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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06 18:35
[기타] 칭기즈칸의 선조 지파(支派) 부랴트 3종족의 기원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213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17661

지난 7월호에서 우리는 칭기즈칸과 몽골종족의 선조 이야기를 했다. <집사>의 ‘황금항아리’, 곧 <시바니의 서>의 ‘황금의 칸’은 <고려사>의 금행(金幸)이다. 그의 세 아들 중 차남이 <금사>가 반안군(완안부) 복간수(함북 길주)로 떠났다는 함보(函普)다. 그의 삼남이 <금사>가 야래(함남 함흥)로 갔다는 그 아우 보활리(保活里)다.

이 두 인물 각각의 손자들인 칼지다이와 바르가 바아타르는 후고구려 왕 궁예(弓裔)의 정권에 참여했다. 이 중 칼지다이는 우즈베키스탄 콩그라트 왕조의 정사 <행운의 정원>에 칼지다이 칸(Qaljiday Khan)으로, 또 <고려사(高麗史)>에서는 아지태(阿之泰, 당시 소리 ‘카지타이’)로 기록됐다. 오늘날 우리말로 클씨씨(乞氏씨)라는 이름이다.

보활리의 손자는 부랴트 구비역사서 <부랴트 역사의 글 제2권>에 바르가 바아타르(Barga Baatar)로 적힌 인물이다. 오늘날 우리말로 ‘발해(渤海) 막하돌(莫賀咄)’, 곧 ‘발해 말갈 추장’이라는 뜻이다.

함보와 보활리의 누이인 용녀와 왕건의 조부인 작제건이 혼인해 용건을 낳았고, 그 용건의 아들이므로 아지태와 ‘발해 막하돌’ 두 사람에게는 6촌 고종 형제 사이인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궁예(弓裔)에 대항해 궁정혁명을 일으키자, 이 두 인물은 궁예 편에 섰다.

그러나 궁예가 성난 백성들에게 강원도 부양·부여(夫如)에서 잡혀 죽자, 그들은 궁예의 시신을 안고 당시 발해의 등주(오늘날 함남 안변)로 가 궁예의 시신을 묻고 북으로 향했다.

바르가 바아타르가 궁예의 왕성 철원에서 북으로 간 것에 관해 <부랴트 역사의 글 제2권>은 지난번에 본 바와 같이 바르가 바아타르는 카라 바다(Khara dalay, 고려 바다=발해=서해) 기슭의 커다란 전쟁(왕건과 궁예 사이의 궁정혁명) 때문에 그곳을 떠나 바이칼로 갔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주요 언론사와 일부 강단 및 재야학자들이 우리 민족의 시원이 바이칼호라거나 부랴트족에서 고구려 주몽이 나왔다는 입증할 근거가 없는 설을 서적이나 인터넷·신문·잡지를 통해 퍼뜨리고 있지만 역사의 방향은 거꾸로였다.

이 바르가 바아타르는 <코리-부랴트 11선조의 뿌리에 관한 족보 이야기> 속에서는 바르가 바아타르 타이상 노욘(Barga baatar Taisang Noyon)’으로 기록됐다. 이는 우리 발해-(후)고구려의 관칭으로 ‘발해 막하돌(莫賀咄=말갈왕) 대상(大相=총리) 랑(郞=족장)’에 대응하는 부랴트-몽골어 음변(音便)이다.

바르가 바아타르는 오늘날 바르구진 토쿰(우리 말갈어의 발해진 대군(渤海津 大郡)의 부랴트어 음변)이라고 알려진 곳에 정착해 두 아들을 낳았다. 큰아들 부랴다이에게서 태어난 두 아들 에히레드와 볼가드는 각각 에히레드 부랴트(약라=고구려 부려씨), 볼가드 부랴트[강원도 부여(夫如) 관향의 부여씨]의 선조가 되고, 코리 메르겐은 코리-부랴트(고려-부여씨) 종족의 선조가 돼 이들은 부랴트 3종족의 선조가 됐다.

