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전 교주께서 역주하신 환단고기에 나오는 고구려 영토입니다.
최대 영토는 그렇다 쳐도 핵심 강역이라 표시된 부분은 고구려가 기본적으로 700백년간 유지하여 왔던 안방이라는 건데 저렇게 넓었다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으므로 과장되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 강역이 사방 6천리 (한변 길이가 6천리=2400Km인 정사각형의 면적급)라고 한 수서의 기록과 위의 강역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동방의 연해주 지역을 빼면 사실상 일치).
또한 그 수서가 쓰여진 때는 고구려 후기로, 당시 상황은 2백여년간 평화를 누린 결과로 내부가 부패해가고 기강이 약해지는 상황이어서 옛 광개토태왕 대의 영토에서 일부 혹은 상당부분을 잃었으면 잃었지 더 얻는 것은 없었을 상황이니 고구려 전체 역사에서 볼때 그리 넓은 수준이라고 할 수 없음에도 그 때의 영토가 '사방 6천리'라고 하였으니 가히 고구려 핵심 강역 혹은 기본 강역이 저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억으로는 수서에서 동천대를 이르러서 사방 1천리인지 2천리인지로 쪼그라 들었다고 했는데 그 전쟁에서 위군은 백제가 낙랑을 쳐서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퇴각(1)하였으며 고구려의 영토를 차지하지도 못했을 텐데 그리 기록한 것은 아마 고구려가 수세에 몰린 극단의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상실했거나 통제력을 잃은 영토를 제외한 면적을 기록했거나 그 때 상황을 자국에 유리하게 기술했을 중원의 기록을 배꼈거나 일 것입니다.
(1): 백제가 낙랑의 후방을 쳤다는 것은 김산호 화백이 그린 '왜사'에서 나름 구체적으로 다루는 부분이며 그는 언제나 근거없는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또한 동천태왕이 '위군이 많아봤자 적은 수의 우리 보다도 못하구나'라고 자만을 했다는 것이 기록에 있으니 고구려군보다 위군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방어태세가 철저하기로 유명했을 고구려에 1만명 밖에 되지않는 병력을 보냈다는건 말이 안되기도 합니다. 역사소설 '근초고대왕'에서도 위군의 수가 5만명(?) 가량인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러니 그런 대병력을 가지고서 더군다나 고구려 병력이 대 타격을 입고 무력화된 상황에서 환도성하나 초토화하고(그마저도 고구려의 반격을 차단하기 위한 임기응변이라고 볼 수 있음) 급히 퇴각한 것은 백제가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쨌거나 그런 수치스러운(?) 상황을 제외하면 고구려 영토는 언제나 만주 전체를 포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지도를 반신반의 하다가 며칠전에 수서의 기록을 떠올리고는 비로소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