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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09 03:33
[일본] 타사이트에서 일뽕놈이랑 키배뜨다가 그 인간이 근거랍시고 이런걸 내놨는데
 글쓴이 : 반인간
조회 : 3,227  

한국기록

광개토대왕비문 "백제,신라는 옛부터 속민으로 조공해왔다.신묘년(391년) 왜(일본)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신라를 쳐부수고 신민(식민지)로 삼았다.
삼국사기삼국사기 백제본기 397년 6년(397) 여름 5월에 왕이 왜국(倭國)과 우호를 맺고 태자 전지(腆支)를인질로 보냈다. 가을 7월에 한수 남쪽에서 크게 사열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402년元年 三月 與倭國通好 以奈勿王子未斯欣爲質 (원문)
원년(402) 3월에 왜국과 우호를 통하고, 나물왕의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인질로
삼았다. 

중국기록 

삼국지 위지 왜인전三國志3세기중엽 일본은 이미 변진구야국((弁辰狗耶國)변한중 한 나라)을 점유하고 있으면서왜왕은 그 중계지(中繼地)를 통해 삼한에 통제력을 미치고 있었다. 
송서 왜국전宋書 倭國傳 5세기 일본은 외교적인 수단으로 신라,임나,가야에 대한 영유권을 중국 남조로부터 인정받고
백제의 지배까지 송나라로 하여금 인정 받으려 하였다. 
남제서南齊書 동남이전 왜국 편왜, 신라, 임나, 가라(가야), 진한 등 6국의 모든군사를 통괄하는 지절도독에 안동대장군 왜왕 무를 임명하였다. 
수서隋書백제와 신라는 일본을 신기한 물건이 많은 대국으로서 존경하였으며,항상 사자(使者)를 보내어 왕래하고 있다

간단요약 1. 일본은 신라,백제를 점령하고 왕자들을 인질로 삼았다(한국 광개토대왕비 + 삼국사기) , 2. 백제와 신라는 일본을 대국으로서 존경했다(중국 수서)3. 일본은 변한구야국을 점유하고 삼한에 통제력을 미치고 있었다(중국 삼국지 위지)4. 일본왕 무가 왜,신라, 임나, 가야, 진한 등 6국의 모든군사를 통괄하였다(중국 남제서)

-------------------------------------------------------------------------------------------------

제가 아는게 없어서 부들대며 그냥 물러갔습니다.

이거 다 개소리맞죠? 역잘알님들 저 내용 파훼 좀 부탁드립니다 ㅠㅠ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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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8-07-09 04:39
   
송서 왜국전宋書 倭國傳 5세기 일본은 외교적인 수단으로 신라,임나,가야에 대한 영유권을 중국 남조로부터 인정받고
백제의 지배까지 송나라로 하여금 인정 받으려 하였다.  =======>

◆ 宋書 本記 420-479 
438 元嘉15年 夏四月 甲辰,燕王弘遣使獻方物。立皇太子妃殷氏,賜王公以下各有差。
              己巳,以倭國王 珍 為安東將軍。
          왜국왕 진(珍)을 안동장군으로 하였다.
451 元嘉28年 秋七月甲辰,安東將軍倭王倭濟進號安東大將軍。 冬十月癸亥,高麗國遣使獻方物。
          안동장군 왜국왕 제(濟)를 안동대장군으로 높여 호칭하였다.(進號)
462 大明6年 三月庚寅,立第十三皇子子元為邵陵王。壬寅,以倭國王世子興為安東將軍。
478 昇明2年 十二月 丙戌,皇后見于太廟。戊子,高麗國遣使獻方物。
      五月 戊午,倭國王 武 遣使獻方物,以武為安東大將軍。
          왜국왕 무(武)가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 무(武)를 안동대장군으로 하였다.

정상적인 본기 기록에는 그런게 없고요.

