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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23 10:18
[한국사] 요해제군사(遼海諸軍事)에서의 요해(遼海) 고찰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402  

영주(營州)와 고구려 서계(西界) 추적 13
ㅡ 5~6 세기 고구려왕이 중원계 왕조로부터 받은 관작을 통한 당대 고구려 서계의 고찰

A. 5~6 세기 고구려왕이 중원계 왕조로부터 받은 관작
B. 요해제군사(遼海諸軍事)에서의 요해(遼海) 고찰
C. 5세기, 바다를 제패하고 북위를 압도한 고구려
D. 동시대(서기 5~6세기 중심) 사서에서 기술한 고구려 서계, 또는 영역
E. 수 양제의 612 년 고구려 원정 조서 다시 보기
F. 요해(遼海)는 바다인가?



B. 요해제군사(遼海諸軍事)에서의 요해(遼海) 고찰




1. 이수(역수)/이하(역하)와 요해(遼海)



1) 통전


歸義 (漢易縣也。公孫瓚於此築城,名曰易京。後漢史曰:「瓚修營壘樓觀,臨易河,通遼海,以鐵為門。乃曰:『兵法云「百樓不攻」,今吾諸營,樓櫓千重,積穀三百萬斛,足以待天下之變。』為袁紹所破。」後石季龍征慕容皝,迴,惡其固而毀之,在今縣南十八里。又有巨馬水。) 《通典 州郡八 古冀州》

귀의현, 한 이현(역현)이다. 공손찬이 이곳에 성을 쌓고 이름하여 이경(역경)이라 했다. 후한사가 말하길 “(역경은) ㅡ 역하에 임하여 있고, 요해(遼海)로 통한다ㅡ “라고 했다.



2) 후한서


是歲,瓚破禽劉虞,盡有幽州之地,猛志益盛。前此有童謠曰:「燕南垂,趙北際,中央不合大如礪,唯有此中可避世。」瓚自以為易地當之,遂徙鎮焉。乃盛修營壘,樓觀數十,臨易河,通遼海。《後漢書 劉虞公孫瓚陶謙列傳》


역하에 임하여 있고, 요해로 통한다.



3) 태평환우기


歸義縣。南一百二十里,十二鄉。漢易縣之地,屬涿郡。

易水,在縣南。易京城,在縣南十八里,其城南臨易水,按範曄《後漢書》曰:「獻帝初,公孫瓉據幽州,先是,有童謡曰『燕南垂,趙北際,中央不合大如礪,惟有此中可避世。』 」瓉以易京北當之 ,乃築京城以自固,曰「易京」。按瓉修營壘樓,觀臨易河,通遼海,以鐵為門,乃曰:「《兵法》:『百樓不攻。』今吾壘樓櫓千重,積穀三百萬斛,足以待天下之變。」尋為袁紹所破,後石季龍征慕容雋回,而惡其固,因毀之,即此城也。小易城,在大易城北二里。《太平寰宇記卷七十》

귀의현, 현 남쪽에 이수(역수)가 있다. 역경성이 (귀의)현 남쪽 18 리에 있는데 그 성이 남쪽으로 이수(역수)에 임하여 있다.


역하에 임하여 있고, 요해(遼海)로 통한다.



4) 독사방여기요


易京城在(雄)縣西南。《水經注》:易京城在易城西四五里,易水經其南。

《後漢史》:瓚築易京城,修營壘樓觀臨易河,通遼海,以鐵為門,乃曰:兵法,百樓不攻。《 讀史方輿紀要 卷十二 北直三》


역경성이 웅현 서남쪽에 있다. 수경주에서 말하길 역경성은 역성 서쪽 45 리에 있으며, 역수가 그 남쪽을 경유한다고 했다.


후한사에는 공손찬이 역경성을 쌓았는데 ㅡ 역하에 임하여 있고, 요해(遼海)로 통한다 ㅡ 했다.


