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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24 15:00
[한국사] 고수/고당 전쟁 시 고구려와 수/당의 주요 접경지 지도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4,212  

수당영주유성1.jpg



지난 고찰 과정에서 얻은 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1. 수나라와 영주와 당나라 영주는 현 북경시 동북 외곽이었다

2. 수/당군이 건넌 요수는 난하와 대릉하이다

3. 당 태종이 침공 시 건넌 요택은 현 조양 - 의현 - 부신 지역이며 퇴각 시 이동로는 현 북진 - 금주 - 의현 - 조양이다

4. 요수의 근원으로서 648 이세적 행적에서 거란인들에게 거론되는 백랑수는 대릉하의 서부 조양시 건평현 방면에서 대릉하로 흘러드는 망우하, 또는 내몽골 통요시 나이만기 사일호래진 방면에서 북표현을 통해 대릉하로 흘러드는 망우하, 또는 난하의 중상류 동북 지류로 추정된다.

5. 이세적 군대의, 고구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북쪽 샛길 침투로는 "당 영주인 북경 동북 외곽 ㅡ 승덕 방면 ㅡ 적봉 방면 ㅡ 통요시 나이만기 ㅡ 북표현"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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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8-06-24 15:14
   
우리는 당 태종 당시 역사지리 정보를 고찰하며
계속 8세기 당시 지리정보를 담은 구당서/신당서 지리지를 근거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당 태종은 7세기 전반의 사람이고 고구려를 침략한 것은 644-645년이다
이 시기는 수말당초에 해당하여 수나라가 망한 지 얼마되지 않은 시기이다

수나라 시기에는 상곡군이 현 보정시(본문 지도상 3번 정주시  바로 동북 옆이 보정시)일대에 있었다

즉 당나라 전성기인 8세기에 비하여 수나라와 7세기 전반의 당나라 유주 지역은 서남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었던 것이다
감방친구 18-06-24 15:16
   
당 태종이 이세적에 명령한 "요동으로 가서 이민족 용병들과합세해 유성으로 가라"한 이 요동은 황하 이북의 현 북경ㅡ천진ㅡ노룡 일대 전체를 가리킨 말일 가능성이 높다
감방친구 18-06-24 15:21
   
본인은 대릉하 본류를 대요수, 망우하 상류를 실위수, 북표현으로 들어드는 망우하 본류를 량수, 부신시에서 의현 방면으로 흘러 대릉하에 합수하는 물길인 세하를 소요수로 본다

그러나 이세적 648 기사에서의 요수의 근원으로 언급되는 장소는 북표현의 북쪽 망우하의 상류로 추정된다
감방친구 18-06-24 15:23
   
Xihe River
중국 푸신 시 푸신 몽골족 자치현
https://goo.gl/maps/frYTLSDhLk42
감방친구 18-06-24 15:28
   
