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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22 20:31
[일본] 한국이 일본에 전한 문화를 기록한 고서와 역사학자
 글쓴이 : 지하
조회 : 4,854  

사학가 네즈 마사시 - nezu masashi : ”고유 일본인(固有日本人, 본래부터 일본에 살아온 선주민)은 석기와 토기를 사용해 채집과 사냥 및 고기잡이 활동을 했다 즉 한국인이 벼농사와 철기 청동기 및 노비 제도의 사회조직을 가지고 우선 기타큐슈에 들어왔다. 그 결과 일본에서 벼농사가 퍼지게 됐다

 

기타큐슈의 고분(무덤)에서는 한국인과 중국인에 가까운 고분인(古墳人)의 뼈가 나오고 있고, 그 자손이 현대 일본인이 됐다 또 6∼8세기의 아스카(飛鳥), 나라(奈良)시대에도 많은 한국인이며 중국인이 일본에 도래했으므로, 한층 더 그들에 가까운 것이 됐다”
(ねずまさし ‘天皇家の歷史’[上] 1989)

 

도쿄대학 사학과 이노우에 미쓰사다(井上光貞) 교수는“기타큐슈의 옹관묘 유적 출토품으로는 청동 제품이 많다. 
이 출토품들은 일본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주로 조선으로부터 들어온 것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北九州と南鮮’[日本の歷史] 1980)고 했다. 
특히 한반도 도래인들의 고대 일본 지배 배경은 일본 기타큐슈 지방을 주축으로 진출하면서 벼농사를 비롯한 청동기며 철기 문화의 일본 전파가 그 바탕이 됐다.

 

일본 국립유전학연구소 사토시 호라이 박사는 “한국인과 본토 일본인의 유전적 거리는 거의 영(0)이다”고 논문에 썼다. 즉 2,300년 전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渡來人)과 일본 원주민이 섞이면서 야요이 시대(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가 시작됐고 융합이 서기 600년까지 계속되면서 현대 일본인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이주자들은 처음에 일본 규슈 지방에 먼저 정착하고 이어서 일본 열도에서 가장 큰 섬인 혼슈로 이주했다.

 

 

일본 돗토리 대학 의학부 이노우에 다카오 교수팀은 2003년 더욱 확실한 증거를 발표했다. 벼농사 도입과 청동기 전래로 상징되는 야요이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유전자가 현대 한국인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이노우에 교수팀은 야요이 시대 유적인 돗토리 현 절터와 사가 현에서 출토된 야요이인 유골 4점의 미토콘드리아 DNA의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그 결과 한국인과 혼슈의 일본인이 동일한 집단에 속했다. 유골이 발견된 돗토리 현은 동해와 맞닿은 혼슈 지방의 해안 도시이고, 사가현은 규슈 지방 북부에 있다. 두 곳 모두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이 가장 먼저 정착한 곳이다.

 

일본에는 수만 년 전부터 동북아시아에서 들어온 아이누족, 류큐인 등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수렵이나 채집 생활을 했다. 기원전 4∼5세기경 한반도를 통해 도래인이 건너가 벼농사와 함께 청동기 및 토기 문화를 전파하면서 일본에서는 비로소 농업 혁명이 시작된다. 일본 문명의 원형이 만들어진 야요이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일본 국립유전학연구소가  남한, 중국, 혼슈 지방에 사는 일본 본토인, 오키나와인, 홋카이도의 아이누 족 등 모두 293명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했다.

 

그 결과 본토 일본인의 23%, 한국인의 27%가 같은 유형을 갖고 있었다. 반면 본토 일본인과 중국인은 서로 겹치는 유형을 가진 사람이 전혀 없었고, 본토 일본인과 아이누 족은 같은 유형을 가진 사람이 6%에 불과했다.

 

USA 캘리포니아 대학.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discover誌“1998년 6월호「일본인의 뿌리」
고대 한국인의 선조가 일본의 원주민인 조몬인.아이누족을 정복하므로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탄생 시켰다.”

세계 문명사 탐구의 권위자 다이아몬드 교수의 이론

 

 일본 역사학자 미즈노 유우(水野祐)는 그의 저서 ‘일본 고대 국가 형성’(고단샤·1978)에서  
최초로 일본을 지배한 천황은 백제인의 후손인 15대 오우진(應神·4세기)천황과 16대 닌토쿠

(仁德·5세기)천황 부자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오우진 천황이 백제 복식을 입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나온다. 이들 천황 부자에

의해 고대 일본의 가와우치(河內)왕조가 세워졌다고 주장

 