하북성 보정시 웅현(슝현)

https://goo.gl/maps/zxAws8b634K2



5) 바이두백과


易京

古城名。在河北省雄县县城西北,本汉之易县。汉末公孙瓒据幽州,在此修筑营垒,建楼数十重(今杨西楼、红西楼附近),谓之易京,临易河(今大清河),通辽海

古城名。在河北省雄县县城西北,本汉之易县。汉末公孙瓒据幽州,在此修筑营垒,建楼数十重(今杨西楼、红西楼附近),谓之易京,临易河(今大清河),通辽海。后为袁绍所破。魏晋时仍为军事重镇,十六国时期为后赵石虎所毁。


易水

也称易河,河流名,发源于河北省易县境内,分南易水、中易水、北易水。因燕太子丹送荆轲刺秦于此作别,高渐离击筑,荆轲合着音乐高歌:“风萧萧兮易水寒,壮士一去兮不复还!”而名扬天下。
《战国策》苏秦曰:燕南有滹沱、易水。又云:赵之攻燕也,渡滹沱,涉易水,不至四五日,而距国都矣。
《史记》:燕太子丹使荆轲刺秦王,祖道易水上。又始皇二十年,秦军破燕易水之西。
建安十一年,曹操伐乌桓,还至易水。上郡、代郡、乌桓皆来贺。
晋永安初,幽州都督王浚入邺,还至易水,以所将鲜卑多掠邺中妇女,命敢有挟藏者斩,于是沉于易水者八千人。建兴二年,石勒袭王浚,至易水。督护孙纬欲拒战,石勒绐王浚至蓟奉戴。王浚信之,因禁诸将勿击,石勒遂灭王浚,还渡易水。孙纬遮击之,石勒仅免。
唐光化三年,汴将张存敬攻定州、幽州,帅刘仁恭遣子刘守光救之,军于易水上。存敬袭击守光,杀获甚众此易水盖安州以东之南易水。
后梁乾化二年,晋将周德威伐燕,刘守光东出飞狐,与镇定军会于易水,进下祁沟关。
骆宾王曾有一首《于易水送人》
此地别燕丹,壮士发冲冠。
昔时人已没,今日水犹寒。


大清河

Daqing River
중국
https://goo.gl/maps/y8M4aqiaojq




2. 고죽군지자(孤竹君之子)의 수상(水上) 표부관(漂浮棺)과 요해(遼海)



1) 수경주 1


《史記》曰:孤竹君之二子伯夷、叔齊,讓國於此,而餓死於首陽。漢靈帝時,遼西太守廉翻夢人謂己曰:余,孤竹君之子,伯夷之弟,遼海漂吾棺槨,聞君仁善,願見藏覆。明日視之,水上有浮棺,吏嗤笑者皆無疾而死,於是改葬之。《水經注 卷三 濡水》


나는 고죽군의 아들이자 백이의 아우인데 요해가 내 관곽을 떠내려 보냈다(漂)오. 듣기로 그대가 어질고 착하다 하니 내 관을 보면 묻어주길 바라오


2) 태평환우기


孤竹城,在今(盧龍)縣東,殷之諸侯,即伯夷、叔齊之國,又按《縣道記》云:「孤竹城,在肥如縣南十二里。」《史記》謂:「齊桓公伐山戎,北至孤竹。」又《隋圖經》云:「孤竹城,漢靈帝時,遼西太守廉翻夢人曰:『孤竹君之子,伯夷之弟,遼海漂吾棺,聞君仁善,願見蔵覆。』明日,水際見浮棺於津,收之,乃為改葬,吏人嗤笑者,皆無疾而死。」今改葬所尚存,祠在山下極岩。《太平寰宇記卷七十》


상동



3) 수경주 2


《晉書·地道志》曰:遼西人見遼水有浮棺,欲破之,語曰:我孤竹君也,汝破我何為?因為立祠焉。祠在山上,城在山側,肥如縣南十二里,水之會也。《水經注 卷三 濡水》


요서 사람이 요수에 떠있는 관을 발견하고 그것을 부수려고 하자 “나는 고죽군이다. 네가 내 관을 부수려고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사당을 세워 주었다.


해당 고사를 전하며 수경주가 인용한 다른 사서인 진서 지도지에는 요해(遼海)가 아니라 요수(遼水)라 하고 있다. 이 말인즉슨 요해(遼海)와 요수(遼水)는 같거나 가깝다는 뜻이다.


즉, 이들 기록을 종합하면 난하가 요수이고 난하와 이수(역수)가 흘러드는 바다가 요해인 것이다.



