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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20 10:47
[한국사] 현수(玄水)와 로수(盧水), 그리고 유성현(柳城縣)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2,359  

1. 한서 지리지 유주 요서군 비여현


肥如, 玄水東入濡水. 濡水南入海陽. 又有盧水南入玄. 莽曰肥而.


1) 다시 쓰는 유기 해석판


현수(玄水)가 동쪽으로 유수(濡水)로 들어간다. 유수(濡水)는 남쪽으로 해양현(海陽縣)으로 들어간다. 또한 로수(盧水)가 있어 남쪽으로 현수(玄水)로 들어간다. 왕망은 비이(肥而)라고 하였다.


2) 본인의 상기 해석에 대한 수정


현수(玄水)가 (유수의) 동쪽에서 유수(濡水)로 들어간다. 유수(濡水)는 남쪽으로 해양현(海陽縣)으로 들어간다. 또한 로수(盧水)가 있어 남쪽으로 현수(玄水)로 들어간다. 왕망은 비이(肥而)라고 하였다.


수정 사유 : 현수와 로수는 유수의 동북쪽에서 흘러와 합쳐진 후 유수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따라서 다시 쓰는 유기 해석판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그대로 두면 마치 현수가 유수(현 난하)의 서쪽에 있는 하천으로 오독되기 쉽다.




2. 수경주 유수의 현수와 로수


濡水又東南流, 逕令支縣故城東, 王莽之令氏亭也. 秦始皇二十二年, 分燕置遼西郡, 令支隸焉. 魏土地記曰..肥如城西十里有濡水, 南流逕孤竹城西, 右合玄水, 世謂之小濡水, 非也. 水出肥如縣東北玄溪, 西南流逕其縣東, 東屈, 南轉, 西迴, 逕肥如縣故城南, 俗又謂之肥如水. 故城肥子國, 應劭曰..晉滅肥, 肥子奔燕, 燕封于此, 故曰肥如也. 漢髙帝六年, 封蔡寅為侯國. 西南流右㑹盧水, 水出縣東北沮溪, 南流, 謂之大沮水. 又南, 左合陽樂水, 水出東北陽樂縣溪. 地理風俗記曰..陽樂, 故燕地, 遼西郡治, 秦始皇二十二年置. 魏土地記曰..海陽城西南有陽樂城. 其水又西南, 入于沮水, 謂之陽口. 沮水又西南, 小沮水注之, 水發冷溪, 世謂之冷池. 又南得温泉水口, 水出東北温溪, 自溪西南流入于小沮水. 小沮水又南流, 與大沮水合而為盧水也. 桑欽説盧子之書, 言晉既滅肥, 遷其族于盧水. 盧水有二渠, 號小沮大沮 合而入于玄水. 又南與温水合, 水出肥如城北, 西流注于玄水. 地理志曰..盧水南入玄. 玄水又西南逕孤竹城北, 西入濡水. 故地理志曰..玄水東入濡, 盖自東而注也. 地理志曰..令支有孤竹城, 故孤竹國也. 史記曰..孤竹君之二子伯夷 叔齊 讓國于此, 而餓死于首陽. 漢靈帝時, 遼西太守亷翻夢人謂已曰..余孤竹君之子, 伯夷之弟. 遼海漂吾棺槨, 聞君仁善, 願見藏覆. 明日視之, 水上有浮棺, 吏嗤笑者, 皆無疾而死. 于是改葬之. 晉書地道志曰..遼西人見遼水有浮棺, 欲破之. 語曰, 我孤竹君也, 汝破我何為? 因為立祠焉. 祠在山上, 城在山側. 肥如縣南十二里, 水之㑹也.


1)다시 쓰는 유기 해석판


유수(濡水)는 동남쪽으로 흘러 령지현(令支縣) 옛 성의 동쪽을 지나는데 왕망이 령씨정(令氏亭)으로 바꾸었으며 진(秦) 시황(始皇) 22년 연(燕)을 나누어 료서군(遼西郡)을 두었는데 령지현이 료서군에 속한다. 위씨토지기에서 말하기를 비여성(肥如城) 서쪽 10리에 유수(濡水)가 있는데 남쪽으로 흘러 고죽성(孤竹城) 서쪽을 지나며 오른쪽으로 현수(玄水)와 합류한다. 세간에서 말하기를 현수를(之) 소유수(小濡水)라고 하는데 틀렸다.

현수(水)는 비여현(肥如縣) 동북쪽 현계(玄溪)를 나와서 서남쪽으로 흘러 비여현(其縣) 동쪽을 지나고 동쪽으로 굽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구르고 서쪽으로 돌아 비여현(肥如縣) 옛 성 남쪽을 지나는데 세간에서는 (비여현 남쪽을 지나는 현수를) 비여수(肥如水)라고 한다. 옛 성은 비자국(肥子國)인데 응초(應劭)가 말하기를 ‘진(晉)이 비(肥)를 멸하고 비(肥)의 아들이 연(燕)으로 달아났는데 연(燕)이 그곳에 봉하였기에 비여(肥如)라 한다’고 하였다. 한(漢) 고제(髙帝) 6년에 채인(蔡寅)을 봉하여 후국(侯國)으로 하였다. (현수 즉 비여수는) 서남쪽으로 흘러 오른쪽으로 로수(盧水)와 모인다.


