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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0-29 22:12
[한국사] 고조선의 국가체는 어디 까지 발전 하였을까?
 글쓴이 : 설설설설설
조회 : 2,092  

과연 고조선의 국가체는 어디 까지 발전 하였을까? 
환뽕과는 거리가 먼글입니다.


고조선 자체가 기원전시대 국가라 의심하는 사람도 여러 있습니다. 
과연 고도화된 국가의 체재를 갖추고 있었나?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과
반대로 고도화된 체재를 가지고 있었다 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고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도 설명드리고 싶었습니다..

일단 사서의 의거해서 살펴보면 고조선의 관직에 대해서 알아볼수가 있습니다.

위만의 왕조교체 이전에도 대부(大夫)예(대부가 관직이고 예가 이름입니다) , 박사(博士) 위만등이 있었으며, 위만 이후에도 조선상(朝鮮相) 역계경 , 조선상 노인, 상 한음 , 니계상 참 , 장군 왕겹비왕 장 등이 있었습니다.

관직이야 말로 국가의 발달 정도를 확인할수 있는 정말 중요한 척도입니다.

먼저 기원전4세기의 고조선을 바라보겠습니다.

기원전 4세기경이 되면 정가자와라는 세력이 요동을 고고학적으로 통일시킵니다.
당시 고조선의 왕은(이름은 모름;;) 전국7웅중 하나인 연나라와 전쟁을 불사할정도로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대부예가 고조선의 왕에게 간언하여 중재하게 됩니다.
대부예는 여기에서 직접 연나라까지 찾아가 화친을 성립시켰습니다 (위략)

여기서 볼 수 있듯이 고조선에는 대부예라는 관직이 존재 합니다.
고도화 되진 않았지만 어느정도의 관료조직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즉,고조선이 초창기의 국가 조직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시대가 흘러 대략 기원전 3~2세기의 고조선입니다.

고조선 준왕 시기에 고조선의 관직은 박사만이 확인이 된다고합니다.
물론 기록되지 않은 다른 관직도 있었겠죠. 하지만 기록에서는 박사만이 확인됩니다.

<위략>

준은 그를 믿고 사랑하여
박사에 임명하였으며 규를 하사하며
백리의 땅을 봉해 주어 서쪽 변경을 지키게 하였다.

박사라는 관직은 중국의 진나라에서 처음 설치된 관직입니다.
여기서 해석하기는 실제로 고조선에 박사라는 관직이 있었거나
아니면 당시 중국인의 관점에서 위만이라는 인물이 박사라는 관직의 역할로 보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노태돈 교수는 박사위만이 고조선왕에게 자문에 응하는 역할을 맡긴 것이라 해석하였습니다.

상(相)을 통해 바라본 우거왕대의 고조선

고조선 준왕대에는 고조선의 영토가 평안도지역에 주를 이루었다면
우거왕대에는 고조선의 영토가 한반도 북부를 포괄하게 됩니다.
넓은 영토를 관리하기 위해선 지방을 통치하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이로서 준왕대보다 더 진일보한 지방통치의 모습이 발견됩니다.

여기서 상(相)이라는 관직은 중국의 " 승상 " 이란 비슷한 직책입니다.

고조선의 기록에는 조선상 역계경 , 조선상 노인 , 조선상 한음 , 니계상 참 등 여러 " 상 " 의 관직을 가진 인물들이 발견됩니다.

< 위략 >

조선상 역계경이 우거에게 간하였으나
그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동쪽의 진국(辰國)으로 가였다.
그 때 백성으로서 그를 따라가
그 곳에 거주한 사람이 2천여호나 되었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역계경이라는 사람의 직위는 " 상 " 입니다.
그런데 우거왕과의 갈등으로 수하에 있던 2천여호를 끌고
고조선을 이탈하여 독자적인 행동을 합니다.
이렇게 되어 " 상 " 이라는 직책은 관료적인 직책보다는
특정 지역의 수장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과거 준왕대와 우거왕대의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준왕대의 박사위만은 패수 일대를 경영하며 그곳에 정착한것으로 보이는데

우거왕대가 되면 " 상 " 들은 상당한 자치력 세력을 보유함에도
왕에게 들어가 중앙에서 국정을 이끌고 왕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 왕 "과 " 상 " 들은 조정에서 나름의 회의체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통하여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였고
이는 훗날의 고구려가 각 부의 수장들이 상당한 자치력을 보유하면서도
임금과 함께 제가회의를 통해 국가를 이끌어 가는 " 부체재 " 와 유사한 모습을 보입니다.