4) 동일 위치(현 난하 하류 일대)의 요수(遼水) 관련 다른 기록


景初二年,帥牛金、胡遵等步騎四萬發自京都。車駕送出西明門。詔弟孚、子師送過溫,賜以穀帛牛酒,敕郡守典農以下皆往會焉。見父老故舊,宴飲累日。帝歎息,悵然有感,為歌曰:「天地開闢,日月重光。遭遇際會,畢力遐方。將掃群穢,還過故鄉。肅清萬里,總齊八荒。告成歸老,待罪舞陽。」遂進師,經孤竹,越碣石,次于遼水。文懿果遣步騎數萬,阻遼隧,堅壁而守,南北六七十里,以距帝。帝盛兵多張旗幟,出其南,賊盡銳赴之。乃泛舟潛濟以出其北,與賊營相逼,沈舟焚梁,傍遼水作長圍,棄賊而向襄平。《晉書 帝紀第一》


마침내 군대가 나아감에 고죽을 경유하고 갈석을 넘어서 요수(遼水)에 이르렀다.  




3. 진(秦) 장성과 요해(遼海)


1)수경주


徐廣《史記音義》曰:陰山在五原北。即此山也。始皇三十三年,起自臨洮,東暨遼海,西並陰山,築長城及開南越也,晝警夜作,民勞怨苦,故楊泉《物理論》曰:秦始皇使蒙恬築長城,死者相屬,民歌曰:生男慎勿舉,生女哺用餔,不見長城下,尸骸相支柱。其寃痛如此矣。蒙恬臨死曰:夫起臨洮,屬遼東,城塹萬餘里,不能不絶地脈,此固當死也。《水經注 卷三 河水》


임조에서 쌓기 시작하여 동쪽으로 요해에 이르렀다.

임조에서 쌓기 시작하여 요동에 닿았다.


2) 사기 시황본기


北據河爲塞, 幷陰山, 至遼東。《史記 始皇本紀》


북으로는 황하에 기대어 요새로 삼고 음산을 끼고서 요동까지 이른다. (사기 흉노열전, 몽염열전, 한서 오행지 모두 동일 기술)


즉, 요해와 요동은 가까운 곳


임조(臨洮)의 현재 위치

간쑤성 딩시 시 민 현(岷縣)

https://goo.gl/maps/Yw3oMuVCCkN2




4. 연진(燕秦) 시대의 요동(遼東)


1) 사기 소진열전


去游燕嵗餘, 而後得見, 說燕文侯曰 : 東有朝鮮遼東, 北有林胡樓煩, 西有雲中九原, 南有嘑沱易水, 地方二千餘里, 帶甲數十萬, 車六百乗, 騎六千匹, 粟支數年。 南有碣石鴈門之饒, 北有棗栗之利, 民雖不佃作而足於棗栗矣。 此所謂天府者也。《史記 卷六十九 蘇秦列傳 》


연(燕)의 동쪽에는 조선(朝鮮)과 요동(遼東)이 있고, 북쪽에는 림호(林胡)와 루번(樓煩)이 있고, 서쪽으로는 운중(雲中)과 구원(九原)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호타수(嘑沱水)와 역수(易水)가 있어 지방(地方) 2천여리입니다.


남쪽으로는 갈석(碣石)과 안문(鴈門)의 비옥함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대추와 밤의 이익으로 백성들이 비록 경작하는 수고가 있을지라도 대추와 밤의 이익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2) 사기 시황본기


地東至海曁朝鮮, 西至臨洮羌中, 南至北嚮户, 北據河為塞, 並隂山至遼東。 《史記 卷六 秦始皇本紀 第六》


(진나라의 )영토는 동쪽으로 바다(海)와 조선(朝鮮)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임조(臨洮)와 강중(羌中)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북향호(北嚮户)에 이르며 북쪽으로는 황하(河)에 의지하여 요새(塞)로 하였고 음산(隂山)을 아울러 요동(遼東)까지이다


(마치 요동이 조선의 북쪽에 있는 것처럼 기술돼 있으나 마지막 문장은 만리장성에 대한 기술이다)



