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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20 12:50
[일본] 임팔작전과 '무다구치 렌야' 중장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1,333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한국의 숨은 광복군이라 불리우는 무다구치 렌야가 벌인 일본군의 가장 황당한 중 하나로 '임팔 전투'가 있다. 먼저 무다구치 렌야를 '숨은 광복군'이라 칭하는 이유는 렌야 장군 특유의 권위의식 그리고 황당한 업무능력이 수십만명의 일본군 병사를 사지로 몰았기 때문이다. 수십만명의 일본군 병력을 멍청한 작전으로 사라지게 했기에 대한민국 광복을 앞당긴 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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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팔이란? 

임팔이란 인도의 최동단에 위치한 곳으로 지금의 미얀마와도 가까운 곳이다. 대략 인도와 미얀마 중간에 위치한 지명이다. 이 장소에 극동아시아 최동단 섬에 위치한 일본의 군대가 간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이유는 연합군이었던 영국이 일본과 싸우던 중국을 돕기위해 인도를 통해 물자로 도움 주었다. 이를 알아챈 일본군은 '과감히' 인도에서 전투를 벌여 영국군을 몰아내고, 일본군에 저항하는 중국군이 받는 영국의 원조물자를 끊어버린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천황과 장군들이 모여 전쟁을 지휘한 일본제국의 대본영에서 매우 어리석은 생각을 품는다.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배에 신음하는 나라이기에, 자기네 일본제국이 영국군을 몰아내주면 인도인들이 감명받아, 자기네 추축국 패거리에 끼어 연합군과 함께 싸울거라 생각한다. 아무 근거도 없는 미친 자만감 이었다. 

여기서 더 황당한건 영국의 식민지배를 일본제국 본인들이 하고 있었다는 것 이다. 당시 일본제국은 한반도의 우리나라를 식민지배한 것은 당연히 알것이고 동남아 여러 국가 및 섬을 식민지배하던 때 였다. 

2.현실적인 문제점 

 당연히 임팔은 일본에서 보급선이 매우 멀다. 당장 지구본이나 세계지도를 보면 일본과 인도의 거리가 어마어마함을 볼 것이다. 이 정도 원정을 보낸다면 보급이 중요한데, 당시 임팔 인근 지역은 도로포장률도 낮아 가랑비만 내려도 마차가 못지나갈 정도로 길 상태가 나빴다. 보급이 원활히 되지 않는 상황에서, 좋은 컨디션이 아닌 병력이 그야말로 이역만리 타국에서 제대로 싸울수 있다고 예상할 수 없다. 
가장 큰 문제점은 영국군이 그리 만만하지 않을 것이란 것과, 설사 대본영 측의 예상처럼 영국군을 격퇴하여 인도를 영국 식민지에서 해방시킨다해도 인도가 일본제국과 함께하리란 근거가 없다는 것 이었다. 

3. 황당한 의사결정 - 임팔전투 강행 

 누가봐도 뻔히 결과가 보이는 상황이니 많은 일본제국 장교들이 반대했다. 그러나 대본영은 군인의 혼이니 의지의 문제니 하는 항상 같은 황당한 논리를 들며 임팔전투를 결정한다. 

  
4. 더 황당한 점 - 무다구치 렌야 장군을 최고지휘자로 세우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이전부터 행보가 조금 정상적이지 않았던 '무다구치 렌야'를 임팔작전의 최고 지휘자로 삼았다. 이는 지금 일본사회도 가진 고질적 병폐에 따른 인사반영이다. 

  예전부터 일본 사회는 어떠한 때 무엇을 못하면 영원히 기회를 주지 않는 풍습이 있다.대표적으로  일본은 무조건 대학교 4학년이 모두 지나기 전에 취업을 해야한다. 왜냐하면 졸업생이 된 순간부터 취직이 하늘의 별따기가 된다. 4학년 중 어느 회사도 안 뽑아간 학생이면 무능력자라고 낙인이 찍힌 것이고, 이게 또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니 실제 몇몇 사례는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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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례가 100년 전 일본제국군에도 있었다. 어떠한 장교가 전선에서 훌륭한 무공을 세워도 사관학교 성적에 따라 승진되었다. 사관학교 생도 시절의 학교 성적이 장교의 퇴역때까지 보직이나 진급여부를 결정하는 엄격하면서도,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 시스템이다. 

