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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0-26 00:45
[한국사] 신라의 삼국 통일에 관한 비유
 글쓴이 : 위구르
조회 : 2,935  

신라 밝지 가우리는 형제국이었죠. 다만 현실에서 형제들이 실제로 싸우고 반목하듯이 매양 편하게만은 지내지 않았는데 그 정점이 고당 전쟁 시기.


신라는 당나라를 끌어들여 두 나라를 멸망시켰는데 그에 대한 정상참작의 근거는


'신라가 망할 위기였으므로 아무리 형제여도 가만 둘수는 없었다'


실제로 이뤄냈죠?


그리고 그 대가는


1. 밝지 멸망으로 다시는 중원 동부를 노리지 못함(대륙백제는 부정못할 사실이라는게 전제)

2. 밝지 멸망으로 그 찬란한 문화가 신라 문화에 편입되어 흡수되거나 사라져버림.

3. 밝지 멸망으로 그 나라가 소장한 역사서가 전부 불탔을 것임.

4. 수많은 밝지 인들이 목숨을 잃거나 이재민, 고아, 노예로 전락하거나 일본 열도로 대피하면서 인구 감소

5. 가우리 멸망으로 수많은 역사서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6. 가우리가 장악하고 제어한 만주 지역에 대한 지배력이 상실되면서 한민족에게 지배받은 말갈 부족들은 일어나 날뛰고 한민족을 가족 삼았던 말갈족 역시 독립을 모색(한민족이 무능해서 망한 것이니까 제 살길을 찾아야 했기 때문). -> 이는 차후 한민족이 말갈족과 이질화되면서 결국 서로를 이족으로 여기는 연원이 됨.

7. 가우리의 통제에 놓인 키타이(거란)이 독립함(나중에 가서는 대진국을 멸망시키는 위험한 씨앗이 됨)

8. 수많은 건축물이 파괴되고

9. 50만 인민이 끌려가 노예가 되고 통탄스럽고 분하게도 결국에는 거진 한족에 동화됨. <- 개인적인 생각과 감정으로는 이게 진짜 역사서 소실과 함께 일어나지 말아야 했던 빌어먹을 참극이었음.

10.  물론 사람들도 많이 죽어 없어졌음.

11. 일단 가우리가 멸망하면서 한민족의 자신감과 위신이 떨어짐 <- 생각해보면 풍파를 거치면서 지독히도 살아남아 700년(혹은 900년)이나 지속되어 거의 전설과도 같은 나라의 위치가 되었을 것인데 그 나라가 망했으니까 한민족의 충격과 위신 추락은 이루 말할 수 없음.


등등 헤아릴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사실 이건 잡담에 가깝고 하고 싶은 주장은


이유야 어찌 됐든 민족 전체로 보면 결과는 최악이죠. 신라 하나 살자고 이 모든 업보를 만들어 냈으니 신라의 입장이야 이해하지만 살기위해 외세의 칼을 빌려 동족을 쳐죽인 것은 비판받아야 합니다.


개인의 사례를 만들어 비교: 기업의 회장(단군조선)이 돌아가시고 이후 그 아들들이 한동안 치고 받으면서 싸우거나 때때로 웃으며 손잡아가며 운영해 왔는데(700년간), 그들중 막내가 상황이 불리해져가지고 나의 집과 재산을 빼앗으려는 것으로 강력히 추정되는 이유로 형들에게 핍박받고 결국 그리 된다면 힘을 다 잃게 되는 상황임.


근데 이는 둘째 형(밝지)가 주도한 것으로 막내가 자신의 소유 분야를 선제 공격하고 다수를 뜯어갔기 때문(역사적 사실: 한강 이북 장악과 밝지 건길지 성왕의 전사). 결국 셋째 아우(신라)가 단초를 제공해가지고 그 지경이 됐으면서 그래서 어찌 하냐, 힘이 부족하니까 그 해결책이 꼴에 타 기업을 물색해 끌어들여서 그들을 몰아내고 대신 형제들이 가진 지분들을 나눠주고 결국 기업 일부를 내어주겠다고 하는 것.