로수(水)는 (즉 로수의 발원을 설명하면 이러한데) 비여현(縣) 동북쪽의 저계(沮溪)를 나와서 남쪽으로 흐르는데 저계 남쪽을 나오는 강(之)을 대저수(大沮水)라고 한다. (대저수는) 남쪽으로 흘러 왼쪽으로 양락수(陽樂水)와 합하여진다. 양락수(水)는 동북쪽 양락현(陽樂縣) 계(溪)를 나온다. 지리풍속기(地理風俗記)에서 말하기를 ‘양락(陽樂)은 옛 연(燕)의 땅인데 요서군에서 다스렸다. 진 시황 22년에 설치하였다.’고 하였다. 위씨토지기에서 말하기를 ‘해양성(海陽城) 서남쪽에 양악성(陽樂城)이 있다’고 하였다. 양락수(其水)는 또한 서남쪽으로 흘러 저수(沮水)로 들어가는데 그곳을(之) 양구(陽口)라고 한다. 저수(沮水)는 또한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소저수(小沮水)가 저수(之)로 들어간다. 소저수(水)는 랭계(冷溪)에서 발하는데 세간에서는 랭지(冷池)라 한다. (소저수는) 또한 남쪽으로 흘러 온천수(温泉水) 구(口)와 만나는데, 온천수(水)는 동북쪽 온계(温溪)에서 나와서 온계(溪)로부터 서남쪽으로 흘러 소저수(小沮水)로 들어간다. 소저수(小沮水)는 또한 남쪽으로 흘러 대저수(大沮水)와 합하여져서 로수(盧水)가 된다.

상흠설로자(桑欽説盧子)의 책에 말하기를 ‘진(晉)이 이미 비(肥)를 멸하고 그 족속들을 로수(盧水)로 옮겼다’고 한다. 로수(盧水)는 2개의 물줄기(渠)가 있는데 소저(小沮)와 대저(大沮)이며 합하여져서 (로수가 된 후) 현수(玄水)로 들어간다. 로수는또한 남쪽으로 온수(温水)와 합하여지는데 온수(水)는 비여성(肥如城) 북쪽에서 나와서 서쪽으로 흐르다가 현수(玄水)로 들어간다. 지리지에서 말하기를 ‘로수(盧水)는 남쪽으로 흘러 현수(玄水)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현수(玄水)는 또한 서남쪽으로 흘러 고죽성(孤竹城) 북쪽을 지나서 서쪽으로 흘러 유수(濡水)로 들어간다. 옛 지리지에서 말하기를 현수(玄水)는 동쪽으로 흘러 유수로 들어간다고 하였는데 모두 동쪽으로부터 들어가는 것이다(盖自東而注也). 지리지에서 말하기를 ‘령지현(令支縣)에 고죽성이 있고 옛 고죽국이라’고 하였다. 사기에서 말하기를 ‘고죽의 군(君)의 아들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인데 이곳은 나라를 양보하고 수양(首陽)에서 굶어 죽었다’고 하였다. 한(漢) 령제(靈帝) 때에 료서태수(遼西太守) 렴번(亷翻)이 꿈속에서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기를 ‘나는 고죽(孤竹) 군(君)의 아들 백이(伯夷)의 아우라 하였다. 遼海漂吾棺槨, 聞君仁善, 願見藏覆. 明日視之, 水上有浮棺, 吏嗤笑者, 皆無疾而死. 于是改葬之. 진서(晉書) 지도지(地道志)에서 말하기를 요서(遼西) 사람이 요수(遼水)에 관(棺)이 떠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파괴하려고 했다. 말하기를 나는 고죽국의 임금인데 네가 어떻게 나를 깨뜨릴수 있는가? 그래서 사당을 지어줬는데 사당은 산위에 있고 성은 산의 옆 비여현 남쪽 20리 강물들이 모이는 곳이다.


2) 다시 쓰는 유기 개설자의 의견과 본인의 견해


역사탐문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개인이 이미 개설한, 역대 지리지 국역 사이트 다시 쓰는 유기의 개설자는 수경주의 기술대로 현수가 동쪽으로부터 유수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애초 한서 지리지 등의 기술대로 동쪽으로 흘러 유수로 들어가는 것이 맞다고 주석을 달고 있다.


그러나 현수와 로수가 비여현의 동북쪽에서 발원하여 유수로 흘러드는데 동쪽으로 흘러 유수로 들어간다는 해석과 견해는 크게 무리가 있다. 유수는 현재 난하이고 비여현 고지의 동북쪽에서 발원하여 난하로 흘러드는 큰 물줄기는 뻔한 것인데 이들이 동쪽으로 흘러 유수로 들어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따라서 동쪽으로부터, 또는 동쪽에서 흘러든다라고 해석하고 이해해야 옳다는 것이 본인의 견해이다.