부록으로 만든 열전에 그런 내용이 나오는데...
초기에는 自稱使持節、都督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國王。
[자칭] 사지절(使持節) 도독(都督) 왜 백제 신라 임나(任那) 진한(秦韓) 모한(慕韓) 6국 제군사(諸軍事)
안동대장군, 왜국왕(倭國王)이라 불렀다.
===> 왜국왕이 그런 명칭으로 "자칭自稱" 하는것을 좋아했다고 나옵니다.
감방친구 18-07-09 05:47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대규모 정벌로 백제 대본영이 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야에 대한 지배권 역시 상실하게 되면서 이미 근초고ㅡ근구수 시대에 가야를 통해 열도에 진출해 있던 백제는 이 후 열도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중국남조 정권과의 외교를 통해 고구려를 견제함과 동시에 중국 동부로의 진출도 꾀하게 됩니다

장수왕의 남침으로 대본영이 파괴된 백제는 열도에 왕의 씨를 보내 그곳에서 성장케 함과 동시에 제왕 실습을 하게 하는데 이러한 시스템은 개로왕의 죽음 이후 특히 심화됩니다

백제는 동성왕 시기에 이미 열도에 좌현왕(관동), 우현왕(규슈)를 둔 것으로 파악됩니다

왜 5왕 가운데 무는 동성왕의 이복동생, 또는 무령왕의 이복형제인 곤지로 추정되는 인물(동성왕과 무령왕의 아버지라는 설도 있음)입니다

또 백제 대본영의 대종과 열도 담로의 소종 사이에 권력다툼 역시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지수신님이 일도안사님의 견해를 들어 흥미롭게 설명해주시리라 봅니다
감방친구 18-07-09 06:05
   
ㅡ 한양대 김용운 명예교수
ㅡ 서강대 김영덕 명예교수
ㅡ 일도안사

이렇게 세 분을 중심으로 저는 백제와 열도의 관계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하늘치 18-07-09 07:29
   
임나일본부설 개소릴 아직도 밀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책봉기사를 인용한 듯 싶은 것도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진덕여왕이 낙랑군왕을 책봉받았다는 기록을 들면 됩니다
하늘치 18-07-09 07:37
   
게다가 신라,임나,가야 같은 경우는 당시 해당하는 곳들이 남조랑 교류가 활발하지 않아서 남조가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다분하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백제 지배를 일정받으려고 시도했다고 나오는데 퇴짜 받은 걸 백제까지 지배했다고 그 사람이 우겼다는 겁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실제로 백제랑은 남조랑 교류가 활발했을테니 백제의 실황에 대해선 잘 알고있었겠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 백제가 수여받은 직위가 일본보다 위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늘치 18-07-09 07:44
   
게다가 임나일본부설 그거 자세히 살펴보면 말이 안되는 내용 많습니다 일단 지리 설명하는 것부터 65년 가을 7월 임나국이 소나갈길지를 보내 조공하였다. 임나는 축자국에서 2000여리 떨어져 있고 북쪽은 바다로 막혀 있으며 계림(신라)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자국이 통치하고 있는데 지리에 대해서 이따구로 서술한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그렇게 중요한 내용이 일본서기보다 8년 앞서 작성된 고사기에서는 코빼기도 안보이고 그 정벌을 주도했다던 신공황후는 실체가 의심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에도시기에 펴낸 대일본사에서도 존재를 의심받고  제위에서 삭제되기까지 했으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하늘치 18-07-09 08:01
   
게다가 수서에는 신라를 고구려 패잔병이 세웠다느니, 신라 왕이 백제 출신이라느니 적여있는데 그런 것도 사실입니까? ㅋㅋㅋㅋㅋㅋㅋ 기록적혀있다고 전부 사실이라면 백제요서공략설은 왜 인정을 못받겠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실제로 지배를 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유물 자체도 실제로 지배했다는 가야에서도 안나오는 사실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실제적인 유물 뿐 아니라 여러 기록들이 모순되어있는 그냥 개소리일 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제 소리가 좀 두서가 없는 건 감안해주세요 글 자체를 평상시에 써보려고 하질 않아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리를 제대로 못해서 좀 두서가 없네요
     
지수신 18-07-09 11:22
   
'신라를 고구려 패잔병이 세웠다'
-> 정확히는 고구려 패잔병이 아니라 고구려군을 패배시킨 혹은 고구려군에게 패한 서역유목민의 일파가 서기 344년에 세웠습니다. 그것이 김씨신라이고 시조는 내물마립간입니다.
한국 사학계와 고고학계 주류가 신라의 '실제 건국연대'를 4세기로 보는 것은 맞게 보는겁니다.
물론 여기서 '신라'는 김씨신라를 가리킵니다.
만약 누가 박혁거세의 신라가 서기 4세기에 세워졌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입니다.

