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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9-04 11:27
[세계사] 그레이트 게임과 러일전쟁2
 글쓴이 : 보스턴2
조회 : 1,391  

1. 한국과 아시아에 미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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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물론 을사조약을 맺게 된 직접적인 계기라는 점에서 러일전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긴 하지만, 한국과 일본 외의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러일전쟁은 상당히 큰 여파를 남겼다. 황인종이 백인에게 승리한 전쟁이라는 것 자체가 당시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던 것 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청일전쟁으로 인해 일본에 대해 재평가하는 시각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러일전쟁은 뒤이어 그 영향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 때 대표적으로 영향을 받은 인물이 바로 쑨원이다. 물론 당시만 해도 량치차오처럼 벌써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성에 대해 회의하고 돌아선 인물이 있기는 했지만 다수의 아시아인들이 일본을 추종하는 계기가 되었고 한국 역시 친일파를 대거 양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베트남에서도 일본에 대한 시각이 매우 좋아졌다. 일례로 190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베트남 독립 운동의 주축이 된 인물 중 한 명인 판쩌우찐은 러일전쟁을 위해 베트남 근해를 지나가는 발트 함대의 위용을 지켜보았고, 그 발트 함대가 일본군에게 무너졌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한다. 이후 베트남 민족 운동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자는 동유 운동이 일어나고 일본의 게이오 유숙을 본딴 통킹 의숙이 세워지는 등 한동안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된다. 

2. 때늦은 대한제국의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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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승전은 이처럼 일본이 홍보하던 '대아시아주의'를 널리 퍼트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다소 어이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한국에서도 러일전쟁의 승전에 잠시나마 기뻐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상기한대로 일본 국민들조차 자세한 내막을 몰랐던 만큼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당연히 내막을 알 리 없는 상황이였고 이는 한국도 예외가 아닌지라, 어찌되었건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가깝다 여긴 황인종과, 어느날 불현듯 들어온 백인 서양인의 싸움 정도로만 알았기 때문 이었다.  물론 일본의 진짜 의도를 깨닫고는 바로 항일투쟁을 시작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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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의정서, 제1차 한일협약 등의 조약은 기본적으로 러일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체결되었던 조약이었고, 경부선과 경의선의 건설도 매우 수탈적으로 이루어졌다. 명백히 주권을 침해하는 조약이었음에도 을사조약과 같은 반발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제외하고는 러시아로부터 한국을 지켜주겠다는 일본의 주장을 믿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미 중립을 유지할 국력이 존재하지 않았던 한국의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독립협회 등의 활동처럼 한국 내에는 러시아를 경계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고종의 탄압으로 이미 독립협회는 소멸되고 모두 러시아 편을 들 뿐, 소수 친일파만이 일본을 믿고 지지하는 상태였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일본은 야멸차게 한국을 배신했다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지난 번 이등(伊藤) 후작이 내한했을 때에 어리석은 우리 인민들은 서로 말하기를, "후작은 평소 동양 삼국의 정족(鼎足) 안녕을 주선하겠노라 자처하던 사람인지라. 오늘 내한함이 필경은 우리나라의 독립을 공고히 부식케 할 방책을 권고키 위한 것이리라." 하여 인천항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관민상하가 환영하여 마지 않았다. 그러나 천하 일 가운데 예측키 어려운 일도 많도다. 천만 꿈 밖에 5조약이 어찌하여 제출되었는가. 이 조약은 비단 우리 한국 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이 분열을 빚어낼 조짐인 즉, 그렇다면 이등후작의 본뜻이 어디에 있었던가? 
―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 중에서 

당시 한국 내에 한중일이 연합해 러시아를 비롯한 서양 열강에 대응해야 한다는 이론이 널리 퍼진 상태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고는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볼 때, 한중일 연합은 국제 정세에 무지했던 탓에 벌어진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쇄국 정책으로 문을 걸어잠근 수십 년 사이에 한국과 별 차이도 없던 일본은 국제 정세를 잘 타고 동아시아 최대의 패권국으로 성장했다. 

한때 친미파, 친러파였던 것으로 알려졌던 매국노 이완용은 이 때를 계기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전향하여 을사늑약의 주역이자 악역이 되어서 을사오적의 선봉장이 되었다. 이 전쟁이 터지기 전만 했어도 친러파였기 때문에 친일파도 배척했던 성향이었지만, 이 전쟁을 계기로 자신이 지지하고 있는 러시아가 일본에게 패망할 것을 예상하였고 여기에 미일간의 가쓰라-태프트 밀약까지 더해지자 결국은 일본 편에 들 수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완전한 친일파로 변신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친일에 완전히 빠지게 되면서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5년 후에는 나라의 주권을 통째로 일본에게 넘겨버리는 주역으로서 평생의 친일 매국노가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국제정세를 파악하는 혜안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3. 전후
                                                                                                                  포츠머스 조약은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중재했다. 이 사건 덕분에 그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러시아와 일본 모두 전쟁을 계속했다간 재정이 파탄나게 생겨서 반 강제적으로 전쟁을 끝내게 된다. 그러나 그 '평화' 덕분에 동방의 어떤 국가는 멸망으로 치닫게 된다.