3) 염철론


大夫曰:「齊桓公越燕伐山戎,破孤竹,殘令支。趙武靈王踰句注,過代谷,略滅林胡、樓煩。燕襲走東胡,辟地千里,度遼東而攻朝鮮。蒙公為秦擊走匈奴,若鷙鳥之追群雀。匈奴勢慴,不敢南面而望十餘年。及其後,蒙公死而諸侯叛秦,中國擾亂,匈奴紛紛,乃敢復為邊寇。夫以小國燕、趙,尚猶卻寇虜以廣地,今以漢國之大,士民之力,非特齊桓之眾,燕、趙之師也;然匈奴久未服者,群臣不并力,上下未諧故也。」《鹽鐵論 卷八 伐功》


제 환공은 연나라를 넘어 산융을 정벌하고 고죽을 깨뜨리고 영지를 물리쳤으며, 조 무령왕은 구주를 넘고 대곡을 지나 임호와 누번을 멸했다. 연나라는 동호를 습격해 내쫓고는 1천 리 땅을 개척하였으며 요동을 넘어 조선을 공격하였으며 몽염은 진나라를 위해 흉노를 쳐서 달아나게 하였다


大夫曰:「往者,四夷俱強,並為寇虐:朝鮮踰徼,劫燕之東地;東越越東海,略浙江之南;南越內侵,滑服令;氐、僰、冉、駹、巂唐、昆明之屬,擾隴西、巴、蜀。今三垂已平,唯北邊未定。夫一舉則匈奴震懼,中外釋備,而何寡也?」《鹽鐵論 卷七 備胡》


예전에는 사이가 강성하여 모두 도적이 되어 사납게 굴었다. 조선은 샛길을 넘어 연나라의 동쪽 땅을 위협했고, 동월은 동해를 건너와 절강 남쪽 땅을 노략질했다.


4) 사기 화식열전


《史記 貨殖列傳》

夫燕亦勃、碣之閒一都會也。南通齊、趙,東北邊胡。上谷至遼東,地踔遠,人民希,數被寇,大與趙、代俗相類,而民雕捍少慮,有魚鹽棗栗之饒。北鄰烏桓、夫餘,東綰穢貉、朝鮮、真番之利。


연(燕)은 발해(渤海)와 갈석산(碣石山) 사이에 있는 도회지이다. 남으로 제(齊), 조(趙)와 통하고, 동북은 흉노 가장자리이다. 상곡(上谷)에서 요동(遼東)에 이르는 지역은 멀고 인민이 적어 자주 침략을 당했다. 조(趙), 대(代)의 풍속과 아주 비슷하다. 인민은 독수리처럼 사납지만 생각이 부족하고, 물고기, 소금, 대추, 밤이 많이 난다. 북은 오환(烏桓), 부여(夫餘)와 이웃해 있고, 동은 예맥(穢貉), 조선(朝鮮), 진번(眞番)의 지리적 이점을 통제하고 있다.


사기 국역

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3432246&cid=62144&categoryId=62250


5) 월절서 외전기군기


燕故治,今上漁陽、右北平、遼東、莫郡,尾、箕也。
齊故治臨菑,今濟北、平原、北海郡、菑川、遼東、城陽,虛、危也。
趙故治邯鄲,今遼東、隴西、北地、上郡、雁門、北郡、清河,參也。《越絕書 外傳記軍氣》


전국시대에 요동은 연과 제, 조의 땅이 되었던 곳으로 현 천진시 일대인 것이다


즉 이 전통적 요동과 진시황 때에 행정구역으로 이름만 두었던, 당시 조선 등이 있던 요동, 그리고 한나라가 연나라 지역을 2개로 쪼개 설치한 요동국으로서의 요동, 이후 한나라가 위만 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요동군으로서의 요동, 또 이 요동군 줄고 나고, 서쪽으로 쫓겨가면서 남긴 자취로서의 요동, 요수가 역수, 영정하, 조백하, 난하, 대릉하, 현 요하에 명명 됨으로써 그 동쪽을 이름한 요동 등이 혼재하여 혼동과 착오를 야기한 것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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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8-11-23 10:29
   
(뒷부분 글이 잘려서 댓글로 잇습니다)

보정시에서 나와 천진만으로 빠지는 역수가 흘러드는 발해, 즉 요해의 (서)북안을 가리키던 요동은 청나라 때에도 여전히 요동으로 불렸다.

