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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19 14:00
[기타] 조선 전기 군대의 학익진 수용과 운용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259  

http://egloos.zum.com/lyuen/v/4559493

-전략-

◆ 동아시아의 학익진과 조선의 학익진

현존하는 조선시대 문헌 중에 최초로 학익진이 등장하는 사례는 문종실록에 수록된 신진법 新陣法의 본문 내용 중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 이전에 출간된 조선 초기 병법서인 정도전의 진법이나 계축진설, 병조 진도지법에선 학익진이 나오지 않는다. 나아가 현존하는 고려시대 사료인 고려사나 고려사절요에서도 학익진이라는 용어는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계축진설에선 학익진과 형태상 밀접한 관련이 있는 키 모양(箕型)에 대한 언급(皆自內向外直列, 立如魚貫, 行若雁行, 內附於陣, 外稍開闊, 而遠狀類箕)이 있으나 구체적인 진형에 대한 설명이나 묘사는 없다. 현재로서는 학익진을 언급한 우리나라 최초의 문헌은 문종실록에 수록된 신진법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사료 1-1 신진법, 문종실록 문종 8권>
五陣相生、相克, 其來尙矣。 然敎習實難, 故今權從簡便, 但敎以方陣, 可也。 若或因兵勢, 或因地形, 非但五陣, 至如長蛇、鶴翼、【四統皆橫列, 則一部之成鶴翼陣也; 四統皆縱列, 則一部之成長蛇陣也。】偃月、【四統而連合而句列, 則一部之成偃月陣也。】魚鱗、鳥雲之形像, 變入無窮,【四統承縫而列, 則一部之成魚鱗陣也, 四統各聚而陣, 則一部之成鳥雲陣也。】專在將軍一時之制。

신진법은 1451년에 완성된 책이므로 이른바 오위진법류의 병법 서적(대자진법,소자진법,진법,병장도설) 중에 최초로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에서는 기본진형으로 방진, 직진, 예진, 곡진, 원진을 제시한 후 훈련 때 여러 진형을 익히는 것이 쉽지 않으므로 방진을 주로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에 추가해 병력의 구성이나 지형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보조진형으로 장사진, 학익진, 언월진, 어린진, 조운진 등 5가지를 추가로 제시하고 있다. 이 밖에 같은 책에서 모의 전투훈련 때 사용하는 진형으로 각월진을 추가로 언급하고 있어 보조진형은 모두 6가지가 되는 셈이다.

동양의 진법에서 이름이 같다고 해도 구체적인 병법서에 따라 구체적인 형태에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학익진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명확한 모양을 특정하기는 힘들다. 더구나 중국의 병법에서 학익진이라는 용어나 개념 자체도 그렇게 보편적이라고 할 수 없다.

손자병법 같은 선진시기의 병법서에도 학익진이라는 용어는 등장하지 않을 뿐더러 각종 진법 그림이 가장 풍부하게 등장하는 송대의 무경총요나 명대의 무비지에도 학익진은 나오지 않는다. 학익진에 굳이 한정하지 않고 키 모양, 다시 말해 V자 내지 U자 형태를 가진 진형(箕型陣) 자체로 범위를 넓혀 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런 진형이 중국 병법서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형태의 보편적 진형은 아니다. 특히 조선 후기 우수영전진도첩에 나오는 학익진도와 유사한 진형으로는 '등단필구', '중간속무경총요나 '무비지' 같은 명나라 시대의 병서에 등장하는 '안행진'이나 '상산사수미상구진' 등 정도만이 비교 대상으로 검토해볼 수 있을 뿐 완전히 동일한 형태의 진형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편이다.

뿐더러 이같은 형태의 진형을 학익진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흔하지 않다. 진형 개념에서 학익이란 용어를 쓴 사례는 당태종 이세민의 '제범' 등에서 찾아볼 수 있으나 그나마 학익지위(鶴翼之圍)로 애둘러 표현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진형도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에서는 학익진이라는 용어가 매우 빈번하게 사용된 편이다. 또한 실전에서 적용 사례도 흔한 편이다. 일본에서는 학익진을 양익을 넓게 펼쳐 적을 포위하는 형태의 진형으로 이해한다. 학익진의 기원에 대해서는 일본의 대표적이 군사사 관련 사전류인 '일본무도사전'의 학익진 설명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헤이안시대 때 당나라에서 전래된 팔진법에서 유래됐다고 설명하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源平成衰記, 太平記 등 군기물에서는 빈번하게 학익진이 등장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들 군기물들은 역사와 소설의 경계지점에 있는 문헌이고 서지학적으로 그 원형을 추적하기는 매우 힘들어 일본에서의 학익진의 수용과 운용, 변천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일본에서는 같은 학익진이라는 용어를 쓴다 할지라도 철포가 전장에서 대량으로 사용된 무로마치시대 말기 이후에는 그 진형의 형태가 다소 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에도시대의 진법서에서는 양익 포위를 기본 개념으로하는 전통적인 학익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진형에 대해 학익진이라고 설명하는 경우도 많다.

