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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2-21 17:57
[한국사] 고구려가 유목민족을 제압할수 있었던 힘의 원천
 글쓴이 : 삼봉정도전
조회 : 3,763  

 초원에서 유목경제를 영위하고 살았던 흉노와 선비족 등과는 달리
고구려와 부여는 농경문화를 기반으로한 목축과 수렵이 성행한 정주민들이었습니다.

고구려는 환도성과 국내성시절 그 척박한 산지 협곡 환경에서도
밭을 일구고 조금이라도 더 산출을 얻기위해 고군분투했을 정도로 
농경을 매우 중시했던 나라였죠.

그러나 농경만으로는 도저히 나라를 유지할수 없었기에
생존을 위한 수렵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이것은 곧 기마와 보병의 조합을 통한
군사훈련이 되어 곧 군사력의 증강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부족한 식량해결을 위해 강력한 군사력을 이용한 
주변종족과 국가에 대한 침략을 활발히 해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유목민족의 경우, 주로 겨울에 식량부족 문제때문에
 중국을 노략질하는 등 침략적 성향을 띄었지만,
 사실 유목민족은 풍부한 육류와 유제품 덕분에 사냥보다는 가축을 돌보는것이
그들 삶의 주를 이룹니다.  
반면, 고구려는 비록 중국처럼 농경을 기반으로 했지만 빈약한 소출로 인해 
수렵에 몰두했고 그날 그날 사냥을 하지 못하면 자신과 가족들이 굶어야 하는 절박한
몸부림으로 수렵에 매진합니다.
심지어 사냥을 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말이 부족할 경우 
고구려인들은 거란이나 선비족으로부터 물물거래를 통한 수입도 했지만
약탈을 통해 말과 사람을 빼앗아 오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양과 소 말이 풍부했던 유목민족들이 수렵민족보다 경제적 환경이 윤택했다는 것이죠.

이는 곧 생존을 위해 부족집단이 역할을 나누어
한쪽은 말을 달리며 정확히 화살을 날리고 또 다른쪽은 창을 들고 죽어라 달리며
사냥감 몰이를 해야 그날 그날 끼니를 떼울수 있던 수렵민족의 전투력이
유목민족의 그것을 능가할 수밖에 없었다는게 서영교 교수님의 견해입니다.

이는 비단 고구려뿐만 아니라 완옌부 아골타의 여진족이나 누르하치의 후금 또한
농경 목축과 함께 수렵이 일상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시대 거란의 요나라나 
명나라 이북 몽골 타타르를 제압할수 있었던 것이죠.
참고로 12세기 완옌부가 흥기할때 맹안모극제에 포함됬던 순 여진족 인구는 기껏해야
숙여진 생여진 다합쳐 70만 가량에 불과했고 ( 요나라 멸망시키고 북송을 멸망시키면서
거란족,발해인을 정복하여 삽시간에 백만 단위로 늘어나긴 합니다.)
누르하치 시절의 여진족은 건주위 동해여진 예허부족 등 다 합쳐도 기껏해야 30~40만에
불과했고 부족한 군사력과 인구를 팔기군체제로 몽골부족과 요동한족들을 끌어들여
가공할 군사력을 지닌 당대 최강의 군대를 보유했죠.
좀 더 부연하자면 누르하치와 홍타이지 시절의 팔기 중 순여진족 병사의 숫자는 5만이 안됬고
그외 몽골팔기와 한족팔기 및 한족노예병사로 부족한 숫자를 메웠던 것입니다.
(길공구의 고려사라는 블로그에 그 자세한 내용이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그분의 블로그를
찾아보세요)

다시 이야기를 고구려로 돌린다면,
장수왕 이후 고구려가 넓은 영토를 기반으로 국가시스템을 발전시켜나가며
농산물의 소출이 증가하고 예전에 비해 생존을 위한 수렵의 비중이 낮아졌다해도
 경당이라 불린 청소년교육기관에서 기사와 무예를 연마시키는 훈련을 통해
군사력약화를 방지하여 북으로는 투르크와 물길 서쪽으로는 중국세력 그리고 남으로는
백제와 신라와의 전쟁을 대비할수 있었습니다.

