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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22 16:42
[한국사] 광해군의 재위기의 상징 인경궁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2,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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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궁의 전각을 그대로 사용한 선정전 

仁慶宮.

 

광해군 재위기의 상징

 

광해군 때 지어진 궁궐 가운데 하나였으나 공사가 완공되기 직전에 인조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은 사용하지도 못하고 폐위되었다. 이후 인조가 해체를 지시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위치는 사직단 북쪽, 자하문로와 인왕산 사이 지역으로 추정되며 현재 종로구의 옥인동, 필운동, 누하동, 누상동 일대에 해당한다. 광해군일기를 보면 새 궁궐과 사직단이 담장으로 연결되어서 순라를 도는 길이 막혀서 이에 대한 논의가 나온다. (광해군일기[중초본] 115, 광해 9529일 임진 1번째기사)



인경궁.jpg


인경궁은 처음에는 이궁 용도로 지어지기 시작했지만, 이후 규모를 크게 확장한 것으로 보아 경복궁이나 창덕궁을 대체할 정궁 내지는 정궁에 준하는 양궐 체제의 이궁을 목적으로 건립된 듯 하다. 그 규모가 조선시대 궁궐 가운데 가장 커서 경복궁보다 규모가 컸다고 한다. 다만 인경궁 착공 후 경희궁 건설이 추진되면서 인경궁의 규모는 다소 축소되었다고 한다. 광해군의 영건 사업이 얼마나 비정상이었는지 알려주는 증거인데 인경궁은 기와를 염초를 사용한 청기와로 만들었다. 광해군 1년 중건된 창덕궁을 시작으로 창경궁, 경희궁, 인경궁, 자수궁이 세워지고 경운궁 확장공사까지 벌였지만 개중에서 청기와를 사용한 것은 인경궁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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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화여고 교정석재 혹시 인경궁에서 260611-2.jpg
배화여고에서 발견한 인경궁의 흔적 

 

인조가 인경궁 해체를 지시한 명분은 인조반정과 이괄의 난으로 불탄 창덕궁과 창경궁을 다시 짓기 위한 자재로 사용되기 위함이었다.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정권 입장에선 동궐(창덕궁과 창경궁)을 복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화려함과 사치의 극인 인경궁은 폐조(廢朝)의 사치의 상징에 불과했다. 더욱이 광해군대의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린다는 상징성이 필요했다. 백성들을 동원하여 굳이 인경궁을 헐어 창덕궁과 창경궁을 다시 짓고 정명공주의 저택과 청나라 사신 숙소인 홍제원을 짓는데도 사용하였다. 홍제원 건설을 끝으로 인경궁은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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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에는 단지 이궁(離宮)으로만 짓는 것이었는데 공사가 진행되면서 당시 법궁이던 창덕궁은 물론 예전의 경복궁보다도 크게 짓게 되었다. 궁궐의 대부분 건물들에는 청기와를 올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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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궁에서 사용한 전각. 징광루. 를 창덕궁에서 사용(창덕궁 대화재 때 전소됨)

 

경희궁을 함께 짓느라 공사기간이 지연되었다. 거의 완성되어 가던 시점에 인조반정이 일어나 공사가 중단되게 된다. 인조반정과 이괄의 난으로 창덕궁과 창경궁이 잇달라 전소되자 인경궁을 사용하자는 의견이 신료들 사이에 비등했으나 인조는 끝내 인경궁의 입어를 거부했다. 다만 경운궁의 징발 가옥들을 모두 원래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조치를 취한 후 원래 경운궁에 있던 인목대비가 인경궁으로 옮겨 거처하게 되었다.

 

이후 인조는 전소된 창덕궁과 창경궁을 재건하기 위해 인경궁의 많은 전각들을 헐고 옮겨다가 두 궁궐을 중건하는데 사용하도록 했다. 또 궁궐 공사 뿐 아닌 병자호란 뒤 1648(인조 26)에 청나라의 요구로 홍제원에 역참을 만들 때 청나라 사신들의 숙소 등의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해서도 몇몇 전각들이 옮겨갔다. 물론 그냥 없어진 건물들도 많았다. 이렇게 여러 군데로 전각들이 이건(移建)되고 철거되면서 자연스레 사라지게 되었다.

 

1647년 중건된 창덕궁과 창경궁 전각의 상당수가 인경궁의 전각을 뜯어와 다시 만든것이었지만, 순조 시절의 창덕궁 대화재 등을 거치며 대부분 소실되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진짜 오리지널 인경궁 전각은 편전인 광정전(창덕궁 선정전)이 유일하다.현재 창덕궁에서 선정전이 유일하게 청기와로 되어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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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때마다 아름다운 청기와 

 

1) 인정전 건설운 왕권강화: 왕권 강화라는 말도 있으나 광해군은 왕권이 약하지 않았다. 광해군이 받은 존호만 세어봐도 헛소리에 불과하다. 분조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탁소북 제외하고 북인, 남인, 서인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아버지 선조가 경계할 정도였는데 무슨 왕권이 불안하단 말인가. 광해군 정권 후기 그의 운신폭이 이전보다 좁아진건 그가 자초한 공안정국으로 북인의 세력을 지나치게 키웠기 때문이지 기반이 약해서가 아니다. 게다가 광해군 일기 - 광해군 14(1622)의 기사에 "훈련도감에서 도성 내의 군사가 3000도 채 안되고 업무가 너무 많아서 그들이 너무 힘들어하는데 이 상태에서 또 변경으로 보내면 궁성을 호위할 병력도 없어질 것" 이라고 광해군을 만류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 이야기는, 즉 자신을 호위할 병력까지도 전쟁 대비랍시고 변경에 보내 배치시키는 것 으로 왕권 강화와는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2) 법궁인 경복궁을 짓지 않은 이유가 너무 거대해서 이다: 인경궁의 공사가 더 컸으니 이는 말이 안되는 소리다. 경복궁 공사를 하지 않는 이유를 공사가 크다는 것으로 댄 건 핑계일 뿐, 실상은 경복궁이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않다는 말이 많아 미신 신봉하는 광해군이 꺼렸다는 의견이 정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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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기와 추녀

3) 인경궁의 규모: 10배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 정도는 아니고 경복궁과 거의 비슷하거나 아니면 1.5배 정도 더 크다. 참고로 경복궁의 10배면 남북 축으로는 이미 한양도성을 넘어간다.

 

4)청기와를 사용한 인정전: 청기와를 만드는 데 쓰이는 주 재료가 화약의 원료인 염초다. 이것이 상당히 심각한 문제인데 광해군 시기엔 국방력 강화를 위해 그렇잖아도 백성들의 삶이 크게 고달팠는데 가뜩이나 부족한 염초를 국방 강화와 궁궐 공사라는 대공사 두 군데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백성들의 삶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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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궁에서 이전한 선정전의 화려한 내부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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