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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27 00:50
[한국사] 백제 왕자 일본 볼모 혹은 인질 대해서
 글쓴이 : 뉴딩턴
조회 : 3,803  

일본서기에도 인질로 온 백제 왕자들의 이야기가 있고 삼국사기 백제본기 아신왕조> 6년(397) 여름 5월에 왕이 왜국(倭國)과 우호를 맺고 태자 전지(支)를 볼모로 보냈다.

볼모로 일본에 간 백제 왕자들은 그저 인질로 억류되어 있던게 아니라
일본 조정에서 중책을 맡아 국사를 돌보는 일을 합니다.  이게 맞나요?

백제 왕자가 알본에 왜국으로 볼모  보내다는 무슨 뜻인가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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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pl 18-11-27 12:18
   
근데 크게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일본, 중국, 베트남, 아시아 전체가 동이족에서 나온 우리 민족, 우리 역사입니다.

내부적으로 다툼이 있었다고 보시면 돼요.
     
바람아 18-11-27 13:26
   
웃자고 하시는 소리죠?
     
가난한서민 18-11-27 13:33
   
외국인이  부계정 새로 하나판듯
     
pontte 18-11-27 14:06
   
위아더 윌드
     
claspl 18-11-27 14:12
   
최초의 문명은 동이족인 요하문명이고, 그것을 기초로 하여 여러 문명이 생성, 발전됐습니다.

역사 공부를 하길 바랍니다.
          
바람아 18-11-27 14:27
   
딱 보니까 역번역 의도네 ㅎㅎ
          
Attender 18-11-27 14:32
   
아직, 요하문명 유적지역의 물질적인 특성과 고조선 유적인 정가와자 유적, 최근 주목받고 있는 십이대영자 유적과 요서 적봉시 일대의 홍산문화의 물질문명 간의 연관성과 연결고리가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claspl 18-11-27 15:14
   
가생이 닷컴에서 이런 의견 나온 건 오랜만이네요.
     
Attender 18-11-27 14:29
   
역번역용 댓글, 더이상 먹이를 주지 마시오
뉴딩턴 18-11-27 15:39
   
함께 탁순국에 모여 신라를 격파하고, 비자발·남가라·녹국·안라·다라·탁순·가라 7국을 평정하였다. 또 군대를 몰아 서쪽으로 돌아서 고해진에 이르러 남만 침미다례를 도륙하여 백제에게 주었다. 이에 백제 왕 초고와 왕자 귀수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만났다. 이때 비리·벽중·포미·지반·고사의 읍【혹은 비리·벽중·포미지·반고의 4읍】이 스스로 항복하였다.

《일본서기》 진구 황후 이 기사는 주체가 백제 되야하죠. 일본서기 중국 자료 베낀고 삼국사기는 김부식이  중국 중심으로 기록와 신라 우상으로 만든거라서 100% 신뢰성이 없는거죠.
뉴딩턴 18-11-27 15:50
   
근데 내가 왜 욕 먹어야 하노? 그냥 백제 왕자 볼모 왜 무엇을 위해 물어보는건데 게 개처럼 물어뜯고 있음?
     
바람아 18-11-27 16:03
   
누가 님을 욕해요?
윈도우폰 18-11-27 15:56
   
그런 식으로 따지면 고려 왕에 시집온 몽고의 공주들을 보면 몽고가 우리보다 힘이 약했기에 원의 공주들을 시집이란 명칭 하에 볼모로 보낸 것으로 봐야함. 고려시대에는 몽고가 우리에게 공주를 볼모로 보낼 만큼 우리에 비해 약한 나라였나??? 백제도 마찬가지...왕자를 보낸게 볼모? 원래 힘 약한 곳에서 강국의 약속을 지켜달라고 왕족을 보내달라거나 혼인을 요청하는 것인데...왜인들은 이를 자기 식의 볼모로로 왜곡 표현한 것에 불과함. 봉건제 개념에서 영주 자식을 볼모로 잡는 것의 연장선으로 사실에 대한 해석을 그럴듯하게 왜곡한 것임...일본서기 자체가 그런 성격...이러한 관점을 그대로 받아들여 질문을 올리신듯
윈도우폰 18-11-27 16:10
   
우리도 왜놈들처럼 역사를 기술한다면...쿠빌라이가 고려와의 오랜 전쟁에 패하여 화친코자 그의 막내 손녀딸 제국공주인가를 고려왕에게 볼모로 보냈으나 형식은 혼인방식을 취하면서 입조하였다고 바꾸어 기술해야 할 듯^^
     
claspl 18-11-27 16:11
   
왜이렇게 복잡하게 설명하시나요.

