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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06 19:50
[기타] 몽골제국 4칸국 수립과 고려·중원·세계와의 관계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262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18005

-전략-
이 보돈차르, 곧 <역사모음> 속 보잔차르는 보카와 보카다이 두 형제를 얻었다. 둘 중 보카의 손자, 곧 알란 고와의 4대 손인 카이도(海都) 시절에 그의 9형제는 키타이(Kitay) 군대의 습격에 내몰려 도망친 잘라이르(Jalair, 야라이, 야라, 함흥) 종족에게 몰살을 당했다. [키타이는 문자 그대로 원래 거란(契丹)을 뜻하며 오늘날 러시아어·우즈베키스탄어·카자흐스탄어 등 투르크 여러 민족의 언어에서 우리가 ‘중국’이라고 잘못 부르는 ‘차이나(PRC, 중공)’도 뜻한다. 단 810년 전<몽골비사>와 700년 전 <역사모음> 시절에는 거란(키타이)을 쳐부순 금나라와 고려 북방 지역도 가리킨다.]

이 참살에서 9형제 중 오직 한 형제인 카이도만이 살아남아 5촌 당숙인 나친(우리말 ‘羅津’에서 온 이름) 바아타르에게 구조를 받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른 잘라이르 종족의 일원들은 자기 종족원 일부가 카이도 9형제에게 저지른 이 부당하고 참혹한 죄악 행위를 알고 나서 속죄와 배상의 뜻으로 죄인들을 카이도와 나친에게 속민으로 나눠줬다.

이들의 도움 덕분에 당숙 나친과 함께 카이도는 오늘날의 우리 땅을 영원히 떠나 러시아령 부랴티아 공화국의 바르구진 투쿰으로 갔다. 그들은 우리가 몽골과 부랴티아라고 부르는 지방으로 이주해 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카이도가 살던 원래의 땅인 우리 땅 북방에서는 거란과 조션, 또 고려 사이에 자주 전쟁이 터졌기 때문이다.

단 이 둘의 선조 세 지파 중 두 지파인 예키라스와 콩그라트 지파는 오늘날 북한의 평북, 함북 및 함남 지방과 압록강을 좌우로 한 요녕골(遼寧省) 심양(沈陽) 방면에서 계속 남아 살았다. 이들이 훗날의 콩그라트 종족과 금(金)나라 태조 아골타(阿骨打) 선조의 마을이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한다.

바로 저 먼 땅 바이칼의 바르구진 투쿰에 정착한 카이도의 대손이 바로 칭기즈칸이다. 카이도 일행 오늘날 우리 땅 북한을 말하는 당시의 조션 땅을 떠나 저 멀리 부랴티아와 몽골리아의 헨티산(山)으로 가서 살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6대 후 칭기즈칸은 오늘날의 몽골리아에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카이도의 6대 후에 ‘미래의 칭기즈칸’ 테무친이 오논강의 상류 부르칸 칼둔산 어귀 델룬 볼독에서 1162년 태어났다.

테무친의 증조할아버지는 카불칸(커부려 왕)이라는 칭호를 가진 이다. 이 칭호를 보면 테무친은 족장 가문의 자손이다. 다만 할아버지가 바르탄 바아타르(부여땅 막하돌), 아버지가 예수가이 바아타르(9가 막하돌)라는 이름(사실은 칭호)을 가진 것으로 볼 때, 할아버지 때부터 칭기즈칸의 가문은 족장을 보좌해 부족의 군총사령관 역할을 했다.

테무친의 아버지 예수가이 바아타르는 테무친이 아홉 살 때 아들을 고구려-발해의 관습에 따라 데릴사위로 주기 위해 어머니의 고향인 올코누트 지방으로 갔다. 그러다 오늘날 남몽골(내몽골) 훌룬-부이르 호(고려-부여호)에서 콩그라트(큰고려=고구려) 종족 부락에서 이 부족의 족장인 데이 세첸과 당시 10세였던 그의 딸 부르테 우진(부여 대씨 부인)과 조우했다.

첫눈에 ‘눈에 불꽃이 도는’ 총명한 테무친을 보고 마음에 들어한 데이 세첸은 예수가이에게 자기 집에 머물도록 하고 딸과 혼인하도록 제의했다. 예수가이도 데이 세첸의 딸 부르테가 마음에 들어 아들과 혼인시키기로 결정하고 테무친을 데릴사위로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때 그는 “사돈어른, 내 아들은 개를 무서워하니 개를 멀리해주오”라고 부탁한다. 미래의 ‘세계 정복자 칭기즈칸’은 나이 9세가 되도록 강아지 한 마리조차 무서워한 평범한 아이였다.