수당 시기의 거란의 본진은 대릉하까지 내려와 있지 않았다
고구려가 망하면서 당나라에 붙어서 내려온 것이다
감방친구 18-06-24 15:37
   
감방친구 18-06-24 15:46
   
당 태종 1차 침공시 함락된 고구려 성

현도ㆍ횡산ㆍ개모ㆍ마미ㆍ요동ㆍ백암ㆍ비사ㆍ협곡ㆍ은산ㆍ후황

1) 협곡, 은산, 후황은 안시성 근처
2) 비사성은 안시ㅡ건안ㅡ비사 라인의 종말점

3) 현도, 개모는 요동성보다 동북쪽
4) 백암은 요동성 근처

5) 마미는 고질묘지명 근거 현 조양시 근처
감방친구 18-06-24 17:28
   
<구당서 지리지 유주>

연주(燕州). 수국(隋國)의 요서군(遼西郡)으로 영주(營州)에 붙여 다스렸다. 무덕(武徳) 원년 연주총관부(燕州總管府)로 고치었고 요서현(遼西) 로하현(瀘河) 회원현(懷遠)을 다스렸다. 그 해에 로하현(瀘河縣)을 폐하였다. 6년에 영주(營州)로부터 남쪽으로 옮기어 유주(幽州)의 성내에서 붙여 다스렸다. 정관(貞觀) 원년 도독부를 폐하고 또한 회원현(懷逺縣)을 없앴다. 개원(開元) 25년에 치소를 유주의 북쪽 도곡산(桃谷山)으로 옮기었다. 천보(天寶) 원년 귀덕군(歸徳郡)으로 고쳤고 건원(乾元) 원년에 다시 연주(燕州)라고 하였다. 옛날에 다스리는 현은 1개이고 실제로 차지한 땅은 없으며 다스림을 받는 자들은 속개말갈(粟皆靺鞨, 속말말갈)의 별종이며 가구수는 500이다. 천보 년간에 가구수는 2045이고 인구수는 1,1603명이다. 경사와 동도까지의 거리는 유주와 같다.

영주(營州) 상도독부(上都督府). 수국(隋國)의 유성군(柳城郡)이다. 무덕(武徳) 원년에 영주총관부(營州總管府)로 겨쳤고 다스리는 주는 요주(遼州)와 연주(燕州)이고 다스리는 현은 유성현(栁城縣)이다.



<수서 지리지 유주>

요서군(遼西郡). 옛날에 영주(營州)를 설치하였는데 개황(開皇) 초에 총관부(總管府)를 두었고, 대업(大業) 초에 폐하였다. 다스리는 현은 1개이고 가구수는 751이다.
1) 류성현(柳城縣). 북위(北魏)에서 영주(營州)를 화룡성(和龍城)에 설치하여 건덕군(建德郡) 기양군(冀陽郡) 창려군(昌黎郡) 료동군(遼東郡) 낙랑군(樂浪郡) 영구군(營丘郡) 등을 다스렸고 룡성현(龍城縣) 대흥현(大興縣) 영락현(永樂縣) 대방현(帶方縣) 정황현(定荒縣) 석성현(石城縣) 광도현(廣都縣) 양무현(陽武縣) 양평현(襄平縣) 신창현(新昌縣) 평강현(平剛縣) 류성현(柳城縣) 부평현(富平縣) 등을 다스렸다. 북제(北齊)는 오직 건덕군(建德郡)과 기양군(冀陽郡)을 남겨놓고 영락현(永樂縣) 대방현(帶方縣) 룡성현(龍城縣) 대흥현(大興縣) 등을 다스렸는데 그 나머지는 모두 폐하였다. 개황(開皇) 원년에 오직 건덕군의 룡성현만을 남겨놓고 그 나머지는 모두 폐하였고 또한 군도 폐하였으며 현을 룡성현으로 바꾸었다가 18년에 류성현으로 고쳤다. 대업 초에 요서군을 설치하였다. 대방산(帶方山)과 독려산(秃黎山)과 계명산(雞鳴山)과 송산(松山)이 있다. 유수(渝水)와 백랑수(白狼水)가 있다.
감방친구 18-06-24 23:18
   
契丹,居潢水之南,黃龍之北,鮮卑之故地,在京城東北五千三百里。東與高麗鄰,西與奚國接,南至營州,北至室韋。冷陘山在其國南,與奚西山相崎,地方二千里。逐獵往來,居無常處。其君長姓大賀氏。勝兵四萬三千人,分為八部,若有徵發,諸部皆須議合。不得獨舉。獵則別部,戰則同行。本臣突厥,好與奚斗,不利則遁保青山及鮮卑山。其俗死者不得作塚墓,以馬駕車送入大山,置之樹上,亦無服紀。子孫死,父母晨夕哭之;父母死,子孫不哭。其餘風俗與突厥同。

武德初,數抄邊境。二年,入寇平州。六年,其君長咄羅遣使貢名馬豐貂。貞觀二年,其君摩會率其部落來降。突厥頡利遣使請以梁師都易契丹,太宗謂曰:「契丹、突厥,本是別類,今來降我,何故索之?師都本中國人,據我州城,以為盜竊,突厥無故容納之,我師往討,便來救援。計不久自當擒滅。縱其不得,終不以契丹易之。」