'신라 왕은 백제 출신이다'
-> 수서 원문을 확인해봐야 정확한 표현을 알겠습니다만, 둘 중 한가지 의미로 추정됩니다.
1. 신라는 본래 백제의 일부였다.
2. 3가지 신라 왕실 중 한 계통(아마도 석씨)이 백제 출신이다.
개인적으로는 1번인 듯 합니다. 신라인이 수나라에 가서 굳이 수백년전의 석씨 왕통을 들먹일 이유는 없으니까요. 수나라 관리들이 신라라는 갑툭튀한 듣보잡 나라의 기원을 자기들 나름대로 추적한 결과 그런 기록이 나왔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백제가 요서를 경략한 것은 사실입니다.
엄연히 역사에 뚜렸하게 기록돼 있는데, 오만하고 무지한 근대인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역사가 아닌 게 되는겁니까?
          
하늘치 18-07-09 12:07
   
제대로 근거도 없는 주장하지 마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대로 된 근거 없이 이 기록은 사실입니다라고 하시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서 경략설이 왜 부정되는지 아세요? 남조 사서에서만 언급되고 북조 사서에는 언급도 안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서를 실제로 경략했다면 그 요서에 접하는 북조측에는 왜 언급조차 없을까요? ㅋㅋㅋㅋ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유물 자체가 없어요 ㅋㅋㅋㅋㅋㅋ 밑에 댓글로 국수주의자가 제대로 반박을 못한다느니 뭐라느니 하는 것 보면 수준보인다만은 ㅋㅋㅋㅋㅋㅋㅋ
               
지수신 18-07-09 12:28
   
북조 사서에도 나옵니다.
해석을 제대로 못하니 안 보일 뿐이지.
                    
하늘치 18-07-09 12:34
   
가져와보세요 말로 있다고만 하지 말고 ㅋㅋㅋㅋㅋㅋㅋㅋ하여간 근거는 니가 알아서 찾아라 수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호랭이해 18-07-09 10:55
   
삼국지 위지 왜인전三國志3세기중엽 일본은 이미 변진구야국((弁辰狗耶國)변한중 한 나라)을 점유하고 있으면서왜왕은 그 중계지(中繼地)를 통해 삼한에 통제력을 미치고 있었다. 

원문이나 가져오라고 하세요
지수신 18-07-09 11:32
   
그 '일뽕' 친구가 한국의 '국뽕'들 즉 국수주의자들의 아픈 부분들을 콕콕 잘 찔렀네요.

한국사학계 강단주류의 역사관은 그 기록들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냥 해석을 포기하고, 덮어두고 무시하려 듭니다.
'잘못된 기록이다' '믿을 수 없다'
그들의 편리한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며 편리하게 고고학에만 의존하려 들죠.

고고학적으로 서기 7세기까지 한반도의 문명수준이 일본열도보다 전반적으로 앞섰던 것이 사실이므로
"후진적인 일본열도의 세력이 그보다 선진적인 한반도를 지배할 수 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답습합니다.
그러면서 '이건 일본인들도 인정하는거야'라면서 '임나일본부설은 폐기된지 오래야'라고 자위하죠.
네 물론 현실은 전혀 아닙니다.
'일본열도의 문물이 한반도보다 후진적이었다'는 사실과 위의 정치사적 기록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으니까요.
이대로 방치한다면 결국 일본 우익 역사관에게 패배하게 될 것입니다.
위의 그 기록들을 들이대면 반박 불가거든요.

'패배'의 징후는 이미 충분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10여년 전만 해도 한국엔 '임나일본부설은 걍 개뻥'이라는 무비판적 인식이 만연해 있었는데
지금은 말씀하신 그 '일뽕'친구 같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인터넷으로 인한 지식정보 혁명의 힘입니다.
이제 '전공자'카르텔이 덮으려 한다고 덮어지지 않습니다.