돌아가는 길에서 예수가이는 불행히도 타타르 종족의 마을에 이르렀다. 몽골 부족과는 오랜 원한 관계를 가진 이 타타르 종족은 적의를 숨기고 그를 잔치에 초대했다.

방심한 예수가이가 그곳에서 음식을 얻어먹을 때 타타르 종족은 독을 탄다. 이 음식을 먹은 예수가이는 고통을 안은 채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뭉릭 에첵에게 아내 허엘룬과 아이들을 돌봐줄 것을 당부한다. 이어 그에게 테무친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데려오라고 하고는 끝내 숨을 거둔다.

다음 족장감으로 지목되던 아버지가 죽자, 몽골 부족 내 아버지의 경쟁자였던 타이치우드[우리말로 다이씨, 곧 대씨(大氏) 지파의 타르고타이(우리말로 대가씨)]는 모든 문중의 부족원을 제 휘하에 포섭한 뒤 테무친 가족을 버리고 떠난다.

이때부터 홀몸이 된 어머니 허엘룬 에케는 갖은 고생을 하면서 혼자 테무친 4형제와 누이 테물룬을 키운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자식 돌보기 덕분에 테무친은 청년이 됐다. 이때 그는 어린 시절 정혼했으나 자기 부족의 마을에 두고 온 콩그라트 종족의 부르테를 찾아가 정식으로 아내로 삼는다.

그러나 어느 날 옛날 허엘룬 에케를 예수가이 바아타르에게 빼앗긴 원수를 갚으러 온 그녀의 원래 남편 예케 칠레두(우리말로 대씨 칠두로 보임)의 부족인 고르반 메르기드(3말갈 종족)이 테무친의 마을로 쳐들어와 허엘룬 대신 아들의 부인인 부르테 우진(부인)을 납치해 간다.

이 같은 불행한 일을 당한 테무친은 케레이트 종족의 옹칸(完顔=王)과 자신의 안다(맹세한 벗)인 자무카의 힘을 빌려 부르테를 찾기 위한 전쟁을 벌였다. 아버지의 안다로 예수가이가 세상을 등진 뒤 테무친은 비록 다른 부족이지만 케레이트의 옹칸을 아버지처럼 모시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의 도움을 받아 테무친은 메르기드 종족을 섬멸하고 그 종족을 몽골부의 속민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테무친이 치른 최초로 전쟁이다. 주목할 점은 그는 이른바 ‘메르기드 정복전’을 먼저 상대방을 공격해 일으킨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 아내인 부르테 우진을 납치해간 메르기드 종족에 대한 부르테 탈환전이자 징벌전이었다.

그 후 얼마 안 가 그는 자기 문중 21개 지파 사람들한테 문중 마을인 몽골부의 족장인 ‘칸’으로 추대됐고, 자기 아명인 ‘테무친’을 대신해 칭기즈칸이라는 왕호를 얻었다.

이때부터 칭기즈칸은 메르기드 잔당, 타이치우드, 나이만, 케레이트 등 당시 오늘날의 몽골리아에 살았던 9개의 모든 부족을 차례로 통합한다. ‘세계 정복’의 서막 격인 ‘몽골 통일’이 이뤄진 것이다.

주목할 점은 <몽골비사>와 <역사모음>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알 수 있듯, 이 일련의 전쟁은 칭기즈칸이 자기 부족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사전에 계획해 하나하나 치른 전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 몽골의 부족을 통일로 이끌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곧 그는 자신이 먼저 상대방을 공격하는 그런 ‘정복전’을 일으킨 것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 부족과의 전쟁은 아내인 부르테 우진을 납치해간 메르기드 종족에 대한 부르테 탈환전이자 징벌전처럼 다른 부족들이 먼저 칭기즈칸의 몽골부를 침공한 것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칭기즈칸은 처음에는 후퇴하다가 마침내 뒤돌아 서서 반격한다. 그 결과 이들 전쟁에서 하나하나 승리하면서 마침내 모든 부족을 복속한다.

