(1149년) 8월에는 재신(宰臣)들의 의논에 따라 요양(遼陽)에 있는 발해의 백성들을 
연(燕) 지방 남쪽으로 옮기고, 그 뒤에는 또 자주 산동(山東) 지방에서 수자리를 살게 하였다. 


-맹안모극 강제 탈퇴

금사 병지中
迨夫國勢浸盛,則歸土地、削位號,罷遼東渤海、漢人之襲猛安謀克者,漸以兵柄歸其內族。
무릇 국세(國勢)가 점차 성(盛)함에 이르자, 곧 토지(土地)를 되돌리고 위호(位號/작위와 명호)를 깎아,
요동(遼東)의 발해(渤海)와 한인(漢人)의 이어받던 맹안모극(猛安謀克)이던 자를 파(罷)하고,
점점 병병(兵柄/병권)을 그 내족(內族/여진족)으로 되돌렸다.

금사 병지中
熙宗皇統五年,又罷遼東漢人、渤海猛安謀克承襲之制,浸移兵柄於其國人,
희종(熙宗) 황통(皇統) 5년(1145년)에, 또 요동(遼東)의 한인(漢人)과 발해(渤海)의 
맹안모극(猛安謀克)의 승습(承襲/봉작을 이어받음)의 제도(制度)를 파(罷)하고, 
점차 병병(兵柄/병권)을 그 국인(國人/여진족)에게 옮겨, 

금사 식화지 호구(戶口) 대정(大定) 29년 (1187년) 中
凡漢人、渤海人不得充猛安謀克戶。猛安謀克之奴婢免為良者,止隸本部為正戶。
무릇 한인(漢人)과 발해인(渤海人)은 맹안모극(猛安謀克)의 호(戶)에 충원(充員)하지 못하게 하였다.
맹안모극(猛安謀克)은 노비(奴婢)를 면해주고 양자(良者/양민)로 삼고, 
종을 금하고 본부(本部)의 정호(正戶)로 삼았다.
→ 금사 병지에 따르면 1184년 대정 24년에 등록된 맹안모극은 
    맹안(猛安) 202, 모극(謀克) 1878, 호(戶) 615624 임
    즉, 금의 중후기까지 맹안모극 병력 20만 명임에도 발해인은 철저하게 배제 되었다는 사실

금사 식화지 호구中
十二月,奏天下戶七百六十八萬四千四百三十八,口四千五百八十一萬六千七十九。
戶增於大定二十七年一百六十二萬三千七百一十五,口增八百八十二萬七千六十五。此金版籍之極盛也。
[태화(泰和) 7년 1207년] 
12월에, 천하(天下)의 호(戶) 768만 4438 호, 구(口) 4581만 6719 명을 올렸다.
(이것은) 호증(戶增/호가 증가함)이 대정(大定) 27년(1187년)에 비해 162만 3715 호(戶)이며,
구증(口增/인구가 증가함)은 882만 7615 명이다. 
이에 금(金)의 판적(版籍/호구수를 등록한 서적)이 극성(極盛/가장 융성함)하였다.

→ 즉 1187년에는 호수가 606만 723호이고, 인구수가 3698만 9104명임을 알 수가 있는데
    당시 맹안모극의 호수는 61만 5624 호, 이를 당시 인구수 비율로 따져보면 1호당 6.10명이며
    맹안모극의 총 인구수는 약 375만 7205명으로 추정된다.
    본시 금초 생여진의 군대가 약 2~3만이고, 이를 3000호=1000병사=1맹안 으로 대비하면
    금초 생여진은 20~30 맹안 = 6만~9만 호로 추정되며, 이를 맹안모극의 인구수로 다시 추정하면
    금초 생여진인은 36만 6천 명 ~ 54만 9천 명 정도인데, 
    여기에 숙여진 약 10여 개 부족을 더한다 하더라도, 
    30여 부족 생여진의 총 인구수 36.6만~54.9만의 약 1/3로 잡으면 
    숙여진의 호수는 2만~3만, 인구는 12.2만~18.3만 정도로 계산되며
    이에 따라 생여진+숙여진을 합한 금초의 총 여진인은 총 48.8만~73.2만으로 추정이 되는데,
    약 80년이 흐른 후에 여진족이 번성하였다 하더라도, 
    금조에 여진족과 타종족의 혼인을 금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
    (아직 금사를 다 살펴보진 못하였음)
    그리 큰 인구 증가를 하였을 것으로 보이진 않음.
    즉 맹안모극에는 대부분 여진족+거란족 등이 주축이 되었을 듯한데
    같은 지역적 연관성을 지닌 발해족을 충분히 맹안모극으로 유지가 가능하였을 터인데,
    여진족은 철저하게 발해족을 한족과 동일하게 취급하였음.

→ 철저하게 발해인을 한족화하였음.

금사 희종(熙宗) 본기 中
天眷元年 六月
乙未,詔百官誥命,女直、契丹、漢人各用本字,渤海同漢人。
천권(天眷) 원년(元年/1138년) 6월
을미일(乙未日)에, 조(詔)하여 백관(百官)에게 고명(誥命/임금의 명령)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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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9-03-15 23:41
   
이 사람 도배시러네
     
세트 19-03-17 02:36
   
도배 그넘 참 찌질 추잡하죠 ㅋ
축게서도 어그로짓 잘함 ㅋ
     
위구르 19-03-19 23:19
   
도배님 그새 정지라도 당했나요
감방친구 19-03-15 23:48
   
도둑질이 천성인가벼
참 후안무치하네

길공구님 블로그는 인간의 도리를 알면 언급은 해야지
     
강원도인 19-03-15 23:54
   
길공구님 블로그 https://blog.naver.com/gil092003
개인적으로 이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
출처 안남긴 점 죄송합니다 ^^; 출처 남겨요
          
감방친구 19-03-15 23:56
   
본문에 남기셔야죠
               
강원도인 19-03-16 02:00
   
파온거구
출처 남겼쪄요 ^^
다음에 뵈요
Korisent 19-03-16 09:23
   
ㅋㅋㅋㅋㅋ 이분 웃기네.
관심병자 19-03-16 11:51
   
윗글 5번 이후 내용에 나오는 발해인은,
고영창이 세운 대발해(대원,大元)쪽 출신인것으로 볼수있습니다.
즉, 요나라 내에 살던 발해인이란 거죠.
상식적으로 볼때 발해가 거란에 멸망했다고 발해인이 100% 요나라로 옮겨가 살았을리가 없죠.
어쨌든 대발해 출신은 전투를 통해 금에 편입된 세력이라 신뢰할수만은 없었을겁니다.
인생사 19-03-17 13:40
   
일부를 전부로 왜곡하는 분이네 .
중국인은 미얀마 혈통이다.
일본인은 폴리네시안종이다. 라고 하는것 같네.
     
강원도인 19-03-22 13:31
   
전부 기록되어 있는것을 가져온것입니다.
그리고 유전적으로 한국인은 중국인 일본인  하고 아주 가깝게 나옵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D%95%98%ED%94%8C%EB%A1%9C%EA%B7%B8%EB%A3%B9_O_(Y-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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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65 [한국사] 발해 ㅡ 사서 기록을 통한 홀한성 위치 접근 (9) 감방친구 07-06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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