河間府東至海豐縣三百里,南至山東德州二百五十里,西南至真定府冀州二百三十里,西至真定府定州二百有八里,西北至保定府安州百二十里。自府治至京師四百十里,至南京二千一百四十里。

靜海縣(河間)府東北百八十里。
海在縣東北百五十里,與山東、遼東接境。古名勃海。《讀史方輿紀要 北直四》

바다가 정해현 동북 150리에 있는데 산동과 요동의 접경으로 옛 이름은 발해이다.

징하이 현
중국 톈진 시
구글지도
https://goo.gl/maps/QKwCJKb8YYr


명청시대를 거치며 요해(遼海)의 의미가 현 요하와 그 요하가 흘러드는, 요동반도 서쪽, 산동반도 북쪽의 바다를 가리키는 것으로 변하였으나 고대의 요해는 현 천진시 앞 바다, 즉 현 발해를 가리켰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이 일대가 고대의 요동이었음을 확인하였다.


사지절도독요해제군사정동장군령호동이중랑장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使持節都督遼海諸軍事征東將軍領護東夷中郞將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
감방친구 18-11-23 10:34
   
5. 요해를 현 요하가 흘러드는 바다로 기술하는 자료들

1) 독사방여기요

登州府東至海七十里,西南至萊州府二百四十里,北至海三里,由海道東北至遼東旅順口五百里。自府治至布政司九百里,至江南江寧府千九百里,至京師千六百里。

寧海州府東二百二十里。北至海五十里。

明洪武初,以州治牟平縣省入,屬萊州府。九年,改屬登州府編戶八十里,領縣一。今仍為寧海州。

州北控遼海,南拱江淮,憑島嶼之險,擅鹽、鐵之利《漢書》:東牟有鐵官、鹽官,風帆絡繹,以成山為表識。

牟平廢縣今州治。漢置東牟縣,屬東萊郡,呂后封齊悼惠王子興居為侯邑。後漢仍屬東萊郡。晉廢,尋移牟平縣治此。宋因之。魏置東牟郡。齊廢郡。隋屬東萊郡。唐初,為牟州治。貞觀初,州廢,縣亦並入文登縣。麟德初,復析置牟平縣。如意初,置登州於此,尋改為屬縣。宋因之。金為寧海軍治,後為州治。明初省。今州城砌以磚石,周九里,門四。《讀史方輿紀要 卷三十六 山東七》

牟平区
무핑 구
중국 산둥 성 옌타이 시
https://goo.gl/maps/EsH47JDQQsx


2) 바이두백과

遼海 [liáo hǎi]

遼海是指地區名。泛指遼河流域以東至海地區。

①地區名。泛指遼河流域以東至海地區。《魏書·庫莫奚傳》:“及開遼海,置戍和龍。”《唐書·薛仁貴傳》:“仁貴威震遼海。”一說《魏書》之遼海當專指遼河上游地區,因有廣大沙漠,一望如海,故名。②衛名。明洪武二十三年(1390年)在牛家莊(今遼寧海城縣西北牛莊)置,屬遼東都指揮使司。二十六年(1393年)移治三萬衛城(今遼寧開原)。清初廢。


6. 부기

1) 제 2의 유수
《水經注 卷十一 易水》

易水又東與濡水合,水出故安縣西北窮獨山南谷,東流與源泉水合,水發北溪,東南流注濡水。濡水又東南逕樊於期館西,是其授首于荊軻處也。濡水又東南流逕荊軻館北,昔燕丹納田生之言,尊軻上卿,館之于此。二館之城,澗曲泉清,山高林茂,風煙披薄,觸可棲情,方外之士,尚憑依舊居,取暢林木。濡水又東逕武陽城西北,舊堨濡水,枝流南入城,逕柏冢西,冢垣城側,即水塘也。四周塋域深廣,有若城焉。其水側有數陵,墳高壯,望若青丘,詢之古老,訪之史籍,竝無文證,以私情求之,當是燕都之前故墳也。

영정하(永定河)
Yongding River
중국 베이징 시 먼터우거우 구
https://goo.gl/maps/Y7MdAQdALDN2

2) 당빈장성

復秦長城塞,自溫城洎于碣石,綿亙山谷且三千里,分軍屯守,烽堠相望。由是邊境獲安,無犬吠之警,自漢魏征鎮莫之比焉。
incombat 18-11-25 01:16
   
감방친구님 혹시 한자 몇 천자 정도 아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어느 정도 한자를 알아야 사서를 그냥 줄줄 읽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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