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4-20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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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로 압송되었고, 당태종의 묘에 참배를 시켰다. 연씨가 정권을 잡았지 자신이 정치를 한 것이 아니고 전쟁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 한 것을 당나라에서 인정해 (당나라 입장에서) 그의 죄를 용서하고 사평대상백원외동정(司平大常伯員外同正)에 책봉되었다. 과거 고구려의 중심 지방이였던 요동 지방에서 고구려 부흥 운동이 거세자[3] 그를 요동주도독 조선왕(遼東州都督 朝鮮王)[4]에 봉하고 안동도호부로 부임하게 하여 부흥 운동을 무마시켜보려 했으나 오히려 보장왕은 말갈과 손을 잡고 고구려 부흥을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는 실패하였고, 681년(신문왕 1년) 고구려와는 대륙 반대편인 촉 땅(지금의 쓰촨성)에 유배당했으며, 죽은 후 위위경에 봉해졌고, 돌궐왕 힐리가한의 무덤 옆에 묻혔다고 한다.그 후 당은 기만 정책으로 보장왕의 손자가 요동에 봉해진다. 이후 계속 세습되어 독립적인 정권인 소고구려가 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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