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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2-12 11:18
[기타] 조선은 언제 서양개혁을 했어야 해야하나요?
 글쓴이 : 뉴딩턴
조회 : 2,115  

조선이 유교사상 때문에 서양개혁 받지않고 계속 유교사상을 고집했는데 만약에 조선이 서양개혁을 받아다면 언제 시기쯤 받아야 청나라 일본 에게 침공을 예방할수 있는 상황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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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꼬이떡밥 18-12-12 11:29
   
사회개혁이 먼저 이루어 져야죠.
사회개혁이 이루어 지려면 먼저 사상가가 나와야 하고
그 사상가를 지지해주는 계층이 나와야 하죠.

그래서 그 새로운 시대를 지지하는 계층과 기존의 세력이 충돌로 개혁이 일어나죠

이념 사상이 없는 변란은 그냥 변란일 뿐입니다
Tenchu 18-12-12 11:31
   
기회는 잠깐 딱 한번있었죠. 대원군 몰아내고 개화파들이 개혁하려했을때..
근데 미친 골빈뇬 하나가 사사건건 방해를 했죠. 그래서 빡돈 개화파들이 들고일어났다가 실패해서 죄다 싹뚝..
     
mymiky 18-12-12 17:17
   
저기요... 대원군 몰아내고 개화파들이 개혁하려 했을때
미친.년 하나가.... (아마? 이 뜻은 명성황후를 의미하는 것일텐데ㅡ.ㅡ;;)

그 대원군  몰아낸 개화파들이 고종.민비파들 입니다.
즉.  온건 개화파들이죠.

그리고 님이 말씀하시는게 (갑신정변)을 말하고 싶으신거라면...

강경노선의 급진파들이
온건 개화파들 죄다 테러해 버리고
고종을 자기들 손 안에 넣은뒤, 얼굴 마담으로 내세워서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개혁하겠다고 덤비다가

고종이 충격받아
이놈들이 위험하고 미친놈들이구나! 대노해서
팽~해버린 사건이지요.

뭐든지 극단적인 무리들은, 무리수를 써서 자폭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급진파들의 이같은 개삽질로
고종은 보수적으로 생각을 돌렸고, 백성들도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갑신정변이란 뻘짓을 해버려서..
사회 분위기가 한동안 (개화)란 단어까지 입에 올리기 껄끄러워졌죠..

반역도당이란 이미지만 붙었음...
     
히스토리아 18-12-13 16:57
   
바로 위에서 mymiky님이 정확히 말씀해 주셨네요.

조선을 멸망으로 이끈 2대세력이라면 첫번째가 갑신정변 일으킨 급진 친일 개화파고
두번째가 바로 대원군 세력이었습니다.

당시에 이미 대원군을 중심으로 한 또라이 골수 수꼴들 제외하면
개화에 반대하는 사람은 최소한 조선 지도층에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골수 수꼴들은 이미 뒷방 늙은이들이었고요.
이미 개화는 시간문제일 뿐이고 실제로 상당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망친게 바로 갑신정변이었습니다.
갑신정변 일으킨 놈들이 얼마나 나쁜놈들이냐면
아무 의심없이 온 어제의 동지들을 자기들 방식과 다르다고 그냥 쳐죽인 놈들입니다.

그리고 온건개화파들이 바보라서 일본식을 따르지 않은게 아니었어요.
일본의 숨은 의도를 그들은 거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당시 일본의 숨은 의도는 심지어 저자거리의 무지렁이 백성들도 알고 있었는데
딱 갑신정변 일으킨 그 친일 개화파들만 몰랐습니다.

갑신정변은 그야말로 조선이 망국에 이르지 않고 개화를 성공시킬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게 만든 뻘짓이었습니다.
비좀와라 18-12-12 12:41
   
당시 사회개혁이 맞는지 조차 확실하지 않습니다.

당시나 지금의 사회상을 알려면 초기 기독교 역사와 사상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예수 사후에 세명의 사도가 중심이 되어서 기독교 사상을 전파하고 유지하는데 로마를 중심으로는 베드로가 지금의 소아시아 지방과 그리스 지방은 바울이 그리고 유대에는 요한을 중심으로 기독교를 형성 하게 되거든요.