일본에서 학익진이 빈번하게 사용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조선에서도 잘 인식하고 있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이덕무는 일본에는 8개의 전투진형이 존재하며 그 중 두번째가 학익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료 1-2 청장관전서 청령국지 병전조>
日本所傳八陣。一曰魚鱗。二曰鶴翼。三曰 雁行。四曰彎月。五曰鋒矢。六曰衡軛。七曰長蛇。八曰方圓。

이같은 일본의 전통적인 진법 인식체계는 현대 이후 게임이나 문화상품 등에 소개되면서 일본은 물론 한국이나 중국에서도 매우 익숙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실제로 이 같은 명칭으로 기본 전투대형으로 설명하는 중국의 병법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중국에도 V자 내지 U자 형태의 진형 자체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흔하지는 않았고 학익진이란 용어 자체도 보편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조선 전기 문헌에 등장하는 학익진의 직접적 기원을 따져 보기에는 조금 애매한 상황이다. 이 문제를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학익진을 떠나 조선 전기 오위진법의 기원 자체를 따져봐야하겠지만 이 분야 또한 현재로선 학계에서도 어떠한 가설적 추정도 제시되지 않은 상태다.

조선 후기 병법과 병서의 전문가인 N 교수님과도 이 주제를 놓고 잠깐 말씀을 나누어 본 적이 있지만 "현재로선 알수 없다"는 점에서 견해의 일치를 보았을 뿐이다. 조선 전기 오위진법의 경우 대체로 송-원대 중국의 특정 병법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짐작될 뿐 오위진법과 내용이 일치하는 중국의 병법서는 현재로선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나아가 조선 전기 문헌에 등장하는 학익진이 구체적으로 어떤한 특정 병법서에서 기원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쉽지 않은 셈이다.



병법 책의 규정과 별개로 적어도 임진왜란 당시에는 조선, 일본, 명나라 모두 학익진을 보편적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측 사료에서 명군이나 왜군의 전투대형을 설명하면서 학익진이라고 표현한 경우가 적지 않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실제 당사자들이 이런 진형을 무엇이라고 불렀던 간에 적어도 조선측에서 보기에 그들의 특정한 전투대형이 학익진처럼 보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연도

 설명

 소속

 사료

1592년

援賊不意大至。張鶴翼圍抱

일본 육군

난중잡록

1592년

更令諸將 鶴翼列陣 一時齊進

조선 수군 (이순신)

실록, 임진장초

1592년

臣段率舟師 鶴翼先進

조선 수군 (이순신)

임진장초

1593년

設車陣鶴翼而入

조선 육군 (변이중)

난중잡록

1596년

在甑島洋中 鶴翼列陳 橫截一海 列示兵威

조선 수군 (이순신)

임진장초, 임진기록

1597년

分隊作綜鶴翼, 直進于安骨賊窟,

조선 수군 (원균)

실록

1597년

十四日。賊兵自宿星原川。漫山鶴翼而下

일본 육군

난중잡록

1597년

翌日平明。賊兵齊放連炮。張鶴翼以進

일본 육군

난중잡록

1597년

各處援兵蔽海而至。張鶴翼突進。

일본 육군

난중잡록

1598년

唐兵奮勇, 以鶴翼掩擊

명나라 육군

실록


임진왜란 당시 동양 3국 군대의 학익진 운용 사례



◆ 조선 전기 진법서적의 학익진 형태

그렇다면 과연 조선의 신진법이나 오위진에서 말한 학익진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이었을까.

신진법을 계승한 현존 진법서, 흔히 오위진법이라고 불리우는 책에서는 방진, 직진, 예진, 곡진, 원진의 그림만 제시하고 있을 뿐 학익진 그림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신진법이나 오위진법에는 학익진에 대해 "4통을 가로로 벌려 세우면 학익진"이라는 설명만 등장한다. 본문의 설명대로라면 일종의 횡렬진을 의미하는 진형인 셈이다. 이같은 형태는 우리가 흔히 학익진이라면 떠올리는 형태인 V자 혹은 U자형태의 전투대형과는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실제로 조선 후기에 속하는 17세기에 출간된 병법서에서도 학익진을 단순한 횡렬진으로 설명하는 사례가 존재한다. 연기신편에서는 학익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아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좌우익이 굽지 않고 단순히 가로로 포진한 횡렬진으로 그려 놓았다.

