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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12 23:03
[대만] 아편왕이 된 '골든트라이앵글'의 국민당 낙오병들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1,263  

골든트라이앵글: 타이, 라오스, 미얀마 3국의 국경이 접한 산악지대로 세계의 헤로인을 대부분을 생산하며 황금의 삼각지대라고 불린다. 이 삼각지대는 아편생산에 최적의 기후와 자연조건을 갖추었다. 특히 미얀마 동부 살윈강(江) 동쪽의 산악지대에서 연간 약 100만 톤의 생아편을 채취한다. 이곳에는 마약왕 쿤사세력으로부터 양귀비 재배를 강요받은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은 살인ㆍ폭행ㆍ성추행ㆍ징집 등의 횡포에 시달려왔다. 또한 미국 뉴욕에 반입되는 헤로인의 80% 이상이 이곳 지역에서 생산되어 보내진다는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는 쿤사ㆍ와족ㆍ링민샨 등 6~7개의 조직이 있는데, 1996년 쿤사의 항복 이후 쿤사조직이 쇠퇴한 반면 그동안 군소조직이었던 와족ㆍ링민샨 등이 세력을 확산하여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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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봄부터 국공(國共) 양군은 전력의 우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승세를 잡은 중국인민해방군은 전군을 4개의 야전군으로 재편해 국민정부군에 총공세를 퍼부었다. 11월을 전후해 류보청(劉伯承)과 덩샤오핑(鄧小平)이 지휘하는 제2야전군은 구이저우·광시·쓰촨을 장악한 뒤 윈난(雲南)을 3면에서 포위했다. 투항을 결심한 국민당 윈난성 주석 겸 보안사령관 루한(盧漢)은 12월 9일 밤 쿤밍(昆明)에서 긴급 군정연석회의를 개최해 지휘관들을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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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경내에 머물던 국민당 소년병들 

일부는 응했지만 8군단장 리미(李彌)는 불복했다. 루한은 리미를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상관의 뜻을 파악한 8군 예하 709부대장 리궈후이(李國輝)는 6만의 병력을 동원해 쿤밍을 공격했다. 그러나 잠시였다. 상하이 지하당 특공요원 출신 천껑이 지휘하는 부대가 몽고를 경유해 쿤밍을 향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헛소문이라 할지라도 천껑이라는 이름은 공포를 상징했다. 후퇴를 결정했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위안장(元江) 일대에 도달했을 때 해방군 2개 사단에 기습을 당해 거의 전멸했다. 대륙에서의 마지막 전투였다. 리궈후이는 잔여 병력 2000여 명과 그들의 가족을 이끌고 국경선을 넘어 버마(지금의 미얀마) 경내로 진입했다. 태국을 경유해 하이난다오(海南島)로 철수할 계획이었다. 국경을 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행군은 독사와 맹수와의 싸움이었다.
전갈이 우글거리는 소택지를 앞선 사람들의 시체를 밟고 통과했다. 원주민들도 이들을 적대시했다. 마을 통과와 식량 요청을 거절했다. 무기라고는 창과 활이 다였지만 최후의 일인까지 저항했다. 몰살을 시킨 후에야 행군을 계속하고 양식을 얻을 수 있었다. 샤오멍펑(小孟捧)이라는 산골 마을에 도달했을 때 또 다른 국민당 패잔부대를 만났다. 군관회의에서 합병에 합의했다. 가족을 제외한 무장군인 1600명을 근간으로 ‘중화민국 부흥부대 총지휘부’를 신설했다. 타이완과의 통신이 재개되자 경과를 보고하고 후속지시를 요청했다.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라”는 장제스 명의의 전문이 왔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병력을 유지해야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이들은 버림받은 군대로 전락했지만 국민당 군모를 벗지 않았고 연병장에 게양된 청천백일기를 내리지 않았다. 달 밝은 밤이면 고향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방에서 노래와 흐느끼는 소리가 뒤범벅이 되곤 했다. 차라리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보낸 아침은 생기가 돌았다.
150여 년 전 영국인들은 인도에서 다량의 양귀비(罌粟)를 재배했다. 아편을 제조해 중국·월남 등 동남아국가에 수출하자 '골든트라이앵글'이라 불리던 버마와 태국의 북부 지역에서도 양귀비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경영은 산간지역의 족장이나 추장들의 몫이었다. 대상(隊商)을 고용해 아편을 외부로 운반했다.아편을 판 돈으로 식량과 생활용품을 구입해 의식주를 해결하고 이윤을 취했지만 운송 과정에서 무장한 소수민족이나 토비(土匪)들에게 털리기 일쑤였다. 토비들의 무장은 반수 이상이 도끼와 창이었다. 

용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무기였다. 대상들은 부흥부대의 무장에 매력을 느꼈다. 비록 패잔병들이었지만 최신 무기를 소유한 정규군이었다. 토비나 비적들은 이들의 적수가 아니었다. 부흥부대는 아편 운송을 독점했다. 환경에 익숙해지자 저녁노을보다 더 붉은 양귀비가 이들을 유혹했다. 독을 감싸고 있는 아름다움도 그들의 처지와 다를 바 없었다. 사지에 들어가야 살 길이 나온다는 고대 병법의 가르침은 만고의 진리였다. 아편을 이용해 군대를 양성(以毒養兵)해서라도 고향에 돌아가자는 분위기가 이 외로운 부대 안에 감돌기 시작했다. 운명에 순응하는 것도 전략이라면 전략이었다. 