어차피,  일본, 중국, 베트남, 아시아 전체가 동이족에서 나온 우리 민족, 우리 역사입니다.

내부적으로 다툼이 있었다고 보시면 돼요.

이렇게 설명하시면 됩니다.  원도우폰님이 말씀하시려는 말이 이거 같습니다.
          
햄돌 18-11-27 16:19
   
어그로도 이정도면 정신병이 아닌가 싶다
          
바람아 18-11-27 16:57
   
할 짓 더럽게 없구나 ㅋㅋ
          
뚜리뚜바 18-11-27 23:08
   
정신은 좀 잡고 사쇼;; ㄷㄷㄷ
          
CIGARno6 18-11-28 18:54
   
난 아베랑 우리민족 하기 싫은데.
아베랑 우리민족이신분. 일본커뮤에서 노시면 더 재밌을텐데.
뉴딩턴 18-11-27 16:22
   
일본 최초국가 야마토국은 쿠슈지방에 시작되고 히미코은 가야출신이 되야함 일본 신화 가야 신화 비슷하고 기원전 3세기 한반고 도래인  무문토기 고인돌 독무덤 벼농사  일본쿠슈 전파기원전 1세기 파형토기 갑주 가야유물인데 일본학자도 인정한 사실인데 일본인 그런것 안배우는가요?
가난한서민 18-11-27 16:34
   
불모로 갔다기보단 통치하러 간건데 잘못 기록되어 있죠
뉴딩턴 18-11-27 16:38
   
하긴 불교 성왕시절백제는 일본에 불교를 전파했다(538년  왕인 천자문 전파한 사람이 백제인데 과연 인질이
신라처럼 볼모을 잡혀가요?
관심병자 18-11-27 17:55
   
왜에 가있던 백제왕자의 역할, 위신에 대해서는 백제 멸망시의 부여풍을 통해 어느정도 유추해 볼수 있습니다.
백제 부흥운동 당시 부여풍이 왜의 병사를 데리고 백제를 구하러 왔죠.
백제와 왜 왕실은 친인척 관계였고, 백제 왕자들은 인질 이라기 보다는 현제로 치면 외교관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수 있을것 같습니다.
뉴딩턴 18-11-27 18:37
   
아하 아마도 아신왕이 광개토대왕와 전쟁 하기 위해  왜군을 지원 요청 대신태자 볼모와 백제 선진문화 왜국으로 전파 조건을 제시하는거죠? 기브 앤 테이크 ? 아신왕의 왜국 교역 집착이 백제와 왜국 사이가 좋아진거죠
사랑투 18-11-27 18:46
   
백제는 22담로가 있고  그곳에 각각 왕족들을 파견하죠.
그것의 연장선입니다.

  백제가 각 담로에 인질을 보낸 걸까요.?
 아니면 백제만의 통치기술의 연장선일까요.
상식4 18-11-27 19:45
   
로마와 훈족 사이에 서로 볼모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당시 로마는 훈족을 상대로 막대한 금전을 바치고 평화를 사는 상황이었죠.

흉노가 한참 전성기일 때도, 왕자를 동호에 볼모를 보내기도 했죠.
그 볼모가 도망치고 흉노가 동호를 정벌합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도 강국의 왕자가 약국의 볼모 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볼모라는 게 약소국에서 강국으로 보내는 게 아니라 외교적 보증의 의미로 보내는 겁니다.

그리고 임라일본부 같은 게 일본 학계에서도 안 우기고 뒤로 빼는 건
당시 일본의 문명 수준이나 국력으로 보기에 택도 안 되는 일이라 그런 겁니다.

히미꼬인가 무시긴가 임신한 상태로 돌로 거시기를 틀어막고 일본이 신라 정벌하고 신라왕의 항복을 받았네 어쩌네도 우스운 이야기죠. 당시 일본이래 봤자 쪼꼬만 소국이고, 사실에 기반한 기록이라 가정한다쳐도 어디 신라 군단위 하나 정도 해적질하고 거기 촌장 정도 되는 사람 가지고 신라왕이니 개소리 했다고 봐야 합리적이죠. 당시 일본에서 국가라는 단위인식이 고작 그 정도였으니까.
상식4 18-11-27 19:52
   
일본 서기 기록보면 일본내에서 신라나 백제가 세운 식민지 소국간의 분쟁이라 보는 설도 합리적인듯...
실제로 후대로 가도 일본 지배층들이 지들이 신라계니 백제계니 해쌓기도 하니까...
뉴딩턴 18-11-28 13:58
   
일본서기도 주체로 백제나 가야 역사책으로 재해석을 해야되는것 아닌가요?
     