이후 패전한 러시아 제국의 무능을 비난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졌으나, 이를 무시하고 러시아 제국이 제1차 세계 대전까지 참전하자 견디지 못한 러시아인들의 분노로 제정이 붕괴되고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들어서게 된다. 또한 일본은 이때 서양의 열강인 러시아에게 승리하면서 다른 열강들로부터 그들과 동등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고, 이후 한반도에 대한 식민 지배를 인정받았다. 

문제는 일본인데, 이 전쟁에서 막대한 군비와 사상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배상금도 없고 영토를 할양받은 남사할린도 당시로서는 큰 가치가 없는 곳이라 당연히 일본 국민들은 분노가 폭발했고 일본 전역에서 폭동이 발생하였다. 가까스로 계엄령을 선포하여 그것을 진압하였지만, 이후 일본 국민들의 불만이 급증해 1910년대 말부터 시작되는 민주주의 운동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근원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이 이 전쟁에서 얻어낸 가장 큰 성과는 열강으로의 인정이었고 이후 일본은 강대국으로부터 동아시아의 최강자이자 조정자라고 불릴 정도의 위신을 얻게 된다. 중국과 러시아를 물리치고 대한제국을 속국으로 만든 다음 최종적으로 합병하였다. 그리고 요동 등 남만주도 사실상 일본 영향권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대한제국은 러일전쟁 이후 그나마 마지막 희망인 세력 균형까지 깨졌다. 당장 한국의 입장에서는 둘이 계속 대립하다가 그 과정에서 완충지대로서 중립국으로 독립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결국 러일전쟁 종전 후 을사조약을 맺으면서 한국은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하였고 얼마 안 가 일본에 강제병합되고 말았다. 청일전쟁과 함께 한반도,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의 운명을 결정 지은 전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일동맹이나 가스라 테프트 밀약에서 볼 수 있듯 러일전쟁 당시 영국이나 미국은 일본에게 우호적이었다. 따라서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러시아로부터 승리를 거머쥐었다는 사실은 일본에게 있어 한반도에 진출하는 데에 더 이상 방해될 만한 세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러시아에게 있어 일본과 청나라 말고도 러시아의 부동항 확보를 막기 위해 대러시아 봉쇄 정책을 펼친 영국이 존재했다는 사실과 대조된다. 또한, 일찍이 정한론이 대두하였던 일본과 달리 러시아는 한반도 자체에 대한 합병에 관심이 없었다. 위의 니콜라이 2세의 발언처럼 동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관심사는 줄곧 만주와 부동항 확보에 있었다. 때문에 러시아는 1903년 일본에 한국을 분할 통치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한반도 자체보다 만주의 안전 확보에 중점을 두는 모습이다. 한편 일본은 러일전쟁 수행의 일환으로서 한일 의정서, 제1차 한일협약 등을 체결하였는데, 결과적으로 한일 합방의 절차가 되었다. 따라서 러일전에서 일본의 승리는 러시아의 승리에 비해 한반도가 손쉽게 병탄당하는 데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1902년 9월 12일 주일 러시아 공사였던 로젠 남작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올린 보고서에서 한국에 대한 합병을 주장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다는 것만으로 한반도가 외세에 병탄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
                                                                                                                 
이로 인해 세계 정세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일본의 패배를 생각하고 거문도를 점령해 해군기지화 하는 등 러시아군과 맞설 계획을 하고 있던 영국은 1세기 간 이어졌던 그레이트 게임을 종결했다. 이는 영러 협상으로 이어져 러불 동맹, 영불 협상과 함께 유럽 대륙에서 삼국협상이 탄생하고 이에 대응한 삼국 동맹이 상호대립 하는 구도를 형성하였다. 또한 10년 뒤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 중 하나가 되어 세계 공산화에 큰 족적을 남긴 소련 탄생의 배경도 됐다. 일본은  이로써 한반도와 만주에 대한 이권을 지켜냈고, 이를 바탕으로 훗날 중국 본토 등을 침략하는 등 일본 제국주의 태동의 단초를 제공해주었다.
                              
                                                                                                - 나무위키 인용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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