다만, 여기서 고구려 부체재는 5부가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완벽하게 묶였다면
고조선 우거왕 대의 " 상 " 들은 왕과 갈등이 생기면
조선상 역계경 처럼 이탈해버리는 경우도 존재하였습니다.

일단 왕은 고조선의 넓은 영역을 직접적으로 통치하기에는 힘들어보였고
그래서 "상" 이라는 존재에게 일정의 권역의 통치권을 인정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왕검성의 중앙 회의체에 참석하여 국정을 운영하여 논의하였습니다.

하지만 조선상 역계경과 같은 상황을 보아
아직 완벽하게 정착하지는 못한것 같습니다.
하지만 초기형태의 부체재를 확실히 가지고 있습니다.

고조선의 행정력과 군사력은 어디까지 발전하였나?

위에 말씀드렸듯이 고조선이 아직 정치체가 고도로 발전된 국가까지는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고조선은 이 체재로도 전란시에 상당한 숫자의 군사를 소집하여 전투에 응합니다.

< 사기 > 에 보이는 기록만으로도 고조선의 왕검성에만 무려 1만명 이상의 병사 운용모습이 보입니다.

조선의 태자가 왕검성에서 출병하여 패수로 데리고 간 병사가 1만명이기 때문입니다.

이정도라면 고조선은 전시상황에서 대략 3만명 정도의 병사를 운용할수 있는 능력을 보여 줄수 있다 생각합니다.

이는 3세기 무렵의 고구려가 전시에 2만명을 동원하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치입니다.

이 정도의 군사력을 확보한다는것은 

고조선이 기원전 3~2세기 무렵 확실히 고대국가로서의 반열에 진입하고 있다는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한나라와의 전쟁(수륙양용 5만7천명) 고조선의 왕검성에서 한나라의 수군 7천명을 박살냈고
패수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도 승전보가 있었으며

왕검성이 함락된것도 한나라의 공격보다는 내분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외교능력

고조선은 한나라,흉노와도 외교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한무제의 중앙 조정과도 직접적인 외교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서 설명드렸듯이 기원전4세기 경에도 연나라의 조정에

대부예를 파견하여 화친을 성립 시켰습니다.

마지막으로 설명드리자면

고조선은 기원전4세기 경에는 걸음마 단계의 국가 조직이 성립되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기원전 2세기쯤되면 고대국가로서의 초기형태라 부를 수 있을정도로 행정력과 군사력 지방통치제도 등이 성립되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고조선은 한나라의 전쟁에서 멸망하고 맙니다.

북만주 일대의 " 부여 "를 제외하면 고조선 정도로 국가체가 등장하는것은

150~200년 뒤의 고구려입니다.

제 개인적인 소견을 말씀드리자면 고조선의 멸망은 분명히 우리나라의 역사를 어느정도 늦추게 되는 안타까운 멸망이였다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고조선이라는 국가에 대해서 더 알아야하고 자부심을 가져야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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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설설설설 18-10-2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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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제가 이전에 작성한 글 입니다.
고조선은 과연 언제쯤 사서에 처음 등장하나?
     
꼬마러브 18-10-30 07:26
   
고조선이 중국 사서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기록은 <관자>가 아닙니다. 물론 "조선"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오는 기록은 맞지만...

<죽서기년>을 보면 순임금 25년에 숙신의 사신이 방문하였다고 나와 있는데요. 기타 중국 사서를 보면 고조선보다 앞서 만주에는 숙신, 식신, 직신 이라는 정치체가 존재하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요순임금 때부터 등장)

위치를 추정하자면, 이들이 중원 세력과 교류하기 위해서는 연해주나 기타 오지가 아니라 중원과 가까이 위치되어야 하므로... 산동반도 근방이나 요서지역이었을 것인데

이리 따지면 고고학적으로 홍산문화의 주인은 숙신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 숙신을 조선이라고 본다면, 고조선의 사서 등장 시기는 <관자>보다 훨씬 앞서 그것이 건국되었다는 BC 2333년부터 지속적으로 기록되는 셈이 됩니다.

