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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2-24 15:27
[한국사] 3세기~5세기 모용선비와 고구려 중심 동북아 정세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3,313  

고구려의 서쪽 경계를 추적하기 위한 일환으로 거란의 위치와 활동사를 중국 역대 사서 정사외국적 기록을 갈무리하여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거란 관련 외국전 기록만으로 전체적 윤곽을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서 모용선비와 고구려, 북위, 거란 등 현 북경과 요하 사이의 지역을 중심에 두고 3세기부터 5세기까지 제종족 및 국가의 활동사를 큰 흐름에서 살펴보고자 다음의 자료를 정리하였다.

이 자료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중심으로 하였으되 진서, 위서, 수서, 통전, 자치통감 등 여러 중국 사서들에서 확인이 되는 사실의 취합이다.


1. 모용선비의 수도 변천


http://www.gasengi.com/data/cheditor4/1805/8814a6d2d1262809097437df2595fe2c_nuiDXqgy4.jpg


~ 283년 모용섭귀(慕容涉歸)


유성(柳城)


283년 모용외(慕容廆)


요동(遼東) 북쪽

ㅡ 모용내(대막외)를 피해서


289년 모용외(慕容廆)


도하(徒河)의 청산(靑山)

ㅡ 단ㆍ우문선비를 피해서


294년 모용외(慕容廆)


극성(棘城)


342년 모용황(慕容皝)


용성(龍城)

ㅡ 유성의 북쪽, 용산의 남쪽


350년 모용준(慕容儁)


계(薊)


353년 모용준(慕容儁)


업(鄴)


386년 모용수(慕容垂)


중산(中山)


396년 모용보(慕容寶)


용성(龍城)




2. 3세기 말 ~ 5세기 말 정세


246년, 모용선비, 모용목연, 위 관구검의 고구려 침략 시 참전하여 공을 세워서 솔의왕(率義王) 및 좌현왕(左賢王)에 책봉됨


모용목연의 아들 모용섭귀, 유성(柳城)에 본거지를 두고 서진을 섬김, 서진으로부터 선비선우로 임명됨. 후에 요동 북부로 본거지 옮김(父涉歸,以全柳城之功,進拜鮮卑單于,遷邑於遼東北,於是漸慕諸夏之風矣。진서)


276년 10월, 서진 사마염, 전한 우북평군 지역에 창려(昌黎), 료동(遼東), 현토(玄莵), 대방(帯方) 낙랑(樂浪) 등의 군국(郡國)으로 평주(平州) 설치


281년, 모용선비, 서진에 다시 복속(289년 태강 10년 5월)되기 전까지 서진 평주(平州)와 유주(幽州) 일대를 지속적으로 유린.


285년 이전, 서진 당빈, 장성과 새 3천 리 보축(復秦長城塞,自溫城洎于碣石,綿亙山谷且三千里,分軍屯守,烽堠相望。由是邊境獲安,無犬吠之警,自漢魏征鎮莫之比焉。진서晉書 )


285년, 모용외, 모용선비의 우두머리(대인)로 추대됨.


285년, 모용외, 부여 공격, 1만여 명 포로, 부여왕 의려(依慮) 스스로 죽음 선택.


289년, 서진, 부여를 구원하고 모용외 격파, 모용외의 세력, 서진에 복속됨, 모용외를 선비도독에 임명.


294년, 도하(徒河)의 청산(靑山)에서 극성(棘城)으로 본거지 옮김.


307년, 모용외, 선비대선우(鮮卑大單于) 자칭. 서진 말기 서진 유민들을 적극 수용.


311년, 고구려 미천왕, 요동의 서안평을 습격하여 빼앗음

311년, 서진의 실질적 멸망(유총에 의한 낙양 함락, 서진 군사 10만여 명 몰살)
 
313년, 고구려 미천왕, 낙랑군을 침범하여 남녀 2천여 명을 사로잡음

314년, 고구려 미천왕, 대방군(帶方郡)을 침공

315년, 고구려 미천왕, 현도성을 침공하여 깨뜨렸는데 죽이고 사로잡은 사람이 매우 많음


318년, 서진의 평주자사(平州刺史) 최비(崔毖)의 계략에 따라 단선비, 우문선비, 고구려가 연합하여 모용외를 제거하려 했으나 모용외의 이간책으로 실패