하지만 신진법이나 오위진법에서는 같은 책에서도 조금 다른 설명을 하는 경우가 있다. 신집법이나 오위진법에서 모의전투훈련을 의미하는 승패지형-제이에서는 학익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사료 1-3, 신진법, 문종실록 문종8권>
客軍還聚, 作鶴翼陣, 爲箕張之勢而來。【客軍大將, 謀旣不行, 吹大角, 勒集其兵, 橫列五麾, 衛將以下, 以次傳應, 作鶴翼陣。 大將更吹大角, 立五麾, 爲箕張之勢而指之, 吹戰角, 擊戰鼓, 衛將以下, 各以次傳應, 爲箕張之勢, 鼓行而來。】

학익진의 모양은 키를 펼친 모양(箕張之勢)이라는 것이다. 키를 펼친 모양은 부대의 양익을 V자내지 U자 모양으로 펼친 모양을 지칭하는 것으로 기형진이나 학익진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되는 문구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학익진이 단순히 4개 부대로 가로로 늘려 세우는 모양이라고 설명한 대목과는 차이가 있다. 같은 책 안에서도 학익진에 대해 다소 다른 뉘앙스의 설명을 하고 있는 셈이다.


◆ 조선 전기 군대의 학익진 운용 빈도

신진법과 오위진법에서 학익진을 설명하고 있다해도 방진, 직진, 예진, 원진, 곡진 등 기본 대형 5가지 외의 진형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진형으로 간주되었다. 중종대의 진법 문답 기록에서도 방진, 직진, 예진, 원진, 곡진 등 기본 전투대형 외에 학익진 등 보조 전투대형에 대해 아는 사람이 드물다며 국왕이 신하들에게 관심을 촉구하는 기록이 등장한다.

같은 기록에서 학익진이 어떤 진형이냐는 국왕 중종의 질문에 대해 무관 허순은 "학익진은 가로로 학의 날개처럼 펼치는 진형(陣形橫裂, 如鶴張翼者也)"이라고 답하고 있다.

<사료 1-4, 중종실록 중종 31년 4월29일>
傳于金謹思曰: “常時敎閱時, 只用五行陣法而已, 故武士等五陣之外, 皆不詳究。 如長蛇、鶴翼、魚鱗、鳥雲、偃月、却月等陣, 知者鮮矣。 卿與曺閏孫〔曺潤孫〕、尹任等, 同進榻前, 今此入射武臣, 一一呼名講論可也。 前者高荊山, 爲兵曹判書時, 亦嘗講之, 此古例也。” 金謹思啓曰: “上敎允當。 但知之者甚少, 今雖講之, 必無能解者。 姑使講習, 來初二日親閱時, 講問何如?” 傳曰: “常時親閱時, 必多事, 未暇講問。 大抵陣書, 武人所當常習。 今卽講問, 能者進之, 不能者, 退之無妨矣。” 又傳曰: “陣書精通, 豈無其人? 射官若有精通者, 使得參聽。 精通者如不入侍, 而在外, 則一二人招入可也。” 尹任曰: “射官中, 如尹熙平、黃琛、金瑚等, 粗習之矣。” 於是命尹熙平等, 使之參問, 許淳入, 熙平問曰: “常時陣形幾何?” 淳對曰: “方圓曲直銳, 五陣矣。” 又問曰: “五陣之外, 亦有陣耶?” 對曰: “長蛇、鶴翼、魚鱗、鳥雲、偃月、却月等陣, 有之矣。” “然則所謂偃月者, 何以爲之?” 對曰: “外向而陣, 爲偃月也。” “所謂魚鱗陣者何也?” 對曰: “承縫而次, 如魚鱗也。” “鶴翼云者如何?” 對曰: “陣形橫裂, 如鶴張翼者也。” “長蛇者何也?” 對曰: “縱列之狀, 如長蛇。” 云, 而不能分明言之。 金謹思問曰: “此等陣, 遇敵則皆可用乎?” 對曰: “因地形而爲之。” 亦不快答。 金謹思曰: “許淳僅能粗通矣。” 張彦良、李文誠、李芝、南致勤, 略通, 李光軾、元松壽、李弟男、朴自芳、崔潾, 粗通, 最後黃怡入對, 講說分明, 故爲通, 其餘皆不通。 傳曰: “成陣時, 可不出游軍, 出戰時, 亦不當出游軍, 何也? 內圓陣, 則外亦圓陣可也, 而必內圓而外方者, 何也? 常時爲陳, 內四門、外八門, 亦何也? 幷問之。” 李嗣權、朴鐵壽、李龜琛、柳成根等, 皆不能對。

하지만 같은 보조진형이라도 학익진은 상대적으로 더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진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조선 전기에 함경도나 평안도 지역에서 여진족과의 교전 기록에서도 몇차례 학익진이 등장한다. 실제 조선 전기 군대, 특히 전투가 비교적 빈번했던 함경도와 평안도의 조선군이 학익진을 전투대형으로 활용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인 셈이다.

