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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13 22:02
[한국사] 벼농사..탄돌이님 의견 반박에 관한 글 중복일지도
 글쓴이 : revneer
조회 : 1,622  

인류고고학에 의하면 약 1만 3~ 1만 년 전쯤에 빙하기가 끝나면서 구석기시대 역시 끝난다이 시기에 빙하가 녹기 시작하면서 한반도 주변 해수면이 차차 높아져 얕은 바다 서해가 생겨났다. 서해의 평균 수심이 44미터, 발해만의 경우는 더 얕아 평균 수심이 22미터에 불과한데 조수 간만의 차는 커 8미터가 넘는 곳도 있다. 그러한 썰물과 밀물 작용 덕분에 해안가에 거대한 갯벌이 만들어졌다아시아 대륙의 유일한 대형 갯벌인 서해갯벌이 생겨난 이유이다갯벌에 여러 생물군이 번성하면서 사람들이 이를 채취하기 위해 바닷가와 강가의 갯벌과 모래밭 주위로 몰려들어 살게 된다우리의 신석기 유적이 대부분 해안가와 강가에서 발견되는 이유이다
 
구석기시대의 인간은 겨우 사냥이나 식물채집 정도의 기술밖에는 알지 못했다대략 1만 년 전에 신석기시대가 시작하면서 인간은 물가 근처에 움집을 짓고 정착해 갯벌생물 채취와 어로생활을 하는 한편 곡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가축으로 길들여 사육하게 된다바로 이때부터 인류의 문명이 크게 융성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신석기 유적은 해안가와 강가 곳곳에 400개가 넘는다이는 갯벌생물  채취와 어로활동에 몰려드는 사람의 숫자가 크게 늘어났음을 의미한다이 시기 갯벌에서 채취한 조개더미는 해안가와 강가뿐 아니라 내륙에서도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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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살무늬토기
 
일반적으로 신석기시대라 하면 이러한 갯벌채취, 어로활동, 농경과 목축에 의해 식량생산 경제가 전개된 문화를 가리킨다어로와 농경이 시작되면서 생선과 식량을 다듬고 보관하기 위해 간돌(간석기마제석기)과 토기가 만들어졌다간돌은 어로용으로 많이 만들어졌는데 그물추와 낚시축작살 따위가 중심을 이루는데 그물추가 특히 많은 걸로 보아 고기잡이가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서해안에서 발견되는 토기는 동해안에서 발견되는 토기와 달리 갯벌과 모래밭에 박아놓고 쓰기 편하게 대부분 밑바닥이 뾰족한 형태로 만들어졌다우리의 빗살무늬토기가 뾰족밑유형 토기인 이유이다이것이 우리 신석기시대의 표지(標識)유물이다표지유물이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을 말한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세계 최초의 2만 년 전 신석기 유물
 
고고학에 따르면 인류가 최초로 뗀돌(뗀석기타제석기)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약 70만 년 전이다이른바 구석기시대의 시작이다그 뒤 뗀석기에서 간돌(간석기마제석기)로 발전하는 데 무려 69만 년이나 걸렸다. 1만 년 전쯤 간석기를 사용하는 신석기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그간의 정설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후기구석기 유적에서 신석기 유물인 간돌이 여러 점 출토되었다전남 장흥군 신북마을의 후기구석기 유적에서 간돌 7점과 이를 만든 숫돌 2개 등 신석기 유물 20여 점이 발굴된 것이다이 유적은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 1만 8500년 전2만 5500년 전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중심연대는 약 22천 년 전이다.
 
