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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2-10 22:28
[기타] 〈백제의 요서영유(설)〉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580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7&oid=078&aid=0000004315
설득력 더해가는 '삼국의 대륙존재설'

-전략-

고구려, 백제, 신라로 이루어지는 삼국시대를 거론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삼국지』 〈위지동이전〉과 한국 측의 정사로 볼 수 있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초기 기록이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다. 특히 백제만을 따로 분리한다면 『삼국지』 〈위지동이전〉에서는 3세기 중엽까지 백제는 마한 54국의 하나라고 하는데 반해 『삼국사기』에서는 온조왕대에 이미 고부(古阜) 지방까지 확보한 것으로 되어 있다. 더구나 『삼국사기』에서는 고이왕대에 이미 6좌평과 16관등제라는 잘 짜여진 국가조직을 갖춘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삼국지』 〈위지동이전〉은 국가체제 내에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학자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중국 요서 지방에 있었다는 기록 때문이다. 학자들을 더욱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이런 자료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음에도 중국 측의 정사에는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선 대한민국 정설로 볼 수 있는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에 나타난 백제의 요서영유(설)을 살펴본다.

『송서(488년)』 :  백제국은 본래 고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 1000리에 있었다. 그 후 고려가 요동을 차지하니 백제는 요서를 차지했다. 백제가 통치한 곳을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요서지역에 설치되었다는 진평군에 대한 기록이 너무 불명확해 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진평군과 백제군의 위치는 중국 〈복단대학역사지리연구소〉에서 간행한 『중국역사지명사전』을 보면 진평군은 468년에 지금의 복건성 복주시에 설치되었으나, 471년에 진안군으로 이름을 고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남제서(南齊書, 537년 이전)』 : 백제는 변진(弁辰)의 나라로 진대(晉代)에 일어나 번작(蕃爵)을 받았다. 스스로 백제군을 고려 동북에 두었다.

『양직공도(梁職貢圖, 526 539년)』 : 백제는 예부터 내려오는 동이의 마한에 속한다. 진(晉)말에 구려(駒麗)가 요동을 차지하니 낙랑 역시 요서 진평현을 차지했다.

『양서(梁書, 629 639년)』 : 백제란 조상이 동이다. 동이는 세 한국이 있으니 첫째 마한, 둘째 진한, 셋째는 변한이다.  변한과 진한은 각각 열 두 나라가 있고 마한은 54국이나 된다. 그 중에 큰 나라는 인가가 만여 호가 되고 작은 나라는 수천 호가 되어 모두 합치면 도합 10여만 호가 되는데 백제란 그 중의 하나이다. 그것이 후대에 점점 강성해져 모든 조그마한 나라들을 병합했다. 그 나라는 본래 구려(句麗)와 함께 요동의 동쪽에 있었다. 진(晉)대에 구려(句麗)가 이미 요동을 차지하니 백제 역시 요서(遼西)와 진평(晉平)의 두 군(郡)의 땅을 차지하고 스스로 백제군(百濟郡)을 다스렸다.

『남사(南史, 627 649년)』 : 그 나라는 본래 구려(句麗)와 함께 요동의 동쪽 1000여리에 있었다. 진대에 구려가 이미 요동을 차지하니 백제 역시 요서(遼西)와 진평(晉平)의 두 군(郡)의 땅을 차지하여 스스로 백제군을 두었다.

『통전(通典, 801년)』 : 처음 백가(百家)로서 바다를 건넜다하여 백제라 한다. 진대에 구려가 이미 요동을 차지하니 백제 역시 요서와 진평의 두 군을 차지했다(현재의 유성(柳城)과 북평(北平) 사이)

『송서』에 실린 백제의 요서영유에 대한 기록은 주로 백제의 대 중국 외교 자료에 의해 편찬되었으므로 이들 기록이 5세기 후반 경 백제와 중국의 외교관계에서 비롯된 사실을 반영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송서』의 내용은 모두 당대의 외교기록인데 요서영유 기록만은 전대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사건 기록으로 학자들은 이와 같은 기록이 있었던 이유로 당시의 시대적 필연성이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송서』에서 주목되는 내용은 고구려가 요동을 점령하자 고구려와 상대되는 백제가 요서지방을 차지하고 이곳을 진평군 진평현이라 하였다는 대목이다.

반면에 『남제서』의 경우 전반부분의 일부가 결실되어 있는데 유원재(兪元載)는 '스스로 백제군을 고려 동북에 두었다'라는 내용이라고 발표했다. 『남제서』는 『송서』와 같은 내용이지만 진평군 진평현이 백제군으로 바뀌어 있다. 그러므로 이들 두 개의 사서는 당대의 변화된 인식의 일면을 기록한 것으로 생각된다.