정말 그 문제들에 관심이 있으시면
'삼한사의 재조명'이라는 책을 읽어보세요.
그 기록들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되면서,
한일간의 해묵은 고대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서광이 비추는 느낌을 받으실거라 확신합니다.
물론 그 책을 제대로 이해하셨을 경우에만요.
초보'전공자'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다소 불친절한 책이라
아마추어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늘치 18-07-09 12:11
   
일본서기 자체도 모순된 기록이 많을 뿐더러 제대로 해명하지 못했다느니 뭐라느니 하면서 뇌피셜 싸지르시는 분 계시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수신 18-07-09 12:24
   
뭐 하나 제대로 공부한 것도 없이 어디서 허접한 궤변들이나 주워듣고 와서
시건방진 뇌피셜 싸지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무지라는게 참 무서운게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거든요.
나중에라도 인지하고 이불킥하고 땅바닥헤딩하게 된다면 참 다행이겠습니다.
하늘치 18-07-09 12:26
   
전공자 카르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인터넷 재야사학자 납셨습니까? 도대체 반박 자체를 한다는 건 어디서 들은 소식이랍니까? 혼자만의 학계를 형성하셨고 거기 학계의 최신 근황입니까? 일본서기 자체가 왜와의 존엄성과 지배의 정당성을 설파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물건이라서 비판적으로 봐야할 물건인데?
     
지수신 18-07-09 12:29
   
할말 없으면 쨔지세요.
잘봐줘야 사학과 1학년생 수준이구만 ㅎㅎ
          
하늘치 18-07-09 12:31
   
뭐 하나 근거나 뭐 가져오지 못하면서 뭐랍니까? ㅋㅋㅋㅋㅋㅋ
하늘치 18-07-09 12:28
   
뇌피셜은 당신이 싸지르는게 뇌피셜이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료비판이란거 자체를 못하는 사람이죠? 당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늘치 18-07-09 12:34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설파하려는 일본서기에만 기록된 이야기를 사실인 양 하는 것에서부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보다 앞서 작성된 고사기에 임나일본부 기록이 있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뚜리뚜바 18-07-09 13:12
   
내주장이 맞고 틀렸다 뭐 다 떠나서 기본적으로 토론이나 반대되는 의견을 얘기 할려면 적어도 예의는 지킵시다. 글
 중간 중간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거 대체 뭐 하자는 건지요;
 상대방 기분 나쁘게 일부러 하는 것이라면 그만두셨으면 합니다. 보는 입장에서도 썩 유쾌하진 않네요;
애즈한 18-07-09 14:59
   
1. 광개토대왕릉비
유명한 신묘년 조 기사로서, 이어지는 병.신년(丙申) 백제침공의 배경과 이유를 제시하는 문장입니다.
이 부분 글자 판독과 번역에 많은 논란이 있는데
저 판독과 번역이 맞다 하더라도 이미 앞구절부터 史實과 맞지 않습니다.
신라, 백제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속민(屬民)도 아니고 조공하지도 않았습니다.
곧, 이는 비문의 목적상 과장이 섞인 고구려 측의 propaganda로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한데
위의 일본인은 한발 더 나아가 이를 '식민지'나 '점령'으로 난데없이 점프하고 있습니다.

2. 삼국사기
이에 따르면 4말 5초에 백제, 고구려가 일본에 볼모를 보냈는데
이를 '식민지'나 '점령'으로 해석하는 것 역시 논리비약입니다.
선명성을 위해 좀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전국시대 秦의 子楚(진시황의 아버지)가 趙에 볼모로 가 있었다고 해서
秦이 趙의 '식민지'였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3. 삼국지 위서 왜인전
從郡至倭 循海岸水行 歷韓國 乍南乍東 到其北岸狗邪韓國 七千餘里 始度一海 千餘里至對馬國.
(대방군에서 倭로 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대목) 대방군에서 倭에 도착하기까지는, 해안을 따라 물길로 가서 韓國(=삼한.여기서는 마한)을 거치고 남쪽으로 갔다가 또 동쪽으로 가서 그 북안(其北岸)인 구야한국(狗邪韓國)에 이르기까지 7천여 리이고, 비로소 바다 하나를 건너며 천여 리를 가면 대마국(對馬國)에 도착한다.

