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에서는 내물왕을 '파사매금'이라 지칭했습니다.
'파사'는 페르시아죠.
박씨신라의 5대 왕도 '파사이사금'이고 8대 왕은 시호가 '아틸라'인데
박씨 왕들의 시호는 훗날 김씨에 의해 추증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박씨신라와 김씨신라는 전혀 별개의 왕국이지만
(박씨는 '아틸라'이사금을 끝으로 석씨에게 왕위를 빼앗깁니다. 그리고 석씨신라는 서기 298년에 韓의 침략으로 멸망합니다.)
일종의 정통성 만들기 차원에서 김알지 설화와 함께 부회한 것으로 보입니다.
경주 일대의 4세기 후반대 유물을 보면
압도적인 황금 장신구와 함께
'로만 글라스'와 유럽식 투구 등
단지 흔한 '문화교류'의 관점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흔적들이 나옵니다.
신라 김씨의 실질적 출자는 아마도
4세기에 유목대제국을 건설했던 모용씨 전연에 부용했던 서역계 유목민 부족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유목민족이 만주에 자리잡은 고구려 영역을 통과하여 신라까지 남하하기 위해서는
고구려가 군사적으로 크게 붕괴된 상황이라는 전제조건이 필요한데
4세기에서 그 조건에 맞는 시기는 모용씨 전연에 참패한 고국원왕대 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