그런데 실제로 그리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회사 지분의 1할을 차지한 둘째 형(밝지)의 지분을 쓸어먹었고 첫째 형이 가진 전체 8할의 지분은 그중 1할만 갖고 다 넘겨주었다. 그런데 그 끌어들여진 기업은 진작부터 이 기업 전체를 노리던 기업이었는데 그걸 알고도 그리 끌어들인 것이다(모르고 그랬다면 멍청한 것이지만 신라가 실제 하는 대응을 보면 그리 멍청한 것 만은 아니었음).

그 끌어들여진 기업은 우리 기업의 삼형제의 지분을 합친 것보다 적어도 3배나 거대하고 강한 기업인데 이제 어찌 싸울 것인가. 더군다나 장본인인 셋쩨 형제의 파에 속한 사람들도 이 싸움으로 힘을 잃은 경우가 많았고(당나라에 식량 바치고 직접 싸우느라 힘이 고갈된게 실제 사실) 지쳐있는데 이제 저 외세 기업의 야욕에 어찌 대응할 것인가.


여기까지가 가우리 멸망 연도인 서기 668년 까지의, 단기 3001년 까지의 일. 여기까지의 경과가 정상적인 것으로 보입니까?? 신라의 태도는 무책임하고 비현실적인 것이었습니다. 당나라가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려는 야욕을 품었을 것임은 너무나 당연했는데 밝지 가우리는 멸망하고 신라 자신은 자쳐있는데 그러고서 당나라를 상대한다는 것은 금이 간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 이것이 신라가 비판받을 이유중 하나이고...


아무튼 신라는 결과적으로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가우리 밝지 부흥군이 일어나 당나라와 싸우는 호재에 힘입어 신라 자신도 잘 싸우기도 했고 서방으로 가보면 강력한 세력이자 사실상 우리 민족의 구원자... 티베트가 당나라를 강력히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라 당나라의 침공은 약해졌고 결국 나당전쟁은 아국의 승리로 귀결됩니다.


 결과는 신라의 승리죠. 모두가 패한 전쟁에서 4국 중에 신라가 진정한 승자였으니 이러한 이이제이 전략은 지금의 우리나라가 본받아야 할 것이 맞습니다.


그럼에도 신라가 비판받을 이유는... 다르게 비유를 해서 형제가 나를 죽이려 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그들을 청부살인으로 죽였다. <-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법에 걸려서 감옥갑니다. 미국같으면 무죄 판결 나겠지만.


"살기 위해서 남을 죽인 것 또한 비판받을 일이며 어디까지나 살인일 뿐이다.

또한 내가 그렇게 한다면 차후 비판받을 각오를 반드시 하겠다." <- 이것이 하고 싶은 말의 핵심. 비판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쪽으로 신라 옹호론이 흘러가고 있는데 비판은 합시다.



후속: 힘겹게 싸우던 중 상대 기업의 공세가 약화되었다. 그것은 전부터 지속적으로 그 기업과 붙어오던 다른 기업이 그들의 텅 빈 후방을 노려 그들의 주요 산업 분야(장안)까지 잠식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전력 상당수가 철수해서 막는데 힘썼고 그나마 여기에 남은 당나라 기업의 세력은 힘껏 싸워 물리쳤다. 자랑스러운 승리였다. 또한 우리를 간접적으로 도와준 고마운 기업의 명칭은 그 이름 찬란한 '티베트 제국'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흘러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새로운 경쟁기업이 생겨나 우리 기업보다 훨씬 강해진 것이다. 바로 죽은 첫째 형의 아들이 지분을 되찾고 새로운 대기업, '대진국'을 세웠기 때문이다.


후세 사람들은 말한다. 둘째 형제의 흔적은 온데 간데 없고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터이니 그저 안타깝구나.


ㅡ끝ㅡ


수준 높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저 이해를 도울수 있었다면 좋겠습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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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Cosm.. 18-10-26 01:07
   
글을 읽어보았으나 말씀하신 내용들은 기존의 이야기를 되풀이할 뿐이며, 억지로 비판하기 위해 이유를 만드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결과론적인 이야기로 비판하는 것또한 타당치 않습니다.