정리하자면 사관학교에서 1등한 생도는 어떠한 작전상 무능함이 나와도 계속 진급했고, 전장에서 큰 공적을 세운 훌륭한 장교가 사관학교 때 꼴찌 성적이었다면 성과에 인정이나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 이다. 
무다구치 렌야 장군은 이전에도 비생산적인 업무수행으로 이미 명백히 무능력한 장교임이 드러났음에도, 사관학교 생도 때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출세가도를 달렸다. 이에 따라 사관학교 성적만 보는 엄격하면서도 미개한 사회적 인사 시스템에 따라 임팔 전투에 지휘자가 된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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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을 황당무계한 논리로 우겨대다 

 인간사의 황당한 경우를 잘 보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무작정 수행하라는 압박으로 터지는 패턴이 있다. 이 패턴이 임팔작전에 아주 극명하게 나타난 것이 이 임팔전투 였다. 

이는 앞에서부터 지적되 온 보급문제. 군대가 먼 장소에 파병되어도 보급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못하면 그 군대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단순히 식량이야 1~2일 굶어도 총은 쏠 수 있어 싸울 수 있다고 쳐도, 총알이 보급되지 못해 없다면 그 군대는 전력이 아닌 것과 다름없다. 

 임팔의 경우 일본제국과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었고, 일선 장교들이 사전조사에 분석을 해봐도 보급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났다. 이를 무타구치 렌야 장군에게 보고하나, 렌야 장군은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논리'로 받아쳤다. 

황당논리 1 - 임팔 지역 도로 사정이 매우 낙후하다. 자동차로 보급이 불가능하다. 

"그럼 말과 당나귀에 보급품을 실으면 된다. 그리고 말과 나귀를 잡아먹으면 음식도 된다. 

도대체 보급이 왜 안된다는 것인가?" 

황당논리 2 - 임팔 지역은 영국 식민지인 인도다. 영국 공군의 공중지원이 크게 이루어지면 우리 일본제국은 패배한다. 

"임팔 지역은 정글이다. 정글은 나무가 많아 하늘에서 보면 땅이 안보인다. 
땅이 안보이는 전투기가 어떻게 지상을 공격하느냐?" 

황당논리 3 - 일단 식량보급이 끊어지면 사격이고 행군이건 못한다. 식량 보급이 안되니 이 임팔전투는 강행하면 안된다. 

 "우리 일본인은 본디 원시시대에 초식동물로 시작했다. 그렇기에 길가나 임야에 널린 수풀을 뜯어먹으며 야마토 정신으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다.  우리 일본제국은 강하다" 

 6. 최후의 방어자 - 이나다 마사즈미 참모장 

역시 이런 황당한 상황에는 당연히  반대자가 나온다. 이나다 마사즈미 참모장이 그런 인물이었다. 

그는 끝까지 보급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반대했으나, 결국 천황과 도조히데키가 모인 대본영은 임팔전투를 승인하였다. 올바른 것을 너머 당장 눈에 뻔히 보이는 물리적 불가능한 작전을 반대한 이유로 이나다 마사즈미 참모장이 해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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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인간사 황당상황에서 자주 보이게 될 패턴이다. 어떤 황당한 사람이 나와 강행을 시작하면 비슷한 황당한 것 들이 칭송하며 낄낄거리지만 한명이 올바른 소리를 하는데, 올바른 소리를 하는 쪽이 무시당하게 되는 패턴을 말한다. 

7. 전투 강행의 결과 

당연히 보급 문제로 패배. 문제는 병력손실이 매우 컸다. 

 72,000 여명의 병력 손실. 이중 전투로 인해 사망한 전사자는 절반도 안되는 32,000 여명이다. 나머지 40,000 여명은 약품이나 식량의 보급이 원활치 못했기에 병에 걸려죽은 병사자 혹은 굶어죽은 아사자였다. 임팔 전투에 참여했던 모든 사단들은 각 90% 이상의 병력을 잃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에 이 병력이 온전히 있었다면 일본군이 1945년 무력하게 미군에게 공격당해 항복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더욱 대단한 것은 무타구치 렌야 장군의 이런 짓이 몇건 더 있다. 그렇기에 렌야 장군은 대한민국의 광복을 앞당긴 숨은 광복군이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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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더욱 큰 문제 

이 당시 미얀마-뱅골 지방에 일본군과 영국군이 호각을 다투며 싸우던 중이었는데, 임팔 전투의 손실이 커져 일본군이 약해졌다. 결국 힘의 균형이 무너져 미얀마군에게 패배하고 물러난다. 미얀마에서의 패배 이후 일본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전체적 열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대본영의 잘못된 판단력, 무타구치 렌야 장군의 황당한 돈키호테식 실무력이 맞물린 임팔 전투가 모든 일본제국 전선 자체를 패색으로 몰아넣은 것 이다. 여담으로 이 당시 승전을 거둔 미얀마 장군이 바로 '아웅산'이다. 미얀마의 영웅이자 건국의 아버지인 그 아웅산 장군이다. 