당시 버마는 독립된 지 겨우 2년밖에 되지 않았다. 민족주의가 팽배해 있었다. 무장한 중국의 패잔병이 떼거지로 들어와 있는 것을 용납할 리 없었다. 1만2000명의 병력을 동원했다. 멍싸(孟薩)에 지휘부를 설치한 후 리궈후이(李國輝)에게 “10일 이내에 버마를 떠나라”는 최후 통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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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에서 행군중인 국민당 패잔병들

답변은 필요 없었다. 대포와 탱크를 앞세우고 국민당 패잔부대의 집결지 샤오멍펑(小孟捧)을 공격했다. 비행기도 4대 출격했다. 리궈후이는 전 병력 3000명을 이끌고 산 정상으로 철수했다. 교차사격으로 버마군 비행기 2대를 격추시켰다. 사기가 오르자 병력을 양분했다. 부사령관 탄중(譚忠)은 멍싸의 버마군 지휘부를 기습했다. 지휘관은 도망갔지만 여단장 두 명 중 한 명을 사살하고 나머지 한 명을 생포했다. 버마군 1개 여단 대부분을 사로잡았다. 리궈후이도 동시에 샤오멍펑을 공격했다.
병력 이동이 도저히 불가능한,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는 밤이었다. 승리에 취해 방심하고 있던 버마군은 맥없이 무너졌다. 지휘체계마저 엉망이 됐다. 수많은 전사자를 남기고 퇴각했다. 국민당 패잔부대는 버마군 패잔병들을 맹추격했다. 

대만 전체 면적의 세 배에 이르는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것은 살기 위한 싸움이 아니었다. 패잔병들은 전쟁다운 전쟁이나 원 없이 하다 죽자며 기를 쓰고 싸웠다. 그동안 살려고 몸부림쳤던 것이 잘못이었다. 무서운 진리를 터득한 부대가 동남아 정글 한복판에 탄생했다. 


버마 정부군은 다수가 소수에게 처참히 패한 기록만 세계 전쟁사에 첨가했다. 기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국민당 패잔병이라면 겁부터 먹었다. 쌍방은 “양측의 포로를 전원 석방한다. 버마 정부는 중국인 부대가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에 잠시 머무르는 것을 허락한다. 그러나 적당한 시기에 떠나 주기를 희망한다”는 협정에 서명했다. 

버마 측에서는 협정 내용을 비밀에 부치자고 했다. 국민이 알면 정권이 날아가고도 남을 일이었다. 리궈후이는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수락했다. 버마 경내에 와 있던 중국의 지주와 부농, 국민당에 종사했던 군정요원 출신들도 리궈후이 부대의 승리 소식을 듣자 제 발로 합류했다. 병력이 순식간에 9000명으로 불어났다.

멍싸에 사령부를 설치했다. '골든트라이앵글' 역사에서 ‘리궈후이 시대’라 지칭되는 ‘멍싸 시대’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인근에 있던 무장 토비들은 투항하거나 근거지를 떠났다. 리궈후이는 군민혼인 운동을 전개했다. 패잔병들은 현지 처녀들과 가정을 꾸렸다. 부인이 있는 지휘관들은 부족장의 아들들과 부자관계를 맺었다. 연일 잔치가 벌어졌고 닥치는 대로 양귀비를 심기 시작했다. 

국민당 패잔부대의 승리는 동남아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특히 대만을 경악하게 했다. 장제스는 하는 일 없이 빈둥대던 리미(李彌)를 호출했다. “골든트라이앵글 지구에 잠입해라. 옛 부하들을 지휘해 반공 대륙의 남방기지를 건설하라"며 윈난성 주석 겸 윈난 인민반공구국단총지휘라는 직함을 수여했다.

리미는 홍콩에 머물며 반공 인사들과 폭넓게 접촉한 후 방콕에 도착했다. 대상(隊商)으로 가장해 '골든트라이앵글' 로 향했다. 병력을 총지휘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자신 있다고 큰소리도 쳤지만 리궈후이가 거절하면 대책이 없었다. 

제 발로 '골든트라이앵글'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버마와 태국의 국경 지역에 있는 작은 염색공장에서 리궈후이와 회담했다. 리궈후이와 탄중은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한 정통파 군인들이었다. 장제스의 명령을 접하자 무조건 복종했다. 대륙 시절 직속 상관이었던 사병 출신의 리미에게 군말 없이 지휘권을 이양했다. 리미는 정식으로 윈난성 정부와 윈난 인민반공구국군총부의 수립을 선포했다. 

