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을 규정하는데 있어 우리말 한글은 그 중심에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어의 언어학적 위치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전통적으로 언어학자들은 언어들 사이의 유사성에 기반하여 서로간의 친연성을 밝혀내고 하나의 그룹으로 묶는 비교언어학을 탄생시켰다.
이 학문에 의하여 우리말은 알타이어군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 우리말은 어떤 어군에도 속하지 않는 고립어로서 세계 모든 언어의 모태가 되고 있다는 주장이 늘어간다.
이는 비교언어학의 탄생 동기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학자들은 산스크리트어가 유럽어의 모태라고 주장하는 데 최근의 연구결과 산스크리트어가 우리나라 경상도나 전라도의 방언과 더 친연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한반도와 인도와 유럽의 언어 이동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먼저 규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된 까닭은 언어학자들이 유럽 우월주의에 빠져 인류의 이동을 먼저 고려하지 않고 그들의 선조라고 주장하는 아리안을 문명의 전파자로 세우고자 하는 인식에 기인함이 크다 하겠다.
인류의 이동은 유전자 분석결과 아프리카 기원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으나 최근에 발견된 발해만의 금우산인(金牛山人)이 약28만년전의 직립인간으로서 몽골인종의 고유특징을 갖고 있기에 동양 인종을 아프리카 인종으로 분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또한 헬리코박터 파이로이균으로 인류의 이동을 조사한 결과 다른 지역은 혼혈의 흔적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으나 한국인만은 유일하게 순혈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로 보아 인류의 이동은 서로는 한반도에서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동으로는 아메리카 대륙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이나 각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얽혀 있어 많은 시간이 지나야 정리가 가능할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언어의 이동은 통계적 접근방법을 통하여 그 뿌리를 찾아가는 작업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
밈(Meme)이라는 용어가 있다.
유전자 진(Gene)이라는 용어에 대응해 어떤 행동을 전달하는, 의미를 가리키는 단위, 의사소통의 단위를 가리키기 위해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이다.
미국 뉴멕시코주 산타페에는 복잡계 분야 연구를 위한 산타페연구소라는 곳이 있다.
산타페연구소에서는 러시아 모스크바대학 인문학연구소와 공동으로 인류의 공통된 초기 언어를 찾아내는 바벨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이 프로젝트는 산타페연구소장을 지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머레이 겔-만과 세계적 비교언어학자인 세르게이 스타로스틴이 만든 인류의 언어진화연구 프로젝트로서 밈과 진에 대응하는 포님(Phoneme)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세계 8개 대학이 참여했고 조지 소로스가 후원을 했다.
미국의 언어학자인 노암 촘스키에 따르면 포님은 "the smallest contrastive linguistic unit which may bring about a change of meaning"이라 하였으니 의미 변화에 대해 알아낼수 있는 가장 최소의 대조언어(對照言語) 단위 정도로 이해된다.
그들은 어휘통계학(lexicostatistics)의 방법론을 이용하여 세계 모든 인류가 사용하는 잘 변화하지 않는 50개의 초 안정적(ultra-stable) 포님을 비교 분석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여 언어들 사이의 기초적 관계를 구축하고 다른 언어학적 특성들, 가령 음성학적 특성(phonetic characteristics) 및 몇 가지 요인을 고려해 언어들 사이의 관련성을 복잡계학적 방법으로 재구성해 냈다.
이를 미국 국립과학회보(PNAS)에 이런 방법을 사용하여 극히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포님 23개를 선택하여 분석하고, 우랄어-인도-유럽어-알타이어 등이 근접하게 위치한다는 것을 보고하였다.
1996년 알란 봄하드와 일단의 언어학자들은 인도유러피언어의 재구방식을 통해 15,000~12,000년전 유라시아대륙에 존재했을 고대어의 재구방법을 확립하고 이 언어를 노스트라틱 랭귀지(Nostratic Languages)라 불렀다.
노스트라틱(Nostratic)이란 말의 어원은 라틴어로 '우리의'의 뜻을 가진 noster에서 왔으며 덴마크 학자 홀게르 페데르센(Holger Pedersen)이 만든 신조어로서 고대언어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게 된다.
이러한 노스트라틱어가 마침내 러시아 언어학자 세르게이 스타로스틴의 주도하에 산타페연구소내에 바벨프로젝트라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되었다.