예전 역사스페셜이었나 역사관련 다큐에서 중국인 학자 왈 " 몽골인 셋이 여진족 한명을
당해내지 못한다"고 했고
6세기 말~7세기 초 활동했던 동로마의 역사가 시모카테스(Simokattes)도 자신의 역사서에
고구려에 대한 짧은 소개를 하고 있는데 매우 의미심장한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 유연의 잔여 세력이 중국(북제)으로 도주했고, 그곳에서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가 쫓겨 동쪽의 Moukri(고구려)로 갔다.Moukri는 중국에 인접해 있다. Moukri인들은 위험에 대처하는 강인한 정신력과 매일 매일의 신체 단련으로 그들의 투지는 매우 높았다”

시모카테스가 언급한 "강인한 정신력과 매일 매일의 신체 단련"은 아마도 고구려 경당( or 국당)에서
전국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결론을 내본다면,
아무리 중국을 오랫동안 유린하고 중국인들에게 공포를 안겼던 초원의 유목민족들이라도
평상시 수렵보다 가축을 돌보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그들과 달리,
 생활의 대부분을 생존을 위한 수렵에 매달렸던 수렵민들의 전투력을 따라오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비록 수렵민들이 부락별로 흩어져 통일적인 거시적 안정적 정치체제를 이루기가 매우 어려워
오랫동안 주변 유목민족 등에 무시받았던 기간이 오래였지만
한번 통일이 되었다하면 그 전투력은 정말 한줌도 안되는 인구를 가지고 유목민족을 박살내고
삽시간에 대륙을 뒤흔드는 가공할 공포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고구려가 그러했고 훗날 여진족이 그러했습니다. 또한 징기스칸의 몽골부족 또한 본래 유목생활을
했던 것이 아니라 동몽골의 산림지역에서 수렵생활을 하던 부족이었죠.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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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르칸 18-12-21 19:38
   
부여, 고구려는 반농반목문화로 알고 있는데요???
     
삼봉정도전 18-12-21 19:54
   
반농반목이면 수렵을 안했나요?  반농반목이라는 표현만 보고 여기에 수렵이라는 단어가 안들어가 있으니 고구려 부여는 농사랑 목축만 하는 나라였다는 것임?ㅎㅎㅎ
 특히 고구려는 부여에 비해 압록강 비류수 변의 산악지대라 더 척박한 환경이었고 때문에 수렵의존도가 매우 높았음.
          
아마르칸 18-12-21 20:05
   
님이 농경문화라고 써놓고 뭔소리 하시는지요?? 반목에 채집, 수렵도 포함 되는건데요??
               
삼봉정도전 18-12-21 20:13
   
난독이 심하시군요.  농경과 목축 수렵 모두 중시했다고 썼는데. 
그리고 수렵민이란 수렵만 한다는게 아니라
농경 목축도 이루어지지만 그들의 경제생활에 수렵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일단 진정하시고 차분히 남의글을 제대로 읽고난후 비판하기 바랍니다. ㅎ
쉿뜨 18-12-21 20:12
   
유목민도 수렵은 필수입니다.
     
삼봉정도전 18-12-21 20:19
   
유목민과 수렵민중에서 수렵이 그들의 일상생활에 차지하는 비중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고구려의 경우 좌식자라 불린 지배층과 선인과 같은 호민계층이 거의 수렵과 약탈에 집중했고
따라서 좌식자라 불린 지배층과 호민들은 전쟁전문가였죠.

 물론 유목민족의 전투력도 강했지만 유목민족은 가축들을 돌보는데 그들의 생활이 집중되어 있지만
초기 고구려같은 수렵민들은 빈약한 농업소출량, 부족한 가축때문에 당장의 끼니를 때우기 위해
그날 그날 죽기살기로 수렵을 해야하는 수렵민들의 전투력이 상대적으로 더 강할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쉿뜨 18-12-21 20:27
   
그냥 좋게 해석 하려는 건 이해합니다만...

유목 부족은 서로 약탈까지 합니다.

수렵 조금하는것 하고 난이도가 달라요.
               
삼봉정도전 18-12-21 20:33
   
ㅎㅎㅎ 뭘 좋게 해석한데 ㅎㅎ
유목민들이 주로 겨울에 식량이 부족하거나  목초지의 부족이 심화되거나 갈등이 있으면 부족간 약탈이 발생하죠.
 그러나 유목민의 기본적 경제영위 생활은 어디까지나 가축들을 돌보는 겁니다.  그 가축을 돌보는게 여의치 않으면
2차적으로 발생하는게 약탈과 전쟁이에요.