이 세 씨족 지파 가운데 코리-부랴트의 시조인 코리 메르겐(고려-말갈)은 지금으로부터 약 800년 전인 1240년에 기록된 <몽골비사>에서는 코리-라르-다이 메르겐(고려-나라-씨 말갈)으로 기록됐다.

여기서 ‘메르겐’은 <금사 제36백관1(金史志第三十六百官一)>에 따르면 금나라 말에서 “一國의 官長은 모크리(勃极烈)라고 하고” “部長은 메르겐(孛堇)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 칭호는 오직 종실(宗室)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칭호로 같은 어원인 우리말 ‘말갈, 무구리’에서 나와 몽골어 ‘메르겐’으로 파생돼 쓰이게 된 낱말이다.

그는 <몽골비사>에 따르면 그 바르구진 토쿰 땅의 군장인 바르구다이 메르겐(발해씨 말갈)의 딸 바르구진 고아(발해진 걸가)와 혼인했다. 이들 사이에서 난 외동딸이 오늘날 ‘모든 몽골인의 어머니’로 불리는 칭기즈칸의 10대 조모 ‘알란 고아(Alan-Goa)’다. <코리-부랴트 11선조의 뿌리에 관한 족보 이야기>는 바로 이 여인의 10대손이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칭기즈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부랴트 3종족이 생긴 유래에는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전설이 있다. 스스로 바르가 타이상 노욘(발해 대상 랑)의 후손으로 자칭하는 오늘날 바이칼호 주변 부랴트 공화국의 부랴트(Buryaad)인들은 자신의 조상이 누구였으며, 어떻게 자기들 부랴트 3종족이 생겼는지 전승을 통해 유래를 알려준다. <셀렝게의 몽골-부랴트인들의 역사>다.

이 사서에는 <완단 윰순노브가 1875년에 지은 족보의 일부-코리의 11선조의 뿌리에 관한 이야기>와 <부랴트 역사의 글 제2권>에 각각 나오는 ‘바르가 바아타르 타이상 노욘과 바르가 바아타르라는 그의 관칭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 말갈어로 ‘커가 보고(乞哥保皐, 대씨 맏아들)’라는 이름 소리를 부랴트어 낱말 소리로 풀 때 ‘파란 수소’를 뜻하는 ‘쿠케 보카’라는 실명으로 등장해 그가 부랴트 3종족의 시조가 됐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몽골의 칭기즈칸의 백성 오이라드-부랴트에서 나온 아수이한(Asuykhan)이라는 이름을 가진 오다간(샤만, 무당)이 바이칼 호수의 기슭을 따라가고 있는데, 호수 기슭에서 쿠케보카, 곧 바르가 바타르=발해 막하돌이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음메음메’ 울고 있었다.

여기서 이런 일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고 오다간은 놀랐다. 아마도 보르한 텡게르[몽골어로 ‘거룩한 하늘’, 단 중의법으로는 ‘불함산(不咸山)의 진국(震國=텐게트)’]의 점지로 이것을 남편 없는 내게 보냈구나 하고 생각했다. 남편 없이 살았기에 그와 함께 하나가 될 생각을 하고, 하나가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다간은 아이를 갖게 됐다. 두 아들이 태어났다. 큰아들은 부랴다이(Buryaaday), 작은아들은 코리도이(Khoridoy)라고 이름지었다. 한 번은 부랴다이는 산꼭대기의 지팡이 나무(조도 모돈, 가문비나무)에서 한 처녀를 만나 그녀를 아내로 삼아 두 아들을 보게 됐다. 형은 에히레드(Ekhired), 아우는 볼가드(Bulgad)라고 이름 지었다.

에히레드에게는 여덟 아들이 있었다. 그들의 첫 뿌리는 바이칼의 저쪽 -에르쿠 모조(에르쿠郡)에 있는 데에데-줄헤(Deede-Zulkhe, 높은 솔고, 곧 ‘上 朝鮮’), 발라간스크(Balagansk, 沸流郡의 도시), 이데(Ide) 따위의 땅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불가드는 여섯 아들을 봤다. 그들에게서 나온 씨족의 후손들은 대개 바이칼의 저편 발라간스크, 코티(Khuti), 오이혼(Oykhon), 도오도-우데(Doodo-Ude) 따위의 터에서 살던 카라노트(Kharanut, 會蘭-씨), 아샤바가드(Ashabagad),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사람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에히레드의 여덟 아들과 볼가드의 여섯 아들의 후손들은 보카 노욘(Bukha noyon) 아버지와 보단 카탄(Budan khatan, 곧 ‘무당 부인’) 어머니를 가졌다고 말하고들 했다.