太宗伐高麗,至營州,會其君長及老人等,賜物各有差,授其蕃長窟哥為左武衛將軍。

<구당서 거란전>
감방친구 18-06-24 23:26
   
二十一年李勣復大破髙麗於南蘇班師至頗利城渡白狼黃嵓二水皆由膝以下勣怪二水狹淺問契丹遼源所在云此二水更行數里合而南流即稱遼水更無遼源可得也旋師之後更議再行

<통전>
감방친구 18-06-24 23:34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
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ㆍ양절(兩浙)ㆍ광남(廣南)ㆍ복건(福建)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ㆍ내주(萊州)ㆍ빈주(濱州)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
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요동(遼東)에서 5백 리쯤 흘러가다 국내성(國內城)을 지나서 또 서쪽으로 흘러 한 강물과 합류하니, 이것이 염난수(鹽難水)이다. 두 강물이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안평성(安平城)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고려에서는 이 강물이 가장 크다. 물결이 맑고 투명하여 지나는 나루터마다 모두 큰 배가 정박해 있는데, 그 나라에서 이를 천참(天塹)으로 여긴다. 강물의 너비가 3백 보(步)인데, 평양성(平壤城)에서 서북으로 4백 50리이고, 요수(遼水)에서 동남으로 4백 80리에 있다. 요수에서 동쪽은 옛날 거란에 소속되었는데, 지금은 그 오랑캐 무리가 이미 멸망되었고, 대금(大金)에서는 그 땅이 불모지(不毛地)이기 때문에 다시 성을 쌓아 지키지 않는다. 그리하여 한갓 왕래하는 길이 되었을 뿐이다.
압록강 서쪽에 또한 백랑(白浪)ㆍ황암(黃嵓) 두 강이 있는데, 파리성(頗利城)에서 2리쯤 가다가 합류하여 남쪽으로 흐른다. 이것이 요수(遼水)이다.
당(唐) 나라 정관(貞觀) 연간(627~649)에 이적(李勣)이 남소(南蘇)에서 고려(고구려를 말함)를 크게 깨뜨리고, 강을 건너가서 그 강물이 매우 얕고 좁은 것을 괴이하게 여겨 물으니, ‘이것이 요수(遼水)의 근원’이라고 했다. 이로써 전고(前古)에는 일찍이 이 강을 믿어 요새로 여기지 않았음을 알 수 있고, 이래서 고려가 물러들어가 압록강의 동쪽을 지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고려도경 봉경편>

http://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1369A_0040_010_0020
감방친구 18-06-24 23:53
   
<한서 지리지>

요동군(遼東郡)

진(秦)에서 설치하였고 유주(幽州)에 속한다. 가구수는 5,5972이고 인구수는 27,2539명이다. 현은 18개이다.

1) 양평현(襄平縣), 목사관(牧師官)이 있다. 왕망은 창평(昌平)이라 했다.
2) 신창현(新昌縣),
3) 무려현(無慮縣), 서부도위(西部都尉)가 다스린다.
4) 망평현(望平縣), 대료수(大遼水)가 새(塞) 밖을 나와서 남쪽으로 안시현(安市縣)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가는데 1250리를 흐른다. 왕망은 장설(長說)이라고 했다.
5) 방현(房縣)
6) 후성현(候城縣), 중부도위(中部都尉)가 다스린다.
7) 요대현(遼隊縣), 망(莽)은 순목(順睦)이라 했다.
8) 료양현(遼陽縣), 대량수(大梁水)가 서남쪽으로 료양현(遼陽縣)에 이르러 료수(遼水)로 들어간다. 왕망은 료음(遼隂)이라 했다.
9) 험독현(險瀆縣)
10) 거취현(居就縣), 실위산(室偽山)은 실위수(室偽水)가 나오는 곳인데, (실위수는) 북쪽으로 양평현에 이르러 량수(梁水)로 들어간다.
11) 고현현(高顯縣)
12) 안시현(安市縣)
13) 무차현(武次縣), 동부도위(東部都尉)가 다스린다. 왕망은 환차(桓次)라고 했다.
14) 평곽현(平郭縣), 철관(鐵官)과 염관(鹽官)이 있다.
15) 서안평현(西安平縣) , 망(莽)은 북안평(北安平)이라고 했다.
16) 문현(文縣), 망(莽)은 문정(文亭)이라고 했다.
17) 번한현(番汗縣), 패수(沛水)가 새(塞) 밖에서 나와서 서남쪽으로 바다로 들어간다.
18) 답씨현(沓氏縣).

