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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02 03:28
[한국사] 수(隋) 임유관(臨渝關, 臨榆關) 추적 04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177  

수(隋) 임유관(臨渝關, 臨榆關) 추적 04 


먼저의 글에서 한중 사학계 통설에서 현 무령현 임유진을 수당 시대 임유관으로 비정한 이유에 대해서 바이두 백과의 설명만을 제시했다. 그리고 독사방여기요 북직 8에서는 현 산해관을 임유관으로 고정해 본다고 설명했는데 본인의 착오였다. 

북직 8에서는 산해관과 임유관의 연혁을 비교적 상세히 서술하고 있는데 오히려 바이두 백과의 설명보다 직접적이다. 

하여 북직 8의 해당 기술을 해석하여 수나라 임유관 추적에 붙인다. 

먼저 앞에서 제시한 바이두 백과의 해당 설명을 보자 


가. 

<바이두 백과> 

渝关 

옛 관의 이름이다. 유수에 의지해(근처에) 만들어졌는데 유수는 그 원천이 연산의 동쪽 기슭으로 고대의 유수는 수량이 풍부(충비)했고 물 흐름이 거세어서 옛 사람들이 이곳을 요해처로 삼아 관문을 설치했다. 유관, 임여관, 임유관, 임유관이라고도 한다. 

古关名。依渝水而建,渝水源自燕山东麓,古代渝水河水量充沛,水流湍急,古人因此设立关隘,一作榆关,又称临闾关、临渝关、临榆关。 

(古關名。依渝水而建,渝水源自燕山東麓,古代渝水河水量充沛,水流湍急,古人因此設立關隘,一作榆關,又稱臨閭關、臨渝關、臨榆關。) 

수나라 개황 3년(583년)에 (임유관을) 만들었는데 그 옛 자리가 현 하북성 무령현 임유진이다. 당나라 때에는 동북지역의 중요한 진으로 삼았다.  요, 금, 원 시대를 거치며 점차 퇴락하였는데 명나라 홍무(명 태조 주원장, 1368~1398년) 초에 이르러 유수의 수량이 감소하고 그 물길의 세기가 감퇴하였기에 이미 군사적 목적에 있어서 적합하지 않아서 이 자리(임유진, 즉 현 무녕현의)에서 동쪽의 석하(石河)로 옮겨서 유관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명나라의 사대부 대부분은 남조(황하 이남)에서 살던 사람들로 북쪽 지리 사정을 잘 알지 못하여 글과 시를 씀에 있어서 산해관과 유관을 뒤섞어 썼으니 후세 사람들이 오해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서 산해관에 유관을 덧씌워서 (산해관을 임유관으로) 오해한 지 600 년이 넘었다. 

隋开皇三年(公元583年)筑,故址即今河北抚宁东榆关镇。唐为东北军事重镇。辽、金、元时渐废,明洪武初徐达、刘伯温复建此关时,渝水水量减少,水势减缓,已经不再适合作为军事重地,遂将此关东迁至石河一线,复用渝水关名,而明朝士大夫多是久居南朝之人,北地生疏已经,著书时将山海关与渝关混淆,造成后人误会。一因此山海关从明朝初年及被都城榆关,误会六百多年矣。 


(隋開皇三年(公元583年)築,故址即今河北撫寧東榆關鎮。唐爲東北軍事重鎮。遼、金、元時漸廢,明洪武初徐達、劉伯溫復建此關時,渝水水量減少,水勢減緩,已經不再適合作爲軍事重地,遂將此關東遷至石河一線,複用渝水關名,而明朝士大夫多是久居南朝之人,北地生疏已經,著書時將山海關與渝關混淆,造成後人誤會。一因此山海關從明朝初年及被都城榆關,誤會六百多年矣。) 


다음으로 독사방여기요 북직 8의 해당 기술이다. 


나. 

<독사방여기요 북직 8> 

무령현은 영평부 동쪽 80 리에 있는데 ㅡ 중략 ㅡ 한나라 임유현 땅으로 후한이 (임유현을) 폐지했다. 요나라가 이곳에 신안진을 설치했다. 

撫寧縣府東八十里。南至昌黎縣四十里,東至遼東廣寧前屯衛百七十里。漢臨渝縣地。後漢省。遼置新安鎮於此。 

임유성이 무령현 동북쪽에 있다. 한나라 때의 현으로 요서군에 속했다. 후한이 그것을 이었다. 진(晉)이 현을 없앴으나 임유성은 옛날과 같다. 의희 10 년(동진, 414년)에 북연의 저광이 그 발문에서 말하길, 기세 등등한 군사들이 바다를 지키고 배들이 요서의 임유에서 가히 통하여 나간다 하였는데 이곳(임유성)을 말하는 것이다. 