만약 신라가 고구려보다 더 넓은 영토를 정복했다면, 그 때에도 형제나 동족을 없앴다고 비판하셨을까요? 제 생각엔 아닐겁니다. 만약 그러했다면 위구르 님과 같은 분들은 더 큰 영광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 또는 동족의 약자는 강자에 먹혀서 돕는 것이 타당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였을 것입니다.

위구르 님의 사고에는 민족주의나 전체주의적인 발상을 기저로 하여 결과론적인 내용들만을 두고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여기에 혈연과 같은 관계가 마치 절대적으로 훼손되어선 안되는 것처럼 포장하고 계실 뿐이고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역사에서 그러한 가치는 때론 '타인'보다 더 가치없을 때가 있다는 걸 알고 계실 것입니다. 민족이나 동족이라는 의식이 있든 없든 간에, 그것은 당시에 살아가는 이들이 처한 상황에선 아무런 가치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생명이나 재산의 위험과 연관되어 있다면 더더욱이고 말입니다.

사적인 제언을 드리자면, 고구려와 백제는 왜 멸망하였고 신라는 왜 살아남았으며 당대의 상황과 맥락, 주요 인물들의 선택과 결정 등을 보시면서, 우리의 역사라 할지라도 객관성을 갖고 판단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감정적인 요소를 집어넣는 것은 객관성을 저해하고, 현대의 잣대로 무의미하게 과거를 재판하려 할 뿐입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에게 남는 건 없습니다. 감정적인 판단과 분석에는 결국 감정적인 결과물만이 나올 뿐입니다. 후회, 아쉬움, 분노, 짜증, 실망 등이 말입니다.
     
위구르 18-10-26 13:42
   
옳은 말씀입니다. 다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신라가 살기 위해서 그랬고 충분히 이해할만 하지만 후일의 시점으로 볼때 혹은 객관적 총체적 시점으로 볼때 형제를 쳐없앤 것이니 이해와 공감 그리고 비판과 지적은 각기 따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제가 김춘추였다면 삼한의 형제들을 쳐 없앤 것에 대해 후일 비판받을 각오는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비록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이유로 비판을 받지 않을 권리는 없다는 것인데 이해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논리정연한 지적은 환영이고 감사히 생각합니다.
뭐꼬이떡밥 18-10-26 01:22
   
딱 한가지로 답하면

나하나 살자고 혈족을 멸망 시킴  친족살인죄에 해당함

물론 살아남기 위해 옆집 조폭을 끌어들일수는 있음...

그런데 그 조폭이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친족을 죽인후 오히려 나도 죽이려 하니까
 내가 죽여놓은  친족들에게 우리가 남이가 시전?

이건 양아치도 못할짓이지
     
Snow 18-10-26 01:26
   
비유가 이상한데요?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와 가족인가요? 틈만 나면 서로 공격해서 멸망시키려던 사이인데요. 특히 백제는 7세기에 신라의 수많은 성을 함락시키고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대야성까지 차지합니다. 신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세웠는데 친족이라뇨.
          
위구르 18-10-26 13:48
   
원래 싸우기만 한건 아니고 동맹도 맺고 그랬잖습니까. 옆 동네 중원만 보더라도 같은 한족끼리 싸우고 쳐죽이고 격렬히 저항하니 이게 어딜 봐서 형제이고 동족인 이들이 행하는 일들이겠습니까만은 그들이 같은 민족 혹은 문화적으로 같은 민족(특히 한족)인게 사실이니, 우리 민족도 갈라져 싸웠단 이유만으로 남남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암튼 그리고 신라를 공격한 빌미는 이전에 신라가 제공했죠. 위 글에서 나오듯이 먼저 공격해 밝지 26대 건길지 성황제를 죽이고 2만여 밝지 군을 전멸시켰으니 그걸 어찌 잊습니까...
               
Snow 18-10-26 14:07
   
동맹을 맺었다고 친족이 되던가요. 그건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그럼 성왕이 진흥왕에게 딸을 시집보내고 동맹을 더욱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가야와 왜의 지원군과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한 건 뭐라고 하실 건가요? 신라가 갑자기 백제를 공격해서 성왕을 죽였던가요? 성왕이 군대 이끌고 신라
공격했다가 매복군에게 걸려서 목이 잘린 거 아닙니까.
                    