햄돌 18-11-28 22:09
   
백제멸망 이전에
한반도랑 열도를 따로보는건 애매하다고 보네요
50드론러쉬 18-11-29 00:53
   
원래 고대사에서 왕족이나 귀족 인질 보내는 건 흔합니다
현대의 인질 개념은 아니고 외교 사절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전 문명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구요 사례는 엄청 많아요
제일 유명한건 로마가 훈족에게 인질 보내면서 국교 돈독히 한 거
그리고 볼모 보냈을 때 보면 백제가 고구려한테 한창 털리던 때입니다
거의 피난 개념이에요
홈사피엔스 18-12-05 04:20
   
우연히 들어왔다가 이 질문을 보았습니다. 제가 답을 쓰는 것이 도움이 될지 저도 의문이지만 몇 자 적어봅니다.

우선 히미꼬는 생몰연대가 분명한 사람(148~247)으로 106년에 고령으로 사망한 수로왕과는 나이가 100살 이상 차이가 납니다. 따라서 생물학적인 부녀관계가 될 수 없습니다.

히미꼬는 신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약 10살 정도 되던 때 신라 아달라이사금의 대대적인 지방 정벌을 피해 많은 무리들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고 봅니다. 포항의 영일만 이야기도 이때의 역사적 사건을 반영한 것입니다.  비미호가 바다를 건너 구주로 갈 무렵은 160년대인 성무시절로 추정됩니다. 나이는 대략 20세 무렵으로 성인이 된 직후입니다. 이때 구주는 신이민그룹의 등장으로 구이민그룹과의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구이민그룹인 중애가 정치적 안정을 위하여 신이민그룹인 히미꼬를 왕비로 선택한 것은 두 집단간의 갈등을 치유하고자 노력한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정변이 발생하여 중애가 죽고 히미꼬가 왕권을 잡으면서 내란이 발생합니다. 히미꼬의 중요부분만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
중애 1년 (170년); 비미호 23살
중애 2년 (171년); 비미호 24살
중애 8년 (172년); 비미호 25살
중애 9년 (173년); 비미호 26살, 왜국에 정변 발생, 신라에 사신
<6년 내란>
신공 1년 (179년); 비미호 32살, 비미호 즉위, 응신이 죽은 403년 기록이 있음.
신공 2년 (180년); 비미호 33살, 응신을 장사지낸 404년 기록이 있음.
신공 3년 (181년); 비미호 34살, 응신의 아들이 태자가 된 405년 기록이 있음.
신공 4년 (182년); 비미호 35살,
신공 5년 (183년); 비미호 36살, 418년의 기록이 있음.
... *신공 13년까지가 응신의 왕후인 중희의 5세기 초 기록임.

광개토왕에 의하여 잔국(고구려에서 삼한소국체제를 이르는 말)이 토벌된 바로 다음 해인 397년의 아신왕의 응신조로의 전지태자 볼모기록은 삼국사기와 일본서기가 달까지 일치하는 기록입니다. 이것이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출현하는 최초의 왜국기록이기도 합니다. 즉 그 전에 백제는 왜국을 만난 적이 없다는 뜻인데 이것은 정확한 기록입니다. 397년이 기내에 왜국이 건국된 해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그 이전에 왜국을 만났다고 하면 거짓말이 됩니다.

한일 고대사를 이해하려면 목지국 진왕력을 알아야 합니다. 본래 百濟란 해양국가이던 목지국의 국명이며 백제왕이란 진왕의 호칭이었습니다. 제가 왕력을 적어드립니다.

[1기] 한반도시대 약 4백년
1.비류 ------------------------------------ 12.여구 - 13.여수 - 14.여휘

[2기] 일본열도시대 약 80년(396-477)
15.응신 - 16.인덕(찬) - 17.이중(미) - 18.반정(진) - 19.윤공(제) - 20.안강 - 21.웅략(무, 여곤)

[3기] 한반도시대 약 2백년
22.동성(여대) - 23.무령(여융) - 24.성명(여명) - 25.위덕(여창) - 26.혜 - 27.법 - 28.무 - 29.의자 - 30.풍

백제는 고구려와 전쟁하다 패하여 396년에 일본열도로 천도했다가 477년에 다시 한반도로 돌아왔습니다. 7왕이 82년을 일본열도에서 지냈습니다. 따라서 2기인 5세기의 백제왕릉을 찾으려면 일본으로 가야합니다.

아신왕이 태자를 볼모로 보내고 왜국과 우호를 회복한 이유는 일본서기에 써 있습니다. 아신왕이 백제왕을 칭했기 때문입니다. 백제왕을 칭하려면 공립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부여에서 온 제도인데 고구려에서는 일찍 사라졌지만 백제에는 망할 때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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