수 개황 초에 영주자사 고보녕이 돌궐의 사발략과 더불어 군사를 합쳐 공격해 임유진을 함락시켰다. 

수 대업 중에 임유궁을 이곳에 두었다. 대업 10 년에 고구려를 재침하며 (수 양제가) 탁군으로부터 임유로 거둥했는데 (그곳이) 이곳이다. 

수서 지리지에서 북평군 노룡현에 임유궁이 있다고 했다. 모두 옛성에 궁을 설치함을/설치했다고 비유한 것이다. 

臨渝城在縣東北。漢縣,屬遼西郡。後漢因之。晉省縣,而城如故。義熙十年,北燕褚匡言於其主跋曰:章武臨海,舟楫可通,出於遼西臨渝。謂此也。隋開皇初,營州刺史高保寧與突厥沙缽略,合軍攻陷臨渝鎮。大業中,置臨渝宮於此。十年,復議伐高麗,自涿郡幸臨渝。是也。《隋志》:北平郡盧龍縣有臨渝宮。蓋於故城置宮雲。 

폐지된 려성현이 무령현 남쪽에 있는데 한나라가 이곳(무령현 남쪽)에 설치했다. 후한이 (려성현을) 폐지하고 임유현에 통합(흡수)했다. 
  
驪成廢縣,在縣南,漢置縣於此。後漢省縣入臨渝。 

석하가 산해관 서쪽 3 리에 있다. 
石河在山海關西三里。源出口外,自義院口流入,旁多叢石,水流石罅中,褰裳可涉。秋潦漲急,險不可履。南流注于海。 

산해관이 현(무령현, 노룡현 동쪽 80 리) 동쪽 100 리(산해관이 영평부, 즉 노룡현 동쪽 180 리에 있다는 기술과 일치 永平府東至山海關一百八十里)에 있다. 본래 이름은 유관으로 옛부터 군사적(戍守) 요충지(重地)로 삼았다. 

대명일통지에는 무령현 동쪽 20 리에 유관이 있다고 했다. 명나라 초기에 위국공 서달이 처음 기존의 유관을 동쪽으로 60 리 옮겨서 산해관이라 불렀다. 
혹은 요금 시대에 유관이 (거란과 여진 땅으로) 복속되면서 (임유관의) 옛 터가 점차 묻히게/잠기게/잊혀지게/흔적이 사라지게 되었다고도 한다. 

무령현 동쪽 20 리에 있던 유관은 지금 역참이 그곳에 있어서 옛 유관의 명칭을 잇고 있을 뿐이다. 

명나라 초에 옛 유관(무령현 동쪽 20 리의) 땅을 수복하며 둔영을 그곳에 증설하였다. 요금 시대 유관이었던 그곳에 우역(郵驛)을 두었다. 

지금의 산해관은 모두 한나라와 당나라 때의 옛 터로 명나라가 창건한 것이 아니다. 
ㅡ 중략ㅡ 
북번지리서에 따르면 (거란 남경도) 천주 천민현(현 산해관)이 유관 동쪽 50 리에 있(었)다 
ㅡ 하략ㅡ 

山海關縣東百里。本名渝關,自古為戍守重地。《一統志》:今縣東二十里,有渝關。明初,魏國公徐達始徙而東去舊關六十里,謂之山海關。或曰:遼金時,以渝關為腹裏地,故址漸湮。今縣東二十里之渝關,乃其驛遞之所,因渝關舊名耳。明初,修復故關,增置屯營。其於金元時之渝關,仍置郵驛。今關蓋漢唐舊址,非明創建也。郭造卿曰:山海關,即故元遷民鎮。元天歷初,屢發兵戍守遷民鎮,尋又發平、灤民塹遷民鎮,既而上都兵自遼東入遷民鎮,其地險在此也。據《北番地理書》,遷州治遷民縣,在臨渝關東五十里,南至海二十里。今關城以磚石,高四丈有奇,周八里有奇,月城二,水關三,門四。有池環之,東面又有夾池、羅城,恃為險固。餘詳重險渝關。 

명질관이 구당서(?) 지리지에서 말하길 (노룡현) 북쪽/(무령현) 북쪽에 있다고 했다. 당회요에서 말하길 평주에 명질관이 있는데 임유관과 더불어 나란히 험한 곳의 요충지이다. 지금은 명질관으로 가는 길이 풀숲이 우거지고 막혀서 유관이 동쪽면의 방비를 독담당 하고 있다. 