신북구석기유적지는 2003년 국도 2호선 확포장 공사 중 교량 터파기 공사 때 문화층이 드러나면서 우연히 이곳을 지나던 조선대 박물관 이기길 교수가 발견한 것이다그는 공사 중지를 요청한 후 2003년 7월부터 2004년 5월까지 발굴에 들어가 유물살포지 약 4만여 평 가운데 6천 여 평의 부지를 발굴했다. 그 곳에서만 무려 3만여 점의 구석기 유물을 발견했다유적 면적 4만평은 국내 후기구석기 유적 중 최대 규모다또 발굴지 6000평에서 22천 년 전 유물 3만점이 한꺼번에 출토돼 유물 밀도 역시 매우 높았다. (출처장흥신문 2008.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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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 신북마을 신석기 유물
 
발굴된 유물 가운데 마제석기는 도토리 등을 갈 때 쓰는 갈돌 1큰 동물을 자르거나 나무를 다듬을 때 쓴 간돌 자귀 2그리고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홈석기 5점 등이었다홈석기는 돌의 위나 아랫부분 또는 테두리 부분이 홈처럼 파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뭔가를 빻고 곱게 가는 데 쓰인 도구로 추정된다이러한 마제석기들이 대부분 문화층의 중간과 아래에서 드러나서이제까지 타제기법은 구석기시대’, 그리고 마제기법은 신석기시대라는 고정 관념을 재검토해야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리고 신북유적을 중심으로 반경 12㎞ 범위에 20여개의 구석기 유적군을 형성하고 있다또 신북유적에서 발굴된 흑요석의 성분분석 결과 원산지가 백두산 흑요석은 물론 일본 큐슈와 홋카이도 흑요석도 출토되어 신북유적의 후기구석기인들이 백두산 일대와 일본열도와도 교류했음을 보여준다.
 
그간 한반도에서 간돌 유물로 가장 오래된 유적은 1만 2천 년 전으로 추정되는 제주 고산리 신석기 유적이었다따라서 이보다 1만년 앞선 유적에서 신석기 유물이 출토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이는 마제기법이 신석기시대에 들어와 사용됐다는 학계의 통설과 달리 이미 후기 구석기시대에 간석기를 만들어 썼음을 보여주고 있다세계 고고학계는 ‘1만 년 전 신석기혁명을 통해 처음 신석기를 썼다고 보고 있는데 한반도에서 무려 2만 년 전 신석기가 발견됨으로써 ‘1만 년 전 신석기혁명’ 이론을 무색케 했다.
 
2만 년 전 신석기 유물의 의미인류 최초의 농경 시작
 
신석기 유물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사람들이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시작했음을 뜻한다간석기와 토기를 사용하여 어로생활을 하고 농사를 지으며 가축을 기르는 등 식량 생산단계에 접어든 것이다이는 신석기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인간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경제사를 제도발전 차원에서 다룬 공로로 1993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버클리 대학의 더글러스 노스 교수는 1만 년 전 신석기혁명이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큰 변화로 보았다그래서 이를 1차 경제혁명이라고 명명하고산업혁명을 2차 경제혁명으로 보았다.
 
수렵채취 사회는 부족원이 다 같이 사냥하고 채취하여 나누어 먹는 원시 공산사회였다인류의 역사를 250만 년이라고 보면 249만 년 간 평등한 공산사회에 살았다비록 배고픈 평등이었지만 말이다이에 반해 농경사회는 사적재산권을 인정해줌으로써 효율과 생산성을 극적으로 높였다. 그 뒤 사적 소유제라는 유인(誘引)으로 인류가 놀랍게 진보하였다.
 
세계적으로 구석기 유적에서 농경시대의 유물인 신석기 유물이 함께 발굴된 경우는 일본 나가노현 간노키 유적과 히비야 유적 그리고 우리 신북 유적 정도다당시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가 붙어 있을 때였다곧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 최초로 용도에 맞추어 돌을 갈아 쓰기 시작한 사람들이 나타나 이들이 돌괭이와 돌칼 등을 만들어 땅을 파고 야생 곡물을 심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이들에 의해 인류 최초의 농경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에서는 약 기원전 9500년경부터인도에서는 약 기원전 6000년경부터고대 이집트에서는 약 기원전 5000년경부터그리고 중국에서는 기원전 2500년경부터 농경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세계 최초의 쌀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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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 소로리 볍씨유물
                                            
우리의 농경이 일찍 시작되었다는 증거는 또 있다. 과거에 우리 벼농사는 중국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배웠다. 그런데 우리의 쌀농사가 중국보다 앞서 시작됐다는 주장이 있다. 쌀에 관한 한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농사가 시작된 곳이라 한다. 지금은 오창과학산업단지가 들어선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지표조사 과정 중 구석기 유물들과 함께 고대 볍씨들이 발견되었다.
 