위구르 18-10-26 16:35
   
첫 줄에 '동맹을 맺었다고 친족이 되냐' 이 말은... 뭘 본겁니까. 동맹을 맺기도 했으니까 친족이다 이 소리가 아니라 당신이 틈만 나면 공격해 멸망시키려 했다고 했기에 싸운것만은 아니고 동맹도 맺었다 이 말한건데 무슨 생각한겁니까?

그리고 왜와 연합 맺은 것이 외세를 끌어들인 거라고 주장한다면 그 당시 왜가 식민지인지 분조인지 외세인지 확실치 않으므로 옳지 않다는거 전제로 설정해 두겠고

성왕을 죽였으면 죽였지 그 머리통을 계단 밑에 뭍고 밟고 지나가게 만든 만행을 저지른게 신라입니다. 원한을 잠재우고 얼러도 모자랄 판에 증오심을 키우게 만든건 신라죠. 삼국지에 나오는 오나라도 일개 장수인 관우를 죽이고서 나름 대우해 장사를 지내줬는데. 그짓 하고도 형제 대우를 바라고 자비를 바라겠습니까? 밝지 입장이라면 당장에 신라를 멸망시키고 계단밑에 뭍힌 선조의 한이 담긴 해골을 찾아오지 않고서 못 견딜 판이 되었지. 한마디로 신라는 '찾아갈테면 찾아가고 올테면 와라' 이 심보인데 어찌 침공을 안합니까? '형제라도' 못 넘어갑니다
                         
Snow 18-10-26 17:07
   
왜인들이 백제인들과 같은 민족입니까? 그들이 동족인가요? 당시 왜는 어찌 됐든 외세입니다. 다른 민족과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님은 말씀하시는 걸 보면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보려는 게 아니고 님이 백제인의 입장에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신라는 백제와 연합군에게 두들겨 맞아도 되나요? 신라도 화가 나겠죠 자꾸 침략당하는데요. 백제가 먼저 전성기를 이뤘고 신라보다 더 강대했던 건 아시죠?

성왕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의 머리가 월성 계단 밑에 묻혔다고 기록되어 있는 건 일본서기죠. 만약 일본서기의 기록이 맞는다고 해도 그게 왜 신라가 비난을 받아야 하나요?

진흥왕에게 자기의 딸까지 시집 보냈다가 되려 신라를 공격하지 않았나요? 그리고 왜 오나라와 비교를 합니까? 오나라가 뭐를 했든 그게 신라와 무슨 상관이죠.
                         
위구르 18-10-27 12:53
   
왜인이 같은 민족이라고 단정 짓지 않았습니다. 쓸모없는 말씀은 그만 하시길 기원합니다. 자꾸 여러 갈래의 의견을 한 갈래로 단정지으려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누가 보면 내가 왜인=백제인 이러는줄 알겠습니다. 당시 왜가 외세이든 아니든 타민족인가 아닌가가 중요하고 그걸 장담 못한다는 건데 그런 그들을 끌어들인 밝지가 신라와 변함이 없다는 것은 왜가 한민족과 완전히 다른 상관없는 민족인가 아닌가와 당나라와 신라(한민족)이 동족인가 아닌가를 비교하는 건데 전자는 장담을 못하고 후자는 당연히 당나라와 우리 민족은 민족이 다르므로 말도 안되는 비교입니다.

'오나라가 뭐를 했든 그게 신라와 무슨 상관이죠. ' <- 이건 어불성설로 오나라와 신라가 관련이 있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역사적으로 비슷한 사례로 비교한 것이지. 일개 장수조차 대우해줬는데
신라는 일국의 임금의 수급을 땅에 묻고 밟고 지나가게 했다 라고 한 것이지요. 잘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게 비난 받을 일인지 궁금하시다면 선생은 인륜의식이라든가 상식에 기반한 도덕의식, 예의가 결여된 것입니다. 물론 이걸 보고 납득 안하겠지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기르던 개조차 죽으면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지 밟고 지나갈 장소에 묻지는 않습니다.