其北岸이란 말은 '倭에서 볼 때 바다건너 북쪽 맞은편'이란 뜻일 뿐인데, 이를 믿고싶은대로 엉터리 번역해서 '일본이 이미 변진구야국(=구야한국)을 점유했다' 어쩌고 100% 사기를 치고 있습니다.

그외 삼국지 위서 왜인전에는 '임라일본부설'을 뒷받침하는 어떤 기사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임라일본부설' 주창자들 사이에서 3세기 설이 폐기되고 좀 더 후대에 '남선경략'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데 저 일본인은 무지하거나 또는 숫자부풀리려는 욕심에서 옛날 자료에서 복붙한 모양입니다.
     
애즈한 18-07-09 15:03
   
4. 중국 송서(宋書)
자기 주장에 유리한 부분만 발췌 + 왜곡해석을 해놓았습니다.
정확한 해석을 위해 관련된 기사 내용을 모두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421년. '倭의 讚(찬)이 만리길을 와서 조공바치니 기특하다'며 최초로 관작을 제수함
(아마도 倭王인듯)

2) 讚이 죽고 그의 동생 珍(진)이 즉위하고는 조공을 바치며, '사지절 도독 왜 백제 신라 임나 진한 모한 6국제군사 안동대장군 왜국왕'을 자칭하며 이 관작들을 정식으로 제수해줄 것을 요청 -> '안동장군 왜국왕'으로 임명
(관작은 당연세습이 아니고 새 왕이 즉위하면 다시 제수되는것이 원칙 ; 왜왕이 요청한 것과 비교하면 사지절, 6국제군사를 빼버리고, 안동대장군에서 안동장군으로 낮춘 것)

3) 443년. 왜국왕 濟(제)가 조공하자 다시 '안동장군 왜국왕'으로 임명
(珍에 이어 濟가 새로 즉위한 것으로 보임)

4) 451년. '사지절 도독 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6국제군사 안동장군'으로 임명
(수십년간의 집요한 숙원사업 드디어 달성. 단, 주요 교류국인 백제를 의식해서 '대장군'은 제수하지 않는 한편 도독제군사 관할국에서 '백제'를 빼고 '가라'를 넣어 6국으로 맞춰줌. 참고로 당시 백제가 송으로부터 받은 관작은 '사지절 도독백제제군사 진동대장군 백제왕' )

5) 濟가 죽고 그의 세자 興(흥)이 조공을 바치자 462년에 조서를 내려 '안동장군 왜국왕'으로 임명
(앞뒤문맥을 볼때 '사지절 도독6국제군사'까지 더해서 그대로 다시 제수했는데 조서를 간략히 인용하며 누락된 것으로 보임)

6) 興이 죽고 그의 동생인 武(무)가 즉위하고는 (사자를 보내) '사지절 도독 왜 백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7국제군사 안동대장군 왜국왕'을 자칭함'
(대장군으로 승진하고, 백제를 집어넣으려는 집요한 의지)

7) 478년, 武가 사자를 보내 '최변방의 번국으로 나 이렇게 쌔빠지게 노력하면서 공세웠습니다.' 어쩌고 하며 '개부의동삼사'를 자칭 -> 쌩까고 '사지절 도독 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6국제군사 안동대장군 왜왕'으로 임명
(예전과 비교해보면 안동장군 -> 안동대장군 ; 개부의동삼사 뻥카로 대장군 획득작전 성공! 스고이. 대단한 승진하셨네요. ㅊㅋㅊㅋ)

8) 그리고 남제서에 따르면,  남제로 왕조가 교체된 479년에 '사지절 도독 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6국 제군사 진동대장군'으로 새로 임명
(진동 안동이 같은 품계이나 세부서열은 정>진>안>평의 순임. 진동대장군으로 올라 드디어 백제와 같아짐)

이 기사들이 史實과 부합한다고 가정할 때 알 수 있는 객관적인 팩트
1. 5세기 초 이후 倭는 중국왕조에 번국을 자처하며 적극적으로 조공하면서 높은 관작과 도독제군사 직을 교묘하면서도 집요하게 요청하였다.
외국의 평가나 국제적 지위에 목매다는 것과 집요한 외교적인 노력은 묘한 기시감을 느끼게하는 대목.  피는 못 속인다고 할까요?