<사료 1-5, 성종실록 성종 22년 2월26일>
嗣宗大怒, 定斬退將, 令斬不進者, 作鶴翼陣追之,

<사료1-6, 중종실록 중종 19년 8월26일>
是夕, 賊步卒五十人、騎馬二十餘名, 遮路大吼而進, 我軍張鶴翼陣, 據高山之麓, 相戰良久, 賊軍在下, 我軍在上, 彼賊乃退。

이외에도 실록을 보면 여진족이 침입했을때 학익진을 사용했다거나 연산군대에 사냥을 위해 학익진을 형성했다는 내용, 혹은 대가의 호위를 위해 학익진을 사용했다는 기록 등이 등장한다.

중종대의 기록에선 국왕이 북도순변사의 진중에서 귀환한 자에게 질문을 하면서 행군때 학익진을 사용했는지, 아니면 장사진을 사용했는지 질문하는 대목도 있다. 국왕도 학익진이나 장사진을 매우 일반적인 전투대형으로 간주하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사료다.

<사료 1-7, 중종실록 중종 19년 1월29일>
上曰, 軍行長蛇乎 鶴翼乎, 世澣曰 “路狹則長蛇 廣則鶴翼矣。

중종이 학익진 등 보조 전투대형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 이후 그가 직접 참가한 열병식에서 학익진 등을 실제로 펼칠 것을 명령하기도 했다. 이때 신하들이 학익진과 장사진의 경우 진을 치는 신호(형명)에 대해 알고 있으나 어린진, 조운진, 언월진에 대해선 형명 자체도 모른다고 답한 대목도 나온다. 같은 보조진형이라도 어린진, 조운진, 언월진은 형명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거의 사용되지 않은 전투대형이었지만 학익진과 장사진의 경우는 그 정도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사료 1-8, 중종실록 중종 31년 5월11일>
親閱于慕華館。 上以長蛇、鶴翼、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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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병자 18-05-19 14:02
   
<사료 1-8, 중종실록 중종 31년 5월11일>
親閱于慕華館。 上以長蛇、鶴翼、魚鱗、鳥雲、偃月、却月等六陳, 列書, 傳于承旨曰: “近來不爲如此陣久矣。 左右廂, 各還陣而後, 各以此設試之可也。 長蛇、鳥雲、偃月陣, 則左廂設之, 鶴翼、魚鱗、却月陣, 則右廂設之可也。” 尹任啓曰: “長蛇、鶴翼陣, 則可用形名, 而陣之, 其餘四陣, 不知用某形名, 而使之成陣。 臣等未詳其制, 宣傳官等, 亦未有能解之者, 左右廂諸將, 亦必不能詳之, 何以爲之?” 傳曰: “此六陣, 雖令設陣, 若不知其制, 則徒爲紛擾。 宜擇宗宰及宣傳官中, 稍解法者以送之, 使得指揮而爲之。” 尙震啓曰: “六陣已試, 請罷陣。”

<사료 1-9, 범허정집>
四月。 乙丑 承命。指揮六陣閱兵。是日。上親臨閱武于慕華館。以長蛇,鶴翼,魚鱗,鳥雲,偃月 却月六陣。 命公指揮。 罷陣後,又命行方革騎射擊毬射毬。旣畢。命公賞賜居首者。公素兼武才。有特命也。



이상의 기록을 정리해보면 조선 전기의 경우

1) 문종의 신진법-오위진법을 통해 학익진이 처음으로 조선군의 보조 전투대형으로 규정되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병법책을 참조해서 학익진의 구체적 대형을 도입했는지는 불확실하다.

2) 함경도나 평안도에서 여진족과의 교전에서 실제 학익진이 전투대형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3) 조선 전기 군대에서는 어디까지나 방진,직진, 예진, 원진, 곡진 등을 기본진형으로 사용했고 그 외 학익진 등 경우 무관들의 경우에도 잘 아는 사람은 흔하지 않았을 정도로 보조적인 진형으로 간주되었다.

4) 다만 같은 보조진형 중에서도 학익진이나 장사진은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가진 진형이었던데 비해 어린진, 조운진, 언월진, 각월진 등의 경우 진을 치는데 사용되는 각종 신호(형명)조차도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실제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유명무실한 전투대형이었던 셈이다.

5) 학익진의 형태에 대해서는 단순히 가로로 펼치는 횡렬진이라는 설명과 V자 혹은 U자형태의 전투대형을 의미하는 기장지세(箕張之勢)라는 두가지 설명이 혼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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