이에 반해 초기 고구려는 좌식자와 호민계층같은 전문적 전사집단의 경제영위는
수렵과 약탈과 전쟁이었습니다. 수렵 조금이 아니라. ㅎ
그들은 아예 생활 자체가 전투 그 자체였다는 겁니다.
                    
쉿뜨 18-12-21 20:41
   
아이고야;;

유목을 그냥 목축하는걸로 생각하다니;;;


목축을 한다는 건 외부 위협으로 지켜야한단 말입니다.

약탈 그리고 가축을 위협하는 맹수로 부터요.


생활환경 자체가 더 야생에 가깝다는 말은 더 위험한 환경이란 말입니다.


반농반목이면 그냥 유목의 환경과 생산력이 합쳐져서 좀 더 유기적인 복합군집력이 뛰어났다 하면 되지.

먼 되도 않는 수렵이 짱짱맨이라는 겁니까 ㅡ.,ㅡ
                         
삼봉정도전 18-12-21 20:49
   
유목생활에 전투가 없다는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수렵민에 비해 전투가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는겁니다.

참말로 단선적이고 피상적으로 생각하는군요.ㅎ
          
인생사 18-12-22 07:24
   
유목민들도 가축을 보호 하기위해 사냥은 필수 입니다.
Korisent 18-12-21 20:53
   
마코리 라고도 합니다. 마는 만한. 코리는 고려 즉 코리아.
비좀와라 18-12-21 21:54
   
유목생활과 농경생활은 단순히 생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달라요.

유목민은 정착하지 않고 좋은 곳으로 이동하는 생활 방식이라 누가 세금을 많이 걷게 되면 그냥 딴 곳으로 이주 하니에 기본적으로 유목민족의 국가들은 세금을 많이 걷을 수가 없고 왕권이 약하고 부족장 즉 호족이 세력이 강하게 되는 특징이 있거든요.

동시에 물건이 부족하면 물물교환이나 약탈 또는 상거래를 통해서 얻기에 상업과 유통업이 발달 되는 것 이고요.

정리 하자면 유목민족은 민주주의와 대의제 그리고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주역들이라 현 문명은 유목민의 문화에 기반된 문화라는 것이죠.

반면에 농경문화는 상거래를 발달 시키기 보다는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는 경제를 발달시키고 유목민이 대의적 민주주의를 발달 시켰는데 반해서 농경민은 노예제(농업과 광업이 대자본이 노예민을 활용해야 하는 산업임)와 대자본을 발달시켜 산업화에 유리한 측면이 있죠.

이러한 농경문화가 산업화를 할 경우에는 유리 하지만 지금과 같이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환경에는 쥐약 입니다. 그래서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일본과 중국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이죠.

또한 지금 영국의 브랙시트를 가지고 뭐라 하는데 영국의 브랙시트는 유목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잉글랜드의 노르만 종족이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프랑스와 독일과의 결별을 이야기 하는 것 이라 브랙시트는 미래를 생각 한다면 옳은 결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또한 미국도 유목민과 농경민의 대립이 심화 되고 있는데 지금은 민주당이 농경민 적인 성향이 강하고 공화당이 유목민적인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죠. 트럼프의 정책이 먼로주의라 해서 고립주의라 하는데 과연 그럴 까요?

다시 한국의 상황으로 돌아가서 고구련 백제 신라는 각각 고대국가로 발달 하는데 고대국가라는 말은 영토라는 개념을 정착 했음을 의미하고 이 시기 부터 농경문화가 강세를 띤다고 보는 것 이거든요. 만일 민주주의 발달이 문명의 척도라면 고대국가의 성립 시기는 퇴보되는 것이란 말이죠.

신라가 가장 늦게 까지 화백제도를 유지 했고 역시 고대국가의 바뀌는 것도 늦어졌죠. 이 말은 신라가 가장 오랜동안 유목문화를 유지 했다는 말과 같단 말입니다. 그리고 유교는 유목문화를 기반으로 발전한 종교라 지금의 일본과 중국과는 맞지 않죠.

그리고 일단 근세조선 까지 조선말은 유목민의 악센트를 유지 했음을 구 한말의 신문에서 확인이 되거든요. 먼저 이런 이야기를 하기 전에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 하자면...