2. 집요하게 징징대는 倭에게, 송으로서는 자기 영토도 아니고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미지의 지역을 도독관할지로 추인해주며 생색을 내었다.
단, 오랜 교류국이자 상대적으로 잘 알고 있는 백제에 관해서만큼은 허용하지 않았다.
장군직을 동급으로 맞춰주며 우는 아이를 달랬을 뿐.

5. 수서
新羅·百濟皆以倭爲大國, 多珍物, 並敬仰之, 恒通使往來.
신라와 백제는 모두 倭를 진기한 물건이 많은 큰 나라로 여겨 모두 경앙(敬仰)하며 늘 사신을 왕래하였다.

진기한 보물이 많은 큰 나라인데 뭐 어쩌라구요?

p.s 오타 수정함 : 4세기 -> 5세기 초
도나201 18-07-09 18:07
   
근데 일본에서 倭라는 명칭을 사용했나요?
주변국에서 지칭하는 국가명이지
일본은 倭라는 명칭을 사용한적이 없읍니다.
     
도배시러 18-07-09 19:22
   
670년 십이월 왜국이 국호를 일본으로 고쳤다. 스스로 말하는 기를, 해가 뜨는 곳과 가깝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이름을 정했다는 것이다. -삼국사기
     
애즈한 18-07-09 22:36
   
주변국에서 칭하는 용어일뿐만 아니라 중국에 보내는 표문에서 스스로 늘 倭라고 칭했습니다.
예) 讚死, 弟珍立, 遣使貢獻. 自稱使持節·都督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國王. (송서 왜국전)
     
윈도우폰 18-07-10 02:17
   
님은 왜인? 倭자를 싫어하는 이유가 ... 보통 일본인이라고 불리고 싶어하는 왜인들이 倭자를 많이 싫어하던데 ... 님도 그 자가 싫어해서 근거도 없이 그렇게 단정적으로 얘기하시는게 아닌가 하는데...맞나요?^^

倭의 일어발음은 '와'인대 원래는 委로 쓰인 것에 사람 인변을 붙여 썼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倭라는 한자가 키작을 왜(矮)와 연상되다 보니 추후 같은 '와'발음인 和로 대체하여 쓰기를 좋아 한 것입니다.

倭라는 명칭을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은 어떤 근거에서 얘기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왜인들 스스로 倭라고 칭했고, 나중에 이를 和(또는 야마또로 읽는 大和)로 바꾸어 불렀습니다. 그리고 왜인들이 자랑하는 정신을 和라고 하고...과자에도 붙여 와과, 소도 와큐라고 부르는데...和라는 한자 표기는 바꾸기 전까지 왜인 스스로 써왔던 명칭입니다.
영ㄱㄴㄷ 18-07-10 09:13
   
ㅋㅋㅋ 일본 애들도 지들 교과서에 넣었다가 근거가 무너지니까 슬그머니 빼버린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새끼가 있었다니ㅋㅋㅋㅋ 일본 우익학자 새끼보다 더한 놈들이 많네요ㅋㅋㅋ 역시 내부의 적이 더 무섭네ㅋ
웅상기가 18-07-18 13:16
   
한국인이면서 일본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요. 한국에서 살기 힘들어서 그러나.. 본심과 욕망이 분리된 상태. 즉 정신분리증(?)이라고 불리는 정신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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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 [일본] 에도와 조선의 세율과 농민의 곡물소비량이 어떻게… (17) 아스카라스 10-06 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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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2 [일본] 타사이트에서 일뽕놈이랑 키배뜨다가 그 인간이 근… (29) 반인간 07-09 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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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5 [일본] 군함도에 대해 역사왜곡이라는 일본의 영상이 떴습… (2) Attender 05-08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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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3 [일본] 괴뢰 정부와 완장 효과 - 푸이 내세운 만주국 건설은 … (1) 히스토리2 05-03 1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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