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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9-13 09:05
[한국사] 백제와 일본간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 좀 알려주셨으면 해서 글을 퍼왔습니다.
 글쓴이 : 뚜리뚜바
조회 : 2,939  

회원번역에서 백제와 일본관련 얘기가 나와서 어떤분이랑 의견을 나누게 되었는데요. 저도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는건지 일단 저와는 생각이 정 반대인거 같은데 필력도 부족하고 아는게 모자라 동아게님들은 이런 다른 이견에 대해 어떤생각을 가지시는지 궁금해서 글을 좀 가져와봤습니다.
파란글씨가 저고 빨간글씨가 그 상대유저분이십니다. 다른 궁금증보다 더 알고 싶은건 노란색으로 표기를 해두었습니다. 

본문에도 언급되어있지만 왕가끼리 서로 혈통이 뒤섞이는 일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해서 우열을 매기거나 하려는 시도는 굉장히 위험합니다. 일본이 조선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사관인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이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죠. 한국에서 천황가의 혈통에 집착하는 태도 역시 비슷합니다. 
따지고 보면 한국과 일본은 한 조상에서 갈라진 형제이므로 강제합방이 아니라는 일본의 주장이나 한국의 천황가에 백제의 피가 섞였다는 것만을 강조하는 것이나 모두 같은 범주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고대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의 관계는 김현구 교수의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를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김현구 교수는 백제와 왜가 기본적으로 대등한 친선관계라고 보았습니다 

"당시 백제는 일본에 필요한 선진문물을 제공하고, 일본은 백제에 필요한 군사원조를 제공하는 특수한 용병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용병관계는 기본적으로 당시 동아시아의 정세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왕의 역할이 절대적이던 당시로서는 용병관계의 이전 단계에서 이루어진 양국 왕실간의 오랜 혼인관계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오랜 인적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양국은 단지 용병관계로만 설명할 수 없는 관계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랑은 의견이 완전 다르신데. 한국에서 천황가의 혈통에 집착하는 태도? 계보를 알아가는 것도 집착이라고 하다니... 이 계보에 대해 한국이 계속 주장하는 것은 일본 역사계와 정부, 국민들이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봐야지 이걸 집착이라 보다니요. 유럽쪽에서 저렇게 왕가 쪽 혈통 얘기를 해도 별다른 얘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서로가 역사적으로도 그것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면에서 보면 상황이 완전 다른겁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이 한 조상에서 갈라진 형제이므로 혈통 따지는 걸로는 매한가지다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이 역시 다른 범주죠. 님이 말씀하신 첫번째 조상이란 역사적으로 따졌을 때만 애기한것이지 과학적으로 지리적으로 따지면 광범위한 인구유입으로도 확인 가능한거죠. 하지만 왕족의 혈통은 과학적인 부문보다 역사적 부문에서 그 영향력이 훨씬 강합니다. 이건 어떠한 범주로 봐도 크기나 성격이 같은 범주가 될수 없어요. 오히려 포함된다면 모를까 

그리고 일선동조론은 일제의 강제합방, 식민지 정당화를 위한 하나의 논리로서 이용한 것이지요. 칼은 전쟁용으로도 이용되지만 요리용으로도 쓰이죠, 논리를 펴고 쓰는 것은 사람 마음입니다. 저 논리를 고쳐 일본이 좋은 외교동맹을 위해 사용 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될수도 있는거죠. 논리를 이용하는 사람에 따라 달린 문제입니다. 

김현구 교수... 논란이 참 많은 분입니다. 강연에서 일본 옹호 발언했다가 어떤 아주머니에게 저딴강연을 하냐고 핀잔까지 들었다는 글을 어디선가 봤던거 같은데... 임나일본부를 지배했던건 백제이고 그 백제를 움직이는 것은 일본이였다라는 식의 논리를 펼치는 글을 읽었던거 같군요. 그리고 지금 님이 쓰신 맨 마지막 문단 역시 말이 안됩니다. 왕실간의 오랜 혼인관계? 왕실간의 혼인관계인데 일본측의 백제 혈통은 있는데 백제쪽의 일본왕계는 있던적이 없죠. 지명에도 일본내 백제지명은 있으나 한국내 일본 지명은 없습니다. 종교역시 일본내 백제신사는 있으나 백제측의 일본 종교에 대한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어느 측면에서든 대부분이 백제측에서 일본쪽으로 흘러들어가지 일본쪽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없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동등한 조건에서 일본측이 군사력을 동원한것이 아니라 백제측에 의해 일본 군사력이 동원되어 진 것으로  봐야지요. 이건 동등한 국력의 나라가 아닌거죠