320년, 동진(東晉), 모용외를 안북장군·평주자사(安北將軍平州刺史)로 임명


321년, 동진, 모용외에게 도독유평이주동이제군사·거기장군·평주목·요동공(都督幽平二州東夷諸軍事車騎將軍平州牧遼東公)을 제수


336년, 모용황 휘하 사마(司馬)로 있던 동수(冬壽) 고구려 망명


337년, 모용황, 전연 건국


338년, 모용황, 단 선비 공격


342년, 모용황, 극성에서 용성(龍城)으로 천도


342년, 모용황, 고구려 침입, 환도성 함락, 미천왕릉 도굴, 미천왕의 주검과 태후, 왕후를 인질로 데려감.


344년, 모용황, 우문부(宇文部) 공격, 멸망시킴

ㅡ 우문부에 섞여살던 고막해, 거란 등이 송막으로 달아나 흩어져 살게 됨

345년, 모용황, 모용각을 시켜 고구려 남소성 공격. 함락 후 수비군을 주둔시킴


346년 모용황, 모용준과 모용각을 시켜 부여를 공격, 부여 현왕(玄王)과 백성 5만 명을 포로로 잡아 전연으로 끌고감. 부여계 주민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현왕을 사위로 삼고, 진동장군(鎭東將軍)의 작위(爵位)를 내림.


350년, 모용준, 유주 점령, 계로 천도, 기주 공격


352년, 모용준, 염위(冉魏)를 멸망시키고 하북 지역을 점령


353년, 모용준, 계에서 업으로 천도


355년, 모용준, 고구려 고국원왕을 영주제군사 정동장군 영주자사 낙랑공 고구려왕 (營州諸軍事 征東大將軍 營州刺史 樂浪公)에 책봉


357년, 고구려에서 창려·현도·대방태수(昌黎玄兎帶方太守)를 역임한 전연의 망명객 동수 사망(안악3호분 묘지명)

ㅡ 학계에서는 이 태수 관작은 고구려에서 받은 관작으로 보고 있음

ㅡ 동수의 출신지는 유주 요동군 평곽현 도향(都鄕) 경상리(敬上里)


370년, 진(秦)나라의 왕맹(王猛)이 전연 격파. 전연 멸망.


378년, 가을 9월, 거란이 고구려 북쪽 변경을 침범하여 8개 부락을 함락시킴


384년, 모용수, 후연 건국


385년 6월, 고구려, 후연의 요동과 현도 빼앗음


385년 11월, 후연, 빼앗긴 요동과 현도 수복


(後又屬於後燕晉太元十年,高句麗寇遼東,後燕將王佐救之,為高句麗所敗。遼東、玄菟遂陷於高麗。是年,慕容農復取之。後為高句麗所據《十六國春秋》:慕容熙光始二年,高句麗陷平州。五年,伐高句麗,不克。魏收《志》有遼東郡,蓋僑置也。독사방여기요 산동8)


386년, 모용수, 중산에 도읍


386년(387년), 탁발규, 북위 건국


388년, 북위 도무제, 약락수 남쪽에서 고막해 정벌, 대규모 약탈

ㅡ 학계에서는 북위 도무제의 고막해 공격으로 인해 고막해의 세력이 약화 되고 거란이 독자적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이후 거란의 세력이 성장하여 화룡의 북쪽 수백 리에서 도둑질을 하며 삶


392년 9월, 고구려 광개토대왕, 거란 정벌(삼국사기, 거란인 남녀 500 명 포로, 고구려인 1만 명 송환)


395년, 고구려 광개토대왕, 패려(稗麗) 정벌

ㅡ “패려(稗麗)가 고구려인에 대한 (노략질이 그치지 않으므로), 영락(永樂) 5년(395) 을미(乙未)에 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토벌하였다. 부산(富山), 부산(負山)을 지나 염수(鹽水)에 이르러 그 3개 부락(部落) 600∼700영(營)을 격파하니, 노획한 소·말·양의 수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이에 왕이 행차를 돌려 양평도(襄平道)를 지나 동으로 □성(□城), 역성(力城), 북풍(北豊), 오비□(五備□)로 오면서 영토를 시찰하고, 수렵을 한 후에 돌아왔다.(광개토대왕비문)”


연도미상, 후연 모용보, 고구려 광개토태왕에게 평주목(平州牧) 제수(요사 지리지 동경도).