곧이어 이 노스트라틱어의 발원지와 그 주인공들에 대한 열띤 논쟁이 벌어지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인류 4대문명의 모태가 되는 최초의 문명지 인도유럽인들의 고향 '우르하이마트'에 대한 논쟁이었다.
우리는 쌀이 유라시아에서 sar, sor로 통용되고 최초의 토기 그릇이 gurat, klat 등으로 재구되며, 개가 ki, ke, ku 등으로 재구됨을 발견할수 있다.
이 단어들은 인류 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어휘들이며 그 기원은 수메르나 이집트가 아니다.
그렇다면 1만년전의 노스트라틱어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현재까지 알려진 세계 최초의 볍씨는 충북 청원군 소로리에서 발견된 볍씨로서 약 1만 5천년전의 것이다.
소로리 볍씨는 재배종으로서 자포니카종과 인디카종이 섞여 있으며 중국 호남성에서 발견된 것 보다 5천년 이상 앞서 있다.
그러니 현재까지는 소로리 볍씨가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벼들의 어머니라 할수 있다.
그릇은 인류의 정착생활을 보증하는 증거물이다.
따라서 토기의 역사는 인류 선사문명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전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토기는 일본 죠몽토기로서 약 12,000년 전의 것이다.
그런데 2001년 러시아과학원 시베리아 선사고고팀은 만주 아무르강가 시카치 알린 유역에서 13,000년 전에 육박하는 고 토기들과 함께 화려한 문양의 신석기시대 토기군을 발견하여 고고학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것은 그 아무르토기들이 제주도에서 발굴된 1만년전의 고산리토기와 소재나 제작유형에 있어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주와 제주, 일본을 잇는 토기의 흐름을 볼 때 그릇이라는 말이 과연 어디에서 출발한 것인지 짐작할수 있을 것이다.
2002년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는 전세계 과학자들과 애견가들에게 폭탄과 같은 논문을 한편 게재한다.
이제까지 서구 학계가 믿어 의심치 않던 개의 최초 사육지가 메소포타미아가 아닌 극동 아시아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논문의 저자 스웨덴 왕립 학술원의 피터 사볼라이넨 박사는 전세계 개의 유전자 추적을 통해 모든 개의 조상은 지금으로부터 15,000년 전의 동아시아 늑대를 길들인 견종에서 비롯되어 전세계로 확산 되었음을 밝혀낸 것이다.
개는 인류가 최초로 가축화한 동물이며, 가축화란 바로 인류가 정착과 집단생활을 영위했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사볼라이넨은 개를 처음 사육한 동아시아에 당시로서 고도의 문명이 존재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증언한다.
개는 켈트어군에서 키(ci), 라틴어로 카니(cani), 수메르어로 쿠(ku)라 불려졌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에서 개를 처음 사육하고 그릇에 벼를 담아 세계로 이동하며 문명을 전파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아주 쉽게 떠올릴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캐나다 심리학교수인 스티븐 핑커 (Steven Pinker)가 그의 저서 'The Language Instinct'에서 밝힌 한국어의 견해가 흥미있어 소개해 본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몇몇 언어학자들이 그중 하나 또는 둘 다를 알타이어족으로 묶기도 하나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고아처럼 보인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대개 얼굴 모습과 피부색을 근거로 몽골 또는 동양인종으로 판단되는 사람들이 그 어떤 생물학적 실재도 가지지 않을수 있다는 점이다.
카발리-스포르차의 유전자 가계도에서 한국인과 일본인, 시베리아인 같은 북동 아시아인들은 중국인이나 타이인 같은 남아시아인들 보다 유럽인에 더 가깝다.
이렇게 몹시 애매한 인종분류가 한국어와 일본어 및 알타이어를 중국어가 속해 있는 한장어족과는 별개인 노스트라틱어 내의 인도유럽어족으로 분류하는 애매하기 그지없는 언어학적 분류와 일치한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여기에서 알수 있듯이 그들도 이제는 한국어를 인도유럽어족으로 분류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눈치챌수 있을 것이다.
이쯤되면 그들도 이제 정체성에 혼동이 오고 있다는 징조로 받아 들여진다.
어떡하든 극동과 유럽을 잇긴 이어야 겠는데 그 단초를 그들에게서 찾을려니 도저히 찾아지지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그저 언저리에서만 맴돌고 있는 것이리라.
이 글은 백운이 평소 존경하는 솔본님의 의견을 많이 담았다.
솔본님은 백운을 역사에 눈 뜨게 해주신 분이기에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그분의 의견을 많이 보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