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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23 10:13
[한국사] 고구려왕이 중원계 왕조로부터 받은 관작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171  

영주(營州)와 고구려 서계(西界) 추적 13
ㅡ 5~6 세기 고구려왕이 중원계 왕조로부터 받은 관작을 통한 당대 고구려 서계의 고찰

A. 5~6 세기 고구려왕이 중원계 왕조로부터 받은 관작
B. 요해제군사(遼海諸軍事)에서의 요해(遼海) 고찰
C. 5세기, 바다를 제패하고 북위를 압도한 고구려
D. 동시대(서기 5~6세기 중심) 사서에서 기술한 고구려 서계, 또는 영역
E. 수 양제의 612 년 고구려 원정 조서 다시 보기
F. 요해(遼海)는 바다인가?



A. 5~6 세기 고구려왕이 중원계 왕조로부터 받은 관작




1. 장수왕


원년(서기 413)

임금이 장사(長史) 고익(高翼)을 진(晉)나라에 보내 표문을 올리고, 붉고 흰 말을 바쳤다. 진나라의 안제(安帝)가 임금을 고구려왕낙랑군공(高句麗王樂浪郡公)으로 책봉하였다.


23년(서기 435)

여름 6월, 임금이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고, 역대 황제의 이름을 알려줄 것을 요청하였다. 위나라의 세조(世祖)가 그 정성을 가상히 여겨서 황제들의 계보와 이름을 기록하여 보내게 하였으며, 원외산기시랑(員外散騎侍郞) 이오(李敖)를 보내 임금을 도독요해제군사정동장군영호동이중랑장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都督遼海諸軍事征東將軍領護東夷中郞將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으로 책봉하였다.


24년(서기 436)

연나라왕이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고, 자제를 인질로 보낼 것을 요청하였다. 위나라왕이 이를 허락하지 않고, 병사를 동원하여 연나라를 침입하기 직전에 우리나라에 사신을 보내 이 사실을 알려 주었다.


여름 4월, 위나라가 연나라의 백낭성(白狼城)을 공격하여 승리하였다. 임금은 장수 갈로(葛盧)와 맹광(孟光)에게 병사 수만 명을 거느리고 연나라 사신 양이를 따라 화룡(和龍)에 가서 연나라왕을 맞이하도록 하였다. 갈로와 맹광이 연나라의 성에 들어가, 병사들에게 헌 옷을 벗게 하고, 연나라의 무기고에 있는 정교한 의장을 내주어 입게 하였다. 그들은 대규모로 성을 약탈하였다.


5월, 연나라왕이 용성(龍城)에 남아 있는 주민들을 동쪽 고구려로 이주하도록 하고, 궁전에 불을 질렀다. 불길은 열흘 동안 꺼지지 않았다. 이동하는 부녀자들에게는 갑옷을 입혀 행렬의 안쪽에 서게 하고, 양이 등은 병사를 거느리고 행렬의 바깥 쪽에 서게 하였으며, 갈로와 맹광은 기병을 거느리고 행렬의 끝에 서서 수레를 나란히 몰아 진군하였다. 행렬의 길이가 80여 리에 이어졌다. 위나라왕이 이 소문을 듣고, 산기상시(散騎常侍) 봉발(封撥)을 고구려에 보내 연나라왕을 위나라로 보내달라고 하였다. 임금이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왕에게 편지를 바치면서, 연나라왕 풍홍과 함께 위나라왕의 교화를 받들겠다고 하였다. 위나라왕은 임금이 자신의 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고구려를 공격할 것을 논의하였다. 그는 농우(隴右) 지방의 기병을 출동시키려 하였으나, 유혈(劉絜)ㆍ 낙평왕((樂平王) 비(丕) 등이 반대하자 이를 중지하였다.


51년(서기 463)

송나라의 세조(世祖) 효무(孝武) 황제가 임금을 거기대장군개부의동삼사(車騎大將軍開府儀同三司)로 책봉하였다.