연도미상, 후연 모용보, 고구려 광개토태왕을 평주목으로 삼고 요동ㆍ대방 2국 왕으로 책봉함(통전)


396년(397년), 후연, 모용보, 북위에게 수도 중산 함락. 용성으로 천도.


400년 2월, 후연 모용성, 고구려 침입, 신성과 남소성 함락, 700여 리 땅 점령, 주민 5천여 명 이주시켜 놓음.


401년, 후연, 모용희 즉위


402년, 고구려 광개토태왕, 후연 숙군성(宿軍城) 빼앗음


402년, 고구려 광개토태왕, 후연 평주 함락

《十六國春秋》:慕容熙光始二年,高句麗陷平州。五年,伐高句麗,不克。魏收《志》有遼東郡,蓋僑置也。(독사방여기요 산동8)

ㅡ 이 평주는 전한의 우북평군 지역이다(진서 지리지 평주 “平州. 按, 禹貢冀州之域, 於周為幽州界, 漢屬右北平郡. 後漢末, 公孫度自號平州牧.”)

http://blog.naver.com/storyphoto/viewer.jsp?src=https%3A%2F%2Fblogfiles.pstatic.net%2F20111017_60%2Fjhy8365_1318854736574zVkpu_JPEG%2F18.jpg


404년 11월, 고구려 광개토대왕, 후연 침략


405년 1월, 후연 모용희, 고구려 요동성 공격

ㅡ 독사 산8에서 인용한 십육국춘추에서 “고구려가 402년에 평주를 함락시켰고 405년에 모용희가 고구려를 쳤으나 이기지 못했으며 위나라 때에 요동군 등을 모두 교치했다”고 한 기록에서 보이듯 고구려는 이 때(모용희 시대)에 유주 이북/이동 지역인 후연 본거지, 즉 평주를 모두 장악하였던 것이다.

ㅡ 후연이 공격한 요동성은 고구려가 후연으로부터 빼앗은 평주의 요동, 현도 등의 그 요동인 것이다

ㅡ 이후 들어선 북연의 요동은 당연히 새로 교치된 요동이요 432년에 북위 태무제가 북연을 공격해 백성을 3만 호 데려간 영구, 낙랑, 요동 등의 요동인 것이다.


406년, 후연 모용희, 형북에서 거란을 공격하려다(405년 12월) 군사를 돌려 고구려 목저성 공격(406년 1월)


407년, 후연 풍발, 황후 부씨 장례식을 틈타 반란, 모용운(고운)을 황제로 추대


407년, 고구려 광개토대왕, 보병과 기병 5만을 동원해 어느 곳(후연으로 추정)을 사방에서 포위공격해 도륙하고 약탈함

ㅡ “영락 17년 정미년, 왕은 보병과 기병 5만을 출병시켰다. □□□□□□□□ 왕의 군대는 사방 포위작전을 펴서 모조리 살상하여 분쇄하였다. 노획한 갑옷(鎧鉀)이 1만여 벌이며, 그 밖에 군수물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돌아오는 길에 사구성, 루성, □주성(□住城), □성, □□□□□□성을 격파하였다.(광개토대왕비문)”


407년, 후연 멸망


408년, 북연 건국. 고구려계 고운(모용운)이 즉위. 고구려, 사신을 보내 동족으로서의 예를 베풂


408년, 고구려, 고구려의 유주자사 진(鎭) 사망(영락 18년, 덕흥리 고분)

ㅡ □□군(郡) 신도현(信都縣) 도향(都鄕) □[감]리(□[甘]里) 사람으로 석가문불(釋迦文佛)의 제자인 □□씨(□□氏) 진(鎭)은 역임한 관직이 건위장군(建威將軍) 국소대형(國小大兄) 좌장군(左將軍) 용양장군(龍饟將軍) 요동태수(遼東太守) 사지절(使持節) 동이교위(東夷校尉) 유주자사(幽州刺使)였다. 진은 77세로 죽어 영락18년 무신년(戊申年) 초하루가 신유일(辛酉日)인 12월 25일 을유일(乙酉日)에 [무덤을] 완성하여 영구를 옮겼다.(덕흥리 고분 묘지명)


432년, 북위 태무제, 유주 밀운에서 정령(고차) 1만 명을 선발, 남쪽 길을 통해 북연 침공, 석성ㆍ대방 등을 함락한 후 북연의 영구, 기양, 현도, 요동, 낙랑 등의 3만 호(15만~20만 명)의 백성을 유주로 데려감


435년, 북위 태무제, 고구려 장수왕을 도독요해제군사정동장군영호동이중랑장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都督遼海諸軍事征東將軍領護東夷中郞將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으로 책봉.