신라가 그 만행을 벌인것이 '앞으로 도발을 얼마든지 해도 좋다'라는 포고와 다를게 없으니 밝지가 이후에 가우리와 연합해 공격해 오는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신라가 당나라 끌어들인건 살기 위해서인데 반대로 백제도 신라가 그만한 초강경 도발을 했으면 분명 '싸울 자신이 있고 얼마든지 너희 밝지를 짓밟아 주겠다'라는 의미로 해석할만 하니까 역시 살고싶어서 선제 타격을 한거죠.

만약 신라가 자신들이 위협적 존재인 것으로 해석되는게 싫고 강대한 밝지가 쳐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면 적당히 대우해주면서 긴장감 이완시키고 잘 어르고 달랬어야지. 밝지를 멸망시키려는 자신감과 의지가 없었다면 도발을 했을까요? 그렇다면 그런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이기 전까지 단순히 피해자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둘다 생존을 위해 투쟁했는데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인것이 둘 사이의 차이점이라는 것.
     
위구르 18-10-26 13:46
   
두번째 줄에 '나하나 살자고 혈족을 멸망 시킴  친족살인죄에 해당함' <- 이게 제가 말한 핵심이죠. 어쨌거나 '형제를 살해한 것'이고 또 말씀하신대로 이후 동질감을 주장하며 끌어들이려 시도했는데 그게 모순인게 그대로만 보면 동족인지 아닌지 여부를 무시하고 멸망시켰다가 이익에 따라 형제팔이 하면서 끌어들인 것이고, 만약 그게 진심이어서 형제로 여긴게 사실이라면 그들을 애초에 외세를 끌어들여 멸망시킨 것이 '도적의 칼을 빌려 형제를 죽인' 행위가 되니 어느 쪽이든 비판은 피할수 없을 것입니다.
you158 18-10-26 03:02
   
형제는 아니죠
고구려는 부여계+낙랑(중국계)+말갈 등등
백제는 부여계+마한(토착민)
신라는 훈족김씨+진한(토착민)+흡수된 가야(변한)

지배층부터가 다른데 유럽처럼 왕가끼리 정략결혼으로 맺어졌으면모를까
     
Korisent 18-10-26 07:07
   
중국계는 아니잖아요. 그때 차이니스가 있었나요?
          
칸헤원 18-10-26 15:05
   
저 분 말씀은 한사군 낙랑을 지칭하는 것 같음
     
위구르 18-10-26 13:50
   
낙랑 중국계? 낙랑이라면 최씨 낙랑이 있는데 그건 우리 민족의 한 갈래고 나머지 하나는 한사군의 낙랑인데 그곳에 있는 같은 조선인을 끌어들였으면 끌어들였지 그곳에 있는 한족까지는 그러 않았을텐데 무슨 근거로 낙랑 중국계라 단정지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칸헤원 18-10-26 15:08
   
한사군 낙랑군 유물
중국본토 것이 많이 나와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위치 논란이 있지만
평양에 그 당시 중국본토 유물이 꽤 많이 나왔으니...
               
위구르 18-10-26 16:37
   
평양에서 그 유물이 나온건 교역을 통한 것이거나 전리품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또한 역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낙랑군이 지금의 갈석산 근처에 있었다고 하는데 종합해보면 평양의 漢식 유물을 저들이 직접 들여온게 아니고 우리가 받아들이거나 획득한 것입니다.
android 18-10-26 04:23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 보다는 당나라와 형제에 더 가까웠죠 신라 지배층이야 당나라와 통역도 필요가 없었을텐데요ㅋㅋ
     
가난한서민 18-10-26 09:25
   
말이 다른데 통역이 필요 없다니요??
     
꼬꼬동아리 18-10-26 12:18
   
이건  또  무슨  조선족 논리인지  당나라와  뭔  통역이  필요없어
     
Snow 18-10-26 15:48
   
동아시아 게시판 왜 이러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 사람들이 많네요. 신라 지배층이 당나라인들과 말이 통했다는 근거가 뭡니까. 댓글이라고 아무렇게나 쓰시는 건가요.
     