몽골고원 부족들의 통합 이후 칭기즈칸은 <선별된 역사(Tarikh-i gojide)>에 따르면, 이때 처음으로 몽골이라는 땅과 나라 이름을 붙였다. 그전에 이 땅은 당나라-오대 시절에는 돌궐(突厥)=투르키스탄, 거란의 요대에는 <요사(遼史)>의 조복(阻卜), 곧 우리말 ‘수풀(森林) 나라’ 땅의 몽골어 음변인 ‘주부르(Jubur)’라는 말을 한자로 쓴 조복(주부르)으로 불렸다.

이 땅에 그가 붙인 새 이름 몽골의 어원에 관해 오늘날의 몽골 학자들조차 그 뜻이 몽골어 멍거(銀)에서 왔거나, 퉁구스어의 망가(manga, 용감한)에서 왔다고 보는 등 의견이 엇갈린다.

그런데 이 몽골은 사실 칭기즈칸이 자신의 선조 가문의 나라인 진국(震國), 곧 발해(渤海)의 최초 마을 이름이었던 말갈의 후손이라는 뜻에서 붙인 국명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말갈이라고 읽는 이 말은 당시 소리로는 ‘아래 아’ 소리인 몰골이고, 이는 ‘말 키우는 고을’을 뜻하는 우리말 한자 표기다. 테무친은 자기 당시 땅 이름도, 사라진 그 땅에 다시 우리 발해-말갈어 몰골(말갈), 곧 몽골어 음변으로 오늘날의 몽골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나라 이름을 붙인 것이다.

테무친은 자신의 어릴 적 이름도 거두고 이제 칭기즈칸을 왕호로 삼았다. 테무친이라는 이름에 관해 오늘날 대부분의 몽골인 학자는 ‘철인(鐵人)’이라고 푼다. 그러나 이는 <원사>는 그 뜻이 ‘무공을 가리키는(志武功) 말’이라고 한다. 곧 테무친은 말 소리와 같은 소리를 지니고 또 이 <원사>가 기록한 의미와 같은 뜻을 가지는 고구려 제3대왕 대무신왕(大武神王)의 이름을 땄다. 자신의 선조가대무신왕이라는 주장이다.

이 어릴 적 이름 테무친(鐵木眞=大武神)을 버리고 그는 진국왕, 곧 발해왕이라는 뜻의 몽골어 음변인 칭기즈칸(成吉思汗)을 왕호로 삼았다. 발해는 ‘길하게 된다’는 뜻이다. 마치 ‘코리아(Korea, 진국)는 위대해진다’는 뜻과 같은 기원이 담겼다. 자신의 선조의 뿌리에 따라 새로운 몰골(말갈), 곧 발해의 수립을 선포하고 자신을 새로운 발해왕이라고 선포한 것이다.

테무친은 자기 나라를 자신의 선조 고려(고구려)-발해라는 국명에 따라 고려라 불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1206년 당시 몽골 동쪽의 만주를 넘어 왕건의 후손이 다스리는 고려(高麗)가 918년 이래 300년 가까이 존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국명과 혼동되는 것을 피해 그것을 채택하지 않은 것이다.

그 대신 자신의 뿌리가 고구려 부속 변경 7개 군(郡)인 ‘몰골(말갈) 칠부(七部)’ 중 백산말갈(白山靺鞨)과 속말말갈(粟末靺鞨)의 군왕(郡王) 가문이었다는 점에서 커구려(고구려)의 한 지방인 몰골(말 고을, 靺鞨)을 따 몽골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러므로 칭기즈칸이 붙인 ‘커커 몽골’은 ‘커가 몰골(대씨 말갈)’, 예케 몽골은 대(씨)몽골, 곧 새로운 대발해의 탄생이다.

칭기즈칸은 몽골고원의 통일 이후 동방에서는 우선 이들 부족 중 나이만과 케레이트 잔당 등을 지원하던 서하(西夏)를 쳐서 복속시켰다. 이어 나이만의 협력자들이었던 위구르의 왕(이디쿠트)이 제 발로 복속해왔다.

그러자 칭기즈칸은 이제 자신의 증조인 카불칸과 종증조 함바가이칸을 살해하고, 당시 종주국으로 행세하며 가혹한 조공을 요구하던 금나라(金國)에 원수를 갚고자 1211년 이를 쳤다.