그리고 이는 고고학적으로 만주-한반도의 청동기 개시 연대와 일치합니다.
떡국 18-10-29 23:37
   
본문에 언급하신 고조선 이야기는 고조선 후기~말기 이야기인데
그 이전의 초기 고조선 즉 단군조선 관련해서 ....

'단군신화'의 내용을 잘 보면, '단군'이 나라를 창업하기 이전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라고 하더군요.
그러고보니 정말 환웅, 호랑이, 곰 이야기는 전부 단군 이전의 이야기죠.
좀 공격적으로 상상해 보면, 소위 '요하문명'권역 중에서,
홍산문화에서 나타나는 여신상이 웅녀가 맞다고 가정한다면,
그리고 여신상이 나타나는 하가점하층문화가 예맥계와는 좀 거리가 있는 다른 종족이라는 말을 받아들인다면...
예맥계가 형성되기 이전의 이야기(즉 예맥족의 발생과정을 설명하는 이야기)라고 하면 말이 되는거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만일 이 가설을 적용할 경우라면,
하가점하층문화 시대가 바로 단군신화에서 이야기하는 그 시대가 되는거고
그건 바로 단군 이전의 시대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되는 거겠죠.

그리고 복잡하게 들어갈 필요없이 심플하게
비파형동검이 고조선 즉 단군조선이라고 가정한다면,
(비파형동검만 가지고 따지면 안된다는 고고학자들의 경고는 알고 있지만 일단 간단하게 생각해 보면)
비파형동검 상한선이 언제냐 가지고 이야기하면 될 텐데
작년에 적봉시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이 BC18~11세기로 편년된다고 하더군요.
상한선이 BC18세기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비파형동검 초기시대는 하가점상층 시대인데,
보수적인 학자들은 이게 전부 산융족이다 하고 간단히 끝내던데
이 시기에 나오는 동검이 3종류 나온다고 하더군요?
(공병형, 유병형, 비파형)

그냥 전부다 산융족이 만들었다 라고 이야기하고 퉁 치기에는 너무 러프한거 아닌가 싶어요.
설령 산융족이라 하더라도, 그 일부가 고조선 건국세력이 되어 예족과 융합해서 예맥이 된다거나 등등 여러가지 가설을 얼마든지 도출해 낼 수도 있고요.

문헌 관련해서는...
고조선이 처음 문헌에 나오는게  BC7세기 관자라고 하므로 그 시기에 고조선이 만들어졌다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공평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산융족의 경우에도 BC7세기경에 문헌에 처음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산융족 발생 시기는 학자에 따라 몇가지 추론과정을 거쳐서 BC20세기까지 소급해 올리는 경우도 많더군요. (그래야지 홍산문화 주인공이 산융족이라는 가설이 성립되므로)
알려진게 거의 없는 신비의 부족인 산융족은 발생시기를 막 소급해서 올리는데
그보다 사정이 나은 편인(?) 고조선 발생연대는 (고고학 성과를 바탕으로) 끌어올리면 안된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쟎아요.
꼬마러브 18-10-30 07:37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그리고 단군조선을 구분하셔야 합니다.

준왕은 기자의 40대손으로, 낙랑군 조선현에 위치했었던 기자조선이라는 소국의 왕이고요.
위만조선은 그 소국에서 쿠테다를 일으켜 요서 전체로 세력을 넓혔고
단군조선은 그 이동에서 거수국을 거느리며 별개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https://m.blog.naver.com/aaaa123krkr/220135507481
월하정인 18-10-30 10:55
   
여기는 역사글 안올리는게 좋음....
햄돌 18-10-30 15:21
   
고조선에 대해서 잘 모르면 추측성 글 안 올리는게 좋음....
오히려 동게 유저님들 덕분에 단군조선 홍산문명
기자조선 위만조선 머시기 많이 배웠음

나도 배운대로 얘기하자면
기자조선이랑 위만조선이랑 단군조선은 각각 다른 세력임
위만은 단군조선 서쪽 모퉁이에 있었고

중국사서에도 고조선은 강력한 세력이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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