위구르 18-10-26 16:40
   
설마 실제로 언어가 통했을 거라고 생각한건 아닐테고 아마 그만큼 가까웠다고 표현하고 싶으신게 아닐지... 신라 지배층이 당나라와 친해지고 관복까지 수입해 올 정도니 언어도 당연히 배웠을 것이고 그러면 통역이 필요가 없진 않더라도 간단한 의사소통은 가능했을지도. 또 고구려 백제보다 당나라에 가까웠다는건 중간의 '형제'라는 말이 걸리긴 하지만 그 둘을 적대시하고 오히려 당나라에 붙어먹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 개인적 추론입니다. 뭐 본인이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더 좋고
촐라롱콘 18-10-26 14:55
   
벡제 또한 외세인 왜를 끌어들어 신라를 공격하기도 했고....

중원에 북위, 수나라 등의 강력한 왕조가 들어설 때마다 이들을 끌어들여
고구려 멸망을 꾸준히 획책하기도 했습니다.

고구려 또한 백제, 신라 국경을 침범할때 말갈인들을 동원하기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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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인 상황은 6.25 당시 남한이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의 도움으로 북한을 물리친 것과 비슷한 경우입니다.

북한 또한 중국군을 끌어들여 남한-미국 등에 의한 멸망의 위기에서
되살아난 사례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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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적 동질감이란 것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떨어져 살았다면 100년~200년 세월만 지나도
엷어지고 남남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변질되는 법입니다.
당장 내 주변만 하더라도 외국으로 이민가서 10년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려운 사촌보다는
비록 피 한방울 안 섞였지만 자주보는 이웃이나 친구들이 더욱 필요하고 유용한 존재인 것처럼....

당장 우리 민족 바운더리 바로 북방에 위치해서 우리와 아웅다웅했던 남방 퉁구스계 말갈-여진족들의
역사만 하더라도... 부족들이 통일된 금나라와 후금-청나라 시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부족들이....

말갈의 경우 고구려-발해 영향권에 속한 부족들과  수-당에 복속된 부족들이 서로 대립했음은 물론
고려시대 여진의 경우에도 고려의 영향권하의 부족들과 거란(요)의 영향권하의 부족들로 분열되었고
조선전기 여진의 경우에도 조선의 영향권하의 부족들과 명나라 영향권하의 부족들,
중간중간 오이라트, 타타르 등의 몽골부족들이 강성할 경우에는 비교적 몽골에 인접한 여진부족들을 중심으로
몽골부족들에게도 복속되기도 했습니다.

고려-조선에 복속된 여진족들이 고려-조선의 위세를 빌어 다른 여진족들을 핍박하는 경우도 비일지배했고..
당장 누르하치에 의한 후금건국 직후 벌어진 사르후 전투로 상징되는 명나라와 후금간의 전쟁에서
조선 뿐만이 아니라... 같은 여진부족인 예허부 또한 명나라를 도와 참전했습니다.

고구려 시대의 거란족들 또한 고구려에 복속된 부족, 돌궐에 복속된 부족, 수-당 등의 중원왕조에 복속된
부족들이 그들 상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쟁이 벌어질 경우 같은 동족들끼리도 혈전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선비족 등을 비롯한 북방민족이 지배층을 이루었던 5호 16국, 북위, 수-당의 경우에
중원에 자리잡고 한화가 진쟁된 북방민족 출신 지배층인 경우 그들이 자발적으로 예전 '오랑캐'였던 역사를
지워버리고 한족의 후예임을 자처하면서.... 원 거주지에 잔류한 그들의 동족들을 한족왕조들의 경우보다도
더욱 극혐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위구르 18-10-26 17:11
   