당시 출토된 볍씨는 고대벼 18톨, 유사벼 41톨 등 모두 59톨로 확인됐다. 볍씨뿐만이 아니라 이 유적 일대에는 찍개, 긁개, 홈날, 몸돌, 격지 등의 구석기 유물이 넓은 범위에 걸쳐 수습됐다. 출토된 볍씨는 야생 벼가 아닌 재배 벼였다. 고대 우리나라에는 야생 벼가 없었기 때문에 분명한 경작의 흔적이었다.
 
서울대학교의 방사선탄소연대측정 실험과 미국 지오크론시험소 유전자 분석결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1만 3000년~1만 5000년 전의 볍씨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왔던 중국 후난(湖南)성 옥천암 동굴에서 출토된 볍씨보다 2천~4천년이나 앞선 것으로 확인되었다.
 
≪소로리 볍씨≫가 1만 5000년 전의 것으로 판명되자 일부 학계에서 의문을 제기했다. 곧 1만 5000년 전은 구석기말 빙하기 끝 무렵인데 한반도에서 아열대 식물로 알려진 벼가 추운 기후에서 자랄 수 있었을까? 또 그 벼가 ≪야생 벼≫인지, ≪재배 벼≫인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에 대해 국립 작물시험장 춘천출장소에서
냉해실험을 통해 벼가 자랄 수 있는 온도를 실험한 결과, 따뜻한 기후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진 벼가 기후적응을 잘하는 식물로 밝혀져 1만 5000년 전 학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또 볍씨를 분석한 교수들의 연구 결과, 소로리 볍씨는 재배 벼 특징을 갖고 있었다. 2003년도 필리핀에서 열린 ≪세계미유전학회≫에서 소로리 볍씨가 세계 최초의 볍씨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글 | 홍익희 세종대 교수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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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neer 19-03-13 22:03
   
탄돌이님 의견도 일리야 있겠지만 가설이 학설이 되려면

(1) 남쪽에서 신석구 및 구석기 유물이 한곳에 발견되어
    마을이건 도시건 사람들이 모여살면서 기술이 발전했다는걸 증명해야하고
    (농사꾼의 이동이 아니여야하므로)

(2) 국립 작물시험장 춘천출장소에서 냉해실험을 뒤집어야

학계에서 인정을 받을수있을거같은데..맞나요????
일단 2번은 둘째치고라도
1번이라도 먼저 발견된후 주장하시는게 맞지않을지요
revneer 19-03-13 22:03
   
다잇글힘 19-03-13 22:30
   
참고로 아래에 언급된 이융조 교수는 바로 소로리 볍씨를 발굴하고 세상에 알린 인물
학계의 권력다툼이니 뭐니 이런 얘기는 이젠 좀 안나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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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리 고대벼도 1만2500년 전 것” 확인.."연대논란 해소"
http://scienceon.hani.co.kr/?document_srl=78154

선사시대 생활 보려면 유사벼도 중요…관심 확대 필요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

”그동안 소로리 벼의 연대 측정이 토탄과 유사벼 중심으로 이뤄져, 왜 고대벼의 연대 측정은 하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는데, 이번에 고대벼의 연대 측정 결과에서도 토탄과 유사벼의 기존 연대 측정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 제기에 대해 우리로선 논문을 통해 답을 한 것이다.

