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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29 15:24
[중국] 당태종의 돌궐에 대한 12년간의 신속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1,814  

돌궐은 중국북방의 오래되고 두드러진 민족이다. 일찌기 남북조시대에 돌궐족은 점차 발전하기 시작하여 수십만에 이르는 군대를 건립한다. 수나라초기, 돌궐족은 내분과 투쟁으로 통치집단이 동, 서의 양부로 나뉜다. 서돌궐은 알타이산 서쪽에 위치하고, 동돌궐은 흥안령서쪽에서 알타이산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지배한다. 그중 동돌궐은 얼마후 수나라군대에 채배하고, 서돌궐도 내란으로 쇠락하게 된다. 수나라말기 천하가 혼란할 때, 동서 두 돌궐부락은 신속히 통일하고 새롭게 힘을 내서, 세력이 신속히 확장된다. 한때 막북에 할거하며 서역을 지배하고, 심지어 중원지역에도 심각한 위협을 주는 강대한 군사역량으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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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동시에, 수나라말기 농민의 난이 점차 전국대부분의 지역으로 확대된다. 수양제 대업7년(611년)부터 전국각지에서 반수의거군이 100개이상 들고 일어난다. 참가한 인원수만도 수백만에 이르렀다. 그중 실력이 가장 강한 반란군은 3갈래이다: 하나는 하남의 이밀, 적양의 와강군(瓦崗軍)이고, 둘째는 하북의 두건덕(竇建德) 군이며, 셋째는 강회지구의 두복위(杜伏威)군이다. 반란군은 7년의 혈전을 거치면서 수양제 대업13년(617년)에 이르러, 수나라정권의 붕괴는 이미 기정사실화된다. 각 반란군들도 큰 타격을 입었다. 대업13년 칠월, 계속 시기만 기다리고 있던 이연, 이세민 부자는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보고 진양(지금의 산서성 태원)에서 3만의 군대를 이끌고 거병한다. 그들은 농민군의 수중에서 승리의 과실을 빼앗고자 하였다.

 

<구당서>의 기록에 따르면, 이연, 이세민 부자가 거명할 때, 돌궐군대가 진양을 습격하여 노략질을 한 후 돌아갔다. 돌궐의 습격은 이연, 이세민 부자로 하여금 돌궐이 두려운 역량일 뿐아니라, 그들이 천하를 다투는데 후고지우(後顧之憂)가 된다는 것을 의식했다. 만일 돌궐과의 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자신이 새로 만든 세력은 끝장날 것이었다. 돌궐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하여, 이연, 이세민부자는 심복인 유문전(劉文靜)과 상의한 후, 당공(唐公, 당시는 아직 수나라에서 받은 작위인 당공이었음) 이연이 친히 돌궐의 시필칸(始畢可汗)에게 글을 써서 "칭신납공"(신하로 칭하며 공물을 바치겠다)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유문정은 많은 선물을 가지고 돌궐로 가서 협상한다.

 

유문정이 돌궐에 도착했을 때, 시필칸이 묻는다: "당공(이연)이 거사를 했던데, 이제 무슨 일로 왔는가?" 유문정이 대답한다: "황제가 적자를 폐하고 후주에게 물려주어 화란이 발생했다. 당공은 국가의 인척으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가 없다. 그래서 의로운 군대를 일으켜, 황제가 되어서는 안될 자를 쫓아내고자 한다. 원컨대 칸의 병마와 함께 경사로 치고 들어가서 사람과 땅은 당공이 가지고, 재물과 금은보화는 돌궐이 가지면 어떻겠습니까." 시필칸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즉시 대장 강초리(康鞘利)에게 2천기병을 딸려 유문정을 따라 태원으로 가게 한다. 그리고 좋은 말 천필을 보내어 우호관계를 표시한다. 유문정이 이번에 돌궐에 사신을 간 것은 이연, 이세민 부자의 의도를 받들어 간 것이다. 돌궐 시필칸의 재물을 탐하는 약점을 이용하여, 경사 장안을 함락시킨 후 재물과 금은보화를 주기로 약속하였는데, 이것은 시필칸의 마음에 쏙 들었다. 이 역사적 사실은 당나라때 역사학자 두우(杜佑)가 그의 <통전>에도 기록했다: "(돌궐)이 다시 더욱 강성해 졌다...대당은 태원에서 의거를 일으킨다. 유문정은 그 나라에게 부탁하여 지원을 받고자 했다." 돌궐이라는 관문을 넘기 위하여 돌궐에 칭신납공하며 지원을 이끌어 내고, 자신이 천하를 쟁탈하는 것이 돌궐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를 해소시켰다. 이것은 막 천하를 다투기 시작한 이씨집단에게 아주 가치있는 일이었다.

