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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12 18:55
[한국사] 이병도의 친일행각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1,001  

1. 이병도의 친일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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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인 윤치영 집안과 3중 사돈을 맺고 있다. 
장인은 일본군 중장을 지낸 조성근으로 두 사람 다 친일파인 게 사실이다. 

이러한 개인사 외에도 조선사 편수회에서 일한 것 때문에 치암 신석호와 함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친일인명사전 2권 876~877P) 

사전에 등재된 그의 활동 내역은 1925년 8월에서 1927년 5월까지 조선사편수회 수사관보로 일했으며, 그 이후 1938년 6월까지 촉탁을 맡아 활동했다는 것이다.

또 청구학회 활동 경력도 문제가 되었다. 다만 이 활동에 대해서는 이 학회에 소속되어 있던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의 증언에 의하면 이름 뿐인 것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진척되지 않은지라 좀 더 많은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진단학회의 주요 멤버의 한 명인 이병도씨가 청구학회의 멤버이기도 했습니다만 이름뿐이었습니다. 

이씨는 우리들이 가기 전부터 조선사편수회의 수사관보로 있었고, 후에는 촉탁이 되었습니다만, 어떤 것도 이름뿐이었습니다." 연속심포지엄 「일본에 있어 조선연구의 축적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제 6 회, <조선사편수회의 사업을 중심으로>(32P), 조선연구월보 14, 일본조선연구소,1963.조선사편수회나 청구학회가 한국 역사를 식민사관으로 왜곡시킨 연구를 주도했던 단체라는 점과, 그 소속 기간이 상당히 장기간에 달한다는 점에서 정말 친일을 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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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가 다녔던 와세다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했었고, 이병도 스스로 해방 이후 1960~1970년대 잡지 글에서 자신의 생애에 '가장 영향력을 많이 준 사람'으로 꼽고 있는 식민사학자 요시다는 일본이 소위 한일합방 이전부터 식민사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특히 고대사연구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요시다는 이병도의 역사관 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데라우찌 등 "조선총독부의 역대 수뇌자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사업인 <조선사> 편찬 작업에 '수사관보'와 '촉탁'의 신분을 유지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한 조선인 중의 한 명이 바로 이병도였다. 

조선사편수회에서 일했던 역대 수사관보는 총 10명. 그 중에서 조선인은 이병도, 신석호, 이종명 등 3명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두 일본인 학자들이었다. 특히 조선사편수회는 스스로를 조선총독부 산하에 직속으로 설치된 "하나의 새로운 독립 관청"이라고 규정했던 점이 있는 만큼 실제로 이병도의 이름은 <조선총독부 직원록>에도 올라 있으며, 일본 천황이 총독부를 통해 충성의 대가로 지급하는 급료까지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광복 후 서울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할 때도 일본에서 황국사관을 신봉하고 신도를 대표하는 대학으로 유명 덴리대학교(天理大學校)에 가서 신도의 도복을 입고 예식에 참석했다는 증언이 제기되어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몽유도원도를 소장하고 있는 천리교계열의 사립대학인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몰라도 예식에 참가한 건 적절치 않다. 그런데 월간조선 2002년 10월호에 따르면, 이병도는 교사생활 중 이케우치 히로시의 권유로 조선사편수회 촉탁으로 근무한 것이었고, 무급으로 근무한 것과 창씨개명을 거부한 것 등으로 인해 요시찰인으로 지목되었다고도 하고 있다. 

물론 친일 행적을 반성한 점이 표면적으론 없어 완전히 뒤집어지기는 어렵겠지만.사족으로, 흔히 웹상에서 볼 수 있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는 소문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등재되지 않은 사실과 혼동된 결과로 추측된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명단에는 이병도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나,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되어 있다.


2. 이완용과의 관계 

같은 본관인 이완용 때문에 평생토록 시달렸다. 
이완용의 조카 쯤으로 욕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실제로 항렬은 두 단계나 다르기 때문에 거짓이다. 촌수로 따지면 30이 넘어간다. 

8촌만 되어도 꽤나 먼 친척인데, 30촌이면 사실상 남남 수준이다. 그럼에도 사관을 달리하는 역사학자들로부터 특히 공박과 뒷말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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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가 불태운 이완용의 관 


1992년 시사저널 8월 27일 자 기사에 보면 1979년 매국노 이완용의 묘를 이장할 때 나온 부장품 중 하나로 원광대 박물관이 소장중인 관뚜껑을 이병도가 개인연구에 쓴다고 가져가서는 불태워 버렸다는 기사가 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당시 대한민국 학술원 회장 8선에 빛나는 그가 지위를 남용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다만 이병도를 변명하는 입장의 이야기로는, 관뚜껑을 없앤,게 어차피 조리돌림 당할 관을 자기 손으로 태워서 아예 없애는 게 낫다고 판단했지 않나 말한다.또 1984년 잡지 '학원'과 인터뷰에서 이병도는 이완용과 관계성을 부인하다 못해 이완용은 '익산' 출신이다라고 슬쩍 흘리는데, 이 말 때문에 이완용이 졸지에 전라도 반역향의 화신 쯤으로 지역감정에 이용되기도 했다. 

이완용의 익산 출신설을 믿는 사람들은 이병도의 1984년 학원지 대담 사실을 주구장창 들고 나와 논쟁이 컸었다. 이완용과 이병도는 용인 판교의 우봉 이씨 집성촌이 고향으로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이 이완용 생가에 대해 원주민 증언과 더불어 2001년 생가터를 확정한 사실이 있다. 

물론 이완용과 이병도는 직접적 관련이 없으며 이병도가 특혜를 받은 것도 적어도 드러난 것은 없어 억울한 점이 있다고 하지만, 위의 그의 행동들은 역사학자로서 온당한 것인가 의구심이 들게 한다. 

그가 회장을 8선이나 하고 원로위원까지 역임한 학술원에서도 이완용과 관계성을 두고 뒷말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병도의 손자인 이장무 서울대 총장은 이런 뒷말에 대해 이완용과 이병도는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사실 이병도가 이완용 후손이라고 쓰는 사람들도 제대로 안 알아 보고 쓰는 게, 어떤 곳에선 손자라고 하기도 하며, 

사단법인 모 단체에서 전국 학교를 돌면서 환단고기를 참된 역사라고 하며 최태영을 두둔하고 이병도 박사를 식민사학의 거두, 이완용의 조카라는 되도 않는 강의를 하고 있다.다만 "이병도의 부친인 이봉구가 이완용의 자택에서 집사로 일했으며, 덕분에 이병도의 형인 이병희는 당대의 명필로 통하던 이완용의 서체까지 빼닮았다"는 이운구 성균관대 전 교수(우봉 이씨)의 증언과 더불어 사학자로 적절치 못한 부분으로 보일 수 있겠다. 

1956년에 김창룡이 암살당하자 그의 묘가 관악산에 있던 시절 그의 묘비명을 이병도가 썼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개였다가 건국 이후에는 독재자 이승만의 개가 되어 6.25 전쟁 당시 보도연맹 학살사건 등의 온갖 전횡을 일삼은 김창룡을 비판하는 내용이 묘비명에 하나도 없고 호국의 영웅으로 찬양하고 미화했다는 비판도 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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