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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23 19:28
[기타] 고구려와 연개소문의 마지막 대첩 <사수대첩>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913  

https://cafe.naver.com/sam10/112101

오늘은 세계의 전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아시아 최대 군사 강국인 중국지방의 수,당과 거의 한세기동안 사투를 벌인 고구려의 마지막 대첩인 사수대첩을 다루고자 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토번이 강성했지만 고구려만큼 버티지 못했다는 것만 봐도 고구려가 얼마나 수당을 상대로 효과적인 전투를 벌였는지 유추해볼 수 있지 않나 생각을 해봅니다.

 

우선 사수 대첩은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당을 상대로 한 제2차 고당전에서 나온 전투입니다. 요즘 대조영에서 한 참 다루고 있는 전투이기도 하죠. 사수 대첩은 662년에 일어났고 당시 당나라 좌효위장군 백주자사 옥저도총관 방효태가 사수가에서 연개소문과 싸웠는데, 전군이 몰살당하고 그 아들 13명 모두 전사한 전투를 일컫습니다. 당시 소정방이 평양을 포위하고 있었으나 큰 눈과 사수에서의 대패떄문에 황급히 물러가게 됩니다.

 

사수대첩은 상당히 규모가 큰 전투였고 많은 당나라 군이 몰락한 전투이며, 삼국사기에도 기록이 남아 있음에도 이 전투에 대한 역사적 조명이 많지 않은 것은, 이전의 고구려의 대첩과 비교하면 이 대첩 이 후 얼마지 않아 고구려가 멸망하기때문이기도 합니다. 고구려 멸망전의 마지막 대규모 전투이자 당나라가 심한 타격을 받은 전투입니다. 따라서 당이 고구려를 멸망시키게 되면서 시간적으로 이 전투에 대한 역사적 증거물들이 상당 수 없어지거나 아니면 당에 의해 축소 되었다는 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이 전투에 대해 뭔가 연구를 할려고 해도 워낙 소실된 자료가(이유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많아서 제대로 연구조차 못하고 있고, 그나마 당 관련 역사서에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당이 어느 정도 피해를 입었는지 추측해보는 것이 현재는 유일한 일이기도 합니다.

 

우선 이 전투는 연개소문이 역사서에 이름이 나온 마지막 전투입니다. 연개소문이 죽은 해가 역사서에 666년으로 나오고 있는데, 역사학자들중에 일부는 연개소문이 이 전투때 병이 깊어서 죽었거나 아니면 전투중에 전사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는 662년 사수대첩을 계기로 하여 663-666년까지 어느 역사서에도 연개소문이 죽기전까지 한번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우선 그 가설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실제 연남생이 권력 기반이 확고하지 않아서 연개소문의 죽음을 대외에 발표하지 않고 자신의 권력이 확고해진 666년에 연개소문의 장례를 치루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이것은 물론 역사적으로 100%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런 가설이 있다는 것입니다.)

 

당나라는 백제를 멸망시킨 후 그 군사를 그대로 돌리기가 아쉬워서 소정방, 방효태, 계필하력, 임아상등을 내세워서 현재 추측하기로는 적게는 40여만 많게는 90여만의 대병으로 고구려를 침공하게 됩니다. 당군은 1차 침입에서 안시성에서 시간을 끌다가 낭패를 본 것을 생각하여 이번에는 앞 뒤 재지 않고 무조건 평양성만을 목표로 진군하게 됩니다. 이렇다보니 초기에는 고구려의 큰 성들은 거의 함락이 되지 않고 최소한의 보급로와 진군로만 당군은 확보한 채 고구려 깊숙히 진군하게 됩니다.

 

초기 2차 고당전은 당시 연개소문이 병이 심해서 직접 참전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5만여의 고구려 군사를 이끌고 나갔던 연남생이 대패하면서 결국 연개소문이 직접 참여를 하게 됩니다. 당군이 평양성 바로 앞까지 몰려 왔기에 어쩔 수 가 없었죠.

 

당나라는 정벌군이 평양성까지 밀고 올라갔다는 소식을 듣자, 이적, 설인귀등을 동원해서 요동방면군 전체를 이끌고 고구려로 진군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이 소식을 접한 연개소문은 정말 결단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 것이죠.

 

여기서 연개소문의 선택이 탁월하게 되는데 당시 1차 침군한 당군은 소정방이 이끄는 평양성을 포위한 군대와 후군 개념으로 사수에 남아 있는 방효태의 대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개소문은 평양성을 포위한 소정방군을 놓아두고 요동군과 합세해서 2차적으로 침공해 올 방효태군을 타겟으로 잡습니다. 쉽게 말해 요동군이 오기전에 고구려의 힘을 보여주고, 방효태군을 괴멸 시키면 소정방군은 결국 포위를 풀고 물러 갈 수 밖에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작전이었죠.

 

사실 이때 방효태군은 설마 평양성이 포위된 상태에서 연개소문이 전격적으로 사수쪽으로 이동할 것이라고는 생각을 안하고 방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심이 결국 대패의 원인이 된 것이나 다름없죠. 당나라군은 당시 겨울이라 얼어 있던 사수를 마음 놓고 건너오다가 연개소문의 공격으로 얼음이 깨지면서 그 차가운 강에 수장을 당하게 됩니다. 큰 전투 없이 사수에서 수장 시켜버리면서 고구려군은 실제적으로 연남생의 1차 패배를 만회하고 군사의 손실 없이 방효태가 이끌던 정확한 숫자는 아니지만 적게는 7만 많게는 13만까지라고 알려진 방효태군을 거의 몰살 시켜버립니다. 특히 방효태의 경우 지금 대조영에서는 아무런 생각없이 나오는 장수 같지만, 자기 고향 사람들이 자기를 믿고 고구려까지 원정와서 다 죽었는데 자기만 살아서 돌아갈 수는 없다고 하면서 13명의 아들과 함께 고구려군의 화살에 벌집이 되어 죽습니다. 적군 장수이지만 장수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소양은 있는 장수였죠.

 

이렇게 되니 당군은 요동방면 당군 전체가 진군을 하고 있던 차에 거의 10만에 가까운 당군이 몰살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결국 사기가 급 추락하면서 가장 최전선에 있던 소정방 군이 고생 고생하면서 겨우 당으로 퇴각하게 됩니다.

 

사실 이 사수대첩은  신라와 당나라의 나당전쟁이 670년부터 676년까지 벌어졌는 데 결국 이 전투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학계에서는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사수에서의 대패때문에 신라에게 힘을 비축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결국 전투 손실을 매꾸지 못한 당이 울며겨자먹기로 신라와 화친을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전투로 인해 다시 한번 고구려 연개소문의 이름은 중원에 더 알려졌고, 아버지 말을 듣지 않고 고구려를 침공한 당 왕은 상당한 후회를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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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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