『양직공도』에는 백제의 사신도(使臣圖)와 함께 백제에 대한 기록이 전해지는데 백제의 원류, 요서영유, 대중관계, 문화관계의 기사를 담았다. 특히 백제의 원류기사를 마한으로부터 구했으며 백제가 아닌 낙랑이 요서지역을 차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학자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백제의 요서영유에 대한 기록은 남조계 사서에만 전해지고 당사국인 백제와 북조의 사료에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백제가 중국 본토에 위치하고 있었다면 당시의 동북아시아사상 중요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당사국인 북조계 사서에는 나타나지 않고 남조계의 사서에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남조와 북조에서의 인식이 달랐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문제는 백제의 사료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삼국유사』, 『삼국사기』가 워낙 후대에 저술된 것이므로 요서영유(설)에 대해 일연과 김부식이 여러 가지 이유로 누락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남제서』〈백제전〉과 『자치통감』에 의하면 488년과 490년에 백제가 북위와 전쟁을 벌여 크게 승리했다는 기록이 있다. 488년의 전쟁은 『남제서』의 앞 부분이 멸실되어 잘 알 수 없지만 490년의 전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이 해(490)에 위군이 다시 수십만의 기병들로 백제의 지경을 공격했다. 백제 모대(동성왕)는 장군 사법명, 찬수류, 해례곤, 목간나 등 4명으로 하여금 위군을 습격하여 크게 격파했다. 495년 백제의 동성왕은 남제에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 "경오년에 험윤이 저희들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침범해 오므로 사법명 등이 군사들을 거느리고 적을 요격하여 크게 이겼고 그들을 베어 적의 시체가 들판을 덮었습니다.'

북위가 백제의 지경을 공격함으로서 시작된 이 전쟁도 한반도에 있는 백제가 중국으로 원정군을 보내 전투를 벌였다고는 볼 수 없다. 490년 전쟁에서 북위는 수십만의 기병을 동원했다고 했는데 당시 북위가 한반도에 있는 백제를 공격하려면 이들을 운송시킬 대함선이 필요하다. 해로를 통해 한반도에 있는 백제를 공격하지 않았다면 북위가 강성한 고구려(장수왕 시대)의 영토를 통하여 백제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 역시 고구려가 순순히 허락했을 리는 없는 일이다. 적어도 수십만 명이 통과하려면 고구려와 북위가 상당한 조약을 맺거나 혈전을 치렀어야 하며 이럴 경우 북위에서 기록하지 않았을 리 없다는 주장이다.

또한 백제의 동성왕은 이 전투에서 공로를 세운 장군들을 광양태수, 청하태수, 광릉태수, 성양태수로 봉해달라고 남제에 청했다. 동성왕이 부하 장군들의 임명을 요청한 영토들은 남제가 북위에게 빼앗겼던 땅으로 광양은 오늘날 북경 부근 대흥현 또는 밀운현, 청하는 북위 때에 하남성 상현 부근, 광릉은 광소성 회음현 동남 지역, 성양은 강소성 또는 하남성 신양현 부근으로 추정한다.

이것은 백제가 중국 일부 지역에 거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백제와 북위간에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인 산동반도는 요서영유(설)의 지역과는 다른데 백제가 언제부터 산동에 거점을 잡고 있었는지는 명백하지 않다. 일부 학자들은 요서지역에 진출했던 백제 세력이 고구려와 전진의 연합에 의해 공격당하자 남쪽으로 내려간 것으로 추정한다. 중국의 역사책 『신당서』와 『구당서』에서는 백제의 서쪽 경계를 월주, 즉 지금의 절강성 소흥시 부근이라고 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백제의 국경이 한반도만이 아니라 중국 해안지방까지 뻗쳐 있었다는 뜻이다.

『삼국사기』〈최치원전〉에도 이와 관련된 기록이 있다.

'고구려 백제가 강성할 때 군사가 백만 명이나 되어 남으로는 오, 월을 침략하고 북으로는 연, 제, 노국 들을 괴롭혀 중국의 큰 우환거리였다.'

이상과 같은 사료에도 불구하고 백제의 요서영유(설)에 대해서는 긍정설과 부정설이 있다. 제3의 의견은 백제가 아니라 마한, 부여, 낙랑 등 다른 세력이 주체인데 백제로 기록되었다는 견해이다.