68년(서기 480)

여름 4월, 남제(南齊)의 태조(太祖) 소도성(蕭道成)이 임금을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으로 책봉하였다.


72년(서기 484)

겨울 10월,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이때 위나라의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이제 강성하다고 생각하여, 여러 나라 사신들의 숙소를 배치할 때 제(齊) 나라의 사신을 첫 번째, 우리나라의 사신을 두 번째에 두었다.


79년(서기 491)

겨울 12월, 임금이 돌아가셨다. 그때 그의 나이는 98세였다. 임금의 호를 장수왕(長壽王)이라 하였다. 위나라의 효문(孝文) 황제가 이 소식을 듣고, 흰색의 위모관(委貌冠)과 베로 만든 심의(深衣)를 지어 입고 동쪽 교외에서 애도의 의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알자복야(謁者僕射) 이안상(李安上)을 보내와 임금을 거기대장군태부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車騎大將軍太傅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으로 추증하고, 시호를 강(康)이라 하였다.




2. 문자명왕


원년(서기 492)

봄 3월, 위(魏)나라의 효문(孝文) 황제가 사신을 보내어 임금을 사지절도독요해제군사정동장군령호동이중랑장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使持節都督遼海諸軍事征東將軍領護東夷中郞將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으로 임명하고, 왕에게 의관, 복식, 수레깃발 등의 장식물을 주었다. 또한 임금에게 조서를 내려 세자를 입조하게 하였다. 그러나 임금은 세자가 병이 들어서 갈 수 없으므로 이를 대신해서 종숙 승천(升千)에게 사신을 따라 위나라의 황제를 예방하게 하였다.


3년(서기 494)

봄 정월,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2월, 부여왕이 처자를 데리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나라를 바치고 항복하였다.


제(齊)나라의 왕이 임금을 사지절산기상시도독영평이주정동대장군낙랑공(使持節散騎常侍都督營平二州征東大將軍樂浪公)으로 책봉하였다.


5년(서기 496)

제(齊)나라의 왕이 임금을 거기장군(車騎將軍)으로 승진시켰다. 제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11년(서기 502)

여름 4월, 양나라의 고조가 임금을 거기대장군(車騎大將軍)으로 승진시켰다.


13년(서기 504)

여름 4월,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위나라의 세종(世宗)이 우리의 사신 예실불(芮悉弗)을 동당(東堂)에서 접견하였다.
예실불이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우리나라가 황제를 섬기기로 한 약속을 여러 대에 걸쳐 성실하게 지켰으며, 토산물을 바치는 조공도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황금이 부여(扶餘)에서 생산되고, 옥이 섭라(涉羅, 탐라국 즉 제주도)에서 생산되는데, 부여는 물길(勿吉)에게 쫓겨나고, 섭라는 백제에 병합되었으므로, 두 가지 물품이 왕의 창고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실로 두 적국의 탓입니다.”
세종이 말했다.
고구려는 대대로 큰 나라의 도움을 받아 외국을 다스리고 오랑캐의 교활한 무리들을 모두 정복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보물이 줄어들어 우리를 부끄럽고 창피하게 만들었는데, 이는 누구의 잘못인가? 지난날 조공이 충실하지 못한 책임은 지방의 관리에게 있다. 그대는 나의 뜻을 너의 임금에게 전달하여 그에게 위엄과 회유의 책략을 잘 사용하여 나쁜 자들을 없애고, 동방의 백성들을 편안케 하여 부여와 섭라가 각각 옛 땅으로 돌아오게 하여 토산물의 공납을 지키도록 하라.”


17년(서기 508)

양(梁)나라의 고조(高祖)가 다음과 같은 문서를 통해 명령을 내렸다.
“고구려왕낙랑군공 아무개는 약속을 성실히 지켜서 조공이 끊어지지 않았다. 마땅히 조정이 모범을 보이고자 그의 직위를 높여서, 그에게 무군(撫軍)[‘동(東)’으로도 쓴다.]대장군개부의동삼사(大將軍開府儀同三司)의 관작을 준다.”


