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이 본토에서 약간의 정규군을 보내서 식민지 필리핀을 발판으로 명을 친다는 건 그냥 헛소리죠.
일단 2만의 스페인 군대로 중국 본토에 상륙해서 명을 공략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북경을 기습해서 황제를 사로잡는다면 모를까 장기전으로 흐르면 게임이 안됩니다. 전쟁에서 기본은 보급인데, 이게 쉬운게 아니죠. 아무리 총과 대포가 우수해도 보급이 안되면 무용지물이니깐요.
그리고 스페인 본토와 필리핀은 가까운 거리가 아닙니다. 오랜 항해를 거쳐야 하는데, 대선단을 필리핀으로 보내는 건 스페인에게 무리죠. 스페인은 당시 유럽에서 공공의 적이나 마찬가지인데, 머나먼 중국으로 많은 병력을 보내는건 쉽지 않죠.
명나라가 우스워 보여도 1500년대의 총포 선박 기술은 그다지 우월한 것도 아니여서 2만 정도의 스페인 군대로는 명을 상대하는게 불가능합니다. 방어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동해서 점령하는건 적은 병력으로 가능한게 절대 아닙니다.
청이 명을 멸망시킬 수 있었던 건 명이 사실상 이자성에 의해 멸망했기에 어부지리를 취한거죠.
그리고 청나라 여진족이 무슨 소규모로 명군을 압도했다고 착각하는 분이 계신데, 청나라 군대도 명군을 격파할때 명나라 군대를 분산시키고 자신들은 많은 수로 압도하는 전술을 택했습니다. 원숭환한테 개박살 났던 여진족군대는 공성전에서 취약함을 선보였습니다. 이자성의 난으로 인해 오삼계가 산해관의 명나라 주력병을 데리고 청에 투항함으로써 청의 중원 진출이 가능했던 것이지, 청 여진족 군대가 명나라보다 우월한게 아닙니다.
칼리S님도 언급하셨듯이... 16세기 당시의 항해술, 선박의 성능, 병력-물자-식량 등의 보급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당시 스페인 뿐만 아니라 어느 유럽국가라 하더라도....
지구 반대편이나 동떨어진 동아시아 일대에까지 2만병력을 투사할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전무했습니다.
유럽국가가 유사시 2만규모의 병력을 동아시아 일대에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은
16세기보다 200년 이상이나 지난 18세기후반~19세기 초반에 이르러서야 가능해졌습니다.
물론 16세기 후반기만 하더라도 병사 1:1로 환산한 종합적인 전투능력은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이 이미 동아시아 국가들을 압도적으로 능가하고 있었다고 판단되며....
만약에 실제로 2만에 달하는 병력이 명나라인근에 투사될 수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동아시아에 비하면 넘사벽의 스페인의 해군력까지 감안하고.. 또한 예를 들면 중국남부의 유력 소수민족인
묘족의 경우와 같이 명나라에 그다지 고분고분하지않은 명나라 주변부족들의 전력까지 스페인이 흡수할 수
있었다면 명나라로서도 상당히 골치아픈 상황에 처했겠지만(만력제 시기의 3대난에 필적할 정도로는....)
그렇다 하더라도 명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봅니다.
다만 명나라 입장에서도 예를 들어 스페인군 2만이라고 가정한다면 20만 정도에 달하는 압도적인 병력을
투입해야만 완전진압이나 완전격퇴가 가능했겠지만...
그렇지만 16세기 당시의 실제현실은 스페인으로서는 국내사정과 주변유럽지역과의 분쟁이 없었다고
가정하더라도 동아시아 지역에는 최대 수 천 규모를 투사할 수 있는 여력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거대제국인 명나라는 고사하고 일본 정도 규모의 국가를 도모할 엄두도 못내어 일본과는 교역관계만
유지했던 현실을 감안한다면.....
생각보다 훨씬 최근은 아니고 16세기면 이미 전반적으로 유럽이 앞섰습니다. 다만 그 많은 병력을 태워서 동아시아까지 가져와 나라를 하나 점령하는 건 무리라는 거죠.
17세기 중반 러시아의 하바로프 원정대가 청군과 처음 충돌했을 때 원정대가 10명 죽을 동안 하이써의 청군 사상자는 676명을 기록하는 경이로운 교환비도 나타납니다. 게다가 당시 러시아는 유럽에서도 가장 변방의 후진적인 국가였다는 것과 원정대는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극동까지 와서 보급도 시원찮고 피로도도 높았던 것을 고려하면 더욱 차이가 극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시 전투가 일어났던 아무르강은 청나라 입장에서 후방이었고 주둔군의 질적인 면도 낮았다지만 하바로프 원정대는 말 그대로 원정대였고, 본국과 아득히 멀리 떨어진 극동까지 와서 전투를 벌였다는 걸 생각하면 청군이 정말 못 싸웠다고 볼 수 있겠죠. 결국 순치제는 하이써를 처형까지 합니다. 16세기 무렵부터는 유럽의 무기류와 군사 교리 모두 동아시아를 훨씬 앞섰다고 봐야 합니다.
흔히들 서양은 중세까지 동양보다 뒤처졌고 근세에 와서 동양을 앞섰다는 말도 안 되는 일반화를 저지르는 분들이 많이 보이는데 일단 동양이라고 다 발달한 나라만 있던 것도 아니고 서양이라고 중세까지 뒤처졌을 이유가 없습니다. 고대에도 중세에도 단순히 서양이 동양에 뒤처졌다고 말할 근거가 없고 또 반대로 동양이 뒤처졌다고 말할 수도 없고요. 각기 분야마다 발달하고 뒤처졌던 부분이 다 다르고 그 어떤 것도 일반화할 수가 없습니다.
16세기 후반시기로부터 얼마 안 된 17세기 초 나가사키 인근 해상에서
수 십명의 선원이 승선한 포르투갈의 무장상선 1척이 일본과 분쟁이 발생하여
막부군 + 나가사키 인근 다이묘 병력 전선 30척 이상 수 천명이 동원되어
포루투갈 상선을 포위하여 교전이 벌어졌지만..... 포르투갈 무장상선이 이들을 상대로 무려
나흘간 저항하며 10여 척의 일본전함이 손실되고 수 백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포르투갈 상선은 모든 무기와 화약을 소진한 후에 자침으로 침몰했을 정도로.....
이미 이 시기부터 일반적인 1:1 대결로는 동양이 서양에 상대조차 안 될 정도로
큰 격차가 벌어진 시점이었습니다.
또한 적어도 비슷한 병력규모의 명나라군, 조선군을 대상으로는 명나라군-조선군이 아예
상대조차 안되는 가공할 위력을 발휘했던 만주족의 팔기군이었지만....
17세기 중엽 시기 코사크족이 주축인 소수의 러시아군을 상대로는 러시아군의 몇 배에 달하는
팔기군과 팔기군에 복속된 흑룡강 인근 주변부족 장정들이 동원되었지만
처참한 패배를 면치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