 ’부상략기’ 기록에 따르면, 당시 15대 오오진(응신)왕이 일본왕 최초로 한복(백제조복)을 입었으며, 그 후에 대대로 일본왕들이 입었고, 33대 스이코(추고: ?∼628년) 여왕 등극 때에는 참여한 만조백관 모두가 백제옷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18세기 고증학자 토우테이칸 은, 고대논문 「일본결척」을 인용하여 “응신왕 시대에 백제왕이 봉녀(縫女) 2명을 보내주어 비로소 임금과 신하들이 한복을 입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서민들은 옷을 입지 않은 벌거숭이 모양이었다고 지적했다.
여왕 등극 때에는 참여한 만조백관 모두가 백제옷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고바야시 야스코(小林惠子) 교수, “26대 게이타이 천황,백제 무령왕 친동생” 

 

가토 에이코(加藤瑛子)교수 “26대 게이타이 천황,백제 무령왕 친동생”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1927∼ ) 교토대학 사학과 명예교수는 일본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국보급인 고대 ‘신찬성씨록’을 자택 서재에 보관하고 있다. 우에다 교수는 “비다쓰 천황은 백제 왕족입니다”라고 확언했다(2004년 7월11일).

 

하야시 세이고(林靑梧)는 그의 저서 <일본서기의 암호>에서 “일본 왕통 혈족의 만세일계

(萬世一系) 세습제부터가 날조이며, 일본 개국왕은 김수로왕 후손임은 상식인데도 이를 부정,

 징구왕후라는 유령을 내세웠다”고 밝혔다. 또 “임나일본부 설치를 날조했을 뿐 아니라 오오진(應神)

왕이 백제계 부여(夫餘) 후왕인 의라(依羅)이며, 기토라 고분의 40대 텐무(天武)왕은 신라 김다수(金多遂)임에도 일본인으로 변조했다” 
 

하니하라 가주로(埴原和郞) ... 나라시대(奈良時代- 제50대 칸무(桓武) 왕이 784년 헤이안

(平安)으로 천도하기 이전)까지도 한복을 입고 한국음식을 먹었으며 심지어는 한국말까지 사용했는데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 만엽집(万葉集) 등에 아직 조작되지 않은 부분은 한국어의 한국식 한자용어가 남아있다고 말해 전체적으로 일본고사기들이 조작되었음을 밝혔다.

 

구마모토 대학 시미즈 기요시(淸水記佳) 교수 ‘아나타는 한국인’에서 “오늘날 일본어의 모어

(母語)는 한국어이며, 일본의 역사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실려 있는 신화와 전설은 전부 고대 한국인의 이야기다”고 말했다.


토쿄대 사학과의 이노우에 미쓰사타(井上光貞) 교수 ”일본은 고대 한국인이 세운 나라이다”(‘日本國家の起源, 1967) 
 

카큐슈우인대 오오노 스즈무(大野 晋, 1919∼) 교수
한국인은 일본열도에 금속 제조및 사용법 야금·금공 기술 염색·피혁제조·베틀 직조·기와 제조·

의학·역법·천문학·조불(造佛)·사찰 건축·조탑 조경술등 모든것을 가져왔다(‘日本語の 世界’, 1980


일본의 저명한 사학자인 사에키 아리키요(佐伯有淸)교수는 ”조메이천황은 ’백제(구다라)

천황(百濟天皇)’이라고 말한다 .” 라고 1970년 ’신찬성씨록 연구’를 발표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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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8-07-22 23:39
   
잘 봤습니다
햄돌 18-07-23 01:38
   
좋은 자료네요
도련님납쇼 18-07-23 16:34
   
근데 궁금한게 일본 하타씨계 가문이 원래 백제계 가문이라든데 왜 일본놈들 자구 신라계라고 조작질 하는 이유도 몰르겠네,
     
호랭이해 18-07-23 17:18
   
이해에 궁월군(弓月君)이 백제에서 와서 “신은 저희 나라의 인부(人夫) 120현(縣)을 이끌고 귀화하고자 하였으나 신라인이 방해하여 모두 가라국(加羅國)에 머물러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갈성습진언(葛城襲津彦)을 보내 궁월군의 인부를 가라에서 불러들이도록 하였으나 3년이 지나도록 습진언이 돌아오지 않았다. 


우유국은 청도와 울진에 거쳐 있었다. 일본의 하타씨가 우유국 출신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울진 봉평비에 파단(波旦)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파단(波旦)은 일본식 발음이 "하타" 이며, 하타씨(秦氏)의 시조(始組) 설화와 연계되어 있다. 이 사실에 주목하여 울진을 하타(秦)씨의 근거지가 아닌가 추정하기도 한다.
          
도련님납쇼 18-07-23 18:48
   
하타씨가 신라계라는건 근대들어서 일본 역사학자들이 임나일본부설을 내세우기위해 거짓말하는 겁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설명드리겠습니다.