요한은 대부호 이면서 나름 교육을 받은 사람 이었고 바울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지식인 이면서 나름 유복한 집안의 후손이지만 이들과 다르게 베드로는 무산계급이면서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베드로의 사상을 이어받은 로마 카톨릭은 동방 정교회나 이스라엘에 남아있던 요한을 따르던 유대교인과는 다르게 부자를 혐오하고 교육을 무시하면서 유대의 전통을 부정하면서 유대인 혐오사상의 본거지가 되는 것 이거든요.

이런 사상이 후일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와 무신론의 기본이 되는 것 입니다. 오늘 날 소위 좌파라는 사상이 로마 카톨릭 사상에 근거해서 일어난 사상이라는 거죠.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가 프랑스의 국교가 카톨릭 이었기 때문이란 것 입니다.

그리고 카톨릭은 동방 정교회와 불화를 일으키면서 또한 동방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기독교의 역사적인 배경을 먼저 알고 구 한말의 사정을 봐야 이해가 된단 말입니다.

이토오 히로부미 집안은 근본을 알 수 없었던 아주 미천한 집안으로 이토오 히로부미는 소위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의 성격을 띠고 있고 그 반대의 에도 막부가 보수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 이고요. 그리고 정한론의 찬반 문제로 이토오 히로부미 파와 반대편에 섰던 패거리들 역시 일본의 보수적인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거죠.

정의 하자면 이토오 히로부미와 카톨릭은 무산계급을 옹호하고 혁명을 일으켜서 세상을 바꿀려는 것과 부자를 혐오하고 유태인을 혐오하면서 동방(혹은 동방정교회 / 당시 제정 러시아는 동방정교회의 수호자 였음)세력과의 대립을 하는 것에 이해 관계가 일치 했다는 거죠.

결국은 일본의 대 조선 침략은 카톨릭의 대 동방세력의 대립의 연장선으로 카톨릭의 지원을 받고 조선을 침공 한 것이지 조선이 약하거나 부패하거나 해서가 아니란 것 입니다.

굉장히 커다란 그림으로 봐야 한단 말이죠.

여기서 러일전쟁 시에 미국의 유태인 세력이 일본에 재정적인 지원을 해서 승리를 이끌었는데 왜 유태인들은 러시아에 적대적 이었냐 라는 것이죠.

유태인도 둘로 나뉘는대 당시 일본을 지원한 세력은 프랑스에 기원한 유태인 세력으로 나중에 이들이 지금의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요한과 같은 정통 유태인들은 카자리아에 지역에 있었던 유태인으로 이들은 후일에 독일 나찌에 학살 당하는 유태인들이 이들이죠.

유태인도 예수를 부정하였던 유태 제사장 세력과 예수를 따랐던 세력으로 나뉘는데 프랑스에 있었던 유태인은 예수를 부정하던 세력으로 카톨릭과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세력이고 그 반대의 세력이 헝가리와 영국 그리고 러시아와 독일등에 거주 하고 있었던 거죠.

개신교와 동방 정교회 세력은 기본적으로 유태인들에게 그렇게 적대적 이질 않습니다. 문제는 카톨릭과 이들에게서 파생되어 나온 좌파들이 유태인들을 혐오하고 학살하는 거죠.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사람이고 오스트리아의 국교 역시 카톨릭이죠.

과거나 지금이나 언제나 악의 진원지는 바티칸이고 이 바티칸이 우리와는 상극이란 말입니다.

다시 원래의 말로 돌아가서 좌파의 세계를 구현하면 선善이고 그 반대면 악惡 입니까? 원래 유태인이나 한국이나 기타 여러나라의 전통사상은 부는 하늘의 축복이라는 것에는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착하게 살거나 신앙생활을 경건히 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 부란 것이죠.

그런데 이상하게 요새 카톨릭을 좋게 말하고 부자를 혐오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있는데 원래의 한국사상은 그 반대란 말입니다. 카톨릭을 찬양하고 부자를 혐오하는 사상이 바로 좌파의 생각인데 이를 진보라 착각 하고 있죠.

조선이 망한 것은 부를 축적하는 것을 멸시하고 상업활동을 멸시하던 소위 양반이라는 족속들이 넘쳐나서 망한 거죠.
TimeMaster 18-12-12 13:43
   
정조가 여러차례 사람을 파견해 막부와 교류하는 네덜란드 세력이랑 통교하려고 했는데 조선과 교류하는 순간 일본에서의 모든 기득권과 이득을 막아버리겠다는 왜구들의 협박때문에 차후 조선에서의 이득이 얼마나 될지 불확실했던 네덜란드 측에서 포기를 한적이 있죠.