현도군(玄菟郡)

무제(武帝) 원봉(元封) 4년에 열었다. 고구려현(髙句驪縣) 은 왕망이 하구려(下句驪)로 고쳤으며 유주(幽州)에 속한다. 가구수는 4,5006이고 인구수는 22,1815명이다. 현은 3개이다.
1) 고구려현(髙句驪玄), 요산(遼山)에서 요수(遼水)가 나오는데 서남쪽으로 요동군 요대현(遼隊縣)에 이르러 대요수(大遼水)로 들어간다. 또한 남소수(南蘇水)가 있는데 서북쪽으로 새(塞) 밖을 지난다.
2) 상은태현(上殷台縣), 망(莽)은 하은(下殷)이라 했다.
3) 서개마현(西蓋馬縣), 마자수(馬訾水)가 서북쪽으로 염난수(鹽難水)로 들어가는데, 서남쪽으로 요동군 서안평현(西安平縣)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이 강은) 2개의 군(郡)을 지나고 1100리를 흐른다. 왕망은 현도정(玄菟亭)이라고 했다.
감방친구 18-06-25 00:09
   
무경총요로 오면
소요수가 서쪽에
대요수가 동쪽에 위치하게 되며 소요수를 요수라 지칭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감방친구 18-06-25 00:29
   
한서 지리지의 요동군과 현도군 지리정보는
현도군이 요동군 지역으로 후퇴하면서 축소된 BC 1세기 초중반의 지리 상황을 담고 있다

요동군 지역의 지리정보에 교치돼 그 자리를 차지한 현도군의 지리정보가 뒤섞여 버린 것이다

또 이 지역의 지리정보는
이후 후한ㅡ공손ㅡ위ㅡ모용ㅡ고구려ㅡ당ㅡ발해ㅡ거란 등의 지배집단의 교체와 교치 등에 따라 이리저리 뒤틀린다

하여서
한서 지리지부터 독사방여기요에 이르기까지 근 2천 년 동안의 여러 사서들을 교차 분석하여야 진실에 다가갈 수가 있다

이런 어지러운 정보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을 추려내어 그것들을 중심으로 지리정보를 조합해야 한다

1) 마자수는 압록강이다
2) 마자수는 백산에서 발원 서북으로 흐르다 염난수와 합류하며 서남으로 흘러 서안평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즉 시계 반대방향으로 크게 호를 그리며 흐르는 강이다
3) 마자수는 큰 강이다
4) 마자수는 현 동요하~요하이다

5) 한서 지리지의 대요수는 1,250 리를 흐르는 긴 강이다
6) 요수는 마자수에 비해서 폭이 좁은 강이다
7) 한서 지리지 대요수는 안시현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8) 한서 지리지에서 마자수는 서안평현에서 바다로, 대요수는 안시현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9) 그런데 후대 사서들에서는 대요수, 소요수, 마자수가 모두 안시현에서 바다로 들어간다고 기술하고 있다
10) 현 요하만의 해안선은 11세기에는 현 판진시에 있었고 그 이전 시기는 더 북상한다
11) 뿐만 아니라 신민시부터 그 남쪽으로 청나라 시대까지 별다른 취락이 형성돼 있지 않았으며 고고물질문화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12) 즉 이는 8과 9의 상반된 기술상에서의 의문을 해소해준다

13) 요사 이후의 사서는 안시를 현 요양 남쪽으로 기술하나 무경총요 이전의 사서는 현 금주와 판지 사이의 대릉하 하류 쪽으로 안시의 위치를 기술하고 있다
14) 서안평의 경우 청대 이전의 사서들에서 현 요하 서쪽에 그 위치가 나타난다
감방친구 18-06-25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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