28년(서기 519)

임금이 돌아가셨다. 호를 문자명왕(文咨明王)이라 하였다. 위나라의 영태후(靈太后)가 동당(東堂)에서 애도의 의식을 거행하고 사신을 보내어, 돌아가신 임금에게 거기대장군(車騎大將軍)으로 품계를 높여주었다. 이때 위나라의 숙종(肅宗)의 나이가 10세였다. 태후가 조정에 나와 황제의 정사를 대신하였다.




3. 안장왕


2년(서기 520)

봄 정월, 양(梁)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2월, 양나라의 고조가 임금을 영동장군도독영평이주제군사고구려왕(寧東將軍都督營平二州諸軍事高句麗王)으로 책봉하고, 사신 강법성(江法盛)을 보내어 의관, 칼, 그리고 패물 등을 전하게 하였다. 위(魏)나라의 병사가 바다에서 양나라의 사신을 붙잡아 낙양(洛陽)으로 보냈다. 위나라에서 임금을 안동장군영호동이교위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安東將軍領護東夷校尉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으로 책봉하였다.




4. 안원왕


원년(서기 531)

안원왕(安原王)의 이름은 보연(寶延)이며, 안장왕(安藏王)의 아우이다. 키가 7척 5촌이며, 도량이 커서 안장왕이 그를 사랑하였다. 안장왕이 재위 13년에 돌아가셨으나 아들이 없었으므로 보연이 왕위에 올랐다. 양나라의 고조(高祖)가 조서를 내려 안장왕의 작위를 계승케 하였다.

2년(서기 532)

봄 3월, 위나라 황제가 임금을 사지절산기상시영호동이교위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使持節散騎常侍領護東夷校尉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으로 책봉하고, 의관과 수레 깃발 장식품을 내려주었다.


4년(서기 534)

동위(東魏)에서 조서를 내려 임금에게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의 작위를 더하여 주고, 다른 관직은 모두 종전(사지절산기상시영호동이교위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과 같게 하였다. 위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5. 양원왕


6년(서기 550)

여름 6월, 북제(北齊)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가을 9월, 북제가 임금을 사지절시중표기대장군영호동이교위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使持節侍中驃騎大將軍領護東夷校尉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으로 책봉하였다.


7년(서기 551)

여름 5월, 북제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가을 9월, 돌궐(突厥)이 신성을 포위하였으나 승리하지 못하자, 군대를 이동하여 백암성을 공격하였다. 임금이 장군 고흘(高紇)에게 병사 1만을 주어 그들을 물리치고, 1천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신라가 침공하여 10개의 군을 빼앗았다.




6. 평원왕


2년(서기 560)

봄 2월, 북제(北齊)의 폐제(廢帝)가 임금을 사지절영동이교위요동군공고구려왕(使持節領東夷校尉遼東郡公高句麗王)으로 책봉하였다.


4년(서기 562)

봄 2월, 진나라 문제(文帝)가 조서를 내려 임금에게 영동장군(寧東將軍)이라는 관작을 주었다.


19년(서기 577)

임금이 주(周)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주나라의 고조가 임금을 개부의동삼사대장군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開府儀同三司大將軍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으로 임명하였다.


12월, 수(隋)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수나라의 고조가 임금에게 대장군요동군공(大將軍遼東郡公)이라는 관작을 주었다.


26년(서기 584) 봄,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여름 4월, 수나라의 문제(文帝)가 우리의 사신을 위하여 대흥전(大興殿)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7. 영양왕


원년(590년)

평원왕 32년에 임금이 돌아가시자, 태자가 왕위에 올랐다. 수(隋)나라의 문제(文帝)가 사신을 보내어 임금을 상개부의동삼사(上開府儀同三司)로 임명하고, 평원왕의 요동군공(遼東郡公)의 관직을 계승케 하고, 한 벌의 옷을 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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