조선이 19세기 초부터 중반까지 60여년간 세도정치로 망가지며 구한말 처참히 망해서 그렇지 18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조선이라고 아주 꽉 막힌 사회는 아니었음.
     
mymiky 18-12-12 17:19
   
정조가 네델란드랑 통교를 했다는 자료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소스가 어딘가요?

네델란드가 코리아란 배를 만들어 조선과 접촉할 계획을 세운적이  있긴 하지만

정조때는 아닙니다. 그 이전에 효종인가? 현종?때쯤일 겁니다.

에도막부는
조선과 네델란드가 교류하면
일본의 이익이 줄어들까봐 네델란드가 못 가도록 반대함.
          
zerosnl 18-12-14 01:11
   
다큐가 있었어요 제목은 기억이 안나지만
정조가 맞구요 여튼 오래전 다큐로
역사다큐로 나왔었습니다
피닉 18-12-12 16:38
   
러시아 표도르가 연해주까지는 아니라도 북쪽까지 왔을때 같이 개몽군주가 나타나고, 사회변화가 시도 되었어면 괜찮았을것 같네요.
     
mymiky 18-12-12 17:22
   
계몽군주란건 유럽 쪽의 이야기지..

동시대
동양권에서 계몽군주가 나오긴 어렵죠..

애초에 사상기반도 다르고요.. (성군)에 대한 개념 자체가 동서양이 차이가 있으니까요..
Banff 18-12-12 16:52
   
1894년 갑신정변은 너무 늦고.. 윗윗분말대로 저도 정조때에 한표. 정조사후 세도정치때 실학파는 다 죽여서 씨를 말라버렸으니까.
     
mymiky 18-12-12 17:34
   
정조를 흔히 개혁군주라 칭하지만 글쎄..

정조가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요즘엔 거품론도 있는 왕이라서요...

기본적으로,  정조는 철저한 유교론자였습니다.

서학도 사이비라고 생각했고 
정학 ㅡ 유교가 바로서면 그깟 사이비는 없어질꺼라 했을만큼
보수적인 왕이였음..

정조의 개혁을 잘 따른게 흥선대원군인데
그분이 오늘날 쇄국주의자라 불리우는 마당에..

대원군의 원조격인 정조?? 글쎄요ㅡ.ㅡ

워낙 사극에서 미화되어서 그렇지..

정조가 대중들이 생각하는 그런 개혁군주는 아님..
그냥 그 시대 유교적인 봉건군주로써 준수했던 왕일뿐ㅡ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님..

세도정치를 연 것도 어찌보면 정조가 뿌린 씨앗이기도 하구요..홍국영. 김조순 등..
          
Banff 18-12-13 04:28
   
정조가 개혁군주라는게 아니라 시기적으로 그때 문을 열었으면 일본에게 꼼짝없이 당하지는 않았을까는 얘기에요. 결과론적이지만 일찍 열수록 좋았을거고, 세도정치이후 실학파, 개화파는 다 몰살이었으니.

아래 쓰신 1882 임오군란도 너무 늦다고 봐요. 스스로 군수산업 발전시키려면 돈과 기술, 시간이 필요하니. 1866 미국 제너럴 셔먼호사건때라면 모를까.. 일본의 경우 이토가 1860대에 영국유학, 1880년대에 산업혁명급 발전, 그리고 바로 청일전쟁. 문호개방후 대략 30년이상은 걸렸죠.

유럽의 제국주의 팽창경쟁이 심해진게 프랑스가 혁명에 혁명으로 잠잠하다가 1852 나폴레옹 3세가 쿠데타 집권하고 팽창주의 외친 1850년대이후인데, 크림전쟁이후 영국, 러시아사이의 Great Game으로 동아시아에로도 전선이 확장되었고, 1871 보불전쟁 승리한 독일과 이태리 통일로 이들도 끼어들면서.. 일본은 미국덕에 유럽이 날뛰기전에 일찍 문열어 시기적으로도 운이 좋았고, 거기에 미국은 1861 남북전쟁 터지는 바람에 지금보면 저도 일본은 운이 참 좋았다고 봅니다.
아비요 18-12-12 17:37
   
계속 유교사상을 고집하지는 않았죠. 고종땐 어쩔수 없는 대세로 조약맺고 개방했잖아요? 다만, 워낙 정보가 없어서 그랬는지 중요한 곳에 자본을 집약해서 투자하지 못하고 좀 우왕좌왕 하는사이 먼저 준비되어 있던 일본이 집어삼킨거..
mymiky 18-12-12 17:53
   
당시.. 서양의 배들은 무역선인 동시에 해적선이기도 했고
통상과 침략이 양면성이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온 선교사들 역시
무작정 착한게 아니라 침략의 첨병이였고요..