 

이연의 세력이 커지면서, 돌궐인의 욕심도 갈수록 커졌다. 시필칸은 자주 각종 핑계를 대어 이연에게 재물을 바칠 것을 요구했다. "고조가 즉위할 때까지, 전후로 상사(賞賜)한 것이 수를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시필은 스스로 공이 있다고 자만하여 갈수록 교만해졌다. 매번 사신이 장안으로 올 때면 방약무인이었다. 고조는 중원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으므로 매번 이를 넉넉하게 용납했다(優容) 여기서 '상사'라는 말은 미묘하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올리는 재물을 '진공'이라 하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것을 '상사'라고 한다. 이연이 신하이고, 돌궐의 시필칸은 군주이다. 비록 당서에는 거꾸로 적었지만, 이연이 시필칸에게 칭신납공했다는 사실을 덮을 수는 없다. "우용"은 실제로 실력이 돌궐에 미치지 못하므로 부득이 상대방의 탐욕을 만족시켜 준 것이다. 돌궐의 각종 무리한 요구에도 감히 대항하지 못한 것이다. 시필칸이 사망한 후, 애도를 표시하기 위하여, 이연은, '애도를 표하기 위하여 조회를 3일간 폐하고, 문무백관을 불러모아 사신이 있는 곳에서 조문을 했다." 이것은 중국고대에 국군이 사망했을 때 거행하는 융중한 의식이다. 이연, 이세민 부자는 당나라의 실력이 아직 돌궐에 비하여 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집단과의 천하를 놓고 다투는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돌궐의 마음을 잡기 위하여 노기를 억누르고, 돌궐의 신임 처라(處羅)칸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려 한 것이다. 처라칸이 죽은 후, 이연, 이세민 부자는 여전히 '신하의 예'로 조문하고, 여전히 백관으로 하여금 사신이 있는 곳에서 조문을 하게 했다.

 

당나라가 전국을 통일한 후, 돌궐인은 이전처럼 각 할거자들의 수중에서 재물을 약탈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당나라의 국력이 아직 강대해지기 전에 매년 내지로 들어가 교란하고 인구와 재물을 약탈한다. 돌궐의 힐리칸은 일찌기 15만을 이끌고 병주(지금의 산서성 전부와 하북, 내몽고 일부지역)으로 공격해 들어가, 남녀 5000여구를 약탈한다. 그리고 일찌기 기병 10만을 이끌고 삭주를 약탈하고, 태원을 습격한 바 있다. 더더구나 626년 이세민이 막 즉위했을 때는 20만의 병력을 이끌고 장안성 바까의 위수 편교의 북쪽까지 밀고 들어온다. 장안성과의 거리가 겨우 40리였다. 장안은 진동한다. 당태종은 어쩔 수 없이 의병지계를 써서, 친히 신하와 장병을 이끌고 위수로 가서 힐리와 대화한다. 힐리는 당나라군대의 진용이 위엄있는 것을 보고, 또한 당태종이 금은재물을 주는 것을 보고 결맹을 앶고 병력을 퇴각시킨다. 이것이 '위수지맹'이다.

 

이세민이 즉위한 후, 현명한 사람을 기용하고, 재능있는 사람을 자리에 앉혔다. 널리 언로를 열고, 건의를 받아들였으며 경제발전을 중시했고, 군사력을 강화시켰다. 정관3년(629년)에 이르러서야 당나라는 돌궐에 대한 '칭신납공' 태도를 바꾸게 된다. 이때 당나라군대의 전투능력은 크게 제고되었고, 병력이 많아졌다. 이와 반대로, 돌궐의 실력은 점차 하락하여, 한때의 속국들이 속속 반기를 든다. 돌궐의 상층통치자들 중에도 분열이 일어나, 형세가 당나라에 유리하게 바뀐다. 617년에서 629년까지, 12년동안, 웅재대략의 이세민은 수시로 돌궐문제해결을 생각했다. 그리고 항상 돌궐문제에 이를 갈았다. 시기. 시기. 그는 시기를 기다렸다. 정관3년(629년) 이세민은 당금의 형세를 분석하고 군사적 준비를 충분히 마친 후, 돌궐문제를 철저히 해결할 시기가 이미 성숙되었다고 보고, 돌궐에 출병한다. 이로써 12년간 드리워졌던 그림자를 지워버리려 한 것이다. 대당제국이 돌궐에 '칭신납공'했다는 불명예의 역사를 철저히 고쳐쓰고자 한 것이다. 그는 이정에게 명하여 돌궐을 공격하게 한다. 돌궐군을 대패시키고, 힐리칸을 생포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다. 이제 이세민은 돌궐에 대한 신복의 역사를 끝낸 것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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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 18-04-30 19:41
   
현실에 만족하다가 두눈뜨고 당한 괵튀르크, 그런 형제국을 보면서 아무 준비도 안한 가우리. 둘다 안타까운 나라들이죠. 근본도 없고 역사도 짧은 당나라 따위한테...
지수신 18-05-01 12:15
   
그나저나 저 지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류 같은데
누가 그렸는지 몰라도 놀라운 부분이 있네요.
요서쪽의 디테일함에 무릎을 탁 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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