# 수경주 화자는 지도를 펴놓고 보듯이 설명하고 있다




3. 수서 지리지 기주 북평군


北平郡. 舊置平州. 統縣一, 戸二千二百六十九.
盧龍. 舊置北平郡, 領 新昌 朝鮮 二縣. 後齊省朝鮮入新昌, 又省遼西郡并所領海陽縣入肥如. 開皇六年又省肥如入新昌, 十八年改名盧龍. 大業初置北平郡. 有長城. 有闗官. 有臨渝宮. 有覆舟山. 有碣石. 有 玄水 盧水 湼水 閏水 龍鮮水 臣梁水. 有海.


1)다시 쓰는 유기 해석본


북평군(北平郡). 옛날에 평주에 설치했었다. 다스리는 현은 1개이고 가구수는 2269이다.

노룡현(盧龍縣). 옛날에는 북평군(北平郡)을 두었었는데 신창현(新昌)과 조선현(朝鮮) 등 2개의 현을 다스렸다. 북제(北齊)에서는 조선현을 없애고 신창현으로 편입시켰고 또한 료서군의 해양현을 없애고 비여현(肥如)으로 편입시켰다. 개황(開皇) 6년에 또한 비여현(肥如)을 없애고 신창현(新昌)으로 편입시켰다가 18년에 이름을 노룡현(盧龍)으로 바꾸었다. 대업(大業) 초에 북평군(北平郡)을 설치하였다. 장성(長城)이 있다. 관관(闗官)이 있다. 림유궁(臨渝宮)이 있다. 복주산(覆舟山)이 있다. 갈석(碣石)이 있다. 현수(玄水)로수(盧水)와 열수(湼水) 윤수(閏水)와 룡선수(龍鮮水)와 신량수(臣梁水)가 있다. 바다가 있다.


2) 부연


현수와 로수는 위서 지형지 요서군과 북평군 조에서 언급돼 있지 않다. 이는 북위가 이들 지역을 실유하지 못했음을 나타낸다 해석할 수 있다.




4. 태평환우기 평주 북평군 노룡현

盧水,一名大沮水,今名小濡水,北自營州柳城縣界流入,《水經注》云:「玄水出肥如縣北,一名玄子溪。」

1) 본인의 해석


로수는 일명 대저수로 지금은 소유수라 하는데 북쪽의 영주 유성현계로부터 (노룡현으로) 유입한다. 수경주에서 말하기를 현수는 비여현 북쪽 일명 현자계에서 나온다고 했다.


2) 부연


태평환우기에서는 로수와 현수를 별도로 기술하고 있지 않다. 한서 지리지와 수경주 기술 상의 현수와 로수의 방위는, 현수가 동쪽, 로수가 서쪽에 위치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태평환우기는 이들 사서가 기술한 현수를 로수라는 이름으로 설명하고 있고 그 로수의 당시 이름이 소유수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태평환우기의 로수는 한서 지리지와 수경주의 현수인 것이다.


이 기록에서 최중점은 바로 영주 유성현계에서 흘러든다는 기술이다. 여느 기술처럼 영주계라고 하지 않고 영주 유성현계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위치는 본인이 계속 강조한, 북위 영주가 있던 곳이자 조조가 오환을 정벌한 곳이자 한나라 요서군 유성현이 있던, 바로 그 위치이다.


이 위치는 수나라와 당나라 영주가 있던 곳이 아니라 고구려의 국제교역시장이 있던 바로 그 유성이며 수와 당 침략군이 향했던 바로 그 유성이다.


이 문제 사항은 앞으로 수십 회에 걸쳐 더 다룰 것이므로 태평환우기의 해당 기술에 형광펜을 긋고 별표를 하는 선에서 마무리 하겠다.




5. 중국역사지도집에 표시된 로수와 현수


당나라 시대

http://blog.naver.com/storyphoto/viewer.jsp?src=https%3A%2F%2Fblogfiles.pstatic.net%2F20111101_234%2Fjhy8365_1320131068711uFWU3_JPEG%2F5.jpg


수나라 시대

http://blog.naver.com/storyphoto/viewer.jsp?src=https%3A%2F%2Fblogfiles.pstatic.net%2F20111024_268%2Fjhy8365_1319456734665xsw8q_JPEG%2F7.jpg


서한 시대

http://blog.naver.com/storyphoto/viewer.jsp?src=https%3A%2F%2Fblogfiles.pstatic.net%2F20111017_21%2Fjhy8365_131885473086735EXn_JPEG%2F8.jpg





6. 구글 지도상의 인근 지점


링위안 시
중국 랴오닝 성 차오양 시
https://goo.gl/maps/XLNzf5deMz72


닝청 현(본인이 추정하는 유성의 위치)
중국 내몽골 자치구 츠펑 시
https://goo.gl/maps/jGnv49mXR1q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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