백제의 요서영유를 긍정하는 견해를 제시한 사람은 실학자 신경준으로부터 임수도, 정겸(丁謙) 등의 중국인과 신채호 , 정인보, 이민수, 일본인 井上秀雄 등으로 이어지며 그 위치를 요서, 산동, 강소, 절강(遼西, 山東, 江蘇, 浙江) 등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추정하였다. 북조가 백제의 요서영유(설)을 누락시킨 것은 북조의 사관들이 수치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편 김상기는 백제가 고구려의 요동진출에 대항하기 위해 근초고왕 말기에 요서지방을 점령했다는 견해를 제기했다. 요서영유(설)에 긍정적인 사람들은 대체로 중국 측의 자료를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반면에 백제의 요서영유(설)을 부정하는 입장은 실학자인 한진서를 비롯하여 주로 일본의 연구자들로부터 나온다. 이들은 중국 측 사료에서 백제가 요서지방을 영유했다는 시기인 진말(晉末)에는 모용씨가 요서지방을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중국과 백제의 지리적 관계를 볼 때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3의 의견으로 요서영유의 주체는 백제가 아니라 낙랑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한 부여 또는 마한과 관련된 세력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백제의 요서영유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설(說)'로 다루는 것은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인정되는 정사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를 그대로 인정할 경우 삼국의 역사를 재편해야 하는 상황도 피할 수 없으므로 현 단계에서 '설'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제의 요서영유(설)은 비록 (설)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론이라고 볼 수 있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정식으로 다루었으므로 어느 정도 공인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교육부의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도 백제가 중국대륙에 진출했다고 적었다.

'백제는 발전 과정에서 요서, 산동 지방에까지 진출하여 대외적 영향력을 과시하였으며, 웅진으로 천도한 이후로는 중국의 남조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대륙 백제〉

백제의 '요서 영유(설)'은 한반도 백제 세력에 의해 중국 내의 일정 지역을 확보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근래 이도학 박사는 한반도 세력에 의한 백제가 아니라 또 다른 백제 세력이 중국 내에 존재했다는 파격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이도학 박사는 『자치통감』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문제의 핵심으로 제기했다.

『자치통감』 : 처음에 부여는 녹산(鹿山)에 거처했는데. 백제의 침략을 받아 부락이 쇠산(衰散)해져서 서쪽으로 연(燕)나라 근처로 옮겼으나 방비를 하지 않았다.

기원후 346년의 일을 기록한 글이다. 여기서 부여의 발상지인 녹산은 송화강 유역을 가리키는데 한반도 서남안에 백제가 존재했다는 상식에 비추어보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고구려보다 더 북쪽에 있는 송화강의 부여국을 어떻게 백제가 공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백제가 군을 동원하여 고구려 지역을 아무런 견제 없이 무사히 통과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로 볼 수 있다. 결론을 말한다면 백제는 연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야 하며 중국 본토에 위치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정인보 등은 4세기 초에 있어서 백제의 해상발전을 요서 진출의 한 근거로 보았다. 그러나 송화강 유역은 만주 내륙이므로 해상진출과는 어울리지도, 관련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백제가 아니라 고구려나 물길을 의미하는 오기(誤記)로 본다고 지적해 놓았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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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jai 19-02-11 18:17
   
하남 위례성이 발견이 안된게 가장 큰 논란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식적으로 400년을 이어온 수도인데 ... 상식적으로 한강 유역에 있어야 하는데, 당연하게도 백제가 "남부여"라고 칭했을 정도니 먼가 한강 남쪽에 수도가 있어야 하는데...위례성이 한반도에 없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미스테리가 한 두가지가 아닌데, 예를들어 요서부근의 백제수도가 갑자기 웅진으로 오게 된 경위라던가, 외부적 요인들 같은 설명이 되는 문구들이 분명히 있어야 할텐데....위례성이 발견되어 확증되기 전까지는 대륙백제는 끊임없이 비정통파 "설"로만 격하당할 것 같습니다.
hojai 19-02-11 18:32
   
아, 저는 "비류백제"니 "온조백제'니 하는 말이 그냥 지어낸 말인지 알았는데,
저번에 선비족 '모용선비' '탁발선비' '우문' '단부선비'니 하는 말을 듣고는 무릎을 친 일이 있는데,
이 나라들이 죄다 자기 부족의 창씨자를 성이자 나라 이름으로 삼고 있더라고요.
모용토욕혼, 이라는게 먼가 했는데, 부족장 이름이시더라구요. 그래서 나라 이름도 "토욕혼"
당연히 국가 중심이 아니라 3000명 정도의 부족중심이 일반적인 3~4세기의 시대 상황상 일리가 있는
작명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온조" = 일백백, 그래서 백제라고 작명한 것 같기도 하고
비류 백제라는게 해안가에서 나라를 세웠다면, 당연하게 비류가 재위하던 20~30년만에 끝난왕조가 아니라
적어도 300~400년은 대륙에서 존속할 수 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요서에는 모용선비가 있었고 북위나 연나라도 있었는데, 그게 기록이 안남을 수가 없었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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