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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0-30 21:04
[한국사] 발해의 고구려 계승에 대한 단상 기록정리
 글쓴이 : 설설설설설
조회 : 1,793  

발해의 고구려 계승에 대한 단상

<구당서 발해전>

대조영은 본래 고려의 별종이다. 고려가 멸망하자 대조영이 가족들을 이끌고
영주에 살았다. (중략) 대조영은 말갈추장 걸사비우와 더불어 각각의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망명하여 (중략) 대조영이 날래고 용맹하여 용병을 잘하자,
말갈의 무리와 고려의 남은 무리들이 점점 그에게 귀부하였다.

<신당서 발해전>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로서 고려에 부속되었으며, 성은 대씨이다. (중략)
사리 걸걸중상이 말갈추장 걸사비우와 더불어 고려의 남은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가 요수를 건넜다.

<신오대사 발해전>

발해는 본래 말갈로 고려의 별종이다. (중략) 고려의 별종 대걸걸중상이
말갈추장 걸사비우와 더불어 요동으로 가 고려의 옛 땅에서 각기 왕이 되었다.

<자치동감>

고려가 망하자, 그 별종 대조영이 영주에 살았다. 이진충이 반란을 일으키자,
대조영이 말갈추장 걸사비우와 더불어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갔다.

<사불허북국거상표 - 최치원>

신이 삼가 살피건대, 발해의 원류는 구려가 망하기 전에는 본시 사마귀한 한 부락으로
말갈의 족속이였는데 이들이 번영하여 무리가 이뤄지자 이에 속말 소번이라는 이름으로
항상 구려를 좇아 내사하더니, 그 수령 걸사비우 및 대조영등이 무후 임조 때에 이르러,
영주로서 죄를 짓고 도망하여 문득 황구를 점거하여 비로조 진국이라 일컬었나이다.

<여예부배상서찬장 - 최치원>

옛날의 구려가 바로 지금의 발해입니다.

<삼국유사>

삼국사에 이르길, 의봉 3년 고종 무인에 고려의 남은 무리들이 북쪽으로 한데모여
태백산 아래에 의거해 국호를 발해라고 하였다. (중략) 또 신라고기에 이르기를,
고려의 옛 장수 조영은 대씨이며, 남은 군사를 모아 태백산 남쪽에서 나라를 세우니
국호를 발해라고 하였다.

<제왕운기>

전 고려의 옛 장수 대조영이 태백산 남쪽 성에 터를 잡고 개국을 하니 이름을 발해라고 하였다.

<고려사>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로 당 무후 때 고구려인 대조영이 달아나 요동을 지켰다.

===

위의 사료들을 종합해보면 대조영은 속말말갈계 고구려인으로 고구려에서
장수를 지냈음을 알 수 있다. 걸걸중상을 대걸걸중상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최소 이때부터 대씨성을 칭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 대씨 성은 고구려 귀족의
성씨로 일본쪽 기록에도 발해 건국 이전에 "대고앙가" 라는 고구려인이 등장한다.

발해의 지배층에서 대씨와 고씨를 포함한 고구려계 성씨는 50% 이상을 차지한다.
송기호 교수의 지적처럼 국정을 운영했던 사람들이 누구였고, 이들이 어떠한
의지로 국정을 운영했는지가 중요하다. 발해 지배층 자체의 인식은 발해국왕이
스스로를 고려국왕으로 차저했다는 것에 있다. 일본에서는 발해를 고려로 명칭했으며,
발해의 사신을 접대할때 고구려계 일본인으로 하여금 접대를 하였다.
특히 발해의 무왕이 일본에 보낸 국서에 고려의 옛 땅을 회복했다고 언급한 것이 주목된다.
회복이라고 함은 잃어버린 것을 되찾았다는 의미로 이는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대외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해의 고구려 계승은 그들의 문화로도 잘 나타단다. 특히 발해 초기에 당과 적극적으로
문화교류를 하기 이전까지 왕실을 비롯한 발해의 지배층들의 묘제가 고구려 지배층의 묘제 양식과
일치하는 것 역시 이를 근거한다. 주지하다시피 묘제는 가장 보수성을 가진 문화중 하나로도 널리
알려져있다. 발해의 지배층들이 유민시절 30년간 영주에 있을 때에도 고구려적인 문화요소를 간직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상경성의 궁전 배치를 고구려의 안학궁과 유사하게 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안학궁은 427년부터 586년까지 고구려의 수도로 시차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발해의 지배층들이
상경성의 궁전배치를 이러한 안학궁과 유사하게 했다는 것은 고구려 문화와 계승에 대해
깊이가 있었음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이외에도 발해의 건축물 곳곳에는 고구려 양식이 남아있다.
이처럼 고구려인들이 국정을 운영하는 발해가 고구려 계승을 자처하고 문화를 계승하는것은
결코 어색하지 않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윤경진 교수의 견해처럼 계승의식이란
어느 한 집단이 자신의 정체성와 동질성을 확인함과 동시에 타집단과의 차별성을 나타내는
근거로 매주 중요한 의미라 할 수 있다.