왜국: 백제 식민지-백제 분조-異족 세력 등 다양한 설이 있으며 기마민족설에 의하면 한민족과 같은 계통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렇게 되면 백제의 계통이고 아니고 다 떠나서 같은 민족인게 되고, 물론 장담은 못하나 이것(동족설)을 포함한 앞서의 3가지 설과 더불어 왜를 외세로 단정짓지 못하게 하니 이것을 가지고 백제가 외세를 끌어들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중원에 아첨을 떨면서까지 가우리를 멸망시키고자 한 이유는 뭡니까? 사실 그런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멸망시킬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고구려가 망하면 다음은 한반도이니 다만 적대 세력이기도 한 위협적인 가우리를 견제할 목적으로 가우리한테 여차하면 중원과 손잡고 쳐들어갈 수 있다고 간접적으로 위협을 하려는 것이 제 一의 목적이고, 제 二는 밝지가 대륙에 보유한 이른바 대륙백제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중원의 시선을 일부러 가우리 쪽으로 돌리려는 것이고, 제 三은 밝지가 도리어 대륙영토를 늘리기 위해 중원의 빈틈을 만들려고 그들의 시선을 역시 가우리로 돌리려는 것이었고, 제 四는 다름아닌 저들의 환심을 사려는 계책으로, 적어도 함께 공격을 모의하거나 공격을 요청할 정도면 밝지가 그들 중원왕조들을 적대할 생각이 없다고 여기게 되었을 것이란 점입니다.

실제로 밝지는 수나라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가우리를 공격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사극 연개소문에는 양광(김갑수 분)이 '백제 신라 지들이 공격해달라 해놓고서는 돕지 않아 우리가 졌다'라며 분노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설정이죠.

그리고 대한민국과 북조선의 경우는... 특수한데 공산당의 치하에 놓인 북조선 괴뢰정권은 오직 김일성 하나를 떠받드는 나라였고 실제로 이후에 그렇게 변질되어 갔는데 그것이 정상적인 나라일까요. 사실상 소련의 개, '소련의 주구'였죠. 이게 중점입니다... 신라가 멸망시키려 한, 신라를 공격했었던 가우리 밝지는 다른 민족이나 국가에 빌붙거나 아첨하면서 그들의 노예를 자처한 적이 없었죠. 이게 큰 차이입니다. 한마디로 북조선 괴뢰정권은 우리 민족이길 포기했다는거.

오죽하면 우리가 박정희 대통령의 고집으로 독도를 확실히 지켜낸것과 대조되게도 김일성이 백두산을 공산중국에게 넘기려다 주은래의 자비로운 양보로 절반밖에 뜯기지 않았겠습니까. 저들은 공산주의의 개입니다.

갈데가 있어서 나머지 내용에 대해서는 몇 시간 있다가 따로 응하겠습니다.
     
위구르 18-10-31 23:46
   
혈통적 동질감이란 점에 있어서 모든 민족이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구속될 수 없으며 그를 증명하듯 동족상잔을 일삼아온 것 또한 사실입니다. 신라에게 있어서 당나라는 친족보다 가까운 도적과도 같은 존재였지요. 그러니 나를 죽이려는 형제를 청부살인업자에게 맡겨 죽인겁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말하려는 것이 이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죽여서 무죄이다?' -> '나를 죽이려고 했다 어찌 장담하는가?' - '설령 정말로 죽이려 했다 하더라도 그런 그들을 선수쳐서 죽이고 살아남은 나는 완전히 무죄인가? <- 이것 입니다.

조선의 경우는 특수하다 할 수 있죠. 유교의 본고장인 중원보다도 더 유교를 떠받들었다고도 할 정도이니... 그러니 눈에 색안경이 씌워져서 동족을 못알아보고 쳐 죽이는 것도 가능했던 겁니다. 물론 고려시대부터 여진족을 지금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선족 보듯(실제로 약탈 살인 저질렀으니) 했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떨어져 산 기간이 너무 길어서 서로를 잊었고 더욱이 관습과 사는 모양새가 달라졌기 때문에 못알아보는 것이 당연하다는 점에 있어 납득이 가능합니다.

돌궐의 경우는 최근에 돌궐 유목제국사 라는 책을 읽고 기억이 생생한데 수나라와 당나라는 기미지배 정책을 교묘하고 음흉하기 짝이 없게 시행했죠. 하다하다 안되니까 돌궐 쳐죽일려고 설연타 부르는 등. 암튼 잘 읽었고 앞으로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딱히 반박할 거리는 없고 참고용으로 대하면 되겠다 싶습니다. 앞으로 건전한 논쟁이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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