1. 일본에서 만세일계라는 헛소리를 믿는 사람들이 극우 외에 더 있습니까? 일본 학계에서는 만세일계 따위는 허상이라는 거 이미 다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일간베스트저장소에서 5.18이 폭동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한국 전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그 일각의 견해를 너무 크게 보시는 거 같은데요. 그리고 일본 학계에서 부정한다고 하셨는데 극우 마이너 학자말고 주류가 그렇다고요? 저는 처음 듣는 사실인데. 

2. 그리고 '한국과 일본이 한 조상에서 갈라진 형제이므로~' 이 부분은 일선동조론에 관해서 설명할 때 언급한 내용입니다만. 다시 읽어보시죠. 
제 생각은 굳이 그런 걸 따지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보고요. 애초에 민족이라는 개념이 근대에 탄생하는데 왜 고대 사람들한테 한국인이니 일본인이니 하는 개념을 왜 붙여야 할까요? 그들이 그들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주목해야하지 않을까요? 왜 현대인이 인식하는 세계관, 국가관을 그들에게 대입하려는건지 도통 이해가 안됩니다. 

3. 일선동조론이 우호에도 쓰일 수 있다는 건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넘어가겠습니다. 

4. 김현구 교수는 고대 한국 - 일본사 전문가로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 논란이라는 것도 찬찬히 살펴보면 약간 어거지스럽게 논란에 들어간 경우이고요 
제가 나무위키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김현구 교수에 대해 설명이 잘 되어있어서 참고 링크로 제시합니다 
https://namu.wiki/w/%EA%B9%80%ED%98%84%EA%B5%AC 

5. 김현구 교수는 백제와 왜가 대등한 동맹이었고, 사무적인 동맹에서 더 나아가 더 친숙한 관계였다고 주장하신 분인데 임나일본부라뇨. 
마지막 문단의 내용은 김현구 교수의 저서에서 일부 발췌한 겁니다. 
그리고 백제쪽 왕실에도 일본 혈통 있었는데 뭔 소리인지. 최초로 파견된 왕족인 곤지 이후로 백제는 여러 왕족들을 파견했고 그들 중 일본에서 자식을 보고, 그렇게 태어난 일본계 백제 왕손들이 엄연히 존재했습니다. 예를 들어 무령왕의 아들인 순타태자는 모계가 일본계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본의 지원을 받으며 백제에 들어간 동성왕도 아마 모계는 일본일 것으로 추정되고요. 

6. 백제측에 의해 동원이 돼요? 마치 백제가 일본을 지배했다는 듯한 뉘앙스인데 그럴 국력이 있었으면 신라, 가야는 진즉에 밀어버렸을 겁니다. 백제가 한강수복을 위해 동원한 병력이 3만즈음이었습니다. 이 정도가 최대 동원 한계치였죠. 그런데 백강 전투에서 지원 온 일본 원정군이 그쯤됩니다. 지원군이니 그 정도이지, 방어전이었으면 더 동원할 수 있었겠죠. 
일부 몰지각한 댓글들은 당시 일본이 토인 국가였으므로 백제가 마치 잉카를 쓸어버린 스페인과도 같았을 것이라고 보는데, 당시 일본은 기원전 5세기즈음부터 조금씩 유입되어온 도래인들에 의해 이미 철기시대였습니다. 즉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단 말이죠.

그리고 백제가 일본을 지배했으면 왜 백제는 왕족들을 인질로 보냈을까요? 
일부 몰지각한 인간들은 이 왕족들이 통치관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 뇌내망상을 증명할 자료가 없습니다. 왕족의 파견 시기 (고구려에게 밀려 빌빌대기 시작한) 를 생각해보면, 기본적으로 양국은 대등한 위치였고 상황에 따라서 아쉬운 쪽이 숙이고 들어간 겁니다. 

