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도성:도성은 수도의 방어를 위하여 구축한 성곽으로 삼국시대 백제의 부여와 고구려의 평양에는 외곽을 두른 나성(羅城)의 일부가 잔존하고 있어 도성이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신라에서는 도성을 축조하지 않고, 대신 월성을 비롯하여 경주를 둘러싼 산 위에 남산산성 ·선도산성(仙桃山城) ·명활산성(明活山城) 등을 배치하여 국토를 수비하도록 하였다. 한편 고려와 조선 시대의 도성은 국도의 시가지를 둘러싼 주위의 산능선을 따라 성벽을 구축하였다. 개성의 성벽은 토축(土築)이었으며, 서울의 성곽도 처음에는 토축한 부분이 많았으나 뒤에 모두 석성(石城)으로 견고하게 개축하였다. 또한 조선 정조 때 축조한 둘레 약 5㎞의 석축으로 된 수원화성(水原華城)은 그 규모와 형식에 있어 서울성에 버금가는 한국의 대표적인 도성이다.
② 읍성:지방도시를 방어하기 위한 읍성 역시 그 시작된 시기를 밝히기 어려우나 산이 많아 일찍부터 산성이 발달한 한국에서는 일단 유사시에는 시가지를 버리고 산성으로 피난하는 방법이 오랫동안 계속된 것 같다. 《삼국사기》에는 통일신라 때 지방 소경(小京)을 비롯하여 주 ·군 ·현에 성을 축조한 기록이 있으나, 그것이 평지에 축조된 읍성인지, 아니면 전란(戰亂) 때 고을의 주민을 수용할 수 있는 산성이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북방의 영토확장에 많은 힘을 기울여 대동강 이북의 국경지대에 여기저기 주진(州鎭)을 설치하여 성을 쌓고, 거기에 남쪽으로부터 장정(壯丁)과 백성들을 옮겨 살게 하여 변경의 방위태세를 갖추었다. 이들 주진성은 후에 변방 읍성으로 되었으며 그 형식은 대개 평산성(平山城:또는 半山城)이었다. 한국의 촌읍은 대개 배후에 주산(主山)을 두고 그 기슭에 형성되어 있으므로 성곽도 자연적으로 읍의 주위를 두른 다음 그 끝이 산으로 이어지는 평산성 형식이 발달하였다.
한편 동해안을 비롯한 각 해안에도 왜구(倭寇)와 여진(女眞)의 해적을 막기 위한 주진성이 점차 증설되었으며, 이에 따라 내륙지방에도 많은 읍성이 축조되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평산성이 아닌 순수한 평성으로 된 읍성은 조선 전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그 대표적인 예로 경주읍성과 울산의 언양읍성(彦陽邑城)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중국 성곽을 본떠 그 형태가 사각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성벽은 석축으로 구축되었다. 그 밖의 읍성들도 조선시대의 것은 모두 석축으로 축조되었고, 먼저 토축이었던 것도 대부분 석축으로 개축되었다.
③ 산성:산성은 한국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그 형식은 입지조건과 지형선택의 기준에 따라 테뫼식(또는 머리띠식)과 포곡식(包谷式)으로 구분하는 것이 통례이다. 전자는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성벽을 두른 모습이 마치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며, 대개 규모가 작은 산성에 채택되었다.
한편 평야에 가까운 구릉(丘陵) 위에 축성한 것도 있으며 경주 월성 ·대구 달성(達城) 등은 평지에 있는 독립구릉(獨立丘陵)을 이용한 특이한 예이다. 산성의 둘레는 400∼600m 가량 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때로는 800m가 넘는 큰 것도 있으며 성벽은 토축으로 한 것이 많고, 때로는 그것을 2중 3중으로 둘러 구축한 것도 있다. 한편 포곡식은 성 내부에 넓은 계곡을 포용(包容)한 산성으로, 계곡을 둘러싼 주위의 산릉(山陵)에 따라 성벽을 축조한 것이다.
성내의 계류(溪流)는 평지 가까운 곳에 마련된 수구(水口)를 통하여 외부로 유출되며 성문도 대개 이러한 수구 부근에 설치되어 있다. 성벽은 대개 견고한 석벽으로 축조되었으나 백제의 부소산성(扶蘇山城)은 토축이다. 이 성은 둘레가 2,000 m 내외이나 조선시대의 포곡산성은 5,000∼6,000 m 내지 1만m가 넘는 대형산성도 적지 않다. 이들은 가공석재를 사용한 완전한 석축성벽과 무사석(武砂石)으로 구축된 성문, 그리고 총안(銃眼)이 있는 여장(女墻)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현존하는 이들 산성으로는 임진왜란 때의 행주산성(幸州山城), 병자호란 때의 백마산성(白馬山城) ·남한산성 등을 비롯하여 부여의 성흥산성(聖興山城) ·부소산성(扶蘇山城) ·청마산성(靑馬山城) ·청산성(靑山城) ·석성산성(石城山城) ·건지산성(乾芝山城), 공주 공산성(公山城), 경주 남산성 ·부산성(富山城) ·명활산성, 주산산성(主山山城), 물금증산성(勿禁甑山城), 화왕산성(火旺山城) ·목마산성(牧馬山城), 김해 분산성(盆山城), 함안 성산산성(城山山城), 성주 성산성(星山城), 양산 신기리산성(新基里山城) ·북부동산성(北部洞山城) 등을 들 수 있다.
④ 행성(장성):631년 고구려 영류왕(榮留王) 때 동북의 부여성으로부터 남쪽 랴오둥[遼東] 지방에 이르는 해안선 1,000여 리에 장성을 축조하였다고 한다. 백제에서도 진사왕(辰斯王) 때 청목령(靑木嶺) 이서에 관방(關防)을 설치하였고, 신라 성덕왕(聖德王)은 721년에 발해(渤海)와의 국경지대에 북경장성(北境長城)을 설치하였으며, 헌덕왕(憲德王)은 826년 패강장성(浿江長城) 300여 리를 축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