서양문화를 빨리 받아들인 나라야
터키도 있고 청나라도 있고. 베트남도 있는데...
하지만 죄다 망했죠..

당시로 본다면.. 일본이 특이한 예인거고..+태국 정도가 있는데

두 나라다 지리적인 영향도 큽니다.

게다가 일본은 개항시킨 미국이 남북전쟁으로 제코가 석자였던때라
운도 따랐고요..

조선은 결과적으로는 프랑스.미국 다 물리쳤죠.
그리고 쇄국했지만;;; 당시엔 당연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개인 생각으로는

임오군란(1882)이후 ㅡ 1894년에 돌아갈때까지
원세개가 12년간 조선에서 갑질할때?

이 시기가 정말 아쉽습니다.
조선으로썬 진짜 중요한 시기였는데,  날려먹은게 많은거 같아서요..
     
뭐꼬이떡밥 18-12-12 18:35
   
저랑 같은 판단을 하시네요...

무턱대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나라들은 전부다 식민지로 전락했죠.

진짜 1800년대를 좀더 조심스럽게 백성과 신하들과 왕이 일치단결해서
현명하게 운영했다면 일본의 식민지가 안되었을텐데
정말 그때는 당파를 하면 안되는 시기였어요
          
mymiky 18-12-12 18:46
   
세도정치 시기엔 이미 당파가 유명무실한 시대임.

조선말은 당파가 아니라
그냥 외척 가문의 전횡인거죠. (우리 가문 사람들만 잘 먹고 잘 살면 됨.) 이런거..

조선말기는 소년 왕들이 연달아 재위하는데

성인으로 즉위한 철종마저도
교육을 잘 받지 못한 사람이 갑작히 왕이 된 케이스기도 하고요..

국운이 기울때라 그런가ㅡ.ㅡ 말기엔 왕자 하나 낳는 것도 힘들었음..
조선뿐만 아니라  청나라도 그렇고 에도막부도..

희안하게
직계 남자 자손이 갈수록 줄어듬..
     
히스토리아 18-12-13 16:47
   
완전 동감입니다.
제가 그래서 누누히 하는 얘기가 갑신정변 이후 잃어버린 10여년이
"조선이 살아날 수 있는 골든타임이었다."입니다.
페닐 18-12-12 19:23
   
미국에 남북전쟁 안났음
일본도 식민지 될 수 있었음
     
쉿뜨 18-12-12 20:12
   
남북전쟁이 안났으면 미합중국은 더 늦었고, 미국의 해외 진출은 더 늦어졌겠죠.
     
범고래 18-12-13 00:04
   
남북전쟁이 없었다면 하나의 미합중국의 탄생도 없고 두 세력 간의 견제 때문에 해외로 눈 돌릴 틈이 없었겠죠.
TTTTTTT 18-12-12 23:23
   
소현세자가 죽지않고 왕위에 올랐으면 됩니다.
부르르르 18-12-13 00:03
   
송시열의 노론 집권부터가 문제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히스토리아 18-12-13 16:43
   
개항 이전 그러니까 그 이전으로 올라가 소현세자나 효종, 정조를 들먹이는데
그때 서양과 교류해봤자 아무 소용없습니다.

일본이 네덜란드와 교역했던 거나 난학은 실제 일본의 개방과 개혁에 도움된 거 거의 없습니다.
일본을 개혁으로 이끈 주체들 걔네들이 말하는 소위 유신지사들 중에 난학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전부 서당에서 주자학을 배운 주자학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개항 이전까지 난학의 존재도 몰랐던 사람들입니다.
주자학이라는 인문학의 전통을 배운 위에 그 신념대로 행동하다 보니 서양의 실체를 알게 되고
서양의 학문에 접하게 되면서 눈이 넓어져 간 거예요.

그리고 일본의 개혁이 성공한 큰 원인 중의 하나가 일본이 개혁을 시도하는 그 시간 동안
일본을 잡아먹으려는 외세가 없었던 것도 큰 원인입니다.
조선과 중국의 개혁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외세 일본의 존재입니다.
일본에는 일본을 잡아먹으려는 일본이 없었던 게 가장 큰 행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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