속국이라고 보려면 최소한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1. 본국에서 파견된 관리가 지배하거나, 현지 지배자가 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할 것 = 해당 안됨, 나제동맹이 성립된 때에도 왜가 신라를 공격한 기록이 몇 차례 삼국사기에 전해집니다. 그렇다면 속국이 본국의 동맹국을 공격하는게 되는데 왜 본국은 속국을 조정하지 못한걸까요? 

2. 국제무대에서 속국을 보유한 것을 인정 받을 것 = 해당 안됨, 오히려 일본은 중국 남조에 찾아가서 백제보다 일본이 위라고 주장하기도 함 

속국이라고 볼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백제왕신사는 천황가가 백제왕가에게 친밀감을 느꼈고, 백제 왕족들이 일본에서도 번성했다는 증거이지 속국이라는 증거는 아닙니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2378 
한국학중앙연구원 백과사전의 백제왕신사 항목을 참고하세요

항상 백제가 위라고 생각했다가 저 남조관련 내용을 잊고 있었네요. 저건 대체 어떻게 봐야할지... 지금도 여러 이견들을 보고 있는데 동아게 님들의 의견도 좀 들어보고 싶네요. 사실이라면 저도 좀 편향된 생각은 접어야 겠다는 심정이라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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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한펭귄 18-09-13 09:54
   
일본을 속국 취급을 하기엔 백제에 대한 기록이 너무 부족하죠.
개인적으로 동아시아의 속국책봉은 중심국을 둘러싼 동맹관계라 봐요.
중원을 차지한 패권에 긍정을 표방하고 인정하는거죠.
하물며, 현대도 아닌 전근대시기 명의 속국인 조선에 명이 일일히 관리하는건 불가능에 가까웠는데, 더 고대에 밀림투성인 미개척지 일본을 일일히 관리하는것 자체가 당시 백제 국력으로 가능할지..
잘사는 미국이랑 근접한 멕시코가 아무리 영향을 많이 받아도 미국이 지배하는건 또 아니죠.

백제는 문화적 혜택과 극동지역에서 중국과의 해양무역에 가장 유리하고,
전통적인 해양강국이였기에, 경제적, 문화적 성장을 위해 백제를 상국으로
인정했겠죠.

문제는 인질인데, 백제의 상황이 멸망직전까지 몰리는 위급한 상황일때,
왕족을 망명보냈다거나,
여기서부터는 제 개인적인 추측입니다만, 열도 내에서 왜가 제일 큰 세력이라 해도 일본열도는 입지상 강력한 통일세력 등장이 힘든 환경이기에 열도 전체를 장악 못했을 가능성이 높고,
지역적으로 백제령의 무역도시(왜는 우호적 관계이니 건들기 힘들고,
중국 세력과는 거리가 멀어 안전)가 있다면?
그곳에 왕족을 파견해서 유지하는거죠.
백제의 왕족이 있고, 열도 내 가장 강성한 왜 세력이 뒤를 봐주는
타 열도세력이 못건드는 곳이되는거고.

일본서기는 백제 멸망후, 한반도 세력의 흔적을 열도에서 지우려고 하던 시기에 만들어진것이라, 백제의 도시도 전부 편입되었을 수도 있죠.
백제가 멸망했는데, 열도 내 백제인들이 더이상 자기들의 유리한 입지를
유지 못할테니까요.
     