옛 부하를 계승한 새로운 마약왕의 탄생이었다. 윈난(雲南)성 내에 근거지를 건설하는 것이 장제스의 희망이었다. 리미는 무슨 수를 쓰건 병력을 이끌고 윈난에 진입해야 했다. 매일 밤 소수민족의 족장들을 초청해 연회를 베풀었다. 장군 계급장과 권총을 한 정씩 선물했다. 국민당 군적에도 없는 장군과 장교들이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에 무더기로 탄생했다. 

장제스는 ‘반공구국군’이라는 명칭을 하사하고 다량의 군수품을 공수했다. 리미의 군대는 윈난의 4개 현을 점령했다. 극소수 해방군이 주둔한 보잘것없는 국경 마을들이었다. 대규모 입성식과 열병식을 거행하며 쿤밍(昆明) 탈환을 호언장담했다. 

대만과 동남아의 신문들은 다른 뉴스를 실을 공간이 없었다. 중국은 한국전쟁 참전으로 경황이 없을 때였지만 해방군 2개 사단을 동원해 점령당한 지역을 포위해 들어갔다. 리미는 잽싸게 철수했다. 멍싸로 돌아온 후 금삼각 지역의 부족장들을 소집해 “교역세를 징수하고 양식을 징발한다. 사사로운 아편 교역을 불허한다. 

출입하는 상인들은 군관구에서 발행한 통행증을 소지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공포에 질린 부족장들은 말 한마디 못 했다. '골든트라이앵글'의 아편 생산과 판매를 완전히 장악했다.

리미는 반공구국군이 10만 명이라고 장제스에게 보고했다. 실제로는 2만 명 남짓이었다. 군수품을 보급받기 위해 간이 비행장까지 신설했다. 장제스는 지원병 700명을 공중으로 침투시켜 반공구국군을 격려했다. 리미는 군사학교도 설립했다. 장치푸(張奇夫)라는 18세 소년이 1기로 입교했다. 

검열 나왔던 리미는 윈난성 다리(大理)가 원적이라는 이 소년의 총명해 보이는 눈과 민첩한 몸놀림에 반했다. 사서(四書)까지 줄줄 외워 대자 넋을 잃었다. 즉석에서 장교 계급장을 달아 줬다.


장치푸는 후일 쿤사라는 이름으로 '골든트라이앵글'을 지배했다. 중공은 버마에 정식으로 항의했다. 국민당 패잔병들을 소탕하겠다며 국경을 넘어올 기세였다. 버마 정부는 영국인 지휘관과 3만여 명의 네팔 용병들을 동원해 공격했지만 용병들은 전멸당하고 영국인 지휘관은 자결했다. 

승리에 도취한 리미는 비극을 자초했다. 방콕에 잠시 체류하던 그를 기자들이 에워쌌다. “외부에서는 장군을 ‘윈난왕(王)’이라고 부릅니다. 언제쯤 쿤밍으로 돌아갈 겁니까”라는 질문에 “윈난왕 되기는 힘들다. 그러나 버마왕은 당장이라도 가능하다”며 웃어댔다.
여론이 들끓고 연일 학생시위가 벌어졌다. 버마 정부는 유엔에 항의서를 제출했다. 제7차 유엔 총회에선 ‘골든 트라이앵글에 주둔하는 외국 군대의 철수’를 의결했다. 장제스도 리미가 독립왕국의 건설을 기도한다며 괘씸해했다. 대만으로 소환해 연금해 버렸다. 이어서 금삼각의 병력도 대만으로 철수시킨 후 무장을 해제했다. 현지인과 결혼한 사람들은 대만 철수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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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 도착한 반공구국군(국민당 버마 낙오군)  


영원히 귀향을 포기한 이들은 서서히 마귀로 변해 갔다. 1949년 37t에 불과했던 금삼각 지역의 아편 생산량이 계속 늘어나기 시작했다.


[출처] 버마 금삼각(金三角) 국민당 패잔부대 일부 참조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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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롱콘 18-05-13 00:33
   
태국 북부의 중심도시인 치앙마이에서 골든트라이앵글 일대를 둘러보는
일일투어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정말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태국, 미얀마, 라오스가 한 눈에 들어오니 느낌이 새롭더군요!
두만강 일대의 북한, 중국, 러시아 3국 접경지역을 가도 역시 기분이 묘해지겠지요~~~

태국-라오스 국경 쪽으로는 보트를 타고 관람하며, 태국-미얀마 국경 쪽으로는 국경 근처의 시장을
둘러보는 투어입니다. 그밖에 목이 긴 태국 소수민족인 카렌족마을도 둘러보며(미얀마쪽의 카렌족이
규모가 훨씬 크지요)... 치앙마이~골든트라이앵글 경로 중간에 위치한 소도시 치앙라이의
백색사원도 보통 일정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치앙마이에서 일일투어로 다녀오기에는 너무나 빡쎈 일정이더군요.....!!!
치앙마이-치앙라이-골든트라이앵글일대가 주요 코스인데 왕복 이동시간만 8~9시간을 잡아먹고
관광까지 포함하면 총 15시간 정도를 잡아먹으니 아침일찍 출발해서 밤늦게 돌아오게 됩니다.
나일크루즈 18-05-13 08:38
   
유익한 게시물입니다. 속편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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