한 때 영어를 배우려고 나름 노력한 시기가 있었던 말이죠. 당연히 한국어와 영어와는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하던 시기였죠. 그래서 나름 영어를 가르치던 사람들의 칼럼이나 논문들을 잃어 보았고 교포들의 칼럼도 읽었습니다. 이 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내용이 동 아시아 사람들의 영어 발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끝 발음을 하지 않고 그 냥 생략 한다는 것 이죠. 거기에 덧 붙여 교포들의 이야기는 영어 알파벳을 동아시아 사람들이 하듯이 하지 말고 끝 까지 발음하는 연습을 매일 50번 이상 하면 발음 좋아 진다는 것이죠.

왜 이런 현상이 일어 날 까를 알아 보았더니 호흡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인구어는 4분의 3박자 의 못 갇춘 마디의 약강강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에 연음 현상이 일어나고 리드미컬하고 서정적인 느낌의 언어(즉의 한이 서린 언어라는 것임) 입니다. 그리고 이 것이 호흡(여기서 박자라는 것이 호흡법을 말하는 것임을 알고는 있겠죠?)에서 이루어 진다는 것이란 말입니다.

4분의 삼박자의 호흡이란 처음에 숨을 들이키고 나중에 뱉는 형식이고 농경민은 호흡법인 8분의 6박자 호흡은 처음에 숨을 내 뺕고 나중에 들이키는 호흡법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하면 얼추 맞습니다. 결국 4분의 3박자 호흡법이 단전호흡법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죠. 한국은 임진왜란 이후에 된소리가 증가하게 되는데 이게 전쟁의 참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때 사회의 구성원이 바뀐 것을 의미하는 것 입니다. 유목민에서 농경민으로 합의제를 바탕으로 하는 민주주의에서 독재 형식의 노예제로 말이죠.

이 4분의 3박자를 트로트 박자라고 하는데 이는 말이 달리는 것도 아니고 걷는 것도 아닌 상태를 말하는 것 이거든요. 이 걸 표현 하자면 딸가닥 따각따각 이렇게 되는 것 입니다. 이 걸 사람에게 적용한 것이 지미카터가 말한 조깅이죠. 처음에 조깅이란 말이 나왔을 때 미국이 환호 한 이유가 그 것이 그 들의 기본이자 원천이라 그런 것이고 우리도 역시 환호해야 정상인데 우리는 미국보다 한참 후진인식을 가져서...

심지어 트로트 소위 국민가요라 불리는 노래를 뽕작이라고 폄하 하는데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 최고의 교향곡이라고 찬사를 받는데 이게 트로트 박자를 기본으로 만든 교향곡이라 그런 것 이에요. 소위 잘 나신 분들이 트로트를 폄하 하는데 그 트로트 박자가 현 서양악의 기본박자라는 것 입니다.

결국은 한국어는 과거에는 인구어와 같은 굴절어라는 것 이에요. 한국어도 인구어와 같이 어미의 변화를 따라서 뜻이 바뀝니다. 앞의 말은 생략해도 의미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인구어와 같은 구조란 말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은 한에 엑센트가 들어간 말고 농경민의 발음이고 이를 과거의 유목민의 발음으로 하면 혼귁 - 혼걱 - 온궉 - 온걱 - 돈궉 - 둔(둥)귁이 된단 말입니다. 중국과 한국은 같은 말이고 이게 조선이란 발음과 같단 말입니다.

이걸 설명 할려면 너무 길어서 생략 하고 아 훈족은 지금의 한국어로 발음하면 뭐가 되겠습니까? 헌이나 전 / 턴 / 한 이렇게 될거에요.

다시 고구려로 돌아가면 한국인의 직접조상은 유목민이라 고구려의 지배층이 한국인의 직접조상이고 그 밑의 농경민은 고구려의 부용민족 내지는 노예들이란 거죠.
     
쉿뜨 18-12-21 22:58
   
해석을 지 맘대로 하네요.
     
범고래 18-12-22 00:18
   
영국 브렉시트 유목 문화에서 빵 터지고 갑니다. 진지하게 쓰신 댓글이라면 진지하게 병원에 가세요.
pontte 18-12-22 11:01
   
수렵활동은 매일 할 수 있는게 아닌데 오히려 매일 말타고 다니는 유목활동이 더 냉병기 시절에 도움이 됬을텐데
     
삼봉정도전 18-12-22 11:08
   
유목은 전투에 필요한 기마와 궁술을 기르는 요람이지만
수렵은 전투 그자체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단선적이고 단편적으로 생각하는데
유목도 기마전사를 기르는데 너무나 유리한 조건이죠.
그러나 상대적으로 수렵이 실전에서 기마전사를 항시 실전으로 전투력을 기르는데 더 유리한 환경이 되는 겁니다.