뚜리뚜바 18-09-13 10:10
   
진짜 상황과 전황을 전부알기엔 사료가 부족하네요;; 백제인들의 시각을 알아볼 방법이 없네요. 의견 고맙습니다.
칸헤원 18-09-13 10:04
   
솔직히 사료 부족으로
백제-일본 커넥션 근원적인 이유는 결코 절대 무조건 영원히 누구도
알아낼 수 없음

빨간색 글씨 읽어봐도 답 나오는거지
그저 추정 추정 추정. 걍 대뇌망상 뇌내망상 바이블급의 소설일 뿐

역사전공자들이 대부분 조선사 선택하는 이유이고
고대사전공은 누가누가 상상을 잘 하냐의 싸움임
     
뚜리뚜바 18-09-13 10:16
   
저도 파고 들기 전까진 몰랐는데 이거 진짜 소설 쓰기나 다름 없어지는 느낌이;; ㅜ.ㅠ
가난한서민 18-09-13 14:31
   
대등한 관계라는 말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일본 천황들은 백제궁이나 백제대빈이라는 건물을 지어서 살거나 묻혀 살았습니다. 바로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 백제를 조상의 나라 또는 상국으로 모시면서 애초에 동일한 국가라고 동질감을 느낀 이유로 대등하다 표현한것 같습니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5450&sca=&sfl=wr_subject&stx=%EC%B2%9C%ED%99%A9&sop=and
햄돌 18-09-13 15:15
   
칠지도만 봐도 백제가 왜에 하사한건데
대등한 관계면 하사했는다는게 성립됨?

나도 그 게시물에서 댓글 봤는데
그 사람 하는말 다 추정이고 자기피셜일 뿐임

안양천 이 사람 보니까 해외번역란에 성형관련 게시글에서도 난동피우는데
영종햇살 18-09-13 18:15
   
1.백제는 좌현왕 우현왕 제도가 있었습니다
2. 근거는 중국 송서 만이열전 백제의 기록입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좌현왕으로 검색
 宋書  >  夷蠻列傳  >  百濟  >  世祖 大明 원년(A.D.457; 百濟 蓋鹵王

世祖 大明 원년(A.D.457; 百濟 蓋鹵王 3) 사신을 보내어 벼슬을 내려 줄 것을 요구하자 詔勅으로 허락하였다.註 051
大明 2년, 餘慶이 사신을 보내어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
“신의 나라는 대대로 특별한 은혜를 입고 문무의 훌륭한 신하들이 대대로 조정의 관작을 받았습니다.
行冠軍將軍 右賢王 餘紀 등 11명은 충성스럽고 부지런하여 높은 지위에 나아감이 마땅하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가엾게 여기시어 모두 관직을 내려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行冠軍將軍 右賢王 餘紀를 冠軍將軍으로 삼고, 行征虜將軍 左賢王 餘昆과 行征虜將軍 餘暈를
모두 征虜將軍으로, 行輔國將軍 餘都註 052와 餘乂를 모두 輔國將軍으로,
行龍驤將軍 沐衿과 餘爵을 모두 龍驤將軍으로, 行寧朔將軍 餘流와 麋貴를 모두 寧朔將軍으로,
行建武將軍 于西와 餘婁를 모두 建武將軍으로 삼았다.
太宗 泰始 7년(A.D.471; 百濟 蓋鹵王 17) 또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바쳤다.
아비요 18-09-13 21:12
   
백제를 쿠다라라고 부른걸 생각하면 왜가 글쓴이께서 생각하는것처럼 큰 나라일수가 절대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일본이 4만명이 동원했으니 당연히 백제보다 크다는 주장에도 동조할수가 없는게 백제는 육지에서 삼국이 대치하고 있어서 막상 공격을 위해 전군을 모을수 없는 상황입니다. 백제 신라 고구려 삼국 공히 국경지에 병력을 주둔시키고 여력을 끌어모아 수만명을 동원해서 전쟁을 벌이는 상황이죠. 실제 병력은 당연히 더 많을수밖에 없죠.

그리고 일본 4만은 순수한 일본병력이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그만한 병력 동원력을 가지고 있었으면 신라등과 다툴때 단독으로 수만대군쯤 동원한 이력이 한번이라도 있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적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 4만을 수송할 수 있는 수송력을 일본이 가지고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당시 왕자가 파견되어 있던 왜 담로도 그렇고.. 백제의 마지막 남아있던 여력 + 일본동원이 4만 군대의 투입으로 나타난거라고 봐야되지 않을까요?