<원사(元史)> ‘권1 본기 제1 태조’에는 위왕(衛王) 윤제(允濟)와 칭기즈칸의 첫 만남과, 나중에 윤제(允濟)가 금나라의 황제가 됐을 때 칭기즈칸이 그에게 도전한 유명한 일화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처음 칭기즈칸이 세폐(歲幣)를 금나라에 공물로 들일 때 금 임금은 위왕(衛王) 윤제(允濟)를 보내 공물을 정주(淨州)에서 받았다. 칭기즈칸이 윤제가 예의가 없음을 보았다. 윤제가 돌아간 뒤 칸은 군대를 불러들여 그를 치려고 했다.”

금나라 제6대 임금 완안경(完顔璟, 1189~1208년)이 세상을 떠나자 윤제가 금나라 임금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몽골에 조(詔)를 내려 새 황제에게 조하(朝賀)를 하러 오라고 했다. 그러자 이미 몽골의 칸인 칭기즈칸은 금나라 사신에게 “새천자(新天子)는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사신이 “위왕이다”고 답했다. 그러자 칭기즈칸은 대번에 남쪽을 향해 침을 뱉으며 말했다. “나는 중원의 황제는 천상인(天上人)들이 돼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따위의 못난 놈이 황제가 될 줄 몰랐다. 그렇다면 내가 어찌 절을 하겠는가?” 하고는 북으로 말머리를 돌려버렸다.

금나라 사신이 돌아가 이 사실을 윤제에게 말하니, 윤제는 화가 나 칭기즈칸이 다시 공물을 들여올 때를 기다려 들어오는 즉시 그를 죽이려고 했다. 칭기즈칸은 이 사실을 알고서 금과 절교하고 날랜 병사들을 보태어 방비를 했다. 금 황제를 과감히 무시한 칭기즈칸은 곧 금나라에 대한 공격을 본격화했다.

한편 칭기즈칸은 서방으로는 자신의 친선의 사절단 450명을 몰살하고 재물을 약탈한 무하마드 호라즘샤와 그 아들 잘랄 웃딘을 쳤다. 이름하여 호라즘샤 제국이다. 이 제국은 서구와 동방 사이에서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드를 수도로 삼고 이란 등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과 인도 북부, 서쪽으로는 아라비아와 시리아 등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다.

김호동 등이 옮긴 르네 그루쎄(Rene’ Grousset)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가 보여주는 이 전쟁의 계기는 다음과 같다.

“호라즘샤의 나라에서 온 세 명의 상인이 돌아갈 때 칭기즈칸은 ‘카툰, 왕자, 아미르들은 각자 자기 휘하에서 두세 사람을 선발해 금·은 발리시를 주고, 그들과 함께 술탄이 통치하는 지방으로 가서 교역해 그 지방의 보배와 진귀품들을 구해 오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 이제 내게 가까운 변경에서 적들이 일소됐고 모두 복속했으니, 우리 양측의 관계는 견고하오. 지혜와 용기에 근거해 양측은 협력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오. 사건이 생길 경우에는 반드시 서로 도움과 지원을 주도록 하고 도로의 위험에서 마음을 놓게 해줍시다. 그래서 왕래를 통해 세상의 번영을 가져다주는 상인들이 마음놓고 올 수 있도록 합시다. 우리의 연맹을 통해 이후로는 불안을 일으키는 근원이 사라지고 분쟁과 반란을 부추기는 요인이 끊어지도록 합시다.”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면 그야말로 평화와 친선과 자유무역지대(FTA)의 창설을 제안한 셈이다. 호라즘샤 제국 황제 술탄 무함마드에게 오트라르 지방 군주인 가이르칸은 칭기즈칸의 외교·무역 사절단이 도착했다는 전갈을 전했다. 그러자 술탄은 법학자들의 의견에 따라 자기 왕국에 온 그 사절단의 무슬림들을 즉각 살해하고 그들의 물건을 빼앗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단 그들 중 살아남은 한 사람이 도망쳐 칭기즈칸에게 사건의 전모를 알렸다. 자신의 평화와 친선과 자유무역지대의 창설을 거부하고 자신의 외교단을 몰살시킨 술탄 무함마드의 행위에 격노한 칭기즈칸은 술탄에게 사신을 보내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날로 강대해지고 있던 호라즘샤의 술탄은 콧방귀도 안 뀌었다. 이에 격분한 칭기즈칸은 이 호라즘샤 제국을 공격해 나라를 거의 초토화했다.

나아가 이들이 도망하던 길을 따라 캅카스·러시아·인도 북부·이란 등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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