하나. 문무왕은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고자, 자청해서 동해에 수장된 왕이죠. 죽기 직전까지 왜구를 극도로 싫어했던 문무왕이 하타씨에게 일본에 저수지를 짓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건 좀처럼 납득이 안갑니다.

그리고 하타씨가 백제계라는 정확한 학설에 무게를 두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일본서기 응신기 14년 기록을 보면 말이죠.
-궁월군이 백제로부터 귀화하였다. 그리고 아뢰기를 "신은 저희 나라 인부 120현민을 거느리고 귀화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라인이 방해하여 모두 가라국에 머물러 있습니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일본서기에는 궁월군이 진씨라는 기록이 없고
신찬성씨록 진씨의 선조라고 되어 있어요. 
출자는 진시황 3세손인 효무왕이다. 라는 식으로 말이죠

일본학계는 주로 하타씨를 신라계나 가야계로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응신기 14년의 기록 때문이라고 봅니다.

백제로부터 일본에 오려고 하는데, 신라인들이 방해를 해서 가야에 머물고 있다는 내용...
뒤이어지는 그들을 데려오려고 몇몇 장수를 보냈는데, 3년이 지나도록 그들을 데려오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감감 무소식이다....라는 내용....

자신들이 주장하고 싶은,
일본이 고대 한반도 남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라는 내용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400년경에 백제로부터 일본에 오는데 신라인에 의하여 방해를 받아 가라에 머물렀을 리가 절대 없다 라는 것입니다.(여기서 등장하는 신라인의 방해란, 신라를 구원하러 왔던 광개토대왕의 고구려 군대+신라군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고구려군이 금관가야까지 진출했던 400년대 시대적 배경으로 봤을때 말이죠. 아마 신라군도 여기에 합세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궁월군이란 자가 바로 고구려군에 의해 신라영토에서 쫓겨난 백제의 잔당들의 수장이 이였습니다.)
신라의 방해 때문에 못 올 정도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일본학계는 심지어 일본서기의 응신기 기록이 후세에 조작되어진 것이라든지...  진씨는 원래 신라계인데 신라를 백제로 둔갑시켰다는 등의 억측을 부리는 것이라고 봅니다.
일본인 스스로가 하타씨는 백제계가 아닌 신라계라고 주장하니까 한국 사학자들 입장에서 따질 이유가 없는 것이죠. 신라 역시 우리의 역사이니까 말이죠.

일본학자 쓰다가 주장한 응신기 14년의 기록을 후세에 조작한 것이라는 주장이 일본학계에서 주로 수용하는 분위기입니다.
하타씨는 신라계인데 일본서기를 편찬할 당시 정치정세나 대항관계 때문에 신라를 백제로 기록하였다라는 주장입니다.
이렇게 주장함으로써 일본학계가 취할 이점은 바로 "임나일본부설" 즉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통치했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진씨의 고향을 가야라거나 혹은 신라라는 견해도 등장하였는데, 이노우에라는 학자는 진씨의 원향을 금관가야로 추정하면서 바다에서 하타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말까지 덧붙입니다.
“하타씨는 그 훈이 조선어로 바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씨 즉 아야씨는 안라국 안라가뜻하는 것이다.”
모두 가야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모두 이들의 말장난과 조작에 불과합니다. 이게 하타씨는 백제계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주장이죠

일본서기 킨메이기 원년 기록에도 “진씨계인 기지부가 백제인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사학자 의 글 - 퍼옴

최근 연구결과에도 하타씨계가 백제계 가문인거 유력하다고 하네요 이거 말고도 하타씨계가 백제계인거 정확한 증거도 많더군요,,
빠가살이 18-07-23 17:09
   
우리나라 사람들이 후쿠오카 다자이후 많이 가는데,  다자이후 윗쪽에 규슈박물관이 있다. 규슈박물관이 나라, 교토와 함께 일본 3대 박물관이다. 가서 1-2시간이면 구경할 수 있으니 꼭 들르라고 추천한다. 다자이후에 한국인들이 엄청많은 것에 비해 박물관에 한국인이 거의 없다. 백문이 불여일견. 꼭 가보기를 추천한다.
     
도련님납쇼 18-07-23 17:13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로마법 18-07-23 18:50
   
혈통적으로 만주족과 함께 가장 한국과 가까운 나라이자 고대 한국의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나라가 바로 일본이죠. 반일 감정에 따른 반발심인지 일본인이 우리와 가깝지 않다거나, 심지어 동남아 인종이라고 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유전적으로 일본인은 한국인과 아주 가깝습니다. 특히 규슈나 관서 지방 일본인은 한국인과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합니다. 고대 일본사는 한반도 도래인이 없으면 얘기 자체를 할 수가 없을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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