거기다 실제 백강전투 진행상황을 지켜보면 수군이고 육군이고 한방에 다깨져나갑니다.. 그만큼 일본의 군대가 허약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것일수도 있고 아니라면 그냥 말그대로 농노를 마구잡으로 모아서 보낸 질낮은 군대였을수도 있죠.. 백제나 신라 고구려 병력들이 당군이나 서로 싸우면서 저정도 대군이 저렇게 허무하게 작살나는 일은 제 머리속 기억에 없네요.

그런 당군을 또 작살내서 한반도에서 신라군이 쫒아낸거 보면 실제로 일본이 강국은 커녕 약국의 전형이 아니었나 싶어요.
위구르 18-09-14 00:30
   
애초에 저 나라 이름이 지금도 그렇고 일본인 이유가 백제인들이 보기에 저 열도가 있는 동쪽에서 해가 뜨니까 저기가 해의 근원이다 해서 일본이라 이름 붙인거죠. 물론 백제가 망하고 그 잔여세력이 동쪽으로 날아가서 다시 정권세우고 말입니다. 전 그렇게 믿습니다.
신수무량 18-09-14 16:52
   
백제(+고대 한반도)와 일본(열도 왜)와의 관계는

일본에 있는 고분만 연구해도 답을 어느정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일부 고분의 예를 들자면,
 - 나라현 후지노끼 고분(551~575 - 금동제관모, 금동제신발 등: 축조 시기 출토품등을 봤을 때 백제 황족의 무덤이라는 견해.
 - 큐슈(九州)지방 쿠마모토현 에다후나야마(江田船山) 고분(5세기말~6세기초)-  금동관 등 (제작수법과 형태가 백제의 금동관과 매우 흡사로 설명되어 있으나... 동일할 것이라는 개인적 생각).
 - 나라현 아스카역사공원 다카마쓰 고분(694년 ~ 710년) - 벽화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벽화(색동옷 입은 여인들) - 고구려 수산리 고분과 동일.
 - 오사카 사카이시 다이센 고분 - 매우 중요한 고분으로 생각되는데,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음.
 "출토품은 무기류 외에도 일상용품이 즐비하다. 이 중 거울은 청룡, 백호, 현무, 주작 등 신화 속 괴수들의 문양을 본따 만든 작품으로, 일본 정통의 신화나 트렌드를 따르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사실에 학자들이 주목하면서 또 하나의 미스터리가 고개를 들었다. 백제와의 연관성이 그것이다.
백제의 무령왕릉에서 동종의 거울이 발굴되면서 다이센 고분의 출토품과 상당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또 우리나라 나주에 위치한 고분과 다이센 고분의 형태가 열쇠구멍 모양을 띠고 있기도 한데다 다이센의 장신구를 비롯해 건축양식까지 한국적인 느낌을 풍기고 있어 백제문화와의 유사성에 대한 신빙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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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학자(진짜 학문을 하는 사학자가 아닌 관변학자들)들이 아무리 역사를 왜곡하더라도
해당시대의 고분들에서 나오는 출토품들을 본다면 당시 열도 왜는 백제의 속국이 아니라 백제의 일부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최태영 박사 KBS 인터뷰 - 일본학자들의 역사왜곡에 대한 고백
https://www.youtube.com/watch?v=z66-2jzHOXA&t=45s

--내용 중, 이나 저나 같은 범주라는 주장에 대해...
 - 일선동조론은 당시 일제국가차원에서 우리나라를 침탈하여  황국신민화 등의 정당화 및 민족정신을 말살하고 영구히 식민지화 하려고 만들어 진 것이고,
  - 일본 천황가에 백제의 피가 섞였는지 안섞였는지는, 관심있는 사람들만 '그래 한번 알아보자' 이 정도지, 섞였다고  일본이 우리나라 속국이 되지도 않고 그 역사가 바뀌지도 않습니다.
어디서 맞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비슷하다고 같은 범주라고 두리뭉실하게 퉁치려고 하네요.
  - 김현구 교수: 사학자 인지는 잘모르겠네요.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책때문에 식민사학자 아니냐라는 공격에 법정싸움을 한 장본인인데...학자라면 학문으로 논쟁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일본에서는 좋아할 만한 사람이겠네요. 그런 사람을 존중한 빨간색 글쓴이는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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