남해구관이 산해관 남쪽 10 리에 있다 ㅡ 하략 ㅡ 

明垤關舊《志》云:在縣北。《唐會要》:平州有明垤關,與臨渝關並為險要。今關道榛塞,渝關獨當東面之沖。○南海口關,在山海關南十里,濱海。天啟二年,增設龍武營於此。《志》云:南海口東五里,曰老龍頭,極沖也。自南海口而西三十里,曰秦皇島。又西十里,曰白塔嶺。皆濱海要地,設兵戍守。又有南水關,在山海關南二里。 


푸닝 현(무령현) 
중국 허베이 성 친황다오 시 
https://goo.gl/maps/ksnAJkgiGo52 

Yuguanzhen(임유진) 
중국 허베이 성 친황다오 시 푸닝 현 
https://goo.gl/maps/AM1FoQf27r22 

산하이관 구(산해관) 
중국 허베이 성 친황다오 시 
https://goo.gl/maps/RGQYJG8Kst22 



다. 

정리 

1)요약하면 ㅡ 요금원 시대까지 현 무령현 임유진에 있었던 임유관이 명나라 초기에 이 지역을 수복하고 영역이 동북쪽으로 나아감에 따라 그 전략적 가치가 기존 위치가 상실함에 기존 위치에서 동쪽 석하(石河, 현 산해관)로 옮겼다 

2) 명질관(明垤關)은 신당서 지리지에서 평주 북평군 동북쪽에 있다고 적혀 있다. 반면에 임유관은 석성현에 있다고 적고 있다 

3) 독사는 려성현이 무령현 남쪽에 있었고 무령현이 임유현 지역이었으며 후한 때에 려성현이 폐지되고 그 땅이 임유현에 흡수됐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려성현이 그곳에 있었으면 비여, 영지, 해양현 등이 있던 현 노룡, 무령현 등의 진황도시 지역은 한 요서군이 아니라 우북평군 지역이 되고야 만다. 그러므로 옳지 않다. 

4) 뿐만 아니라 수경주에서는 루현이 임유현에 흡수됐다고 적고 있다(絫縣並屬臨渝). 루현은 갈석산이 있다고 한서 지리지에서 적고 있는 곳이다. 

5) 수경주에 따르면 갈석산은 현 난하인 유수 물길의 동남쪽에 있다. 뿐만 아니라 유수는 해양현의 서쪽을 지나 남쪽으로 바다로 들어간다고 적고 있다. 

6) 무슨 말이냐 하면 현재 갈석산 지역이 루현이 있던 곳이라는 말이고 그 서남으로 해양현이 있었다는 말이다. 난하의 하류 물길은 서쪽에서 현재의 위치로 100여 리 가량 이동했다. 

10) 뿐만 아니라 기원전 후의 한나라 당시에는 현 당산시 코 앞까지 바다였다. 

Jie Shi Shan Feng Jing Qu(갈석산) 
중국 허베이 성 친황다오 시 창리 현 邮政编码: 066600 
https://goo.gl/maps/4FdimRT2EWF2 

탕산 시(당산시) 
중국 허베이 성 
https://goo.gl/maps/V9cFfDCUwvA2 

한나라 당시 해안선(중국역사지도집) 
http://blog.naver.com/storyphoto/viewer.jsp?src=https%3A%2F%2Fblogfiles.pstatic.net%2F20111017_60%2Fjhy8365_1318854736574zVkpu_JPEG%2F18.jpg 

11) 본인은 당 태종 2차 침략 당시 오호도의 장수 고신감이 고구려 변경에서 고구려군과 싸웠다는 역산의 위치를 추적하며 역산이 갈석산이라는 사실을 고증한 바 있다. 그것에 착안하여 신당서 지리지의 서협석, 좌협석이 통전의 두우가 말하는 좌갈석, 우갈석일 것이라는 추정까지 도달했으며 이러한 과정은 이곳 동아게에서 게시글과 댓글로 피력해 왔다. 

12) 갈석 문제는 북평군 연혁을 고찰하며, 또 갈석 고찰 게시글을 별도로 열어 다룰 것이다. 

우리는 지금 수당 시대 영주의 위치와 고구려 서계를 추적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수나라 임유관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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