그동안 소로리 볍씨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불리며 영국 비비시(BBC) 방송에서도 크게 보도했는데, 사실 이런 표현은 중요하지 않다. 벼가 한반도에서 기원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 발굴되고 보고된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의미일 뿐이다. 소로리의 작은 면적 발굴지에서 이처럼 선사시대의 볍씨들이 나왔다면 동남아시아 어디에서도 고대 볍씨는 발굴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더 흥미롭게 보는 더 중요한 점은 유사벼이다. 고대벼도 중요하지만 유사벼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 발굴지에서 나온 유사벼와 고대벼의 비율을 보면 6 대 1 정도 된다. 더 깊게 파도 유사벼가 많이 나온다. 이건 뭘 말해주나?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에서는 고대벼보다 유사벼가 훨씬 더 중요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유사벼가 선사시대에 관해 더 많은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당시에는 추웠다가 따뜻해지는 시기이니, 유사벼는 내한성을 갖춘 벼의 종이었을 것으로 본다. 긴 시기에 걸쳐 고대벼가 점차 우세해지고, 그 고대벼가 현재의 우점종인 자포니카 계통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유사벼는 한반도의 벼 기원 연구에 더 중요하며, 당시 사람들의 농경 생활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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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리볍씨 비해 가와지볍씨는 확실한 재배벼
http://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35644

이융조 교수 “재배벼 단정할 수 없다”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은 “청원 소로리 볍씨는 고대벼의 소지경 형태는 야생벼의 길쭉하고 뾰족한 것과는 다르게 짤림이 잘 되지 않았다. SEM 촬영결과 외부의 힘에 의해 잘라진 특징이 관찰되어, 재배벼의 특징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융조 이사장은 “청원 소로리 볍씨는 그동안 1만3920bp(before present)의 연대값을 기초해 ‘약 1만5000년 전’으로 발표했으나, 이를 다시 미국 캠브리지대의 세계 공용 측정프로그램으로 계산한 결과 BC 1만5118년전으로 밝혀져 그 연대를 ‘약 1만7000년 전’으로 수정한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또한 “지금까지는 학명없이 ‘소로리볍씨’로만 불렀으나 ‘Oryza sative coreaca(오리자 사티바 코레아카)’ 즉, ‘한국의 고대벼’ 라는 학명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이융조 이사장은 청원 소로리 볍씨에 대해 “재배벼의 특징은 가지고 있지만 재배벼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단지 재배벼 이전 단계인 ‘순화벼’라는 명칭을 청원 소로리 볍씨에 부여했다. 이 이사장은 “소로리 볍씨의 연대가 1만7000년 전으로 측정된 것, 아생벼와는 다르게 인위적으로 보이는 소지경의 절단면이 SEM으로 관찰된 점, 토탄 출토지점 옆에서 많은 구석기유물이 출토되고 있는 점 등 반재배단계와 초기 농경단계 사이의 순화가 진행되고 있었던 벼라고 생각된다. 즉 소로리 볍씨는 한국 재배벼의 조상이며,순화초기의 벼라고 보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탄돌이2 19-03-13 22:39
   
눼~눼~
한반도 야생벼를 나한테 갖고 오세요.
야생벼 하나에 위 모든 거짓이 붕괴 됨.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79041

씨는 못 속인다는 속담..... 이렇게 잘 맞는 경우도 없죠.
     
revneer 19-03-13 22:48
   
님아 아무리 주장해도 남쪽에서 신석구 및 구석기 유물이 한곳에서 발견되지 않으면 학계에서 인정안될거 같은디요.
     
revneer 19-03-13 22:51
   
그리고 님의 사진은 여러 야생벼중에 하나인거같은데.. 아시아의 야생벼가아닌 아프리카쪽 야생벼인걸로 아는데요
강원도인 19-03-14 00:36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북방 한족 그 다음은 일본인 하고 가장 가깝네요
만주족과 몽골인은 고작 3% 가깝게 나왔습니다
     
다잇글힘 19-03-14 01:09
   
만주족은 y염색체 하플로,미토콘트리아 하플로 모두 비교했을때  한국인과 가장 가까운 주변민족입니다.

미토콘드리아 하플로 기준으론 가장 가까운 순이 조선족,만주족,일본인 순입니다. 몽골족은 생각보다 먼 편입니다.

y염색체 하플로 기준으론 북방계와 남방계가 동시에 나타납니다. 북방계 특징으론 만주족과 남방계 특징으론 베트남이나 묘족과 가까운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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