기실 발해가 고구려 계승을 대외에 알린 것은 일본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타국의 발해에 대한 인식에서도 추측할 수 있다. 노태돈 교수는 돈황문서에서
돌궐이 발해를 무구리 즉, 고구려라고 불렀다는 것을 입증한 바 있다.
신라의 경우는 엔닌의 입당구례 순례행기의 의하면 발해와 고구려를 동일시하였으며,
여러 신라 측 사료에서도 대조영은 고려의 장수로 그가 남은 고구려인들을 이끌고 발해를 건국하였다고 한다.
한편, 최치원은 발해를 말갈의 나라라고 하면서도 발해는 곧 옛 고구려라는 이중적인 인식을 가졌는데
이는 이미 많은 선학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발해의 존재가 신라의 삼한일통관념과도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최치원 역시 여러 글에서 발해와 고구려를 동일시 하였으며, 현실적으로 발해가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자인한 셈이다. 이러한 신라의 발해와 대조영에 대한 인식은 왕건이 세운 고려에게도 계승이 된다.

신라가 발해에 대해 이중적인 인식을 가진 것처럼 당 역시 발해에 대해 이중적인 인식을 가졌다.
이 역시 이미 널리 알려진 연구 결과이지만, 이미 내번으로 당이 임명한 고려왕이 있었으며,
발해가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인정하게 되면 이전에 고구려를 멸망시킨 성과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결국 대조영의 출자를 고려별종으로 인식한 초반의 인식과는 달리 개찬을 거듭하면서
말갈의 비중을 높인 결과를 가져왔다. 
(주지하다시피 발해가 말갈을 자처하거나 계승의식을 가졌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당 역시 신라처럼 발해가 현실적으로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단적인 예로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고려의 옛 연원을 설명하며 고구려 - 발해 - 고려로 인식하였다.
서긍의 이 같은 인식은 어느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선대의 인식으로부터 왔음이 분명하다.
이처럼 주변국들이 발해를 고구려의 계승국으로 인식하거나 고구려아 발해를 동일시하는 인식을
가졌다는 것은 발해가 적극적으로 대외에 고구려의 계승국을 자처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주변국들이 큰 의심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긴 것이나 부정하려 해도 현실적으로 이를 받아들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분구조로 본 발해 문화의 고구려 계승성 2006(정영진)
고려의 고구려 계승에 대한 종합적 검토, 2006(박용운)
영주의 대조영 집단과 발해국의 성격, 2007(정병준)
발해 문화의 고구려 계승, 2007(윤재운)
발해 정치 외교사, 2009(김종복)
발해와 당의 묘제비교, 2010(한정인)
발해의 종족적 연권, 2011(김기흥)
발해 사회문화사 연구, 2011(송기호)
발해 석실분의 형식과 구조에 대한 연구 2011(박규진)
발해성곽의 구조와 형식에 대한 연구, 2012(스토야킨 막심)
발해 도성의 의례공간과 왕권의 위상, 2012(윤재윤)
발해 상경성의 도시계획 : 황제도성으로서의 발해 상경도성, 2013(정석배)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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