436년, 북위 태무제, 북연 침략 전 고구려에 북연을 침략할 것을 알림


436년 4월, 북위 태무제, 북연 백랑성 함락.


436년 4월, 북위가 북연을 공격하는 것에 맞춰서 고구려군 북연 화룡성에 들어가서 병기와 재물 약탈.


436년 5월, 고구려, 북연 화룡성 대규모 약탈 후 그 지배층과 주민들 고구려로 이주케 하고 화룡성에 불을 지름.


436년 5월, 북위 태무제, 고구려에 북연왕 풍홍을 달라고 요구했으나 고구려가 거부. 고구려를 공격하려 했으나 대신들의 반대로 중지.


436년, 북위에 의한 북연 멸망, 화룡에 진(鎮)을 설치


438년, 고구려 장수왕, 북연왕 풍홍과 그 일족 살처분


444년, 북위 태무제 진군(真君) 5년, 화룡에 영주(營州) 설치


거란은 북위 태무제 태평진군(440~451) 이래 조헌(조공)을 해왔으며, 화룡과 밀운 사이에서 교역을 할 수 있게 북위가 허락하니 조헌이 끊이지 않음


472년, 백제 개로왕, 북위에 사절단 보냄.


472년, 북위 효문제, 백제에 사신을 보내기 위해 고구려를 지나가려 했으나 고구려가 불허.


472년, 물길, 을력지를 사신으로 하여 북위에 입조. “고구려의 10 개 부락을 격파했다”, “백제와 공모하여 비밀리에 고구려를 공격하고자 하니 이를 허락해 달라”는 발언 등이 위서에 기록돼 전함.


475년, 북위 효문제, 고구려가 육로와 해로를 차단하여 백제로 가려는 북위의 사신단을 막자 무리하게 도해를 시도하다가 사신선 난파됨.


479년, 북위 효문제 태화 3년, 유연과 고구려가 지두우국을 분할 점령하고자 하였는데 이 때에 고구려의 공격을 받은 거란의 1만여 명이 북위에 보호를 요청. 이에 북위는 백랑수 동쪽(백비하)에 거주하게 함


480년, 고막해가 북위 국경으로 들어와 지두우국의 약탈을 막아줄 것을 북위에 하소연

ㅡ 이는 유연과 고구려의 지두우국 분할 시도에 따른 여파


488년, 490년, 495년, 총 3차례의 걸친 북위와 백제의 전쟁. 백제의 승리.


484년, 북위가 여러 나라 사신들의 숙소를 배치할 때 제(齊) 나라의 사신을 첫 번째, 고구려의 사신을 두 번째에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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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8-12-24 15:32
   
(본문에 이어서)

490년, 북위 효문제, 지두우국이 자못 국경을 침범하여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양평왕(陽平王) 이(頤)에게 조를 내려 이들을 공격하도록 함.
ㅡ 역시 고구려와 유연의 지두우국 분할시도의 여파

492년, 북위가 고구려 문자명왕을 사지절도독요해제군사정동장군령호동이중랑장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使持節都督遼海諸軍事征東將軍領護東夷中郞將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으로 임명

494년, 부여왕이 처자를 데리고 고구려에 귀순

497년 이전, 고막해는 북위의 안주, 영주 지역에 북위인들과 교역을 하며 뒤섞여 삶

498년, 고막해가 안주를 약탈, 북위는 영주, 연주, 유주 병사들로 제압함
뚜리뚜바 18-12-24 17:21
   
와... 이렇게 연도별로 보니 내용 이해가 쫙되네요 저같이 잘 모르는 사람도 관계가 명확히 보이는
아마르칸 18-12-25 01:52
   
굿~!! 정보군요.
적폐척결 19-01-01 00:42
   
고구려가 삼국통일해야했는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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