카안 뫼(Khaan uul)의 전나무 안에 있는 잘만 노욘(Zalman noyon, 朱蒙 郞)에게 새하얀 올락샤(ulaagshaa) 암소의 젖을 짜서 제물로 삼고 기도하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이 관습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바이칼의 이편 몇몇 곳의 부랴트인들한테서 이어온다.

이것이 바로 부랴트 3종족 중 2지파인 ‘에히레드 부랴트 8씨족’과 ‘볼가드 부랴트 6씨족’의 탄생 이야기다. 이처럼 파란 수소 쿠케 보카, 곧 ‘바르가 바타르’의 큰아들 부랴다이와 작은아들 코리도이 중 큰아들에게서 태어난 두 아들 에히레드와 아우 볼가드에게서 태어난 각각 여덟 아들 및 여섯 아들의 후손은 각각 에히레드 부랴트 8씨족과 볼가드 부랴트 6씨족이 됐다.

바르가 바타르, 곧 쿠케 보카의 작은아들 코리도이에게는 두 명의 아내에게서 모두 11명의 아들과 한 아내에게서 외동딸이 태어났다. 이렇게 태어난 또 하나의 종족 코리-부랴트 지파도 합친 것이 오늘날 ‘부랴트 3종족’이다. 이 ‘코리-부랴트 종족’도 그들 자신만의 기원에 얽힌 신비롭고 아름다운 전설이 있다.

<셀렝게의 몽골-부랴아드인들의 역사>는 부랴다이의 아우인 코리도이가 고니가 변한 여인인 아내를 얻어 ‘코리-부랴트 11씨족’의 선조가 됐다는 이야기를 한다.

바이칼 호수의 한가운데 있는 오이혼(Oykhon)섬에 코리도이가 가고 있을 때, 하늘에서 세 마리의 고니가 떨어져 내려앉았다. 호숫가에서 세 처녀가 돼 모습을 바꿨다. 아름답고도 고운 옷과 치장거리를 풀어 던지고 호수로 들어갔다. 물밑으로 들어가 헤엄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코리도이는 놀랐다. 그 처녀들 가운데 하나의 옷과 꾸미개를 훔쳐서는 숨겼다. 그 가까운 곳에서 숨어들어 앉았다. 처녀는 옷과 치장을 찾고 또 찾았다. 그러다가 그 가운데 둘은 옷과 치장을 입고서는 고니가 돼 날아갔다. 하늘로 떨어지듯 가버렸다. 한 처녀는 코리도이에게서 옷과 꾸미개를 도둑질당해 벌거벗은 채로 남았다. 이를 본 코리도이는 아수이한 샤만 어머니에게 아내를 줘 감사의 절을 올렸다.

매우 추운 바람이 불었다. 처녀는 몸이 얼어갔다. 어쩔 수 없이 코리도이의 가슴으로 달려 들어와 안겨버렸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둘은 남편과 아내가 됐다. 열한 아들을 낳았다. 그 열한 아들에게서 퍼진 종족이 오늘날 11명 선조의 코리 부랴아드가 됐다.

코리도이는 맨 처음에는 오이혼섬에서 자리 잡고 살았다. 그곳에서 코리도이는 늙어갔고, 아내도 노파가 됐다. 한 번은 그 아내가 늙은이한테 이렇게 말했다.

“여보, 나는 이제 늙었구려. 열한 명의 사내아이를 낳았구먼요. 이제 아이들 몸에서 어디로 가겠어요? 예전의 내 옷과 치장거리를 내게 돌려 주구려. 죽기 전에 입어 보고 조금 즐겨보리다.” 이를 들은 코리도이 영감은 그 뜻을 들어줬다. 옷과 꾸미개를 꺼내줬다.

