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사후에 세명의 사도가 중심이 되어서 기독교 사상을 전파하고 유지하는데 로마를 중심으로는 베드로가 지금의 소아시아 지방과 그리스 지방은 바울이 그리고 유대에는 요한을 중심으로 기독교를 형성 하게 되거든요.
요한은 대부호 이면서 나름 교육을 받은 사람 이었고 바울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지식인 이면서 나름 유복한 집안의 후손이지만 이들과 다르게 베드로는 무산계급이면서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베드로의 사상을 이어받은 로마 카톨릭은 동방 정교회나 이스라엘에 남아있던 요한을 따르던 유대교인과는 다르게 부자를 혐오하고 교육을 무시하면서 유대의 전통을 부정하면서 유대인 혐오사상의 본거지가 되는 것 이거든요.
이런 사상이 후일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와 무신론의 기본이 되는 것 입니다. 오늘 날 소위 좌파라는 사상이 로마 카톨릭 사상에 근거해서 일어난 사상이라는 거죠.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가 프랑스의 국교가 카톨릭 이었기 때문이란 것 입니다.
그리고 카톨릭은 동방 정교회와 불화를 일으키면서 또한 동방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기독교의 역사적인 배경을 먼저 알고 구 한말의 사정을 봐야 이해가 된단 말입니다.
이토오 히로부미 집안은 근본을 알 수 없었던 아주 미천한 집안으로 이토오 히로부미는 소위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의 성격을 띠고 있고 그 반대의 에도 막부가 보수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 이고요. 그리고 정한론의 찬반 문제로 이토오 히로부미 파와 반대편에 섰던 패거리들 역시 일본의 보수적인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거죠.
정의 하자면 이토오 히로부미와 카톨릭은 무산계급을 옹호하고 혁명을 일으켜서 세상을 바꿀려는 것과 부자를 혐오하고 유태인을 혐오하면서 동방(혹은 동방정교회 / 당시 제정 러시아는 동방정교회의 수호자 였음)세력과의 대립을 하는 것에 이해 관계가 일치 했다는 거죠.
결국은 일본의 대 조선 침략은 카톨릭의 대 동방세력의 대립의 연장선으로 카톨릭의 지원을 받고 조선을 침공 한 것이지 조선이 약하거나 부패하거나 해서가 아니란 것 입니다.
굉장히 커다란 그림으로 봐야 한단 말이죠.
여기서 러일전쟁 시에 미국의 유태인 세력이 일본에 재정적인 지원을 해서 승리를 이끌었는데 왜 유태인들은 러시아에 적대적 이었냐 라는 것이죠.
유태인도 둘로 나뉘는대 당시 일본을 지원한 세력은 프랑스에 기원한 유태인 세력으로 나중에 이들이 지금의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요한과 같은 정통 유태인들은 카자리아에 지역에 있었던 유태인으로 이들은 후일에 독일 나찌에 학살 당하는 유태인들이 이들이죠.
유태인도 예수를 부정하였던 유태 제사장 세력과 예수를 따랐던 세력으로 나뉘는데 프랑스에 있었던 유태인은 예수를 부정하던 세력으로 카톨릭과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세력이고 그 반대의 세력이 헝가리와 영국 그리고 러시아와 독일등에 거주 하고 있었던 거죠.
개신교와 동방 정교회 세력은 기본적으로 유태인들에게 그렇게 적대적 이질 않습니다. 문제는 카톨릭과 이들에게서 파생되어 나온 좌파들이 유태인들을 혐오하고 학살하는 거죠.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사람이고 오스트리아의 국교 역시 카톨릭이죠.
과거나 지금이나 언제나 악의 진원지는 바티칸이고 이 바티칸이 우리와는 상극이란 말입니다.
다시 원래의 말로 돌아가서 좌파의 세계를 구현하면 선善이고 그 반대면 악惡 입니까? 원래 유태인이나 한국이나 기타 여러나라의 전통사상은 부는 하늘의 축복이라는 것에는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착하게 살거나 신앙생활을 경건히 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 부란 것이죠.
그런데 이상하게 요새 카톨릭을 좋게 말하고 부자를 혐오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있는데 원래의 한국사상은 그 반대란 말입니다. 카톨릭을 찬양하고 부자를 혐오하는 사상이 바로 좌파의 생각인데 이를 진보라 착각 하고 있죠.
조선이 망한 것은 부를 축적하는 것을 멸시하고 상업활동을 멸시하던 소위 양반이라는 족속들이 넘쳐나서 망한 거죠.
정조가 개혁군주라는게 아니라 시기적으로 그때 문을 열었으면 일본에게 꼼짝없이 당하지는 않았을까는 얘기에요. 결과론적이지만 일찍 열수록 좋았을거고, 세도정치이후 실학파, 개화파는 다 몰살이었으니.
아래 쓰신 1882 임오군란도 너무 늦다고 봐요. 스스로 군수산업 발전시키려면 돈과 기술, 시간이 필요하니. 1866 미국 제너럴 셔먼호사건때라면 모를까.. 일본의 경우 이토가 1860대에 영국유학, 1880년대에 산업혁명급 발전, 그리고 바로 청일전쟁. 문호개방후 대략 30년이상은 걸렸죠.
유럽의 제국주의 팽창경쟁이 심해진게 프랑스가 혁명에 혁명으로 잠잠하다가 1852 나폴레옹 3세가 쿠데타 집권하고 팽창주의 외친 1850년대이후인데, 크림전쟁이후 영국, 러시아사이의 Great Game으로 동아시아에로도 전선이 확장되었고, 1871 보불전쟁 승리한 독일과 이태리 통일로 이들도 끼어들면서.. 일본은 미국덕에 유럽이 날뛰기전에 일찍 문열어 시기적으로도 운이 좋았고, 거기에 미국은 1861 남북전쟁 터지는 바람에 지금보면 저도 일본은 운이 참 좋았다고 봅니다.
개항 이전 그러니까 그 이전으로 올라가 소현세자나 효종, 정조를 들먹이는데
그때 서양과 교류해봤자 아무 소용없습니다.
일본이 네덜란드와 교역했던 거나 난학은 실제 일본의 개방과 개혁에 도움된 거 거의 없습니다.
일본을 개혁으로 이끈 주체들 걔네들이 말하는 소위 유신지사들 중에 난학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전부 서당에서 주자학을 배운 주자학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개항 이전까지 난학의 존재도 몰랐던 사람들입니다.
주자학이라는 인문학의 전통을 배운 위에 그 신념대로 행동하다 보니 서양의 실체를 알게 되고
서양의 학문에 접하게 되면서 눈이 넓어져 간 거예요.
그리고 일본의 개혁이 성공한 큰 원인 중의 하나가 일본이 개혁을 시도하는 그 시간 동안
일본을 잡아먹으려는 외세가 없었던 것도 큰 원인입니다.
조선과 중국의 개혁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외세 일본의 존재입니다.
일본에는 일본을 잡아먹으려는 일본이 없었던 게 가장 큰 행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