'막장 of 막장'임을 인증한 일본제국 

실패조직의 특징이기도 한데, 조직에 매우 큰 해악을 끼친 사람을 처벌하지 않는 행동과 처벌하고싶지 않는 자의 과오는 덮어두는 습성이다. 바로 일본제국군이 그랬다. 임팔 전투의 황당짓거리로 일본제국 전체 국방력에 손실을 끼친 무타구치 렌야 장군을 진급시켰다. 오타가 아니다. 렌야 장군은 진급했다. 

더불어 렌야 장군은 어떠한 처벌이나 문책을 하지 않았다. 무능한 조직 특유의 풍습인 덮어주기가 작렬한 것. 이에 그치지 않고 렌야 장군을 진급까지 시켜 출세가도에 올려둔 것은 당시의 일본제국이 얼마나 총체적인 난국으로 빠져갔는지 가늠될 정도다. 

 9. 마지막까지 황당한 무타구치 렌야 장군

 무타구치 렌야 장군은 천수를 누리다 노환으로 죽었다. 그는 임팔 전투 외 이정도 수준의 황당한 짓을 몇건 더 했다. 정리하면 수십만명의 군인이 렌야 장군 1명의 황당한 계획으로 죽었다는 것 이다. 

이러한 자의 유언은 다음과 같다. 

"내가 잘못한 게 아냐. 부하들이 잘못한 거야!" 



                                                                                             논란의 세계사 참조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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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롱콘 18-05-20 14:45
   
2. [[이 당시 미얀마-뱅골 지방에 일본군과 미얀마군이 호각을 다투며 싸우던 중이었는데,
임팔 전투의 손실이 커져 일본군이 약해졌다. 결국 힘의 균형이 무너져 미얀마군에게 패배하고 물러난다.
미얀마에서의 패배 이후 일본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전체적 열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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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과 미얀마(버마)군이 아니라.... 일본군과 영국군의 오류 아닌가요....???

물론 일본군에 맞서는 인도-미얀마(버마) 접경지역의 영국군에 한정한다면
바마인들도 어느정도 영국군에 소속되었을 테지만...
버마인들이 주체가 되었다고 보기에는 거리가 상당히 멉니다.
오히려 영국군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것은 범인도출신 병력(현 인도, 파키스탄, 네팔..)들이었습니다.

그나마 당시 버마출신들도 민족별로 나누어 살펴본다면....
주류민족인 버마족은 주로 일본에 우호적인 자세를 취했고
주로 소수민족인 카렌족,카친족들이 영국에 우호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2. [[대본영의 잘못된 판단력, 무타구치 렌야 장군의 황당한 돈키호테식 실무력이 맞물린 임팔 전투가 모든
일본제국 전선 자체를 패색으로 몰아넣은 것 이다. 여담으로 이 당시 승전을 거둔 미얀마 장군이 바로
'아웅산'이다. 미얀마의 영웅이자 건국의 아버지인 그 아웅산 장군이다.]]........???
.
.
오히려 아웅산은 일본의 미얀마(버마)점령 당시에는 일본에 협력하는 위치였습니다.
아웅산이 주도하는 버마독립군이 히스토리2님이 이전에 언급해주신 찬드라보스의 인도국민군의 경우처럼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에 소속되어 일본의 힘으로 버마의 독립을 달성하려는 목적을 지녔습니다.

아웅산이 이후 자세를 전향하여 일본군을 배신하고 영국군에게 협력하는 포즈를 취한 시기는
영국군의 반격으로 버마 제2의 도시 멘달레이가 영국군에게 탈환되던 1945년 4~5월에 이르러서입니다.
물론 이후 벌어진 버마 제1의 도시 랭군 탈환전...같은 나머지 버마탈환전에서는 본격적으로 영국에
협력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임팔 전투는 그 전 해인 1944년 중반경에 일어났던지라... 이 시기까지만 해도 아
웅산의 버마독립군은 일본의 영향력하에 있었습니다.
히스토리2 18-05-20 15:01
   
저도 책을 옮기면서 그런부분을 느꼈는데, 당시 아웅산 장군은 일본의 영향력 아래 있던 것으로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암튼 조금 애매한 건 사실인데, 영국의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독립세력은 일단은 일본군의 도움을 당장은 받았지요...그런 부분을 예전의 제 글에 적은 적이 있는데요..... 여기 임팔 전투 부분에서는 님이 지적해 주신 부분이 맞다고 여겨집니다. 일단 수정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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