노파는 옷과 꾸미개를 받아서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예전의 옷을 입자마자 고니가 됐다. 하늘 위로 날아가는 때 코리도이 영감은 이를 뻔히 보며 달려 나가면서도 그녀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아내는 고니가 됐다. 하늘 위로 날아가서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다른 전승에 따르면 그 후손들은 아직도 그녀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코리인들은 고니 뿌리에서 나왔다. 자작나무로 만든 말 매는 말뚝을 가진 이들이라고 하는 관습이 있다. 이 때문에 이른 때부터 시작해 고니가 돌아와 앉을 때는 사람들이 술을 흩뿌리는 관습이 있다.

코리도이, 에히레드, 볼가드 세 선조의 후손들은 바이칼을 둘러싸고 산과 뫼에, 숲과 타이가에, 들과 벌판에, 물과 가람에 자리 잡고 살았다. 사냥감인 들짐승을 잡고, 물고기를 잡으며 살았다. 서기 1200년에 바이칼의 앞과 뒤쪽 지방에 키르기스-학카스 나라가 자기 카안과 함께 자리 잡고 살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왜인지 매우 친근하게 들리지 않는가?

바로 지난 <월간중앙> 1월호에서 본 우리 전설 ‘나무꾼과 세 선녀’ 이야기와 <만주원류고>에 나오는 청나라 태조 아이신 교로 누르하치의 시조 ‘포고리 옹순과 삼선녀’ 전설과 거의 같다. 단지 후자에는 ‘코리-부랴트’라는 말만 빠졌을 뿐이다.

이 코리-부랴트 11씨족의 기원 이야기가 말하는 ‘코리-부랴트 종족의 시조’ 코리도이(코료오도이, 곧 고려씨)는 바로 <몽골비사>가 말하는 ‘코리라르다이 메르겐(고려나라씨 말갈)’이고, <집사> 등 서방사서가 말하는 ‘코를로스’이고, 이는 청나라 황제의 명으로 쓴 <황조통지(皇朝通志)>가 ‘고려나씨(高麗那氏)’로 기록한 씨족이다.

코리-도이와 코료오-도이, 곧 우리 말갈말로 ‘고려-씨’라는 이름은 <몽골비사>에서는 ‘코리 오복톤(코리-씨)’로 적힌 씨족의 시조로 그 이름은 그가 ‘고려(=발해)’에서 나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부랴트 3종족의 전승을 전하는 <셀렝게의 몽골-부랴아드인들의 역사>에서 부랴트 3종족의 공동 시조인 쿠케 보카는 <완단 윰순노브가 1875년에 지은 족보의 일부-코리의 11선조의 뿌리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카안의 막내아들 부르테-쇼노’를 데리고 바이칼로 온 바르가 바아타르 타이상 노욘이다.

이 부랴트어식 이름(관칭)을 발해-후고구려 시대의 말갈어(靺鞨語) 이름으로 환원하면, 이는 ‘발해-막하돌-대상-랑(渤海-莫賀咄=靺鞨薩-大相-郞)’이다. 이는 ‘발해-말갈(靺鞨=莫賀)-왕(咄=薩)-대상(大相, 고구려, 신라, 고려의 군사령관직)-낭군’(郞君, ‘족장’ 또는 ‘문중회장’)이라는 말이다. 이 긴 이름을 줄인 것이 바로 ‘발해 막하돌(바르가 바아타르)’와 ‘발해 대상 랑(바르가 타이상 노욘)’이다.

부랴트 종족의 에히레드 부랴트와 볼가드 부랴트, 그리고 코리-부랴트 3지파는 모두 이 ‘발해-막하돌-대상-랑’ 한 사람의 후손 3지파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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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인 19-03-07 13:22
   
부리야트족은 한국인 하고 미토콘드리아랑 유사하지만
남성 부계는 완전히 다르게나온다고 합니다.
아마르칸 19-03-09 12:42
   
좋은 얘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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