기마전사의 전투력 강화에 있어 둘다 유리하지만 상대적으로 수렵민들이 유목민보다 보다 더 실전경험을 쌓을수있어
유리하다는 겁니다.
뭐꼬이떡밥 18-12-22 13:17
   
내가 알고 있는거랑 정 반대라 이해가 안되네요..

일단 농업이 수렵보다 좋은점은. 한해 수확을 예측할수 있어서 좋습니다
논 한마지기에 소출이 얼마나 라는 예상이 가능합니다
예산이 가능하다는 뜻이죠

모든 문명국가는 농업이 기본입니다 수렵이나 목축에 기반을 둔 문명국가는 거의 없었죠
왜 농업이 기본이냐
좁은 땅에 많은 인간을 모여살게 하기 때문에 중앙집권화가 좋고 대규모 노동력을 확보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축은 넓은 땅이 필요하고 여기저기 퍼져있어서 힘들어요
몽골이 한때 힘을 썼음에도 그 뒤로 힘을 모두상실한 것은
그들이 모여있지 않고 흩어져 있기때문에 누가 중앙 집권화를 못하기 때문이죠

병사의 자질은 무척 중요하지만 그 규모가 대 규모가 되었을때는 개개인의 역량보다는 군 단위의 무장과 편제 전법 전술등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리고 전쟁은 일방적으로 사냥감을 쫓는 사냥이 아닙니다.
잘못했을경우 내 목숨과 가족의 목숨을 내 놓는 도박인거에요
     
삼봉정도전 18-12-22 13:37
   
님의 댓글은 이글과 전혀 핀트가 어긋나 있군요.

 이글은 어디까지나 수렵민이 유목민을 제압할수 있었던 전투력의 근원을 논하는겁니다.

 나라의 유지 영속성을 위해 안정적인 농업생산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글의 주제가 아니고.

 가생이에 보면 제대로 글을 읽지도 않거나 아니면 이해력이 부족한 댓글들이 많이 보임.

기분나쁘더라도 다시한번 읽어보세요.  요지가 뭔지.

그리고 전쟁이 일방적으로 사냥감을 쫓는 사냥이 아니라는걸 비판의 근거로 든걸 보니 솔직히 실소부터 나옵니다.

초기 고구려인들이 열악한 경제환경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 수렵의존도가 높았고 이건 전투와 다를게 없습니다.

냉병기시대 수렵활동은 그 자체가 전투입니다.

사냥이라고 하니 그냥 한개인이 산속에서 외로이 토끼사냥하고 그런줄로 아는군요.
수렵은 조직적이고 전략적으로 병사들을 조직하고 지휘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대규모 실전훈련이오.
그래서 북방민족이고 우리나라고 심지어 중국왕조들 모두 수렵을 군사훈련을 위해 매우 중시했습니다.

잘 모르면 그냥 계세요.  자게에서 반박당한거에 괜히 분기나서 여기서 이런 어쭙잖은 댓글달며 자위하지 마시구요.
          
뭐꼬이떡밥 18-12-22 15:42
   
무슨 수렵이 전쟁입니까?
정신차려요

사냥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사냥하면 어떤 동물을 어떻게 잡는지 가르쳐줘요?

성질 더러운 영주가 사냥하다 사냥감 없으면 비위거슬린다는 명목으로 사람죽이는게 사냥이에요

그럼 왜 영주는 사냥가서 사냥감이 없었을까요?

곰곰히 생각해 봐요

일반인들은 사냥가면 왜 사냥감이 없었을까.

조선시대는 왜 호랑이에 그렇게 큰 피해를 입으면서 사냥해 멸하지 못했을까?

무슨 전쟁이 브레이브 하트나 300 같은 영화인줄 알아요?

일본이 임진왜란때 모두 수렵을 해서 그렇게 잘싸웠을까요?
그전에는 왜 일본이 임진왜란 처럼 대규모로 처들어 오지 못했을꺼 같아요?
그전까지 수렵 훈련이 안되서?

