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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공은 주나라의 건국에 세운 공을 제나라의 제후에 책봉되었다. 맹자는 동이 출신이어서 그런지 동이 등 이적의 국가에 대한 언급을 빠뜨리지 않았다. 제나라의 선왕이 맹장에게 이웃나라와 사귀는 방법에 대해 묻자 맹자는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섬겼음을 예로 들었다. 상나라의 탕왕이 갈나라를 섬겼고 문왕이 곤이를 섬겼고 대왕(문왕의 조부인)이 훈죽(흉노)을 섬겼다고 하였다. 섬김을 받은 갈나라와 곤이는 동이의 나라이고 훈죽은 북적의 나라인 흉노를 말한다.
맹자는 동이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순왕과 관련된 대목이다. 즉 순왕은 얻은 뜻을 '중국'에 펼쳤다거나 순왕이 '중국'으로 들어가 천자의 지위에 올랐다는 대목이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순이 동이 출신이지만 '중국'에 들어가 천자가 되어 얻은 뜻, 인정을 펼쳐 만대의 모범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중국을 놓고 중원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중국'이 중원을 가리킨다면 중원의 동쪽 변방이 순이 중원으로 진출하여 군주가 되었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 동이는 중원의 극동지방, 서이는 중원의 극서 지방을 말하는 것으로 보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동이는 중원의 극동 지방을 넘어선 지역을 말하므로 지나족의 거주 지역이 아니다. 순왕이 지나족이 아니고 동이였음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문헌이 있다. 즉 하늘은 차별하지 않아 성인은 반드시 지나의 본거지에서만 나와야 한다는 법칙이 없다는거나 상고시대 지나의 본토보다 그 이웃한 지역이 훨씬 넓기 때문에 성인은 오히려 이웃한 지역에서 더 많이 나올 가망이 많다고 지나의 문헌들이 한결같이 주장하였다.
동이족이 지나의 거주 지역으로 들어와 어진 정치를 펼쳤다는 것은 동이의 지나 통치에 있어 최대의 기여라고 할 수 있다. 동이족의 지나 거주로 풍속의 차이 때문에 부딪치는 점들이 있을 수 있다. 문헌을 통해 확인이 가능한 것은 부모의 복상문제였다. [맹자]에 의하면 인륜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은 부모의 3년 복상문제였다. 요왕이 사망하자 순은 3년상을 치렀다. 그 후 순은 요왕의 아들을 피해 남쪽으로 이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