모두 중앙집권화와 병사들의 훈련과 통제로 길들여 졌기 때문인거에요

님말대로라면.

이집트는 누비아 인에게 점령당해야 했고
로마는 갈리아 를 정복 할수 없었어야 했어요

군대는 모이면 모일수록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전술과 훈련의 일치화가 가장 중요한거에요

그 증거가 바로 로마의 지중해 정복인거구요

그리고 그 집중화가 농경이 훨씬 더 유리한거에요
               
삼봉정도전 18-12-22 16:44
   
풉 ㅎㅎ 뭐든지 토론을 하려면 지식과 식견이 비슷해야 하는데 이건뭐 빈약한 상식따위로 초딩우기기하는 꼴이 짜증이 날 지경입니다.


이런 기초도 안된 사람이 어쭙잖게 내가 잘났네 우기고 떠들어대는꼴이 참으로 한심하네.

ㅎㅎㅎㅎ 글 요지도 이해도 못하고 그저 다른 게시판에서 반박당한게 자존심상해 그게 분해서 여기와서 찌질찌질 ㅎㅎㅎ

몇백 단위의 부락으로 흩어져 살던 여진족들이 분열되어 있을땐 주변민족과 나라에 치여살다가 그들이 하나로 통일된후
비록 수만 정도의 총병력으로 주변국의 몇배 열배 이상의 달하는 군사력을 박살내는 전투력이 그들의 수렵생활에 기이한것이라는것은
기초 상식인데.
물론 단순히 우가우가하믄서 사냥질 한다고 그게 가공할 전투력이 되는건 아니지. 흉노족이든 몽골족이든 여진족이든 과거 고구려든
보병들에겐 공포 그자체인 가공할 기동력과 활사거리와 명중률, 그리고 갑주나 철제무기의 뒷받침 등이 그들의 수렵으로 다져진 전투력과
맞물려 힘이 배가 되는것이지.
아무튼 누비아가 어떻구 승질 더러운 성주가 어떻구 아주 꼴같지도 않은 초딩수준 근거들 가져다가 떠들어대는게 참으로 우습기 짝이 없네요.

 그냥 모르면 일단 좀 겸손한 자세로 아 그런갑다하면 이렇게 면박이나 안당하지 끝까지 지기 싫어 발악하는 모습이 꼴사납습니다. 그럼 ㅎ
                    
Tenchu 18-12-24 03:19
   
그쵸.. 당시엔 생존자체가 전투이고 수렵이란거 자체가 군사훈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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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37 [한국사] 475년 경, 물길의 사신 을력지의 방문 경로 (8) 감방친구 01-1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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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35 [한국사] 요서와 황룡, 황수와 로합하 (2) 감방친구 01-18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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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33 [한국사] 위서 388년 기사 중심 약락수(弱洛水) 추정지 (1) 감방친구 01-18 888
16732 [기타] 삼국시대 위나라 건국의 주축이 된 오환 (1) 관심병자 01-16 2134
16731 [일본] 이번 초계기 사건에 대한 일본의 의도에 대한 생각.. 승지골청년 01-15 1871
16730 [기타] [코리안루트를 찾아서](31) ‘연나라 강역도’와 조선 (1) 관심병자 01-15 1857
16729 [한국사] 신라 강역은 반도가아님 (8) 우당탕뻥 01-14 3212
16728 [한국사] 독립운동가 이상재 연설 '조선 청년에게' 1927… (1) BTSv 01-14 1189
16727 [기타] 고대 중국어가 주어 목적어 동사 순이었다는데 (16) 열공화이팅 01-13 3360
16726 [한국사] 일본서기 한반도 촌(村) 지명 (16) 호랭이해 01-12 4298
16725 [기타] 조선 초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 (22) 관심병자 01-10 5168
16724 [기타] 뜬금) 역사의 자충수 논리 두가지 위구르 01-10 1696
16723 [기타] [대한제국 120주년] 다시 쓰는 근대사 <12> 비상계… 관심병자 01-09 1419
16722 [한국사] 10 세기 초 거란과 해의 상황 (12) 감방친구 01-09 2671
16721 [한국사] 영주(營州) 추적과 정황 근거 감방친구 01-08 1012
16720 [기타] 독일인 지그프리드 겐테의 견문기의 대한 제국 관심병자 01-08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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